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내리긴 했지만 범람수준이 아니라 서호천변 걷기는 무탈하다. 중보교를 지나면 포장도로가 끊겨 진짜 옛길 기분이 난다. 그래도 곳곳에 삼남길 표식이 있어 안심이다.
수원천 위를 가로지른 수인선 협궤열차 옛 철길이 쓸쓸하다.
수인선을 지나 중보들공원까지는 찻길과 겹치는 곳이 있어 주의를 해야 한다. 서호공원에서 여기까지 약 1시간 거리라 다리쉼하기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농협인 고색농업협동조합을 기념해 자그만 향토전시관이 있어 볼거리도 된다.
공원을 지나면 서호천과 만난 황구지천변을 걷게 된다. 무척이나 한적한데 수원비행장의 철조망이 옛길이 아님을 증명한다.
비행장을 지나면 공사구간으로 막혀 농로로 빙 돌아가야 한다. 한때 벌말이라 불린 평야지대를 걸어보는 거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다리를 기점으로 중복들길이 끝나고 화성효행길이 시작한다.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이기도 하다. 황구지천 공사중이라 지금은 별로지만 내년이 되면 근사한 산책로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왕실 사찰의 풍모를 보여주는 홍살문과 삼문. 그런데 주지스님의 사실혼을 비난하는 방송이 들려 당황했다. 게다가 주지스님이 합의한 태안3지구 개발시 정조대왕의 초장지가 훼손된다는 현수막도 주렁주렁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중 하나인 김홍도의 탱화. 푸른 눈의 탱화 작가 브라이언 베리 선생님의 부고를 놓친 안타까움을 내려놓고 간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 효의왕후의 위패가 역사라면 수많은 명패와 사진과 공양미는 오늘의 슬픔이다. 그 공존이 새삼스럽다.
용주사에서 만년제까지는 나름 시내라 식사를 해결하기 좋은데 삼남길 표식이 눈에 안 띄는 문제가 있다. 미리 삼남길앱을 깔아둔 게 다행이다. 두촌집 블루존아파트 남수원현대아파트 안녕초등학교를 길라잡이로 삼으면 된다.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만년제 앞의 솟대가 경기도 삼남길 팜플렛 표지다.
만석제에서 시작한 소하천을 따라 걸으면 된다. 찻길을 건널 때는 길가 타이어 가게의 작품이 이정표가 되어준다.
그러다 갑자기 넓어진 황구지천과 다시 만났다. 가장 인적없는 가을풍경을 선물로 받았다.
이제 독산성길 시작이다. 오산시의 시작이기도 하다.
등산로 입구 표시도 없이 느닷없이 산길이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에 삼남길 표식을 그린 건 영 마땅치 않다.
용주사 이후 딱히 쉴 데가 없었던 터라 보적사에서 약수도 마시고 적당히 쉬었다. 산신전이 있는 삼성각에서.
세마대는 공사중이라 아쉬운대로 방공호 위에서 한 장. 사진을 찍어보니 더 실감이 난다. 이 평야지대에 딱 독산 하나 볼록 솟아 있다. 한성까지 먼 길 떠난 사람들이 굳이 너른 들 놔두고 산을 올랐을 거 같지 않다. 삼남길 복원사업의 농간인 듯.
독산성을 오르는 정식 산문. 앞에 가는 청년도 삼남길을 걷는 듯 하다. 1박2일동안 유일하게 만난 길벗이지만 독산성 오를 때부터 내내 저만치 거리를 계속 유지했다.
동탄어린이천문대에서 고인돌공원까지는 여계산행이다. 애기바위는 장수가 나올 바위라 하여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톱질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여기서 쉬느라 길벗과는 끝내 인사없이 헤어졌다. ㅎㅎ
덮개돌이 모두 흙에 묻혀 있는데도 그냥 바위와 고인돌을 구별해낸 고고학자들이 놀랍다.
벌써 5시 20분. 도보여행자 유의사항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오늘의 종착지로 삼는다.
숙소를 찾다가 오산역까지 와버렸다. 천변의 호텔을 가장한 모텔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전철옆이라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밥 먹으러 돌아다니기도 귀찮아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과 라면으로 숙소에서 저녁과 아침을 해결하는 대신 욕조에 몸을 푹 담가 피로를 해결했다.
이튿날 오산천에서 오나리길을 다시 시작했다. 강아지풀도 이리 모아놓으니 멋지다.
도장 찍으러 온 김에 전망대를 올랐다. 어제 걸은 길과 오늘 걸을 길을 짚어본다.
에코리움이 있는 맑음터공원은 난지도처럼 쓰레기매립장이었다. 지금은 오나리길의 종착역이자 진위고을길의 시작이다.
진위고을길은 유독 삼남길 스티커 훼손이 많아 여러 번 표식을 찾아 헤맸는데 진위2일반산업단지 공사구간까지 막아선다. 도로 옆 풀길로 돌아갈 수는 있다.
가곡리에서 봉남리로 내려오면 처음보는 이정표 방향이 반대다. 가곡리에서 한참을 헤맨 터라 영 곱게 보이지 않는다.
티브로드 기남방송 영업전단이 있는 걸 보니 오산시에서 어느새 평택으로 넘어왔나 보다.
초대부통령 이시영 집안이 난 곳이라는 가곡리는 평범한 농촌마을인데 고개 하나 건넌 봉남리는 집들이 하나같이 별장촌 수준이다. 번듯한 집들을 보니 관아며 향교가 있어 조선시대부터 번창한 동네였다는 게 실감이 났고 마을 이름에 봉황 봉자가 있는 것도 수긍이 갔다.
여지껏 내가 본 향교 중 풍광 좋기는 으뜸인 듯 하다. 다만 맑음터공원부터 진위향교까지는 산업단지가 태반이고 가곡리부터는 농로 아니면 무덤옆길이라 볼 것도 쉴 곳도 공중화장실도 없다. 위태롭게 논두렁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퇴비더미에 무릎까지 빠지는 건 원치않은 덤이었다. 친절한 동네주민 덕분에 옷입은 채 물로 씻긴 했지만 똥냄새는 수습불가다. ㅠㅠ
마침 두 사이를 잇는 마을버스 6-1 노선이 있으니 건너뛰는 것을 강추한다. 쭈욱 못 쉬었던 터라 향교 들마루에서 미리 사온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해결하며 푸욱 쉬었다.
천이라기 보다는 강에 가까운 진위천을 건너보니 진위향교의 풍수지리가 더욱 돋보인다.
길을 가다가 금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주인에게 얘기해야겠다 싶어 들어가보니 부부화가의 집 겸 갤러리였다. 일부러 풀어놓은 거라는 설명에 머쓱했지만 덕분에 갤러리 구경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서양화가 이태용씨요 부인은 동양화가 김은숙씨라는데 전시된 작품은 주로 정크아트라 재밌었다.
으리으리한 한옥이 있길래 뭐지 싶어 가보니 전주이씨 재실이다. 역시나 싶다. 여기서부터 부락산행이다.
이 산이 명당인가 보다. 으리으리한 집안의 어마어마한 묘가 많다 싶더니 단양우씨 안정공파의 종조당도 있다.
부락산자락중 소백치에 해당하는 높지 않은 등산로지만 어제부터의 피로를 고려해 곳곳의 의자를 만날 때마다 쉬엄쉬엄 걸었다.
남편이 갑자기 저녁 약속이 생겼단다. 큰길로 나온 김에 안타깝지만 삼남길을 종료한다. 공식 쉼터인줄 알았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았다. 어쨌든 마침 택시회사 옆이라 옷도 살 겸 지하철도 탈 겸 송탄국제시장으로 택시를 탔다.
가곡리 퇴비사건으로 인해 똥내나는 바지며 양말이며 신발이며 아깝지만 죄다 버리고 새로 사입었다. ㅠㅠ
어쨌든 이왕 송탄에 온 김에 미스진버거. 스페셜B로 4개를 포장했는데 가격이 엄청 올랐다. @.@
그래도 여행의 마지막으로 나쁘지 않다. 팜플렛에 찍은 도장을 뿌듯이 여기며 이제는 드디어 지하철을 타련다.
에필로그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는 왼쪽 무릎과 오른쪽 골반을 걱정했는데 아예 파스를 붙이고 출발해서 그런지 잘 버텨줬다. 엉뚱한 복병은 왼쪽 허리. 왼쪽 무릎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허리로 부담이 갔나보다. 그래도 이틀간 35km를 넘게 걸었는데 이만하면 무탈한 편인 듯 하다. 다음에는 충청남도 구간에 도전해볼까나.
그나저나 이틀을 걸었는데 1시간도 안 되어 집이니 문명이 좋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