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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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피에르 르메트르라는 작가는 저에게는 생소한 작가입니다. 국내에도 알려진 많은 프랑스출신 작가들에 비견하자면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접근해야할 작가라고 봐야할 정도로 선듯 작품에 손이 가지 않았던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나마 콩쿠르상 수상작 수상이라는 타이틀이 이번 작품을 접하게 하는 순수한 동기라고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프랑스 작품은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고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프랑스 영화등을 통해서 왜곡된 작품성과 문학성의 고고함이 무슨 트라우마처럼 뇌리속에 잡혀있는 관계로 설불리 손을 뻐치기엔 왠지 쉽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이번 작품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마저 있었던 것도 사실이구오. 이래저래 고민끝에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고 싶네요. 기존의 프랑스 작품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과연 이 작품을 프랑스 작품이라고 해야할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위고의 작품성과 베르베르의 대중성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말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정도로 내러티브의 짜임새나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비쥬얼 묘사나 마치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는듯한 심리묘사가 일품이었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여기에 당시 시대상을 재현하는 서사들과 담론들 어느것 하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조합이 피에르 르메트르라는 작가에 절로 호감을 가지게 하네요.


          <오르부아르>라는 작품은 큰범주에서 보면 역사소설로 분류될 수 있죠. 제1차세계대전 종전 직전에서부터 이후 승전국으로서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몇년간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을 픽션을 가미해서 맛깔나게 풀어가고 있는 팩션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조명하는 큰 줄기의 사건은 '전사자 추모 건립비 스캔들' 과 '전사자 발굴 스캔들' 이라는 두개의 사건을 양대 축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소개된 주된 스캐들인 '전사자 추모 건립비 사건' 은 작가가 창작한 픽션이죠. 피에르 르메트르는 '전사자 발굴 스캔들' 에서 영감을 얻어 좀더 당시 프랑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와 허영심등을 희대의 대국민 사기사건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전후 프랑스 사회를 고발하기도 합니다. 비록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라는 감투를 쓰긴했으나 그 이면에 가려져 있었던 다양한 부정과 부패 그리고 하루 하루를 연명해나가는 일반 대중민중들의 삶을 국민 사기극이라는 극적인 요소와 매칭시켜 한층 고조시키고 왜 이런 사기극이 일어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당연성 비슷한 느낌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인 알베르와 에두아르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인물을 설정했다는 자체에서부터 이번 작품의 특별함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정말 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집안의 아들인 에두아르와 이와 상반되게 정말 내세울것 하나 없는 집안의 아들인 알베르라는 두 인물이 전쟁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틀안에서 그리고 생사를 넘어 살아남았지만 불구의 몸과 전후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뭉치게 하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유니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왠만한 역사소설에서 찾아볼수 없는 디테일한 서사들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특히 초반부 전쟁씬은 정말 기가막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네요.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듯한 착각을 방불케할 정도의 섬세한 묘사와 병사들 하나 하나의 표정묘사 그리고 그들이라면 충분히 가졌을만한 심리묘사에 이르기까지 군더더기 하나없는 서사들이 압권으로 다가오면서 서스팬스의 묘미를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 사회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전사자 추모비 건립 사건의 진행과정은 거의 서스팬스의 질주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숨가쁘게 독자들을 몰아갑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내러티브이지만 군데 군데 두 주인공의 심리적인 갈등과 감초처럼 등장하는 주변인물들의 역활 수행 그리고 전후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묘사등이 쉼표를 제공하면서 작품전반의 브레이크 역활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진짜 팩트였던 '전사자 발굴 스캔들' 이라는 또 하나의 축이 가미되어 그 흥미를 더해 준다는 점이죠. 만약 단순하게 추모비건립 사건만으로 내러티브를 끌어 갔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감흥에 그쳤을 부분을 또 다른 악행을 쌍두마차처럼 내세운 점이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켰다고 보여지네요. 뭐 사실 두가지 스캐들 모두 있어서는 안되는 악행이지만 전사자 발굴 스캐들을 주도했던 앙리라는 인물과 그 스캔들의 내막이 왠지 추모비 사기사건을 덥어 버리는 형국처럼 보여지기도 할 만큼 양대 스토리의 진행이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물려 한편의 서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역사소설을 이처럼 맛깔나게 구성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짜임새있는 설정들과 독자들의 심장박동수를 증폭시키는 일련의 서스팬스 여기에 씁쓸한 반전까지 한데 뭉쳐진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기존 프랑스작품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네요. 충분히 영화화하더라도 성공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 보여지고요. 무엇보다 전후 프랑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얼핏보면 크게 몇군데만 터치하는 것 같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나 공간적인 배후 묘사에 디테일한 터치감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테제가 이번 작품속에서는 왠지 속이 후련한 일련의 정화의식처럼 느껴지게 하는 설정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는 것도 작가가 설정한 교묘한 트릭(에두아르의 죽음과 그 죽음의 과정에서 부자간의 화해는 일반 대중과의 화해로 확대 해석 할 수도 있겠죠)들이 절묘한 매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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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4-18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에르 르메트르의 기존의 작품과 결이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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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장의 심령사진에서 시작되는 스토리는 심령사진의 실체를 쫒아가는 추리스릴러 기법이 가미되면서 독자들의 오컬트적인 세계로 살살 끌어 들입니다. 여기서 살살이란 다름아닌 가랑비에 옷젖는다는 식으로 처음 끌려들어갈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이 내러티브를 따라 쫒아가면 갈수록 감정에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뜻인데요. 그것도 어느 순간 갑자기 격동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닌 오래 사진관속에서 오래 세월의 빛을 받아 바래진 사진처럼 서서히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말하는 거겠죠. 일본 추리스릴러 좀더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사회파추리스릴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고구레 사진관> 이라는 작품을 대면하면서 느낀 첫 감정이랄까요. 작품이 던저주는 메세지는 차치하더라도 작품 전반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서두에 언급한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미미여사라는 애칭으로 통할 만큼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는 왠만한 국내작가보다 더 능가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은 일본이라는 특수성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가이죠. 아무래도 일본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정치색이 가미된 작가나 작품보다는 추리스릴러계열의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큰 저항없이 다가올수 있는 배경이 되었는지 몰라도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대할때 마다 느껴지는 느낌들은 하나 같이 상당히 "자연스럽다" 는 느낌이 가장 먼저 뇌리속에 자리잡게 되네요. 이번 작품 역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감수성과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특유의 사유가 혼연일체가 되어 그대로 전달되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네요.


          작품의 출발은 충분히 추리스릴러계열의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시작되는데요. 여기에 심령사진이라는 오컬트적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한층 흥미감을 배가 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이이치라는 사건 해결사 그것도 고등학생이라는 풋풋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 출발하죠(여기에 감초같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여 맛깔나게 내러티브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막상 내러티브를 따라가다보면 이건 왠지 추리스릴러라는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면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세계로 환승하게 되는데요. 그렇다고 심령사진이 주는 오컬트적인 그로데크스한 분위기로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죠. 정체 불명의 사진과 그 사진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내막을 쫒아가면서 이번 작품은 그냥 휴먼드라마쪽으로 방향을 급선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르의 변화가 전체적인 맥락이나 작품의 설정등에 있어서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자연스럽게 정말 미야베 미유키답게 그 흐름을 탄다는데 이번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을 몇 문장으로 함축한다면 기꺼이 다음과 같은 문장에 담긴 의미가 떠오르게 되는데요.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이따금 죽은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난 그건 대단히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 이런 일을 하다보면 말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현세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절실히 들어", "장례식이란 고인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남은 인간들의 본성을 까발리는 장이지" 아마도 미야베 미유키는 이 문장들속에서 이번 작품의 모든것을 함축시켜놨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이번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메세지가 담겨 있는데요. 사진이라는 것은 결국 과거를 대변하는 것이고 그 과거는 바래지기는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죠. 사진을 찍을 당시와 그 사진속을 장식하고 있는 배경 그리고 사진속의 인물들의 각각의 표정에서 과거의 일은 그렇게 무수한 시간이 흐르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무언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작가는 미스테리한 심령사진을 소재로 그 사진이 심령사진이 아닌 봉인된 과거속의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매게체로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매게체는 살아있는(어쩌면 과거 사진속을 벗어나 있는 이들) 현세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모든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전반적으로 품고 있는 사유는 그다지 가볍지 않는 어찌보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등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왠만한 성인 독자들에게도 이러한 주제는 무겁고 버겁게 다가오기 마련인데요. 미야베 미유키는 이러한 어둡고 무거운 주제에다 유머와 더불어 약간의 눈물씬을 접목하여 고등학생정도라면 충분히 이해갈 수준으로 격하시켜놨다는 점인데요. 바로 이점이 이번 작품의 또다른 핵심인데요. 결코 작품의 질이 격하된다는 느낌보다는 모든 세대가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넓게 스팩트럼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네 삶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다루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하니까요. 삶과 죽음의 이면 그리고 이를 경계로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법한 사유에 대해서 초등학생의 시선에서 성인의 시선까지 상당히 넓은 스팩트럼을 통해서 다양한 예시를 던져주고 있는 작품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 일부분의 사유보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정말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받게 하는 작품같습니다. 비록 미미여사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추리스릴러영역에서 벗어나다 보니 다소 지루함을 느낄수 있는 작품이지만 나름대로 심령사진과 추리적 기법등을 동원해서 무료함을 달래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등장인물들 내면의 심리묘사가 추리스릴러계통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휴먼성이 짙은 드라마를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느낌을 작품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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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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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스키어들이 고대했던 계절의 맛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항상 겨울철은 스키어들에겐 모든것을 걸수있는 그런 계절인것 같습니다. 특히나 눈의 향연으로 펼쳐지는 설경을 배경으로 슬러프를 질주하는 상상만으로도 모든 것을 즐겁게 하겠죠. 여기에 동계스포츠에 관심이 집중되는 계절이기도 하고요. 그런시기에 딱 맞는 작품이 있다면 더욱더 흥미를 자극하겠죠. 다름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의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작품인데요. 설원이 펼쳐지는 스키장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광경이죠. 여기에 일본 추리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유니크한 내러티브가 혼합되어 한편의 서스펜스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딱 요즘 계절에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백은의 잭>에서 한번 선보였지만 그 작품과는 또 다른 묘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음 <백은의 잭>은 스릴러쪽에 무게감을 두고 전반적으로 사건해결쪽으로 내러티브가 진행되면서 스키라는 스포츠가 살짝 가미 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그 무게 중심이 스키라는 스포츠(일본 역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종목인 것 같더라구요)와 인간의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에 대한 담론이 융합되어 있고, 스키나 크로스컨트리등 설원 스포츠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어 전작보다 한층 더 흡인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추리스릴러작품이라 하긴에 왠지 그 맛이 밋밋하게 다가옵니다. 뭐 숨막히는 서스팬스나 스릴러 그리고 대단원의 반전등 추리스릴러 작품이라면 갖추고 있어야할 미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 초반부에서 야금야금 던져주는 힌트라던지 복선같은 리허설이 전혀 없고 마치 독자들을 개무시하듯이 초장에 이미 사건의 전말이 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를 확 공개해 버리는 기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처음부터 사건의 진상을 밝혀 놓고선 독자들 마음가는대로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라는 작가의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죠. 물론 이러한 구도 설정이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그래 한번 갈때까지 가보자라는 오기심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하고 물론 재치있는 독자들이라면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작가가 의도한 방향과 다른쪽으로 흘러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도 하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의 작품세계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되고 있는데요. 추리스릴러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한 사유가 이번 작품에서도 멋들어지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드네요.

 

           19년전에 태어났던 딸과 그 딸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친부와 그동안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숨겨왔던 양부의 심정등 키 워드는 이러한 갈등과 심리묘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실상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사유는 재능이냐 노력이냐 혹은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방향타가 아닌가...  라는 배경음악이 강하게 깔려있는 작품이죠. 느닷없이 등장하는 신고라는 컨트리선수에게 많은 지면을 활용했다는 점이 작가의 또 다른 숨겨진 사유일 것입니다. 초반부에는 단조로운 스토리에 양념정도로 생각되어질 정도이지 않을까 왜 기본적으로 히다 카자미의 출생의 비밀과 이에 발맞추어 벌어지는 사건들에 집중하게 되는데요 요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절묘한 트릭이라는 것이죠. 바로 이 신고라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꿈과 상반되는 삶을 사는 신고가 어떻게 보면 이번 작품 사유의 또 다른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비중이 결말부분에서 갑자기 신고쪽으로 흐르는 느낌마저 주고 있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현 사회에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사유를 담고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유전학적으로 타고난 천재성이냐 후천적인 노력성 어느 쪽이 우리 인간의 삶을 더 풍유롭게 할 수 있을까라는 예전부터 왈가불가해왔던 논거중에 하나이지만 추리 스릴러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더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일반대중에게 비인기동계 스포츠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래 저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갈수록 사회적 이슈에 대한 사유가 한층 더 심도 깊게 담겨져 있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매번 고뇌에 빠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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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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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역자의 해설이나 영향력 있는 각종 리뷰어들의 서평을 읽어보질 않더라도 이번 작품(기존에 스크린이나 써머리본등을 통해서 간략하게 이미지화 되어 있는 모비 딕이 아닌 완전체의 원본) 을 대한 독자라면 머리속이 하얗다라는 느낌을 굳이 말할 필요성이 없는 작품입니다. 상당히 난해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장르에 대한 파괴로 인해 소설인지, 희곡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고래에 대한 일종의 서사문인지 그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 동안 우리는 특히 국내 독자들에게는 서양의 유명한 고전들에 대한 선입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제대로된 원본의 작품을 대하는게 드문 일이었죠. 워낙 유년시절부터 독후감이라는 과제로 인해 고전들의 실체보다는 그 고전이 표방하는 엑기스만을 요약한 써머리본을 먼저 접하다 보니 실상의 실체에 대해선 외면하게 되었고, 당시의 기억이 오랫토록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어 진정한 작품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으니까요. 그 대표적인 실례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이라는 작품인데요. 정말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은 영화, 뮤지컬등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재탄생하고 요약본마저도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다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대강의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자 그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작품이죠. 그런데말이죠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은 우리의 기억이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원작을 대면하게 되면 바로 느끼게 됩니다.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방대한 프랑스와 주변 유럽국들의 역사와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을 담고 있는 대하역사소설이라는 것죠. 여기에 장발장 이야기가 가미되었을 뿐 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테마를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대해서 독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당황하는거죠. 이처럼 고전문학의 원작을 그대로 접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쁨의 발견 내지는 기쁨의 재발견이라고 해야할까요.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서 새로운 사유의 세계와 접하게 되면서 고전의 묘미를 느끼게 합니다. 제가 이렇게 서두에 이렇게 사족을 다는 이유가 바로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이라는 작품을 대면하면서 우리가 일컫고 있는 고전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접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대한 또 다른 텍스터 역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 대충의 줄거리는 굳이 언급할 필요성이 없을 만큼 <모비 딕> 역시 상당히 대중적으로 친근한 작품입니다. <백경>, <흰 고래> 등으로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원작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는 완전히 틀을 바꾸면서 <모비 딕> 이라는 작품의 실체가 이런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차리리 <레 미제라블> 의 경우는 그나마 편안하게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는 기초적인 체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이었지만 <모비 딕>의 경우는 작품의 장르라는 큰틀의 스트럭쳐에서부터 독자들의 눈과 머리속을 혼란스럽게 하는 작품입니다. 첫장을 여는 순간 끝도 없이 나열되는 고래와 관련된 '어원' 과 '발췌' 라는 장을 접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게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자인 나 '이슈마엘' 의 포경선 승선과 그리고 흰고래라는 모비 딕을 쫒아 가는 여정을 그리는 형식의 소설이라는 느낌을 첫장의 백과사전 같은 인덱스에서부터 주눅들게 하는 구조는 갈수록 더 독자들의 진을 뽑아가는데요. 갑자기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기록물들과 진화론적인 관점의 서사문들 포경산업의 역사적 연혁과 산업학적이니 구조론등의 등장으로 정말 책장을 넘기는 진도가 왠만한 인내력을 가지고서는 견디기 힘들게 하죠. 여기에 또 갑작스러운 장르의 파괴(희곡의 등장인데요) 로 인한 구조적인 틀의 흔들기는 더욱 더 인내력을 갖게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구조적인 계획과 설정들로 인해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혹평을 받으면서 외면당했 것이 바로 이렇게 난해하게 취했던 형식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 유니크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몇번을 중도하차할까라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끝까지 완주했지만 허먼 멜빌이 깔아놓은 트랩을 다 넘고 나니 안도감보다는 왠지 허탈한 느낌마저 들게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까지가 <모비 딕> 이라는 작품의 스트럭쳐에 대한 느낌이었는데요. 솔직히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구조를 가진 작품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난행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죠. 이런 예를 들어도 될지 모르지만 <오만과 편견>, <마담 보바리>등의 작품형식(물론 이러한 작품들이 격이 떨어진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처럼 좀더 단순하게 시도 되었다면 상당한 반향을 가져왔지는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마저 들게 하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모비 딕> 의 구조적인 틀을 싹뚝 제거하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아~~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뭐랄까요 정말 매크로와 마이크로적인 사유가 동시에 융합되어 있는 상당히 철학적이고 내면적인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요. 우선 '이슈마엘' '에이해브' '일라이저' '빌대드' '레이철' 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의 이름들을 차용하여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대충의 인물들의 성격과 그 관계성을 짐작하게 하면서 당시 서구세력의 신흥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미국과 반대편의 영국등 그리고 공통적인 분모인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저변에 깔려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멜빌은 또다른 이면의 대표주자인 이단자 '퀴퀘그' 을 초반부에 등장시켜 기존의 종교관과는 사뭇다른 종교적 시각의 마수를 들어내는데요. 아마 이부분 역시 당시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갖게 될 정도 선진적인 사유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이름자체에서 던져주는 의미가 제대로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종교적인 신앙과 현실세계의 괴리감을 민낯 그래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슈가 숨어있는데요. 바로 인종적인 차별 그리고 '노예해방' 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담론도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기전부터 감지된 노예에 대한 불편한 사고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고 멜빌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막막한 바다위에 떠 있는 포경선 피퀘드호의 구성원들에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에이해브선장을 비롯한 항해사, 갑판원, 노잡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과 국적 그리고 노예, 당시 시대를 축소한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모비 딕이라는 목표와 망망대해서 생존해야하는 운명앞에서는 인종과 노예의 구분보다 서로 의지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비록 고래잡이라는 표현을 애둘러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름아닌 차별과 멸시의 타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모비 딕과 충돌하여 가라앉는 마지막 장면이 극적인 표현이라고 보면 될듯 합니다. 피퀘드호와 같이 바다속으로 끌려가는 물수리는 훗날 터지는 남북전쟁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멜빌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울림을 주는 신호탄이라고 보여집니다.


          뭐 이런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인 매크로적 사유도 의미가 상당하지만 이번 작품의 또 하나의 묘미는 다름 아닌 고래와 포경산업에 대한 현미경적인 고찰이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고래의 거의 모든 것" 이라는 별도의 액자형식으로 타이틀을 붙이더라라도 무방할 정도로 방고래에 대한 방대한 서술에 절로 입이 벌어지는 작품인데요.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멜빌의 직접적인 경험이 가장 큰 역활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멜빌은 고래에 대한 기본적인 어원에서부터 생물학적, 진화론적, 해부학적인 세밀한 접근에서부터 고래를 포획하는 포경산업전반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고찰을 하는데요. 사실 19세기에 포경산업은 미국의 원동력을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정도 중요한 산업분야중에 하나였죠. 중기 자본주의의 밑거름역활을 하면서 미국이라는 맹주의 초석을 다진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고래 포획의 남획과 고래잡이들의 희생등 저변에 많은 아픔이 더불어 묻혀있는 그런 산업이었습니다. 멜빌은 이러한 포경산업의 자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고래와 포경산업 전반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언급함으로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허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편 고래 해부과정인나 고래의 생태학적 서사들은 가히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박식함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속된말로 이부분만 발췌하더라도 고래학 논문 하나쯤의 분량과 깊이가 충분할 정도니까요.


          그럼 자기파괴적인 욕망으로 모비 딕을 잡고자 하는 에이해브선장의 숙원사업이었던 고래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뭐 마이크로적인 관점에서 대자연의 정복의 대상인 고래 그 자체일수도 있지만 좀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본다면 다른 의미의 고래라고 봐야할듯 합니다. 멜빌은 화자인 이슈마엘(작가의 분신) 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과 실존문제, 종교적 견해의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 인종차별적인 정치적인 실타래와 포경산업전반을 아우르는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모순문제등 다양한 면에서 도전적이면서 직설적인 사유를 그리고 있습니다. 모비 딕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인간의 욕망을 비롯한 멜빌이 이번 작품에서 언급한 모든 사유의 像 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허영을 쫒아가는 피퀘드호와 고래잡이들 역시 당시대를 살아갔던 모든이의 축소판으로 봐야하겠구요. 결국 모비 딕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내 괴물(종교, 자본주의, 인종차별등)은 인간의 통제권역을 벗어나고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남을것라는 교훈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유들을 난해한 구조와 장르 파괴라는 형식을 빌어 탄생시킨 이번 작품은 그래서 돋보이는 거작으로 남아 있는 것이고요. 당시대의 독자들과 비평가들에게 외면당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자신들의 민낮을 그대로 보는듯한 거북함에서 그 원인이 있었을거라 여기지네요.  


          전반적으로 책장을 덮고 나면 많은 생각들이 들면서 일목요연하게 머리속이 정리되지 않으면서도 뭔가모를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정말 한번 리뷰를 해봐야 멜빌이 전달하는 메세지를 다는 아니더라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고요. 당시 시대상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도전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작품이죠. 역자가 지적했듯이 "부조리한 사회를 전복하는 거대한 문학의 힘" 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는데 절로 수긍이 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비록 구조적인 난해함과 장르의 파괴가 가져오는 혼란은 상존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구구절절하게 펼쳐 놓은 사유는 감히 아름답고 절실하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완벽한 서사와 묘사들로 가득찬 대양 같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많은 인내심과 정량적인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절대로 후회되질 않을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위고의 <레 미제라블> 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네요. 참고로 멜빌은 에식스호 사건에서 감흥을 받아 <모비 딕>을 집필하게 되었는데요 이번에 <하트 오버 더 씨> 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니 <모비 딕> 이라는 작품과 한번 비교해 보는것도 색다른 맛을 선사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문학의 가치나 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더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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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전 영화 <마션> 을 보질 못했습니다. 왠지 SF물에 대한 흥미저하로 인해서 그런지 몰라도 선입관에 뭐 그저 그런 류의 영화겠지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던 차에 원작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고 앤디 위어의 <마션> 를 이제야 접하게 되었네요. 제가 영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와 비교설명을 못하겠지만, 왠지 이제라도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우선 장르상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SF범주에 집어넣어야 할 작품인데요. 전 개인적으로 SF보다는 휴먼드라마쪽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네요. 공간적인 배경만 화성이라는 우주적 확대 공간으로 확장되었지만 물론 공간적 배경이 지구에서 저 멀리 떨어져있는 행성이어서 여기에 알맞는 다양한 과학적 논거와 SF적인 설정들이 가미되어 있지만 줌인해보면 톰 행크스가 열연한 <캐스트 어웨이> 와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우주속에 떠 있는 화성이라는 공간과 태평양 한가운데 미지의 섬 그리고 그 고립된 공간속에서의 홀로서기... 뭐 고립된 시간의 개념도 얼핏 비슷한 것 같구요. 그래서 그런지 왠지 작품을 읽는 내내 아 여기가 화성이지라는 생각보다는 지구 어느편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다는 착각마저 갖게 하더라구요. 그만큼 앤디 위어의 스토리 끌기가 압권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까지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는 행성인 화성(뭐 우리는 아직까지도 달이라는 위성을 제외하고는 태양계에 속한 그 어떠한 행성에도 가보질 못했죠. 언제가는 그 꿈이 실현되겠지만요) 에 인류가 탐험을 간다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상당히 매력적으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에다 갑작스런 모래폭풍으로 인해 미션을 중도 포기하고 귀환하면서 대원중 하나인 마크 와트니를 잃어버린다는 출발점부터가 흥미를 자극하긴에 충분한 밑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죠. 다름아닌 화성에서 말이죠. 이번 작품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을 꼽을라면 전 개인적으로 작품 출발점에서 마크 위트니가 뱉은 한마디를 들겠습니다. "아무래도 좆됐다!, 나는 좆됐다!!!" 뭐 육두문자적인 표현이고 아주 단순 무식한 표현법이지만 이번 작품을 관통하는 모든 것의 시발점이자 원인이된 화성에서 고립된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고 이런 표현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앤디 위어는 고상한 범주의 상투적인 표현보다는 직설적인고 간략 명확한 서사를 통해서 독자들과의 척 대면을 시작하는데요. 바로 이점이 이번 작품의 내러티브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며 작가라는 작자가 표방하는 사유가 어떻게 전개될까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것을 보여주는 서사라고 보여집니다. 의미심장한 미사어구와 상황설정에 대한 당연성을 부여하는 각종 설정등 그리고 여기에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들을 가미해서 주인공 마트 위트니의 첫 느낌을 서사했다면 이번 작품에서 독자들이 받게 될 느낌은 상당히 반감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아마도 이후 전개되는 내러티브의 경우 과학적인 고증과 더불어 이에 거꾸로 맞추어 나가는 설정등 그리고 마크가 화성에서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상황이 왠지 설득력이 떨어지면서 그저 그런 SF류의 산물로 남을 확률이 농후했으리라 믿어집니다. 아마도 영화로도 제작되지 않았겠죠. 그런데 앤디 위어는 작품의 첫 단추를 정말 잘 그것도 아주 잘 끼웠다는 것이죠. 단순명료한 욕 한마디로 모든 리스크를 해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리고 첫 대사 한마디로 인해 이후 전개되는 내러티브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고 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여하튼간에 초장의 와트니의 대사 한마디가 이번 작품의 방향성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상당히 심각하게 흘러갈수 밖에 없는 개연성을 가진 플롯(생각만해도 아찔한 상황이죠. 화성에 홀로 남겨지고 1년반이상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설정자체가요) 이지만 왠지 내러티브를 따라갈수록 독자들은 유쾌한 기분이 먼저들면서 나도 한번 화성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어드밴스적인 상상에 동참하게 된다는 거죠. 생존을 위한 각종 과학적 아이디어와 아이러니하고 돌발적인 변수들이 불모의 대지가 아닌 개척의 대지라는 강한 미국적인 사고도 포함되어 있으면서 대중적인 엔터테이먼트 요소를 기반으로 독자들의 흡인력을 높은 지수로 끌어 올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으로 엔딩하지만(안그럴수가 없죠. 화려한 엔터테이먼트을 기반으로 '라이언일병 구하기' 와 비슷한 컨셉트가 가미되고 범미국적 패러다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상 그 어떠한 실패도 있어서는 안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런 성공적인 결말을 위해 중간 중간에 극적인 반전요소들을 가미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잔뜩 고조시킬 수 밖에 없는 작품으로 선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대형 블록버스터 같은 골자들을 장착하고 범미국적인 사유가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지만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와 궁지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는 인간본성의 자극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대중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가독성이 상당히 숨가쁘게 흘러가고 군데 군데 등장하는 과학적인 원리(물론 이러한 과학적인 원리들이 100% 다 맞는지에 대한 고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봐야죠) 들과 몇번의 반전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는 것 역시 이번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범SF적인 뉘양스와는 거리가 다소 먼 인간내면의 울림을 부각시켰다는 점이 더욱 더 돋보이게하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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