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도스-키 전공자로서, 또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의 번역자로서, 우리 사회의 일련의 범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본다. <악령>의 마지막(별첨^^;), <스타브로긴의 고백>에서 티혼(치혼)은 스타브로긴에게 '아름답지 못한 것'(추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범죄 중에도 유독, 심히 추한 것이 있다는 것. 일반적인 표현으론 '죄질이 나쁘다/불량하다' 정도. 스타브로긴의 범죄 중 마트료샤 사건(미성년자 강간, 자살 방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면, 미적 등급이 높은(?), 정상 참작이 가능한 범죄는 어떤 것일까.
우선은 생계형 범죄 아닐까 싶다. 배가 고파 죽겠어서 빵 하나, 은촛대 하나 훔치는 식의 범죄. 요즘은 사실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범죄다... 라고 생각하지만, '생리대' 광고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그만큼 가난하지 않은 것이지, 지구촌의 누군가, 심지어 한반도의 누군가는 여전히 가난하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참 무심하다. 혹은,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담보해~' 이런 식이다. 이건 인간의 본성인지라(측은지심의 대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국가, 사회의 제도적인 개입이 들어가야 마땅하다. 다만, 때 아닌 '감성팔이'를 하는 경우가 있어 속상하기도 하다. 가난한 자들, 괜히 더 비굴해지지 말라. 나와 나의 형제자매, 나의 부모 역시 그토록 가난했지만(지금도 그런가?) 그렇더라도 비굴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리고 내 가난을 실존으로 받아들이면 사회보장제도 꼼꼼이 따져서 인간으로서 최소치의 존엄은 지킬 수 있다.
그 다음은 미필적 고의, 부작위의 죄 같은 것. sins of ommission. 즉, 뭘 해서(작위 commission)가 아니라 뭘 안 해서 죄가 되는 것이다. 이게 형사적으로 처벌되는 경우는 드물 터이다. 저 사람 구하려다가 내가 죽을 것 같아 아무것도 안 하거나 도망친 사람을 잡아다가 족칠 수는 없다. 그런데 살다 보면 애매한 경우도 있을 법하다. 가령, 주차장에서 꼬맹이들 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교통사고 같은 것. 운전대를 잡아본(헐, 뜨끔! - 운전하지 않는, 운전면허소지자^^;) 사람으로서, 아무리 교통 법규를 잘 지켜도, 즉 서행하면서 전방주시 해도 코너에서 확 튀어나오는 서너살 꼬맹이를 안 칠 도리는 없다. 한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애는 한 순간이에요, 애기 엄마!" 이 말의 무서움 또한 잘 한다. 엄마의 방심이 큰 죄이긴 하지만, 24시간 일년 열두달 아이를 보다 보면 아차, 하는 일이 상당히 자주 있다. '십년감수'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죄는 있고 죄인은 없는 참 안타까운 상황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한밤중에 고추 광주리 머리에 이고 고속도로를 건너는 할머니, 인지 기능이 아이처럼 퇴화된 상태에서 차 몰고 나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는 할아버지, 대책 없이 집을 나갔거나 길을 잃은 발달장애 성인들(조은**양의 기적은, 비가 와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녀가 조용했기에, 운동능력이 낮은 저각성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등.
그 다음은, 흉악, 극악 범죄라도 너무 양해, 이해되는 안타까운 경우. 가령 노모(노부)가 심한 장애를 앓는 성인 아들/딸을 죽인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 같은 것. 다들 혀를 내두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극히 공감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병이나 다름없는, 심지어 그보다 더 한 치매 관련 범죄도 비슷하다. 조금 '마일드'하게는 요즘 연예인들 사이에 나타나는 '빚투' 정도. 설마 가족이? 가족끼리 어떻게 저런 일이? 아니다, 가족이기에 오히려 가능한 일이다. 조금만 싸납게 했다가는, 니가 부모를 버려? 형제 자매를 버려? 이런 화살이 무서워 자꾸 퍼주다 보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도중에 터져 줘야 그나마 종기-고름 수준에서 멈춘다. 자꾸 가면, 더 극악한 양상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소재-주제가 '아비 죽이기'라는 점은 그래서, 항상 의미심장하다. 스메르쟈코프를 용의선상에 넣고(정확히는 미끼로) 예심판사가 드미트리를 슬쩍 떠본다. 드미트리 왈: "에이, 설마요, 걔는 우리 아버지 아들일 수도 있는 걸요, 소문 들으셨죠?" 대략 이런 식의 말. '아들은 결코 아비를 죽이지 않는다'라는 법칙은, 드미트리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그는 착하니까, 아비를 죽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반은 다르다. '아들은(도) 아비를 죽일 수 있다'라는 것.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작가에 따르면, 드미트리가 아니라 이반이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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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반대로, 정녕 '추한' 범죄는 뭐가 있을까. 거론하기도 싫은 각종 범죄들이 있다. 성범죄는 거의 항상 그리 취급되고 그래야 마땅하다. 특이 소아 상대, 또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등. 그런데 최근 들어 '미추'의 범주를 초월하는, 뭐랄까, 굉장히 선진화된, 선진국형 미학적 범죄랄까, 21세기, 심지어 22세기형 범죄랄까, 이런 것이 보인다. 2년전 인천초등생 사건이 그렇고, 얼마전 제주고 고유* 사건이 그렇다.
현재 가장 핫/힙한 고유* 사건의 핵심은, 피의자가 넘나 평범, 평범 이상의 평범이라는 데 있다. 일단 예쁘다. 그것도 눈 돌아갈 미인도 아니고, 정녕 평범 수준의 예쁨이다. 자그마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애교부리기 좋아하고 아마 친구나 연인 관계도 원만했을 법하다. 평범-예쁨 수준의 짜증, 토라짐 등. 아이에게는 어떤 엄마였을까. 크게 차별되지 않았을 법하다. 모든 엄마처럼 아이 예뻐하고 잔소리도 하고 간혹 자기 히스테리도 부리고 그래도 아이 예뻐하고 등등. 그랬기에 소위 뒤통수 치기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대학원 시절, '초롱초롱빛나리' 사건에 너무 놀란 적이 있다. 이 경우도 범인이 (아마 만삭의?) 임신부였다는 점이 우리를 경악케 했다. 소설에도 쓴 기억이 있다.
'악의 평범성'을 익히 알면서도 우리는 항상 뒤통수를 맞는다. 혹은 그런 척 으악~ 하고 경악한다. 혹은 경악하는 척 한다. 풀어헤친 머리를 걷어올린 후 나온 그녀의 얼굴은, 여자들이라면 어지간히들 동의하겠지만, 예쁘장한 편이었다. 이후 공개된 그녀의 평상시 사진은 그점을 확증해준다. 그녀는 이토록 '평범'(banal)한 존재인데, 그녀가 이룩한(!) 악은 좋다/나쁘다, 를 떠나 무척 기괴하다. 그로테스크, 라는 말이 딱 맞는다.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살인까지야 그렇다 쳐도 그 다음의 처리 장면은 과연 엽기지만, B급(^^;;) 장르 소설이나 영화에 능한 자라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특히 요리사, 혹은 요리를 담당하는 여자-아줌마의 경우에 죽은 동물 식재료 다듬기 만큼 일상적인 일은 없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셔서, 시어머니는 살아있는 각종 물고기는 물론 심지어 살아 있는 닭도 능숙하게 '처리/처분'하신다. 쓰다 보니 왕룽 일가의 젊은 여자(오란??)가 막 자른 소의 목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받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 소설, 요즘 왜 안 읽지?)
시골의 여자아이로서 나는 여자어른들이 이렇게 살생하는 것을, 적어도 살생된 것을 처리하는 것을 곧잘 보아왔다. 내장을 상처 내지 않고 분리해내기, 살 별로(?) 가르기, 그거 정리하기, 생선의 경우 배 가르고 내장 빼고 토막 치기, 조개 산 채로 껍질 갈라 꺼내기 등등. 살육의 향연, 홀로코스트다. 말로만 들은 개잡기는, 정말이지. -_-; "아빠도 내가 키운 돼지나 소는 못 먹겠더라." 그러는 님은 나약한 (지식인이 아니라) 농부?? 글쎄다. 쓰다 보니 이건 육식의 문제와도, 최근의 화두와 연결시키면 '개고기' 문제와도 연결되는 듯하니 패스.
다시 고유*로 가면, 이름도 참 예쁘고 참한 그녀에겐 또 다른 평범한 취미가 있다. 사진 찍기, 기록하기, 물건 보관하기. 이 역시 여자들이 넘나 즐기는 취미다. 남친과 주고받은 편지, 어릴 적 사진, 머리카락 등등. 사진 찍기, 블로그나 트윗,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나 같으면 이런 데다 글쓰기, 심지어 가공하고 소설로 쓰기 등. 그녀의 취미가 드러나는 방식이 넘나 평범하고 속돼서 또다시 banality라는 낱말을 떠올린다. 예쁘게 닫은 지퍼백에 속에 든 팥과 소금! 이 정겨움이란, 또한 전통적인 미신스러움이란! 그녀는 여러 모로, 친구 하고 싶고 (아마 남자라면) 한 번쯤 차라도, 산책이라도 같이 하고 싶은 그런 소녀/아가씨/아줌마(아이엄마)였을 법하다.
그런데 보다시피,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소꼬리뼈를 통째로 사와 다듬어 곰국 끓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돼지등뼈로 김치찜을 한 적이 있는데(나도 한 때는 엄청 노력했다오!!!) 뼈와 고기가 같이 들어가는 건 정말이지 넘나 힘들다. 핏물 빼고 삶고 물 버리고 장시간 고우(으?)고 곰국의 경우는 기름도 걷어내야 하고 여기에 채소나 다른 식재료도 함께 넣자면, 손은 두 배, 세 배 간다. 비슷하게 힘든 것이 육개장, 닭개장이다. 고기는 고기대로 삶아서 바르고 채소는 채소대로 준비한한 다음 끓여야하고, 소위 '깊은 맛'을 위해서는 각종 재료를 넣은 육수가 필요하다. 간은 반드시, 주로 국간장이 들어가야 한다. 역시나 '깊은 맛'을 위해서다.
(바흐틴/친이 그로테스크 얘기하면서 연구한 라블레의 소설.)
이야기가 왜 이리로 왔나. 그만큼 그녀의 범죄는 그로테스크하다. 그로테스크는 서로 다른, 반대되는 범주가 뒤섞일 때 발생하는 미적 충격이다. 여기서 섞인 범주는 (아름다운 것/추한 것, 높은 것/낮은 것, 죽은 것/산 것 등등) 두 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어린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 (많은 경우 '엄마'이기에 저질러지는 살육, 살생도 많지만! 왜냐면 엄마는 못 할 짓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무엇보다도 그로테스크하다. 처음에는 사람을 저렇게 잔인하게(이 단어도 별로 들어맞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 그로테스크하다) '처리/처분'하도록 만든 분노의 근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 물음 자체도 성립될 것 같지 않은 것이, 다시금, 너무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이다. 분노, 증오, 이런 건 일반적인 단어다. 이런 것에 의한 범죄는 그래도, 상식(?)에 들어갈 법하다. 심지어 각종 혐오범죄도, 물론 아주 극악하지만, 또 엄벌에 처해야 하지만,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건 뭐지. 너무 그로테스크하여 여전히 혼란스럽다. 도스-키라면, 해답은 못 내도 놀라운 걸작은 써냈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저런 소설들이기도 하다.
아무튼 저 범죄의 미적 등급을 매기자면.... 아무래도 ...
등급외,
밖에 안 될 것 같다.
*
논문 수정하기가 싫어서 너무 놀았다. 이러고도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엄마, 내가 생각해도 토나온다. 아이의 할머니에게, 강남 8학군 최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 변두리의 아이 셋 맘이었던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별로 안 보냈어, 별로 안 시켰어~" 하지만 들어보면 이런 학원 저런 학원 이런 과외 선생 저런 선생. 결론이즉.
- "다 소용 없고, 제일 중요한 건..."
아이들의 건강이야, 가족의 행복이야, 혹은 어차피 소용 없으니 아이의 뜻을 존중해야~
이럴 줄 알았는데....
- "수학과 영어다~!"
헐 ^^; 역시 님은 최고의 맘인 것이다... 내숭 떨지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