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체계가 필요하다
또 책을 낸다. 번역한 책이 아니라 쓴 책이지만 소설책이 아니다. 때로는 글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설레며, 때로는 관성의 법칙에 짓눌린 수험생처럼 억지로 읽고 나름대로 공들여 쓴 글들, 즉 공부의 기록이다. 거의 모든 글에는 작가의 전기가 정리되어 있는데, 이는 내가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 글들을 쓰는 동안 나는 비단 ‘소설가’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작가-글쟁이’가 되었다. 작가는 아무 책이나 쓸 수 있다. 모든 책에는 그러나, 체계가 필요하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어릴 때부터 좋아한 <적과 흑>, <고리오 영감>, <보바리 부인> 등 19세기 프랑스 소설을 읽기 위한 장이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을 염두에 두었다. 2장은 문학 이상의 문학, 소설 이상의 소설에 관한 장으로서 오늘날 철학서로 자리 잡은 에세이에 관한 글도 들어갔다. 인간과 세계의 ‘모순’을 탐구한 문학은 확실히 그 형식 역시 ‘모순’이다. 원래는 3장과 한 데 묶여 있었다. 4장은 주로 ‘생활과 일상’이 담긴 세태 소설을 다루었는데, 영미문학과 러시아문학의 ‘웰-메이드’ 소설이 포함되었다. 교과서 소설은 ‘속(俗)’의 기록임이 드러난다. 5장은 청소년기에 즐겨 읽은 성장소설과 예술가소설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다. 일본 근대 소설 역시 그 맥락에서 읽어보았다. 6장, 7장, 8장, 9장은 각각 카프카, 카뮈(사르트르), 쿤데라(오웰), 보르헤스(나보코프, 에코)를 염두에 두고 구성하였다.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위치한 작품이 모두 책에 관한 책이다. <돈 키호테>에서 <픽션들>과 <장미의 이름>까지 나의 읽기는 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공유할 만한 지점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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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어느 시인처럼 “나를 환멸로 이끄는 것들” 중 하나로 (“모교의 정문”과 더불어!) 주저 없이 “인용과 각주”를 꼽겠다.(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2008.) 그 무게에서 해방된 가뿐한 글쓰기를 꿈꾸었으나 책에 관한 책이라 인용이 불가피했다. 각주 역시 참고문헌 목록으로 흔적기관처럼 남았다. 천형이라면 웃기고 자업자득이다. 이참에 44년을 넘긴 내 인생을 요약해본다.
1975년 1월, 태어났으며
10대, 공부했고, 자랐고, (부모) 집 떠났으며
20대, 공부했고, 소설 썼고, 담배 피웠고, 연애했고, 번역했으며
30대, 공부했고, 강의했고, 논문 썼고, 번역했고, 소설 썼고, 결혼했고, 담배 끊었고, 아이 낳았으며
40대, 공부하고, 강의하고, 논문 쓰고, 번역하고, 소설 쓰고, 책 내고, 담배 안 피우고, 아이 키우고,
암과 치매와 실명 없는 노년을 꿈꾼다.
누군가에게는 ‘하강’일 수 있는 문학이, 경상남도 거창군의 으슥한 산골에서 의무 교육만 간신히 받은 농부의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는 시종일관 ‘상승’이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 부산 사는 삼촌의 결혼식에 가던 길에 아빠의 손을 잡고 조만간 내가 다닐 학교를 구경 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집에서 5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그 야트막한 학교는 물론, 폐교된 지 오래이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거창을 떠나 부산의 산동네에 단칸방을 얻었다. 이듬해 봄, 나는 학교에 들어갔다. 한 반의 학생 수가 쉰 명도 넘던 시절, 오후반도 있던 시절이다. 그 역사적인 1981년에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책의 세계에 진입했다. 질 나쁜 종이에 조잡한 그림이 들어간 교과서가 전부였음에도 그것은 아주 처음부터 문학의 형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처음 손에 잡은 순간부터 너무 좋았다, 책이라는 것이.
나의 책읽기는 중학교 시절 값싼 문고판으로 시작되어, 장학금과 과외비 덕분에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대학 시절에 절정을 이루었다. 1993년 3월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2004년 2월까지 촘촘히, 빼곡히 들어찬 11년의 세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꿰차고 있던 학생증을 버리기가 얼마나 아까웠던가! 이후, 또 한 번의 시간 덩어리를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이지만 러시아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또 그것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학자로 살고 있다. 러시아문학에 한정된 ‘좁은’ 책읽기에 환멸을 느끼던 삼십대 중반쯤, 다시 ‘넓은’ 책읽기를 넘보았다. 2009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세 학기 동안 진행한 세계문학 읽기 강좌가 시발점이 되었다. 그와 얼추 맞물려 2010년 가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네이버> 문학 캐스트에 세계문학을 소개했다. 맨 처음 다룬 책은 사르트르의 <말>이다. 2012년부터는 <책앤>(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귀한 지면을 얻어 2015년까지 썼다. 2016년부터는 소설 창작 강의를 맡아 세계문학의 전범과 전위의 소설을 두루 읽고 있다.
2010년 12월 1일, 정녕 마지못해, 하루 두 갑 진정한 골초에서 비흡연자가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관한 글은 담배 없이 쓴 첫 번째 글이다. 솔직히, 담배를 피우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2011년 한여름에 아이가 태어났다. 출산 이후에는 흡연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담배를 안 피워도 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포유류의 일종, 한 마리의 암컷일 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숭고한 실존이지만(동물-인간으로 회귀!) 그것을 배면으로 ‘책의 삶’이 얼마나 숭고한 실존인지(사람-인간으로 회귀!) 새삼 깨달았다. 사람은 무릇, 책을 읽어야 사람이다. 이 책의 거의 모든 글을 몸 안에서, 그리고 몸 밖에서 아이를 키우며 썼다. 아직도 걸음걸이가 불안정한 아이가, 물론 건강하고, 덧붙여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사족 한마디. 내가 가끔 아이보다 책을 더 사랑한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건 아니다. 밤낮을 잊고 몇날며칠을 담배와 단둘이 골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이 이전의 황금시대가 너무 그립다. 조금의 시건방과 비아냥도 없이 말하거니와, 공부는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모범생이어야 하니…” 러시아 유학 시절 이런 따사로운 답장을 보내준 절친했던 라이벌이 작년에 암 수술을 받았다. 이 나이에 뭘 어쩌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
― 2019년 여름,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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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집은 처음인데, 편집 과정이 길었다. 처음에 초고를 넘길 때는 독자서비스(?) 차원에서 원문 인용을 많이 넣었다. 하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또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인용문을 대폭 줄이고 대신 내 말로 푸는 수고를 많이 해야했다. 몇 꼭지를 그냥 확, 덜어내기도 했다. 그 결과 책이 훨씬 깔끔하고 날씬해졌다.
표지에 담배를 피우는 3,40대 여성 사진을 쓰자고 제안한 건 나다. 저 얼굴은 프랑스와즈 사강이라, 한데 이 책은 사강에 대한 책이 아니라, 다른 것을 쓰고 싶었지만, 흥미롭게도(^^;;) 저것이 사강인 것을 알아본 사람이 나 말고는 별로 없었다. 한편, 내가 고른 것은 너무 퇴폐적(^^;;)이라, 저 책의 주요 독자층(자식들에게 고전을 읽히려는 나 같은 아줌마^^;)을 염두에 둔다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담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퇴폐적(^^;)인지라 , 현재의 시안으로 낙착되었다. 만들고 나니, 좋더라. 그리고 한 장 넘기면, 지난 겨울 <창비 까페>에서 찍은 내 사진이 나온다. 어릴 때는 나도 한 인물 했는데 -_-;
제목, 목차, 서문은 마지막까지 (편집자와 함께) 고민한 것이다. 제목은 결국 내가 제안한 것이 채택되었는데, 20여년 작가 인생에 참 드문 일이다^^; 서문은 지금 올린 것에서, 중간부분을 뭉텅 덜어냈다. 그 결과, 역시나 서문이 깔끔해졌다. 나보코프는 <롤리타> 후기에서 자신의 개인사는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으나, 라는 식의 말을 했지만, 나는 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한다. 서문에서 잠깐 언급한, 거창 고제면의 개명 국민(초등)학교는 올 여름에 탈고한 소설에서 좀 묘사를 해보았다.
자, 그러니까...
이제는 소설이 나올 차례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_-;
아무튼 '삼재'가 끝났으니(나는 영원한 미신주의자!) 이제 당분간은 인생이 풀릴 것이다.
이런 믿음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