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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반이 됐을 때 해수가 대학에 들어갔다. 드디어 해수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에 덧붙여 해운대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친구들이 또 새로 생겼다. 그 사이에 해수의 주량은 웬만한 남자를 능가할 정도가 됐다. 엄마 말대로 조상의 핏속에 술독이 들어있는지 해수는 수시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한 번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가 아빠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여름 방학 때는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기어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덤으로 머리까지 갈색으로 물들였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아빠는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외치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고, 해수는 애써 눈물까지 짜내며 깊이 반성하는 척 했다. “아빠, 다시는 안 할게요!” 이렇게 말해서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나중에 또 제 뜻대로 하는 게 해수의 깜찍한 처세술이기도 했다. 반년 뒤 해수의 머리카락은 짙은 밤색이 되었고 집안이 또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발칵이 아니라 그냥 살짝이었다. 해수의 깜찍한 말썽은 형우가 벌인 소동에 비하면 콩국수 위에 얹힌 풋풋한 오이 채 같은 것이었다.

 

형우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문제아로 거듭났다. 일단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긴 갔지만, 그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편한 곳이 학교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파한 뒤에는 친구들과 함께 유흥가를 전전했다. 엄마 아빠가 새벽에 책상 위에 얹어두는 용돈은 담뱃값, 술값으로 나갔다. 오다가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와 마주쳐도 인사만 할뿐, 얼른 어디론가 내빼버렸다. 밥을 준다 해도, 바나나 한 송이를 통째로 다 준다 해도 머리가 굵어진 형우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던 해,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가 칠순을 맞이했다. 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갔더니 해수가 아줌마한테 목도리라도 사드리자는 말을 꺼냈다. 연일 용돈 타령을 하며 완전히 개념을 놓고 사는 것 같던 형우도 웬일인지 5천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아줌마는 목도리를 목에 둘러보며 수줍게 웃었다.

아이고, 코 묻은 돈으로 이런 걸 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집엔 사람이 들끓어야 되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해서 병이 날 정도라며 가볍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실 <훈이네 복덕방>의 쓸쓸함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었다. 결혼 초에는 그래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부모를 찾던 자식들도 이젠 명절이나 되어야 얼굴을 봤다. 어쩌다 두 내외가 함께 거제도의 큰아들 집, 서울의 작은아들 집을 찾기도 했지만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방학이면 더러 손자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부산의 누추한 달동네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큰아들 내외도 거제도의 번화가에 살았으므로, 그 아이들의 눈에 이곳은 촌구석이나 다름없었다.

 

<훈이네 복덕방> 앞의 <뭉치 슈퍼>는 아이들이 가장 경멸하는 곳이 되었다. 과자라곤 새우깡 밖에 없고 아이스크림이라곤 돼지바가 전부였다. 도무지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게 없었다. “아저씨, 빈츠 없어요?” “에이, 아이스크림이 다 찌그러졌잖아! 아저씨, 월드콘 없어요?” 아이들은 <뭉치 슈퍼> 아저씨를 골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없는 것만 찾았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정성껏 만든 콩국수도 손자손녀들에게는 냉대를 받았다. 아이들은 차라리 해수 이모의 손을 잡고 서면 구경 가는 걸 더 좋아했다. 시끌벅적한 시내에서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아이들은 또 <뭉치 슈퍼>를 비웃었다.

 

손자손녀들이 떠나면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한동안 허함에 시달렸다. 그 허함을 잊으려는지 아줌마는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손에 굵은 주름과 거뭇거뭇한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음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그런데 아줌마의 음식은 뭔가가 이상했다. 부침개는 너무 짰고 고구마는 덜 익었고 김치에서는 풋내가 났다. 부침개와 함께 나온 간장에는 총총 썬 쪽파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노, 맛있나?”

그럼요. 그런데 조금 짠 거 같아요, 헤헤.”

해수의 말에 아줌마는 기다렸다는 듯 자아비판을 시작했다.

짜다고? 요새 내 혀가 미쳤는 갑다. 통 간을 못 보네.”

아니에요, 맛있어요, 아줌마. 원래 해수가 좀 싱겁게 먹어요. 건강에 예민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나도 좀처럼 부침개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 건강은 젊었을 때 지켜야지. 우린 이제 늙어서.”

안 그래도 여 훈이 엄마가 요즘 노망났다 아이가. 잠바에다가 다리를 집어넣질 않나.”

아저씨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에 없던 돋보기안경이 아저씨 코 위에 걸쳐져 있었다.

이 양반도 참, 그냥 웃자고 장난 친 걸 갖고 괜히 또 이란다.”

생로병사 두려울 거 뭐 있나, 자연의 이치지.”

아저씨는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옛날과 다를 바 없는 몸짓, 표정이었지만 어느 새인가 아저씨의 머리가 하얗게 새버렸다. 전에 없이 말수도 많아진 것 같았다.

아직 내 발로 변소도 가고, 이래 살 집 있고, 또 이래 죽을 집도 있고. 그래, 진수 니는 인자 돈을 번다고?”

 

나와 해수는 우리의 근황에 대해 좀 더 얘기한 뒤 <훈이네 복덕방>을 나왔다. 소금에다 밀가루반죽을 섞어 넣은 것 같은 파전과 설익은 고구마가 우리가 그곳에서 먹은 마지막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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