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는 비바람에 쓸린 물건들로 인해 졸지에 쓰레기바다가 됐다. 시큼한 냄새가 빗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개 등에 얹힌 장바구니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풍겨 나왔다. 하지만 개의 눈에 광채가 나고 빗물에 젖은 털이 곧추 서는 것은 비린내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계절을 잊은 세상이라지만, 한여름도 아닌데 태풍이 온다는 것도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센 비바람이 <모텔 수>의 간판을 휙 날려버렸다. 간판은 쏜살같이 날아 저쪽 다세대주택의 화분에 가서 꽂혔다. 만개의 조짐을 보였던 분꽃이 순식간에 뭉개져버렸다. 어찌나 원통했는지, 복수를 하려는 듯 그 자리에서 번쩍 빛이 일었고, 그 빛이 곧 번개가 되어 사방으로 번졌다. 하늘에선 또 천둥이 치면서 번개와 조우했다.

 

아줌마, 마법을 써, 제발! 우리 다 날아가겠다!”

소영이는 마녀를 부여잡고 애원했다. 마녀는 장바구니를 개의 배 밑에 매달았다. 그리고 소영이를 한 손으로 거머쥔 채 커다란 개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마녀는 모두의 상태를 점검한 뒤, 지휘를 하듯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양 손을 약간 떨어뜨렸다. 그 자세로 고개를 정면으로 향한 채 소영이가 알 수 없는 말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우아, 주문이다! 마법이다!”

소영이는 이 경건한 장면에 완전히 감화되었다.

글쎄, 이건 마법이 아니라니까.”

마녀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하지만 개는 땅바닥에 발이 닿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보드라운 털이 바늘처럼 뻗쳤다.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그들은 빗줄기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갔다.

 

그들 옆으로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최근의 괴상한 날씨 변동을 의식한 탓에, 비옷도 단단히 차려 입고 있었다. 눈썹까지 덮어버린 커다란 모자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제 그는 집으로 돌아가 집채만한 아들과 함께, 밤톨만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을 것이다. 소영이도 떡붕어 아저씨가 차려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 식탁을 꿈꾸었다.

 

성문 앞에는 떡붕어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우아, 아저씨! 대체 어디 갔었어? 마을을 다 뒤졌잖아! 맞아 볼 테야?”

소영이의 채근에 그는 멍한 눈만 멀뚱거렸다. 최근에 살이 너무 많이 쪄버려서, 덩치는 한없이 크고 팔다리는 무척 짧은 큰 곰처럼 보였다. 그 옆에는 흡사 곰을 지키는 듯 문지기가 서 있었다. 그는 땅바닥으로 내려서는 마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성탑에 있었던 거야? 문지기 아저씨랑 같이?”

떡붕어 아저씨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마녀 아줌마를 닦달했다.

이런 날씨에 애를. 요새 개 독감이 유행인 거 몰라요?”

그는 며칠 동안 아이를 혼자 방치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껏 하룻밤도 제대로 자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 개는 건강하니까 걱정 마세요!”

마녀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소영이를 떡붕어 아저씨에게 넘겨주고서, 개와 고양이를 거느린 채 성 안으로 들어갔다. 문지기는 그녀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문지기는 하루 종일 성탑 한 구석에 앉아 있었고, 마녀는 자기 방에 칩거했다. 정녕 서로에게 할 말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서로를 응시하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로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아량도 여전했다. 이런 적막한 관계를 마녀와 문지기는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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