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 고프고 내친 김에 계속 논다.
오늘부터 공부(!)를 해보려고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거의 20여년만인데, 놀라워라, 한때 몰입하여 잊었던 번역이 지금은 서걱거린다. 왜지? 오디세우스를 논하는 첫 장, '손' '나그네' 이런 표현이 굉장히 옛스럽다. 그렇게 느껴진다. 역자가 누구?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던 김우창, 유종호. 과거 시제를 붙이기도 죄송한 것이 두 분은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고, 유종호의 최근 에세이는 내가 여기에 링크를 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들의 번역조차도!
(아시겠지만, 김민형은 김우창의 아들이다.)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의 맨 마지막 표지에 실린 글대로, 번역은 세대/시대가 바뀌면 새로 해야 한다, 라는 의견에 나는 전격 동의한다. 간혹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 아니, 원전은 그대로인데 번역은 바뀌어야 한다?
세상에!!! 번역은, 아무리 좋은 것도, 원전을 대신할 수 없다.
번역은 감히 원전의 자리를 넘볼 수 없다.
이 점을 모르는 번역가는 기본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번역가로서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시간의 심판을 넘어 살아 남는 것은 원전이지 결코 번역이 아니다. 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도-키의 <죄와 벌>은 불멸이라도 내 번역은 한시적인 것이다. 현대의 독자들이 여러 편의상 내 번역을 읽을 뿐이다. 혹은 내 번역을 통해, 건너 도-키의 <죄와벌>로 간다. 요컨대, 다리 같은 것이다. 다리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마모되고 교체해야 한다. 번역의 명줄은 아무리 길어도 한 2-30년이 아닐까 한다. 내가 내 스승의 번역들을 먹고 자랐듯, 나의 후학 역시 내 번역을 먹고 자라 훗날에는, 미래의 독자의 언어 감수성에 맞는 번역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덧붙여, 신간의 초역이 아니라, 기존 번역이 있는 고전을 다시 번역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이전 번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후진(!) 것이라도 그것에 빚을 지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그 후진 번역을 봤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빚이다. 이 점에서 <잃어버린...>의 옛 번역에 감사를, 사의를 표한 김희영 선생은, 그 태도에 있어서도 참 훌륭한 번역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예전에 불문과 전공 수업에서(불문과 대학원을 갈 생각이 좀 있었다) 한 선생이 '거의 웬 듣보잡이 이런 소설을 번역했다' 라는 식의 발언을 해서였다. 아무리 후진 수준이라도(이 번역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잃어버린...> 정도의 번역에 손을 댈 정도면 '듣보잡'은 아니다. 그런데 대학에 발가락 담그고 있는 많은 '박사-교수' 중에 이런 편견이 많아, 안쓰럽다.
<미메시스>를 이제 막 읽기 시작하여 뒷부분을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오래 전 <이데아총서>에 들어 있던(우리가 이 시리즈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사라져서 슬펐다, 옛 애인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것을 표지만 바꾼 모양이다. 앞에서 서문 하나 새로 단 정도? 덕분에, 서문-머리말이 세 편이고 내용이 겹친다, 슬프다. 이론서, 학술서는 엄정함이 생명인데. 편집자도 간과한 것인지, 혹은 (필경 젊은) 편집자의 조언을 우리의 스승- 대가들이 고사한 것인지. 이것과는 별개로,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귀가 먼다, 참 슬픈 일이다. 귀가 '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다'. 순해지는 것이 머는 것인가? 눈도 먼다. 자연의 이치니 어쩔 수 없다.
나야 이미 중년이어서 이 번역이 여전히 읽히지만, 더 젊은 층에서 독자를 만들려면, 아이들 무식하다고 욕하지 말고(이거야말로 제 얼굴에 침 뱉기^^;) 새 번역이 슬슬 나와주면 좋겠다. 음, 그러는 너는 왜 니 번역을 안 하고 놀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