느림 밀란 쿤데라 전집 8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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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름!~ 빠름!~ 빠름!~'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모 통신회사의 광고 카피를 기억하실 겁니다. 아마도 현대 사회를 이 만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은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우리는(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미덕이라고 해야겠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의 모든 현상들이 리얼타임으로 빠르게 변화고 있고 그 '빠름' 에 조금이라도 쫒아가지 못하면 경쟁이라는 막차를 놓칠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에게 '빠름' 은 일상적인 하나의 패턴으로 형성되었고 모든 가치관들과 성과물들의 잣대 같은 역활을 하게 되어버렸죠. 이런 시대에 '느림' 이라는 다소 진부한 단어, 시대발상에 현격히 뒤 떨어지는 사유를 불르짓는 한 사내가 있으니 바로 그가 밀란 쿤데라입니다. 모 다른 이가 이런 발칙한 사유를 들고 일어선다면 한마디 하겠는데 밀란 쿤데라라고 하니 어디 한번 그 '느림' 이 어떤것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 는 분량에 비해서 다소 복잡한 스트럭쳐를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맨 처음 접하게 되면 다소 아리송한 내러티브의 진행으로 페이지를 앞으로 그리고 뒤로 넘기면서 우왕좌왕하게 하죠. 화자와 작중 등장인물들의 매칭이 쉽게 이루어 지지 않은 듯한 뉘양스를 주면서 왠지 짧은 분량이라 다소 웃습게 여기고 도전한 독자들을 마냥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구조자체가 액자소설의 구도로 18세기 비방 드농의 '내일은 없다' 라는 정체불명의 소설에 등장하는 기사와 T부인의 사랑이야기 한번편과 20세기 망명한 체코학자와 춤꾼(정치색과 여론의 후광을 쫒는 무리들) 이야기라는 두개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여기에 작품 후반부에 가서 알게 되지만 20세기의 스토리를 작중 화자인 '나' 가 20세기 스토리을 써가는 형식을 가지고 있어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한층 더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의 독특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니크한 점은 내러티브가 표방하고 있는 사유인 '느림' 을 외치는 밀란 쿤데라의 서사가 자칫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는 것죠.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동안 발표된 밀란 쿤데라의 작품중에서 가장 독특한 구조와 사유를 지닌 작품을 손에 꼽을라면 단연코 이번 작품에 손을 들고 싶어질 정도로 <느림>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체코를 떠나 자유세계의 대변인격인 파리에 정착하면서 양 세계를 다 접해본 작가의 사유가 함축되어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동안 체코에서 지성인의 갈등과 갈망을 모호성과 경계선이라는 사유로 분출했다면 이번 작품은 양 세계의 극단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속도감' 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모호성과 경계의 사유는 여전히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작품입니다.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속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 이번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이자 파토스적인 경구처럼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이번 작품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아마도 이 문구로 깔끔하게 정리될 정도로 작가 자신이 표방하는 사유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 사유는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대외적인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 자신의 고뇌가 묻어 있는데요. 망명한 체코 곤충학자라는 액자소설속의 인물을 투영해서 사회주의와는 또 다른 비애를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크나 뱅상, 퐁트벵등의 인물들(춤꾼으로 묘사하죠)을 통해서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울수 없는 현대 지성인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와 이를 한꺼 조롱하는 밀란 쿤데라의 따가운 시선속에 또 다른 느림의 미학을 엿보게 하네요.

 

   '똥구멍', '음문' ,'자지' 등 원초적인 단어와 "너 하고 싶니?,나도 하고 싶어" 라는 도발적인 문구들을 접하면서 밀란 쿤데라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다소 황망한 마음을 감출수 없을 것 같이 이번 작품은 성애묘사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여러작품(아니죠 모든 작품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성애의 묘사를 기가막히기 서사하고 있죠. 이 기막힘이란 대놓고 상영되는 포로노 같은 서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면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서사라는 점에서 낮을 붉히게 하지만 속이 시원한 느낌을 대리해주는 그런 기막힘이죠.)을 통해서 보여준 성애의 묘사와는 약간 차별화된 서사들(정말 대놓고 표현하고 있죠. 그 동안 뭔가에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사정없이 쏟아붓고 있으며, 밀란 쿤레라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작심한듯이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의 작품들에서 볼수없는 대범함이라고 할까요)을 맛보게 됩니다. 뭐랄까 직설적인 성기등 은밀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데도 왠지 격이 떨어지지 않는 서사들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뜨거운 욕망을 마그마가 분출하듯이 한방에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야금 야금(느림에 해당되겠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서사의 결정판을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리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직설적인 서사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빠름의 종교에 빠져들 수 있는 점을 경계하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크게 세개의 액자가 전혀 연관성 없는 단독의 그림으로도 보여지고 있지만 城 (이 부분이 중요한데요. 성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왠지 '느림'을 대변하면서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시대를 넘어선 두가지의 스토리가 서로 용화되면서 빠름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데 큰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이라는 커다란 배경 화면에 유효적절하게 녹아들어 하나의 멋진 그림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 정치성이 짙은 정치이야기라는 미시적요인과 거시적요인이 혼합되어 얼핏 간단명료하게 종결될 수 있는 것을 몇바퀴 꼬아버려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결말부분의 다소 어색한 설정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원심력이라는 물리학 법칙(일종의 빠름을 상징할 수 도 있겠네요) 에 반하여 서로 느긋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느림' 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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