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엄마로 산다는 것
1.
수능을 앞두고 인터넷에 감동 실화 글이 올라 왔었다. 수능 당일 아침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며 자식에게 너가 시험을 망쳐도 너가 시험을 못 본 게 아니라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준 탓이니 마음 편히 시험보라고 했다나? 엄마 덕분에 시험 잘 치고 무사히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글에 감동했다는 댓글이 주르륵.
그런데 도무지 난 수긍이 안 가는 거다. 애가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그건 애의 실력이나 담력에 딸린 거지, 왜 엄마가 책임져? 애가 잘 되면 엄마 덕분, 못 되면 엄마 탓? 딸아이에게도 이 일화와 엄마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해주며 선을 그었다. 니 인생은 니 꺼야. 엄마는 널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하진 않아. 너가 스스로 열심히 살아.
2.
A시스템 담당 여직원 a가 양육휴가에 들어갈 때 남직원 b가 갑자기 A를 맡게 되어 b는 불만이었다. b가 담당했던 B시스템은 C시스템 담당자인 c가 함께 맡게 되어 c는 업무 과부하로 불만이다. 어쨌든 난 a가 복직하면 원래대로 a-A, b-B, c-C 구조로 돌아가고 불만은 줄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a가 복직할 무렵 다른 부서의 여직원 d가 출산휴가 및 양육휴가에 들어가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d의 일을 a가 대신하게 할 작정이란다. d부서의 직원 중 누구도 d일을 대신 하기 원하지 않고 새로 인원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d부서 직원들은 해당 부서 일을 하나도 모르는 a를 가르치며 일하는 것도 불만인 상황이다. (참고삼아 말하면 d부서 직원들은 d빼고 모두 남자다.)
달랑 출산휴가 3개월 쓰는 것도 잘릴까봐 눈치 보였던 나와 달리 요즘엔 양육휴가도 쓴다고 부러워했는데, 직원들끼리 이렇게 직무 갈등이 일어나는 걸 보니 아직도 모성과 일의 양립은 멀었구나 싶다. 몇 십만원 밖에 안 되는 대체인력 고용지원금을 고려한다면 다른 회사들도 기존 직원들에게 일을 더 시키는 걸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숨난다.
3.
드라마에서 근사한 남주인공이 나와도 가슴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저런 사위를 얻었으면, 우리 아들이 저렇게 컸으면 싶을 뿐이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이제 넌 여자가 아니라 그저 엄마라서 그렇단다. 그런 건가?
여자로 산다는 것
1.
박근혜와 최순실이 밉다. 여자 망신을 시키는 게 너무 밉다. 회사에서 농담처럼 우리 회사 최순실은 나라며 농담하는 게 끔찍하다. 이 끔찍한 농담을 나만 듣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인 이상 되는 여자들이 흔히 이 농담을 듣는다. 내가 쌓아온 경력이 부정했던 것처럼 매도당하는 것 같아 발끈하면 농담이라며 얼버무리며 제대로 사과도 안 하고 넘어간다.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삼으려 들면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것도 여자의 특징이라며 뒤에서 빈정댄다. 할 수 없이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담대한 척 넘어가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2.
박근혜를 둘러싼 온갖 의혹이 여자의 프라이버시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 있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건 한 여자의 사사로운 사생활 폭로가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행한 그릇된 통치와 사리사욕과 무능력에 대한 규명과 책임자로서의 처벌이다. 어디 감히 여자의 프라이버시를 들먹이는가. 설마 내가 여자라는 걸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걸까 착각하게 하는 건가.
3.
7시간의 비밀 중 1시간 30분이 머리 손질이란다. 박근혜는 누구 말마따나 소시오패스구나 확신하게 되었다. 청와대 해명처럼 여자니까 20분쯤 머리 손질을 할 수 있다고? 팀장에게 농담으로 앞으로 장애나면 전 여자니까 머리손질하고 출동해도 되냐고 하니 괜찮단다. 사직서만 쓰란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