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의 실제 위치 연구 - 한반도를 식민지배해 온 것으로 왜곡되어 온, 김종서의 한국사 복원서 5
김종서 지음 / 한국학연구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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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학의 아버지라 추앙받은 독일의 랑케에 의해 주창된 실증사학은 기존의 철학이나 신학에 의거한 역사 인식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근대화라는 크나큰 패러다임속에 새로운 역사 인식의 툴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랑케가 주장하는 실증사학 표현 그대로 역사 서술은 원사료(原史料)에 충실하면서 사실(史實)의 개성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할 것을 강조하고, 역사란 많은 사상(事象)이 상호 관련되어 발전된 그대로를 기술해야 하며, 또 각 시대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개성가치를 간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실증사학의 사조가 조선의 한반도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 민족에 지극히 불행했던 시기인 일제 강점기 일본 식민사학자들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한국 사학의 거두로 알려진 이병도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이 일본유학을 통해 처음으로 실증사학을 접하게 되었고, 귀국해서는 조선총독부산하에서 한국사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우리에게 뼈아픈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립박물관에는 고조선에 대한 역사가 없다. 일반인들은 의아해할 수 있지만 강단 학계에서는 고조선에 역사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 실증사학에 의해 원사료에 대한 사실의 신빙성이 부족하고 기존 몇몇 청동기유물에 대한 방사성 연대 측정등을 이유를 들어 부정적 견해가 통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들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자체 또한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통설에 의해 고조선을 비롯한 상고사에 대한 우리의 역사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의 시조라고 하는 이병도는 일본식민학자들과 손잡고 연구한 한국 고대사에서 일본의 식민주의정책에 적극 찬동한 인물이다. 일본은 식민지 정책의 정당화를 위해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고대 한반도내에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끼어 넣으므로서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였던 것이고 이에 맞장구 친 이가 바로 지금 강단 학계에서 추앙받고 있는 이병도이다.    


해방이후 이러한 상고사에 대한 재정립이 필수적이었으나 이승만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 지상주의로 인해 친일청산이 이루어지못하였고 단재 신채호선생을 비롯한 민족사관 사학자들의 주장이 위험스러운 사상으로 치부 받는 바람에 왜곡된 역사관이 그대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이제서야 우리의 상고사에 대한 재인식문제가 대두되었고, 재야사학자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사군의 실재 위치 연구>는 그동안 줄기차게 왜곡된 우리 상고사를 바로 잡고자 노력한 재야 사학자 김종서 박사의 의미 있는 연구서이다. 아마 기억을 학창시절로 되돌려 보면 고조선이 BC 108년에 한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나서 한나라는 다시는 고조선의 재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낙랑군, 현도군, 임둔군, 진번군의 4군을 설치 하였고 그 위치가 한반도내에 있는 것으로 학교에서 배웠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켰던 선생이나 그런 사실을 배웠던 학생이나 그게 사실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표적인 역사왜곡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보게 되면 한반도내에 이러한 한사군은 존재하지 않은 거로 주장하고 있다. 이병도는 평양일대에서 발굴된 한나라 유적과 중국역사서에 명기된 패수를 대동강으로 비정함으로서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병도는 랑케의 실증사학에 입각하여 원사료와 발굴된 역사적유물을 근거로 부끄럽지만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설은 이후 한국 사학계의 통설로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역사서가 대게 춘추필법의 방식으로 기술 되었다는 점과 당시 지명과 후대의 지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평양에서 발굴되었다는 유물의 조작성이 대두 되면서 이러한 통설에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김종서의 박사의 논거는 그동안 재약 사학자들의 막연하고 자기중심적인 학설에 비해서 상당히 과학적 근거를 가진 학설로 주목받고 있다. 굴곡지수라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서 새로운 강역연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당시의 거리는 지금의 지도상의 거리개념인 수평직선 거리가 아니였다 당시에는 어떤 지점에서 오르막 내리막등의 있는 구불구불한 거리를 실제 거리로 기록해 전하는 방법을 채택했기 때문에 사실상 현대의 거리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조선의 강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연나라의 강역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착안에서 만든 것이 굴곡지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격파하여 2천리밖으로 밀어 냈다는 기록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나라의 강역확정에 의해 요동이냐 아니면 한반도내냐로 고조선의 강역이 고무줄처럼 늘고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굴곡지수등을 통한 필자의 연구는 한마디로 한사군은 한반도내에 존재할 수 도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그동안 평양 지역에서 나온 고고학적인 유물에 대한 설명도 쉬워진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우리는 원사료에 대한 해석을 잘못하였고 고고학적 유물에 대한 판단을 잘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일본식민학자들의 유물조작사건도 있었지만 근시안적인 우리 학자들의 판단이 한 몫을 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도 학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망설이고 있다. 기득권의 영유와 그동안 자신들이 설파한 통설에 대한 전면부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들 입으로 마르고 닳도록 주장한 실증사학에 크나큰 흠집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사를 상고해 보면 자국의 역사는 자국이 지키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도 독도문제만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손들어 주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실정이다. 그만큼 자국이 나서서 지키지 않는 역사는 그나라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하물며 그나라의 대표적인 사학자들이 나서서 자기 역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부여등의 역사를 자국의 지역역사로 편입시키는 이유가 장래에 있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사전포석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역사왜곡의 차원을 넘어선 한반도의 정략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제대로된 우리 상고사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기존 강단 학계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고 일반인들의 역사인식도 새롭게 정립 시켜야 할 때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종서박사의 한사군 실제 위치 연구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역사서이다. 물론 우리도 중국과 일본에 맞서 역사왜곡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체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정말 실증사학에 입각한 역사를 바로 잡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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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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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말해 주듯이 이 책은 뉴욕에서 온 파란눈의 영어 강사 로버트 프리먼 그리고 도쿄에서 온 아티스트 곤도 유카코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바라 보는 서울의 이야기이다. 서울이란 도시의 역사는 600여년전의 조선 창업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현재 한반도의 중심이다. 지리적뿐만 아니라 정치,문화,경제등의 거의 모든면에서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런 서울을 자국민의 눈이 아닌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이야기 정말 흥미롭다.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그네들이 본 서울은 과연 어떻게 다가 오는 것일까?

뉴욕에서 무작정 아무런 특별한 계획없이 서울로 온 로버트 프리먼, 싸이월드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에밀 고, 일본에서 추상화를 주로 그렸던 화가이자 아티스트 곤도 유카코, 재현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로 친숙한 얼굴인 젠 아이비, 대학교수이자 아시아 영상문화 연구소 소장등을 역임하고 있는 얼 잭슨 주니어등 7인의 이방인이 바라 보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서울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연신내 재래시장과 달동네같은 무질서한 주택가에 서울의 의미를 찾고 우리가 외면했던 색에 대해서 강렬한 감동을 느끼는 이들의 서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과는 상당한 이질감마저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그동안 개발과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우리가 철절히 외면해왔던 우리들의 참 모습 중 하나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우리도 알고 있듯이 마천루같은 고층빌딩과 IT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지만 다른 이면에 일종의 고유 전통이라는 신구가 함께 자리 잡고 있는 몇안되는 도시중에 하나이다. 그만큼 서울이라는 도시는 근대와 중세가 함께 살아숨쉬고 있는 곳이다. 또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포스터모던과 전통 문화가 함께 믹스되어 있는 복잡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서울의 겉모습과 서울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적인 콘텐츠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화두아래 그 개발과 발전으로 자리매김했고 대신했던것이 사실이다. 또한 굳이 이러한 경제논리를 배제하고 서울의 참 모습을 보지 않을려고 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와는 상당한 문화적 차이를 가진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에서 새삼 우리의 진정한 서울을 보게 된다. 


이들의 눈으로 보는 서울을 통해서 과연 그동안 우리가 알아 왔던 서울의 참 모습을 투영시켜준다. 진정한 문화의 모습은 그 국적을 넘어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에게는 정확히 보이는가보다 그러면에서 우리의 눈은 그동안 너무 화려하고 모습들만 찾아다녔던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서울의 살아있는 이야기 이들의 눈으로 보는 서울은 여전히 생기넘치고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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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전쟁 -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신재식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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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가 이런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 아니라 종교라고 한다" 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이 세상에 절반을 훌쩍 넘은 숫자의 인간들이 어떠한 형태로 간에 이 종교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또한 종교의 최정점에 있는 "신" 이라는 존재의 유무에 대해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신의 형태가 절대적 초월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인격성을 띠고 있던 유일신이던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처럼 종교의 기원은 광대한 넓이 만큼이나 역사적 기원 또한 인류 탄생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형태의 고등 종교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절대적 초월자에 대한 믿음을 종교형태이던 개인적인 위안의 형태이던 인류발전과 동일한 선상에서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종교는 우리 인간에게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바로 이 종교에 대한 믿음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다윈의 출현과 진화론의 대두로 인해 신에 대한 그리고 신과 인간과 종교에 대한 불변의 법칙이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윈주의는 그동안 종교적 담론에 빛을 보지 못한 과학주의를 전면으로 부상시켰다.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부의 폭발은 바로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인 철학을 요구하게 되었고 근대화라는 패러다임속에서 은근히 슬쩍 과학의 손을 들어주게 된 형국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빛을 보면서 과학과 종교는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맞짱 뜨기에 들어 갔다고 할 수 있다. 과학진영에서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모든 자연의 법칙을 과학적 논리로 설명했고 근대화라는 뒤배경을 엎고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왔다. 한편 종교진영은 수천년 동안 이어온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전략을 동원해서 과학진영에 맞서오고 있다. 결국 양 진영의 논리를 마치 기찻길 처럼 마주보면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평행선을 걸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면에서 이번 <종교전쟁>은 과학과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과학 철학자, 신학자, 종교학자 3인의 과학과 종교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는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으로 시작된 과학과 종교의 불꽃티는 공방전을 그저 서구사회의 현상으로만 받아들였던 우리에게 이번 <종교전쟁>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과학과 종교의 양진영의 목소리들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얼마되지 않는 좋은 기회라고 보여 진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견해가 아닌 양쪽의 입장과 견해를 살펴 보면서 과학과 종교라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의 화합을 엿볼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제3자적인 종교학자의 가세로 과학과 종교를 거리를 두고 음미해 볼 수 있는 보너스를 주고 있다.  

그동안 과학진영의 전사인 도킨스의 담론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서적으로 보인다. 창조 vs 진화라는 거대한 담론의 진위성을 뛰어 넘어 좀더 폭넓은 의미에서 과학과 종교의 동거를 알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이번 책은 바로 과학적 정의나 종교적 진리의 진위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동안 양측진영의 공방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진위에 대한 논거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보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해서 그 시시비비를 굳이 가려야 할까라는 점에도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것 보다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담론은 과학과 종교의 근원적인 이해와 양진영의 패러다임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오히려 건설적인 논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면에서 <종교전쟁>은 독자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과학 철학자의 눈에 비치는 종교는 그야말로 도킨스의 집단적 망상에 불과 할 것이고, 신학자의 입장에서 본 과학은 그야말로 신성모독일 수 밖에는 없는 탕아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측의 절대적인 논거를 재확인하지는 측면보다는 과학이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종교가 과학을 받아들이는 시각에 대한 일대 변혁이 와야 한다는 공통된 견해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양진영을 대표하는 전문가의 입장을 개진하다보니 쏠림현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학자인 김윤성 교수의 제3자적인 견해에서 양측진영을 질타하고 한편으로 아우르는 논거가 이번 책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유물론적 진화론을 견지한 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한국기독교의 실상에 대한 토론 부분에서 장대익 교수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절로 들었지만 이 책의 출간 의도가 어느 진영의 일방적인 판정승을 끌어내는 제로섬 게임 매치는 아니기 때문에 신재식 교수의 반대논거 또한 많은 부분에서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종교를 위한 종교, 과학을 위한 과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과학과 종교가 상생할 수 있는 계기 마련에 일조를 하는 책임에 분명하다. 양측의 담론이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결국 그 어떠한 담론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양진영은 서로의 담론에 대해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고 서로의 견지를 묵살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편지>에서 과학과 종교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나마도 어느 쪽의 견해가 주가 되는냐에 대한 논거로 유명무실해진 형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가 양측 진영의 화해의 밑거름이 될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과 종교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다. 이 양측진영의 대결은 모든 인류에게 해악만을 가져다 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종교전쟁>은 양측의 화해 가능성을 내비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담론인 보편타당성을 종교에도 적용해야 하고 종교적 담론인 사랑,평화을 과학에 적용 한다면 분명 일류의 한발짝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그동안 일방적인 담론을 담고 있는 서적에 비해서 양측의 입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것 같다. 특히 그동안 과학과 종교의 담론이 서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던 점에서 한국 기독교의 창조vs진화 논쟁을 엿볼수 있는 기회가 된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번 계기로 인해 좀더 성숙된 토론의 장이 마련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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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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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는 인류가 이 땅에 최초의 족적을 남긴 이후 그 어떤 시기보다 물질적, 정신적 면에서(물론 아직도 이러한 일방적인 잣대를 다 적용할 수 없을 만큼 궁핍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인류도 분명있지만)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나가게 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세이전 시대나 나치시대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능가하는 잔혹함을 주는 내용들이다.
그것도 세계 경제를 선두에서 이끌로 있고 세계 경찰 국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자유와 진리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지금도 버젓이 내려다 보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행했고 아직도 진행중인 비합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에 그저 할말을 잃을 뿐이다.

9.11테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테러 행위임에 틀림없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광기어린 분노의 표출은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이러한 일류에 대한 폭거는 이제 더이상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그런면에서 9.11이후 세계는 미국에 대한 진심 어린 조의를 표명함과 동시에 테러에 대한 명백한 경고를 했다. 물론 아직도 9.11사건의 진상에 대한 많은 억측과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런 죄도 없는 무구한 생명들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9.11이후 그야말로 보수주의 그것도 이념의 스택트럼상 최우측에 위치는 인사들과 정책으로 대테러정책을 진행해 왔다. 이런 정책은 9.11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사실상 묵인되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를 비롯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아프니카스탄을 불법침략하면서 서서히 왜곡되어 갔던 것이다. 이런 극우파의 잘못된 정책판단은 대량 살상무기 혐의로 미국에 대항했던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극에 달았다. 하지만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미국이 주장했던 증거들이 나오지 않고 죄없는 민간인의 사상으로 미국의 정책 전반에 대한 세계의 의심의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이렇 듯 미국이 이런 정책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포함한 전세계인들의 반대에 직면했고 테러의 행동방식 또한 진화하는 형태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현재 이런 대규모의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두차례의 전쟁으로 인한 그 후유증은 엄청나다. 테레리스트 검거라는 미명하에 일방적이고 불법적으로 연행하고 그 어떠한 법적인 절차없이 쿠바의 관타나모만 미해군기지내에 있는 지상최악의 감옥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한때 이라크에서 포로들에 대한 가혹행위로 인해 전세계적인 비판을 받았던 미군은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의 실생활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관타나모 수용소의 이슬람인들은 삶에 대한 희망마져 포기당하기를 강요받고 있다. 차라리 주변 해안의 이구아나가 이들 보다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정도이다.

관타나모 내에서 벌어지는 고문은 중세의 잔혹한 고문을 방불케하고 나치들의 비열함과 일제의 무자비함을 적절히 조합한 인류역사상 최대의 잔혹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육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 마치 미군의 윈윈전략처럼 전방위적으로 수감자들을 몰아가고 있다.
물론 이 수용소에는 테러용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어떠한 혐의도 없고 적절한 법적인 절차없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이다
.
 법의 진리가 버젓이 살아있는 미국에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할 정도로 무법지대이다. 터무니 없는 죄목을 씌우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또 다른 혐의를 추가 해가면 그들을 억류해 놓고 있다. 그나마 미국내 인권변호사들이나 필자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그마나 여건이 개선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물론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절대로 이런 일이 없다는 것이고 분명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은 테러리스트이고 적 전투원이며 예비 테러리스트라는 것이다.  

비록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법적인 절차 없이 수용하고 고문을 자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은 모든 무슬림들을 예비 테러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미정부는 이러한 편견에 대해서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관타나모의 군인들만 보더라도 물론 소수이겠지만 미국의 군인 양성프로그램에 의거하여 학력이나 인격 형성과정에서 미숙한 이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이들의 시각에서는 모든 수용자가 극악한 테러분자로 보이고 그에 응당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점에 대한 그 어떠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정부의 미필적 고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경제, 문화, 정치적인 다방면에서 미국은 세계에 미치는 여파가 어마 어마하다. 세계금융위기로 확대된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를 보더라도 미국의 영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어디까지나 악에 대한 선의 마지막 보루라는 뜻이지 악을 자행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미국은 지금 이러한 불법적인 만행을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다. 죄가 있으면 법적인 절차에 의거하여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이다. 분명 테러분자에 대해서는 그 어떤 타협이나 용서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테레분자라는 미명하에 이런 만행이 자행된다는 것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수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강자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것 아닌가,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생각해 하는 점은 여기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 대다수가 미국인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류가 대화합을 이끌수 있는 명백한 증거라고 생각된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은가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씌운 편견을 걷어내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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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를 리뷰해주세요.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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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로 어제가 6.10민주항쟁 2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한획을 긋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고 다시 찾아오는 듯한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세력에 의해 광주에서 많은 피를 보고 결국 다시 중세 암흑의 시대로 시계의 바늘은 거꾸로 돌려 버렸다. 마치 4.19혁명으로 잠시 누렸던 민주화의 열망이 군사쿠 테타로 무산되었던 30여년전의 악몽을 재현했던 것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은 386세대(지금은 486이라고 해야 할까)에게는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아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불러온다. 대학생활 처음을 최류탄의 메케한 냄새와 화염병의 신나 냄새를 밥짓는 냄새보다 더 자주 맡아야 했고, 책가방에는 항상 이념서적과 학교 유인물 그리고 얼굴전체를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수건이나 마스크를 상비약처럼 휴대해야 했으며 서울역, 시청앞, 종로의 뒷골목을 지금의 GPS보다 더 자세히 알아야 했던 기억(백골단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 신문과 TV는 스포츠기사외는 다 거짓이라고 알았던 기억들이 지금처럼 낭만적이고 개방적인 대학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억으로 나에겐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의 잔상은 시간이 훌쩍 지나 공자께서 말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무게 중심의 추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그 만큼 내 청춘의 정점인 시기에 맞이한 1987년 6월의 그날은 가슴 시리도록 아팠다. 오히려 집시법위반이라는 딱지보다 가슴속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더 큰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통틀어 그때 만큼 순수하고 자발적으로 민주를 염원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그 만큼 지금에 비해 덜 자본화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순수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 현장에 있었던 없었던 간에 온 국민의 가슴속에 희망의 메세지를 안겨준 그야말로 극본없는 드라마였던 것이다. 

서울대 박종철군 고문치사로 시작된 열기는 4.13호헌조치와 이후 연세대 이한열군의 혼수상태를 정점으로 민주화 열기에 불을 붙였다. 결국 국민의 위대한 힘 앞에 독재정권은 두손을 들었지만 제도권내의 정치가들은 이런 염원을 무시하는 바람에 많은 퇴색을 가져왔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염원은 그 어떠한 힘으로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바로 6월의 함성이었다. 학생중심으로 시작된 시위는 상인,회사원,주부,택시기사,어린학생,어르신등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위가 아닌 하나의 축제마당으로 민주를 외쳤다. 그 만큼 너무도 간절히 원했고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알지 못했던 것이고 쉬쉬하면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6월민주항쟁은 어느날 갑자기 전자렌지에 몇분 돌려 물을 끓게 한 것이 아니다. 4.19혁명으로 시작해서 5.18을 거치면서 아주 서서히 끓었기 때문에 그 열기가 오래토록 이어온 것이고 한번 끓기 시작한 물은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멈추지 못했던 것이다. 물이 100도씨에 끓은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서서히 그 열기 끓어 올라 100도씨를 정점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형성과정과도 흡사하다. 어느날 갑자기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 그 진행되는 과정에서 돌출되는 다양한 열기들을 빼기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서 100도씨까지 가야하는 여정인 것이다. 넘치는 것 보다 부족한 것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민주화 만큼은 넘쳐야 한다.  

우리는 OECD가입국으로 엄연한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OECD가입 조건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 부나 제도적 현대화가 민주화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시스템속의 하부구조로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여건은 아주 많이 다르다. 그 당시는 독재라는 정치적 모순에 항거 하였지만 지금은 금융자본이라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담론들에 대한 항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확한 대상을 상실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 알기 쉽게 설명한 민주주의 대한 개념은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가 쳐해 있는 현실을 가장 적절히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더이상 한국형 민주주의를 운운해서는 그 해답이 없다. 민주주의는 깨끗한 백지 한장과도 같다. 어떻게 백지를 채워나가야 하는가는 우리의 몫인 것이다. 

지금의 물의 온도를 100도씨라고 말할 수 있는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물을 끓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6월민주항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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