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1988, 우리 가족은 월세 단칸방에서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 우리 동네에는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익돌이 피아노> 등 없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우리 삼남매에게, 아니면 엄마 아빠에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골목 어귀에 있는 <훈이네 복덕방>은 아무리 봐도 뭘 하는 곳인지 통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사고팔지 않고 뭘 가르쳐주지도 않는 이상한 가게였다. 그 집 큰아들은 이미 직장에 다녔고 작은아들도 내년에 제대하면 얼마 안 있어 졸업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크면 어른들은 저렇게 놀아도 되는 모양이고 <훈이네 복덕방>은 어른들의 놀이터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아침 9시면 2층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고 손님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곧 하루 일과를 접는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늘 한두 명, 많으면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낡은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오구작작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장기를 두거나 각자 신문이나 잡지를 읽기도 했다. 탁자 위에는 늘 요깃거리가 있었고 때로는 밥상이 차려져 있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손이 큰 것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 때문에 아예 작당을 하고 배를 채우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줌마는 아주 추울 때가 아니면 미닫이 유리문을 항상 반쯤 열어 두고 손님을 기다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삼남매도 <훈이네 복덕방>의 손님 아닌 손님이 되었다. 아들딸이라고 하기엔 많이 어리고 손자손녀라고 하기엔 제법 큰 우리를 <훈이네 복덕방>은 참 예뻐해 주었다. 우리 부모가 부전시장에서 과일도매상을 한다는 걸, 그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더 그랬다. 부전시장 갈 일이 있으면 꼭 <성득상회>, 즉 우리 가게에도 들러주었다.

 

*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봄볕을 쬐며 복덕방 앞을 서성였다. 저쪽에서 낡아빠진 추리닝에 면 티셔츠를 입은 형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방 끈이 양쪽 모두 거의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바로 잡을 마음도 없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텅 빈 집안으로 들어설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쫙쫙 빠졌다.

형우야, 인자 오나?”

.”

점심은?”

형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큰누나는 아직 안 왔제?”

중학생이 지금 집에 오면 쓰나? 작은누나는?”

가게 안에 있던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작은누나도 6학년이라서 늦게 와요.”

놀아도 밥은 먹고 놀아야제.”

 

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형우는 <훈이네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고등어조림이 놓여 있었다. 붉은 양념을 머금은 탓에 고등어의 푸른 빛깔이 더 선연해 보였다.

야한테는 좀 매울라나.”

계란이라도 하나 부쳐주지 그라나?”

아저씨가 신문 너머에서 한마디 했다.

, 맞네. 형우 니 일단 먹고 있으래이.”

아줌마는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더니 금방 노른자에 따뜻한 윤기가 흐르는 계란 프라이를 갖고 내려왔다. 형우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댔다. 아줌마는 형우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창 클 때라서 엄청 먹네, 엄청! 어여, 훈이 아빠, 우리 정훈이랑 성훈이도 저 나이 때는 이래 잘 먹었는데. 갈라고? , 물 마셔라.”

아줌마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뽀얗고 고운 손으로 형우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형우는 물 한 컵을 또 벌컥벌컥 들이켰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래. 아가 인사성이 참 밝대이.”

꾸벅 절을 하고 나가는 형우를 보며 아줌마가 말했다.

 

형우는 가방을 한 손에 들고 후다닥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5분도 안 돼, 딱지 주머니를 든 형우가 <훈이네 복덕방>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형우야, 니 숙제 안 하고 어딜 가노?”

아줌마가 소리쳤다.

딱지요!”

그러고는 대답을 해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얼른 내빼버렸다.

 

자가 착하긴 착한데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거 같네요.”

아줌마의 말에 아저씨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아직 어린데 착하면 됐지, . 저녁때는 두루치기 좀 해봐라.”

왜요? 돼지 먹고 싶어요?”

뭐 그것도 그렇고 소주 한 잔 할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아저씨의 기대대로 오랜 벗들이 찾아왔다. 그날 <훈이네 복덕방>11시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집 앞에는 오랜만에 소주병 몇 개가 얌전히 서 있었다. <뭉치 슈퍼>보다 더 신이 난 건 고물장수 할아버지였다.

 

 

형우가 5학년이 되고 해수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여름, <훈이네 복덕방>에는 경사가 났다. 지난봄에 결혼한 작은아들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손바닥만 한 동네엔 일찌감치 작은아들이 속도위반을 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소문이 돌았더랬다. 하지만 <훈이네 복덕방>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듣는 둥 마는 둥 마냥 즐거워했다. 나이 찬 아이들이 둘이 좋아 애부터 만들었는데 그게 뭐 그리 흉이냐는 투였다. 이게 또 옳은 소리여서 동네 사람들도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했다. 다만, 맞은편에 있는 <구슬동자> 아줌마만은 끝까지 눈을 흘겼다. <훈이네 복덕방>이 날을 잡기 위해 이웃 동네에 있는 <천상선녀>를 찾은 탓이었다.

 

작은아들 내외가 갓난애를 안고 부산에 온 날, <훈이네 복덕방>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끌벅적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형우가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 벌레 같다!”

형우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형우 니 갓난아 처음 보제? 니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딱 요렇게 생겼을 긴데.”

이 말에 형우는 인상을 팍 썼다. 얼굴이 불그죽죽하고 쭈글쭈글한 것이 영락없이 벌레였다. 벌레는 팔다리 같지도 않은 몰랑몰랑한 살덩어리를 치켜 올리는 시늉을 하고 마디도 보이지 않은 작은 손발을 희한하게 꼼지락거렸다. 형우는 이 벌레가 신기해 오랫동안 그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사이에 젊은 아줌마가 건네준 노랗고 길고 몰랑몰랑하고 부드러운 과일을 씹어 먹었다. 왜 아빠는 이런 건 사오지 않는 걸까. 이렇게 귀한 걸 남한테 선뜻 주는 걸 보면 이 벌레의 엄마 아빠는 참 부자일 것이라고 형우는 생각했다.

얘가 바나나를 처음 먹나 봐요, 어머니. 하나 더 먹을래?”

형우는 또 다시 냉큼 바나나를 거머쥐며 생각했다. 부자는 예쁘고 착한데다가 서울말을 쓴다고.

 

<훈이네 복덕방>의 작은아들 내외는 다음날 오전에 서울로 올라갔다. 멸치젓, 명란젓, 깻잎과 콩잎 장아찌, 고들빼기김치 등 차 안의 트렁크로도 모자라 많은 짐들이 차의 뒷좌석에 실렸다.

매실즙은 배 아플 때 물에 타서 먹으래이. 그게 위에 그리 좋다 안 하나.”

얼른 다 먹을 테니까 다음에 오면 또 주세요.”

그래, 그래. 조심해서 가고.”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웃으며 아들 내외와 손녀를 배웅했다. 차가 동네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작고 뽀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마저 글썽였다. 아저씨가 아줌마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지막하게 훈수를 두었다.

암탉도 병아리가 꽁지가 나면 옆에 오지 말라고 부리질을 안 하나. 원래 자식은 나이 들면 다 저래 떠나는 기다.”

물론 아저씨도 가슴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큰아들도 경상남도를 떠돌며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다가 작은아들마저 멀리 있으니 말이다.

(-- 계속)

 

-- <웹진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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