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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바로 어제가 6.10민주항쟁 2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한획을 긋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고 다시 찾아오는 듯한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세력에 의해 광주에서 많은 피를 보고 결국 다시 중세 암흑의 시대로 시계의 바늘은 거꾸로 돌려 버렸다. 마치 4.19혁명으로 잠시 누렸던 민주화의 열망이 군사쿠 테타로 무산되었던 30여년전의 악몽을 재현했던 것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은 386세대(지금은 486이라고 해야 할까)에게는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아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불러온다. 대학생활 처음을 최류탄의 메케한 냄새와 화염병의 신나 냄새를 밥짓는 냄새보다 더 자주 맡아야 했고, 책가방에는 항상 이념서적과 학교 유인물 그리고 얼굴전체를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수건이나 마스크를 상비약처럼 휴대해야 했으며 서울역, 시청앞, 종로의 뒷골목을 지금의 GPS보다 더 자세히 알아야 했던 기억(백골단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 신문과 TV는 스포츠기사외는 다 거짓이라고 알았던 기억들이 지금처럼 낭만적이고 개방적인 대학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억으로 나에겐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의 잔상은 시간이 훌쩍 지나 공자께서 말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무게 중심의 추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그 만큼 내 청춘의 정점인 시기에 맞이한 1987년 6월의 그날은 가슴 시리도록 아팠다. 오히려 집시법위반이라는 딱지보다 가슴속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더 큰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통틀어 그때 만큼 순수하고 자발적으로 민주를 염원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그 만큼 지금에 비해 덜 자본화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순수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 현장에 있었던 없었던 간에 온 국민의 가슴속에 희망의 메세지를 안겨준 그야말로 극본없는 드라마였던 것이다. 

서울대 박종철군 고문치사로 시작된 열기는 4.13호헌조치와 이후 연세대 이한열군의 혼수상태를 정점으로 민주화 열기에 불을 붙였다. 결국 국민의 위대한 힘 앞에 독재정권은 두손을 들었지만 제도권내의 정치가들은 이런 염원을 무시하는 바람에 많은 퇴색을 가져왔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염원은 그 어떠한 힘으로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바로 6월의 함성이었다. 학생중심으로 시작된 시위는 상인,회사원,주부,택시기사,어린학생,어르신등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위가 아닌 하나의 축제마당으로 민주를 외쳤다. 그 만큼 너무도 간절히 원했고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알지 못했던 것이고 쉬쉬하면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6월민주항쟁은 어느날 갑자기 전자렌지에 몇분 돌려 물을 끓게 한 것이 아니다. 4.19혁명으로 시작해서 5.18을 거치면서 아주 서서히 끓었기 때문에 그 열기가 오래토록 이어온 것이고 한번 끓기 시작한 물은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멈추지 못했던 것이다. 물이 100도씨에 끓은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서서히 그 열기 끓어 올라 100도씨를 정점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형성과정과도 흡사하다. 어느날 갑자기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 그 진행되는 과정에서 돌출되는 다양한 열기들을 빼기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서 100도씨까지 가야하는 여정인 것이다. 넘치는 것 보다 부족한 것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민주화 만큼은 넘쳐야 한다.  

우리는 OECD가입국으로 엄연한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OECD가입 조건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 부나 제도적 현대화가 민주화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시스템속의 하부구조로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여건은 아주 많이 다르다. 그 당시는 독재라는 정치적 모순에 항거 하였지만 지금은 금융자본이라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담론들에 대한 항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확한 대상을 상실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 알기 쉽게 설명한 민주주의 대한 개념은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가 쳐해 있는 현실을 가장 적절히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더이상 한국형 민주주의를 운운해서는 그 해답이 없다. 민주주의는 깨끗한 백지 한장과도 같다. 어떻게 백지를 채워나가야 하는가는 우리의 몫인 것이다. 

지금의 물의 온도를 100도씨라고 말할 수 있는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물을 끓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6월민주항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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