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삼남매는 밥벌이 문제를 두고서 제각기 고군분투했다. 해수는 3년 동안 학문의 상아탑 안에서 원 없이 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봤다. 그렇게 덜커덩 교대에 입학했고, 뭘 잘못 먹었는지 머리에 물도 안 들이고 화장도 전혀 안 하고 4년 동안 공부만 했다. 결국 해수는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서 교사가 되었다.
형우는 경찰서와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부모 속을 태우다가 급기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코뼈와 이빨을 부러뜨리고 남의 차를 부수고 남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스물다섯을 넘기면서 그나마도 잠잠해졌다. 그렇게 간신히 철이 들었을 때 형우는 이미 환갑을 코앞에 둔 아빠의 사업을 슬슬 물려받는 중이었다. 명함도 따로 팠다. 빨간 사과와 보라색 포도 그림이 촌스럽게 들어간 명함엔 <성득상회 사장 김형우>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이건 사실 엄마와 아빠가 형우의 미래를 상상하며 가장 바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형우는 바싹 여윈 몸을 트럭에 실은 채 연일 산지를 오갔다. 갈 때는 말짱해도 부산으로 내려올 때는 술에 절어 있었다. 그렇게 트럭 안에서 잠을 잔 뒤에는 밤새도록 과일 선별을 했다. 형우의 얼굴은 뙤약볕에 시커멓게 그을린데다가 늘 푸석푸석했다.
형우가 안쓰러웠던 엄마는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오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이래 시장 바닥에서 살았어도 우리 아들만은 몸 쓰는 일 안 하고 펜대 굴리며 살았으면 싶었는데…. 그게 참 뜻대로 안 되네요.”
“아이고, 변변찮은 직장보다 장사가 훨씬 낫다. 그라고 아 착하면 됐지, 또 뭘 바라노? 이제 참한 딸아 구해서 장가만 잘 보내면 되겠구먼. 진수 엄마가 애 셋 데리고 이리로 이사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봐라, 얼마나 좋노. 옛날엔 우리가 와도 이래 앉아서 노닥거릴 여가도 없었다 아이가. 진수 엄마가 그만큼 마음이 편하다는 기라. 시장도 그냥 놀기 삼아 오면 안 되나.”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그만 일어났다. 별로 크지 않은 토마토 상자였지만 두 노인이 들기엔 꽤나 무거워보였다. 형우가 좀 있다가 직접 갖다 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마다했다. 두 노인이 사라졌을 때 엄마가 형우를 보며 말했다.
“팔아줘서 고맙긴 하지만 저 많은 걸 노인 둘이서 우째 다 묵을라노? 요새는 <훈이네>도 한산하던데.”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의 큰아들 내외가 부산으로 전근을 오긴 했지만 먹을 입이 크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덧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 버린 손자들은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어쩌다 거실에 함께 있게 돼도 다들 텔레비전에 코를 박아두었다. 친구들은 늙고 죽어서 떠나버리고 그 많던 동네 아이들은 자라서 떠나버렸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간판에 붙은 두 글자 ‘복’과 ‘덕’을 어떻게든 나눠주려고 고심했다. ‘복’과 ‘덕’은 무릇 음식의 양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줌마는 요즘도 음식을 하면 옛날처럼 가득이었다. 손자들한테 냉대를 받아도 꿋꿋했다. 남은 음식은 대개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노숙자나 길거리 점쟁이들 차지가 됐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 아니 음식을 만들 명분을 찾기 위해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수시로 서면 일대를 순례했다. <성득상회>에서 사온 토마토도 하나씩 끼어 넣었다. 그러는 동안 유리문을 모자이크 벽지처럼 뒤덮은 종잇장들은 빛이 바래갔다. 아저씨가 펜으로 멋을 부려가며 써놓은 전세, 월세, 매매 등의 문구와 숫자도 고색창연하기만 했다.
건조하고 쌀쌀한 탓에 투명한 햇살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겨울날이었다.
남자 친구는 <부전역>을 나오자마자 “완전히 시골이라더니 있을 거 다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전철역 근처에 닥지닥지 붙어있던 추레한 가게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형 마트, 유명 제과점, 유명 음식점이 들어섰다. 학창 시절 고무신 공장이 있던 자리엔 아파트 단지가 터줏대감 마냥 버티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의 노동자나 노점상들 대신 말쑥한 회사원들이 거리를 채웠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조그만 정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눈에 익은 파출소가 나왔다. 각종 범죄자의 몽타주나 사진이 붙어 있는 건 여전했다. 그 맞은편엔 기어코 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자리를 잡았다. 그와 함께 편의점, 사설 학원, 피트니스 클럽 등도 잔뜩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 3미터 떨어진 곳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오직 <익돌이 피아노>만이 <예쁘제 머리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익돌이 피아노>의 주인공인 익돌이, 즉 해수의 초등학교 동창 가족이 얼마 전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탓이었다.
골목 어귀, <훈이네 복덕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 두어 걸음을 떼자 골목 안쪽에 전에 없던 검정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소파 한 쪽에 복덕방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조그만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책장이 노랗게 바란, 활자가 세로로 이어지는 오래된 책이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나의 인사에 할머니는 묵묵부답에 무표정이었다. 주름과 백발로 덮인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눈동자가 몹시 영롱했지만, 예전처럼 다정다감한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진수요, 기억 안 나세요?”
할머니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딘가에 고정된 채 꿈쩍도 안 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벼운 겨울바람에 낡은 책장이 팔랑거리자, 할머니는 책을 쥔 손에 아주 약간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맛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어린애의 욕심 같은 것이 어리었다. 내 시선은 다시 할머니의 손으로 향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두 손에 충격처럼 내려앉았던 굵은 주름과 누르스름한 반점이 이제는 어엿한 주인처럼 보였다. 저 두 손이 형우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해수와 친구들에게 수박을 잘라주고 먼 길 떠나는 내게 계란을 삶아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내 등 뒤로 나타났다. 백발도 이제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았다.
“어, 이게 누구고?”
할아버지가 반색을 표하자 나도 숨통이 좀 트였다. 할머니의 표정에도 미약하나마 떨림이 일었다.
“안녕하셨어요?”
“그래, 그래. 훈이 엄마한테는 인사해도 소용없다. 노망이거든, 허허, 내 여편네가 노망이 들다니, 참. 닭개장이 먹고 싶어 죽겠는데, 여편네가 이 모양이니 원. 그래, 니는 결혼 안 하나? 올해 몇 살인고?”
“서른 셋요. 올 봄에 이 사람이랑 결혼하려고요.”
남자 친구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 그래, 아들딸 낳고 잘 살아야제. 요즘 세상에 위아래가 따로 있나, 어데. 언니가 못 가면 동생이라도 얼렁 가야제.”
이 말에 나는 곧장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한테 걸핏하면 동생보다 작은 언니라며 놀림 받던 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성장기로 돌아갔다.
“에이, 아저씨, 제가 언니고 해수가 동생이라니까요! 키 작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무시는 무슨!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시집은 언니가 먼저 가야 되는 법이다. 오빠는 요새 뭐 하노?”
“오빠요?”
이쯤 되자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너거들 오빠가 맨날 추리닝 입고 안 다닜나. 고놈 참, 딱지 주머니를 들고 여 와서 점심 먹고 그랬는데 요새는 통 안 보이네. 그래, 니 시집은 언제 가는고?”
“지금 가려고요. 이 사람한테요.”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 그래, 니라도 여 이래 있으니 안 좋나. 진수 서울 간 뒤로 너거 엄마, 아빠가 그래 허전해하는데. 하긴 니도 언니가 없어서 심심하제? 근데 진수는 대학은 졸업했는가?”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이제는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도 곁눈질을 하게 되었다. 이제 할아버지도 조용히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훈이 엄마, 저어기 <성득상회>네는 이제 호강할 일만 남았어. 진수는 졸업을 하고 해수는 시집을 간다네. 아참, 가들 오빠 소식을 못 들었다. 글마 이름이 뭐였더라? 형우는 저어기 <천상선녀>네 집 손자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종알종알 수다를 떨었고, 할머니는 멀뚱멀뚱 눈알을 굴렸다. 아무래도 겨울치곤 햇볕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