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 22일 명동성당 언덕배기에서 옆지기와 처음 만났다고 한다(난 그 순간을 기억 못 한다. -.-;;).
그때 내 나이 26이었고, 난 짝사랑도, 풋사랑도 못해본 숙맥이었다.
하기에 첫눈에 반했다는 옆지기의 말을 도통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날 이후 옆지기가 매일 편지를 보내왔고,
끈질긴 주변의 권유에 만난 게 4월인가 5월인가 6월인가 아물가물.
어쨌거나 그의 편지는 매일같이 이어졌고, 결국 편지 1년만에 넘어가 사귀기로 했고,
쭈욱 그와 연애하다가 결혼한 게 2001년 9월 1일이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드는 어리석은 생각.
왜 난 옆지기를 만나기 전에 연애 한 번 못해 봤냐 이거다.
나 좋다고 했던 남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P군.
한때 같은 반이었지만 딱히 친하지 않았던 P가 대학교 2학년 때 우리집으로 전화를 했다.
1년 재수 끝에 합격을 했고, 그 축하를 받고 싶다고.
그게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었고, 대학 내내 동아리 고민, 학생회 고민을 함께 했고,
군대에서 휴가나왔다고 연락오면 만나고 그랬다.
그런데 아주 나중에서야 그가 날 좋아했다는 걸 알았다.
에잇, 둔탱이같은 나. 대놓고 고백도 못 하는 바보 P.

K군.
내 친구와 연애를 했던 K는 워낙 애정결핍증이다 보니 쉽게 휘청대는 경향이 있다.
결국 내 친구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사귀고 헤어지길 거듭하는 과정에서도 우린 계속 친구였다.
문제는 K가 나에게도 집적댄 적이 3차례 있었던 것.
난 K를 잘 알기 때문에 1번은 밤새 전화통화를 하며 친구로 지내자고 했고,
또 1번은 모른 척 했고, 또 1번은 정신 차리라고 혼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은근히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즐겼던 거 같긴 하다.

L군.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는 친구이다.
술기운을 빌어 고백하자마자 뽀뽀를 하겠다고 덤비는 통에
홧김에 발로 차 언덕에서 굴려버리고 시멘트벽에 얼굴을 갈아버렸다.
그 날 이후 다시는 시도를 안 하더군. 쩝.

또다른 K군.
참 좋은 친구로 지냈는데, 어느 순간 친구 이상을 요구해왔다.
그나마 이 친구와 연애 비슷한 걸 할 뻔 했는데, 내가 주저주저하는 사이 군대를 가버렸다.
그걸로 쫑.

에,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 몇 차례 기회를 날려버린 건 몽땅 나 때문이다.
일단 저질러보는 성격이 못 되다보니 지금에 와서 후회해 뭣하리.
작년에 하루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사실 이것저것 속상한 게 더 있긴 했지만)
옆지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지금이라도 바람피워보고 싶다고.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

* 사야님 이야기에 비해 내 얘기는 어쩜 이리 시시한지.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6-01-3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바람피우고 싶다고 옆지기님 붙잡고 울었다고요~ 버럭~ 노츠녀도 있거늘~~~~~

프레이야 2006-01-3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바람은 좋은거야요^^

2006-01-31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nnerist 2006-01-3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홧김에 발로 차 언덕에서 굴려버리고 시멘트벽에 얼굴을 갈아버렸다.

=> 조선인실장님 만쉐이~ (박력녀에 정신 못차리는 매너... 쿨럭;;;)

paviana 2006-01-3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으로는 한번 피우세요.넘 억울하잖아요라고 말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ㅎㅎ 남편분이 넘 잘해주시나봐요..그걸 거기다 하소연하시게요 라고 점잖게 말하고 갑니다.ㅋㅋ

조선인 2006-01-3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아, 그게, 저 다른 속상한 일도 있고 해서, 이것저것 싸잡아서 속상해서, 에, 또, 그러니까. 긁적긁적.
배혜경님, 좋은 거면 뭐해요. 방법을 모르겠다구요. ㅋㅋㅋ
속삭이신 분. 이제와서 딴남자가 따라올 일이 있어야죠, 어디. ㅎㅎㅎ
매너리스트님, 고마워요. 사실 내 키에 남자에게 그만한 부상 입히긴 쉽지 않았죠. 으쓱으쓱. 푸하하하하
검은비님, 그게 말이죠, 진짜 모르겠다니깐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 맹탕 모르겠다니깐요. 제가 아는 유일한 사랑은 오랜 시간 정들어가며, 이 사람이라면 참 오랫동안 믿고 살 수 있겠다는 물증이 확보되어 안심하게 되는 그런 거 뿐이거든요. ㅠ.ㅠ
파비아나님, 이런 은밀한 얘기를 어떻게 남에게 해요. 옆지기에게나 털어놓지. 흐흐흐

瑚璉 2006-01-3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멘트벽에 얼굴을 갈아버렸다"
-> 18금입니다(-.-;).

숨은아이 2006-01-3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자려니 하소서. =3=3=3

숨은아이 2006-01-3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호리건곤님(갈수록 이름이 어려워지십니다...!) 남도에서는 "긁혀버렸다"는 뜻으로 "갈아버렸다"는 표현을 쓰더군요. 그렇게 험악한 느낌으로 쓰지 않는 표현인가 봐요. ^^

호랑녀 2006-01-3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나도 오늘밤에 남편 부여잡고 울어볼까? 나도 지금 무지 울고 싶은데...
정말, 갈아버렸다는 표현은 그렇게 강하게 안 받아들였네요. 생각해보니까 나도 남도 출신이어서 그런가?
미모의 조선인님이 갈아주신다면 얼마든지 갈리리이다... 혹시 L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인 2006-01-3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 아, 갈아버렸다가 그렇게 거친 표현일까요? 생각 못 했어요.
숨은아이님, 팔자... 흐흐흐 솔직히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에, 또, 갈다가 남도에만 쓰는 사투리군요. 몰랐어요. 음. 끄덕끄덕.
호랑녀님, 언니는 또 왜? 난 수원으로 이사한 후유증이 컸어요. 솔직히 말하면. 수원에 친구도 없고, 상대적으로 친정이 가깝다고 하지만 1달에 1번 갈까 말까. 서울로 친구 만나러가기는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고. 세상과 고립되어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 하는 게 어찌나 서글픈지. 게다가 살짝 권태기같은 것도 있었고. 그 모든 마음이 다 합쳐져서 바람 피우고 싶다고 엉엉 울었잖우. 죄다 끄집어내 하소연하니까 한동안 또 살아지더라구요. 그러다 백호도 생긴 거고.
그러니 언니도 끄집어내봐요. 속 시원하게.

urblue 2006-01-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를 여러번 했지만, 딱히 좋은 기억은 없네요. 단 한번으로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만났다면 오히려 행운인듯. 게다가 바람 피우고 싶다고 하소연하고, 그걸 받아주고, 다시 살아지면, 정말 좋은 상대 아닌가요? ^^

바람돌이 2006-02-01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L군이 가장 불쌍.... 저는 지금의 서방 전에 연애를 두번 했다지요. 뭐 한번은 아주 짧은 기간동안의 썰렁한 연애였지만....
근데 그거 별거 없어요. 뭐니뭐니해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최고야요. ^^

마태우스 2006-02-0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정도의 미모라면 그런 일이 여러번 있었다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재밌게 읽고 가요

산사춘 2006-02-0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저랑 바람피시는 건 어떨까요? 제가 힘은 좀 셉니다. 휘리리리릭~

산사춘 2006-02-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사실 저 남자들 말고도 더 많이 있었는데 무디신(?) 님이 지금껏 모르고 계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제가 뒷조사 들어가서 더 긴 리스트 만들어 오겠습니다.

조선인 2006-02-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유아핑크님 다운 말씀이세요.
바람돌이님,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물론 최고겠죠. ㅋㅋ
마태우스님, 호호호 곱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산사춘님, 좋아요, 좋아. 얼른 수원으로 달려와 주세요.

blowup 2006-02-0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이렇게 건실해서야. 조선인 님의 진짜 다크 포스를 보고 싶어라.

2006-02-0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2-0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험. 전 아직 미혼이라 괜찮군요. 연애도 몇번 해봤고. 연애하는 동안 바람핀 적은 없어요. 함함...

조선인 2006-02-0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저의 다크 포스는 너무 깊고 어두워 까발리기가 힘들어요. 캬캬
속삭이신 분, 푸하하하하 다시 봐도 재밌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수*님이 들으시면 좋아하실 듯.
아프락사스님, 연애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해보세요. *^^*

sweetmagic 2006-02-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할 수 있을 때 ....아앙..............




갈팡질팡 오락가락 싱숭생숭 중인 매직

조선인 2006-02-1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스윗매직님, 떼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