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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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구름이 걸쳐져 있고 멀리 원경엔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이 보이는 책 표지 자체가 <삶은 다른 곳에> 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문 안쪽(야로밀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할려고하는 엄마의 모성)과 문 밖(야로밀이 남성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고 싶은 곳) 양쪽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구름(엄마의 사랑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야로밀 자신) 그리고 문 안쪽에 보이는 밝은 세상, 왠지 문안쪽은 어두침침 해야할 것 같지만 화사한 색깔로 도배된 사방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안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망설여지게 하는듯 한 표지. 그 동안 출간된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중에 이 표지만큼 작품을 대변하는 컷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아무리봐도 절묘하게 작품의 성격을 그대로 옮겨놓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새삼 문학작품에서 표지의 역활이 결정적인 팁을 제공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가져보게 합니다.

 

   <삶은 다른 곳에> 는 詩人이 되고픈 아니 마치 운명처럼 시인으로 길러져야 했던 야로밀과 아들만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다 받쳐 사랑했던 엄마의 삶을 다룬 작품입니다.(물론 스토리자체가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내러티브이고 사실은 작가자신과 사회주의 체코 시스템을 우화한 표현이라 보여지는데요)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대하면서 늘 느끼는 생각중에 하나가 경계와 모호성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박탈 당한다고 할까요? 이 양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이러한 모호성과 경계선을 아쓸아쓸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개념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 자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번 작품 역시 자신의 주 전공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의 스토리도 별반 특이한 점이 없는 그저 그런 내용들입니다. 막말로 '이게 모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뻔한 스토리라는 거죠. 한 여성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모성애와 이런 모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주인공 많이 접해본 삼류판 소설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입니다. 근데 말이죠 이러한 뻔한 내러티브가 왜 밀란 쿤데라와 조우하게 되면 제목처럼 '삶은 다른 곳에' 라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사유로 무장하게 되면서 독자들의 뇌리에 확 박혀버릴까요? 이 점에 대해선 그 동안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회고해 보면 정말 변변한 스토리나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 다시한번 놀라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양반의 작품에 끌리는 것은 다름 아닌 서두에서도 말한 모호성과 경계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류의 작품이나 작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만큼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이 각인된 경우는 찾기 드물죠. 그리고 독자들이 들어내 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사유들을 과감하게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 시키므로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기 밀란 쿤데라의 사유에는 정답이나 보편타당한 결과치를 절대 이끌어 내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죠. 아마도 이러한 서사가 독자들의 가슴을 휘어잡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가이기도 하죠. 간간히 생뚱맞은 서사들을 내러티브 중간에 슬그머니 밀어 넣기도 하는 구도를 왕왕 사용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 또한 자신이 표방하고 있는 모호성과 경계에 대한 하나의 에피타이저 같은 보너스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절정기때에 자신의 문학과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경험을 겪은 밀란 쿤데라에게 모호성과 경계는 어쩌면 당연한 사유의 한 갈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농밀하고 은밀하면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성애의 묘사나 심리묘사가 일품이라는 것입니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에 대놓고 파격적으로 묘사되는 성애의 표현기법보다 밀란 쿤데라의 성애 묘사는 은근한 애로시티즘을 자극하면서 낯뜨겁게 한다는 것죠. 이러한 낮뜨거움은 아마도 자신속에 숨겨져있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죄의식 비슷한 감정들이 이 양반의 작품을 통해서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부끄러움 혹은 민망함의 발현이랄까요. 그러면서도 막힌 부분이 확 뚫려버려 속이 다 시원해지는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감이 가는 서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아가씨가 혼자 옷을 벗고 싶어 하는 것에 심한게 마음이 언짢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랑이 담긴 옷 벗는 행위와 그냥 보통 옷 벗는 행위 사이의 차이는 바로 여자의 옷이 연인에 의해 벗겨진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숨기고 싶었던 혼자만의 느낌을 사정없이 공론화 시키는 멘트가 아니겠습니까?

 

   전체적으로 잿빛 가득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다소 분위기 다운되는 작품입니다. 시인을 모티프로 사회주의 체코의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으며 밀란 쿤데라 자신의 정체성과 고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데올로기와 문학사이에서 절망을 삶이라는 확대된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자유 그리고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현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일종의 체념이라는 부분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구요. 시인들과의 토론회 장면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버스정류장의 이전과 설치에 대한 토론아닌 토론은 바로 당시 체코사회를 바라보는 밀란 쿤데라의 체념성 멘트가 아닌가라는 애잔한 마음도 드네요. 자유와 더불어 다른 삶을 추구하는 야로밀(밀란 쿤데라의 투영이겠죠)와 이런 야로밀을 화가, 시인을 만들기 위해 정열을 쏟아붓는 엄마(사회주의 체코를 상징할 것입니다) 사이의 모호성과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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