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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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역자의 해설이나 영향력 있는 각종 리뷰어들의 서평을 읽어보질 않더라도 이번 작품(기존에 스크린이나 써머리본등을 통해서 간략하게 이미지화 되어 있는 모비 딕이 아닌 완전체의 원본) 을 대한 독자라면 머리속이 하얗다라는 느낌을 굳이 말할 필요성이 없는 작품입니다. 상당히 난해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장르에 대한 파괴로 인해 소설인지, 희곡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고래에 대한 일종의 서사문인지 그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 동안 우리는 특히 국내 독자들에게는 서양의 유명한 고전들에 대한 선입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제대로된 원본의 작품을 대하는게 드문 일이었죠. 워낙 유년시절부터 독후감이라는 과제로 인해 고전들의 실체보다는 그 고전이 표방하는 엑기스만을 요약한 써머리본을 먼저 접하다 보니 실상의 실체에 대해선 외면하게 되었고, 당시의 기억이 오랫토록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어 진정한 작품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으니까요. 그 대표적인 실례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이라는 작품인데요. 정말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은 영화, 뮤지컬등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재탄생하고 요약본마저도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다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대강의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자 그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작품이죠. 그런데말이죠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은 우리의 기억이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원작을 대면하게 되면 바로 느끼게 됩니다.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방대한 프랑스와 주변 유럽국들의 역사와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을 담고 있는 대하역사소설이라는 것죠. 여기에 장발장 이야기가 가미되었을 뿐 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테마를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대해서 독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당황하는거죠. 이처럼 고전문학의 원작을 그대로 접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쁨의 발견 내지는 기쁨의 재발견이라고 해야할까요.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서 새로운 사유의 세계와 접하게 되면서 고전의 묘미를 느끼게 합니다. 제가 이렇게 서두에 이렇게 사족을 다는 이유가 바로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이라는 작품을 대면하면서 우리가 일컫고 있는 고전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접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대한 또 다른 텍스터 역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 대충의 줄거리는 굳이 언급할 필요성이 없을 만큼 <모비 딕> 역시 상당히 대중적으로 친근한 작품입니다. <백경>, <흰 고래> 등으로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원작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는 완전히 틀을 바꾸면서 <모비 딕> 이라는 작품의 실체가 이런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차리리 <레 미제라블> 의 경우는 그나마 편안하게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는 기초적인 체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이었지만 <모비 딕>의 경우는 작품의 장르라는 큰틀의 스트럭쳐에서부터 독자들의 눈과 머리속을 혼란스럽게 하는 작품입니다. 첫장을 여는 순간 끝도 없이 나열되는 고래와 관련된 '어원' 과 '발췌' 라는 장을 접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게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자인 나 '이슈마엘' 의 포경선 승선과 그리고 흰고래라는 모비 딕을 쫒아 가는 여정을 그리는 형식의 소설이라는 느낌을 첫장의 백과사전 같은 인덱스에서부터 주눅들게 하는 구조는 갈수록 더 독자들의 진을 뽑아가는데요. 갑자기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기록물들과 진화론적인 관점의 서사문들 포경산업의 역사적 연혁과 산업학적이니 구조론등의 등장으로 정말 책장을 넘기는 진도가 왠만한 인내력을 가지고서는 견디기 힘들게 하죠. 여기에 또 갑작스러운 장르의 파괴(희곡의 등장인데요) 로 인한 구조적인 틀의 흔들기는 더욱 더 인내력을 갖게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구조적인 계획과 설정들로 인해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혹평을 받으면서 외면당했 것이 바로 이렇게 난해하게 취했던 형식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 유니크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몇번을 중도하차할까라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끝까지 완주했지만 허먼 멜빌이 깔아놓은 트랩을 다 넘고 나니 안도감보다는 왠지 허탈한 느낌마저 들게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까지가 <모비 딕> 이라는 작품의 스트럭쳐에 대한 느낌이었는데요. 솔직히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구조를 가진 작품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난행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죠. 이런 예를 들어도 될지 모르지만 <오만과 편견>, <마담 보바리>등의 작품형식(물론 이러한 작품들이 격이 떨어진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처럼 좀더 단순하게 시도 되었다면 상당한 반향을 가져왔지는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마저 들게 하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모비 딕> 의 구조적인 틀을 싹뚝 제거하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아~~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뭐랄까요 정말 매크로와 마이크로적인 사유가 동시에 융합되어 있는 상당히 철학적이고 내면적인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요. 우선 '이슈마엘' '에이해브' '일라이저' '빌대드' '레이철' 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의 이름들을 차용하여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대충의 인물들의 성격과 그 관계성을 짐작하게 하면서 당시 서구세력의 신흥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미국과 반대편의 영국등 그리고 공통적인 분모인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저변에 깔려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멜빌은 또다른 이면의 대표주자인 이단자 '퀴퀘그' 을 초반부에 등장시켜 기존의 종교관과는 사뭇다른 종교적 시각의 마수를 들어내는데요. 아마 이부분 역시 당시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갖게 될 정도 선진적인 사유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이름자체에서 던져주는 의미가 제대로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종교적인 신앙과 현실세계의 괴리감을 민낯 그래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슈가 숨어있는데요. 바로 인종적인 차별 그리고 '노예해방' 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담론도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기전부터 감지된 노예에 대한 불편한 사고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고 멜빌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막막한 바다위에 떠 있는 포경선 피퀘드호의 구성원들에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에이해브선장을 비롯한 항해사, 갑판원, 노잡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과 국적 그리고 노예, 당시 시대를 축소한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모비 딕이라는 목표와 망망대해서 생존해야하는 운명앞에서는 인종과 노예의 구분보다 서로 의지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비록 고래잡이라는 표현을 애둘러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름아닌 차별과 멸시의 타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모비 딕과 충돌하여 가라앉는 마지막 장면이 극적인 표현이라고 보면 될듯 합니다. 피퀘드호와 같이 바다속으로 끌려가는 물수리는 훗날 터지는 남북전쟁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멜빌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울림을 주는 신호탄이라고 보여집니다.


          뭐 이런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인 매크로적 사유도 의미가 상당하지만 이번 작품의 또 하나의 묘미는 다름 아닌 고래와 포경산업에 대한 현미경적인 고찰이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고래의 거의 모든 것" 이라는 별도의 액자형식으로 타이틀을 붙이더라라도 무방할 정도로 방고래에 대한 방대한 서술에 절로 입이 벌어지는 작품인데요.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멜빌의 직접적인 경험이 가장 큰 역활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멜빌은 고래에 대한 기본적인 어원에서부터 생물학적, 진화론적, 해부학적인 세밀한 접근에서부터 고래를 포획하는 포경산업전반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고찰을 하는데요. 사실 19세기에 포경산업은 미국의 원동력을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정도 중요한 산업분야중에 하나였죠. 중기 자본주의의 밑거름역활을 하면서 미국이라는 맹주의 초석을 다진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고래 포획의 남획과 고래잡이들의 희생등 저변에 많은 아픔이 더불어 묻혀있는 그런 산업이었습니다. 멜빌은 이러한 포경산업의 자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고래와 포경산업 전반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언급함으로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허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편 고래 해부과정인나 고래의 생태학적 서사들은 가히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박식함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속된말로 이부분만 발췌하더라도 고래학 논문 하나쯤의 분량과 깊이가 충분할 정도니까요.


          그럼 자기파괴적인 욕망으로 모비 딕을 잡고자 하는 에이해브선장의 숙원사업이었던 고래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뭐 마이크로적인 관점에서 대자연의 정복의 대상인 고래 그 자체일수도 있지만 좀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본다면 다른 의미의 고래라고 봐야할듯 합니다. 멜빌은 화자인 이슈마엘(작가의 분신) 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과 실존문제, 종교적 견해의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 인종차별적인 정치적인 실타래와 포경산업전반을 아우르는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모순문제등 다양한 면에서 도전적이면서 직설적인 사유를 그리고 있습니다. 모비 딕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인간의 욕망을 비롯한 멜빌이 이번 작품에서 언급한 모든 사유의 像 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허영을 쫒아가는 피퀘드호와 고래잡이들 역시 당시대를 살아갔던 모든이의 축소판으로 봐야하겠구요. 결국 모비 딕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내 괴물(종교, 자본주의, 인종차별등)은 인간의 통제권역을 벗어나고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남을것라는 교훈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유들을 난해한 구조와 장르 파괴라는 형식을 빌어 탄생시킨 이번 작품은 그래서 돋보이는 거작으로 남아 있는 것이고요. 당시대의 독자들과 비평가들에게 외면당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자신들의 민낮을 그대로 보는듯한 거북함에서 그 원인이 있었을거라 여기지네요.  


          전반적으로 책장을 덮고 나면 많은 생각들이 들면서 일목요연하게 머리속이 정리되지 않으면서도 뭔가모를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정말 한번 리뷰를 해봐야 멜빌이 전달하는 메세지를 다는 아니더라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고요. 당시 시대상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도전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작품이죠. 역자가 지적했듯이 "부조리한 사회를 전복하는 거대한 문학의 힘" 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는데 절로 수긍이 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비록 구조적인 난해함과 장르의 파괴가 가져오는 혼란은 상존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구구절절하게 펼쳐 놓은 사유는 감히 아름답고 절실하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완벽한 서사와 묘사들로 가득찬 대양 같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많은 인내심과 정량적인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절대로 후회되질 않을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위고의 <레 미제라블> 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네요. 참고로 멜빌은 에식스호 사건에서 감흥을 받아 <모비 딕>을 집필하게 되었는데요 이번에 <하트 오버 더 씨> 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니 <모비 딕> 이라는 작품과 한번 비교해 보는것도 색다른 맛을 선사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문학의 가치나 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더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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