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돌보기가 더 힘들다.

학기중에는 곧잘 혼자 일어나던 마로도 겨울방학 뒤끝이라 안 깨우면 8시까지도 잔다.

오늘 아침엔 간신히 깨워 화장실에 보내놨더니 변기에만 10분이 넘게 앉아 있다가

세수도 안 하고 부시시 나와 옷을 갈아입는둥 마는둥 가방을 싸는둥 마는둥...

그러다 알림장이 어디 있는지 못 찾던 마로가 그 짜증을 애궂게도 동생과 엄마에게 돌리는 거다.

그런 마로에게 한소리 하고 알림장 찾는 것도 도와주려고

출근준비 하다말고 애들 방에 쫓아갔더니 아수라장인 방꼴이 확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어오르다가 난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꿈지럭대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애들을 거실로 불러모았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사람에게 짜증낸다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자고 했다. 싫은 일도 하지 말고 좋은 일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있자 했다.


난 정신 나간 여자처럼 마냥 퍼질러 앉아있었고, 애들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스스로 나갈 채비를 하고 밥도 먹고 식탁도 치우고 방도 치웠다.

마로가 허둥지둥 잠바를 챙겨 입을 때 그대로 나가면 간신히 지각은 모면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마로를 다시 불러다 앉혔다.

마로는 울기 시작했고 해람이도 덩달아 울먹거렸다.

애들 우는 걸 한동안 보고서야 마음이 약해진 난 마로에게 학교 가는 걸 허락해줬고, 

나 역시 뒤늦은 채비를 하고 해람이와 엉금엉금 집을 나섰다.

해람이 어린이집 가는 길에 마로 학교에서도 전화오고 회사에서도 전화왔다.

아무 변명도 거짓말도 없이 간단한 사과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회사에 오니 9시 10분이다. 8시 출근이니 한 시간도 넘게 지각한 거다. 무단지각은 처음 있는 일.

마로는 1교시가 막 시작한 직후에 학교에 도착했다 한다. 마로의 무단지각 역시 처음 있는 일.

그런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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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이 글 읽으니 생각났는데요. 저는 갈토에 애들하고 9시반까지 자다가 큰애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애가 학교에 안 와서 전화 한거라는 전화 받고 그 때 보냈어요. ㅋㅋ

힘드시요. 애들 보내랴, 회사 다니랴, 집안일 하랴,
그래도 조선인님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 잘 하실 것 같기는 한데.
애들한테 도움을 요청해야지 뭐. 엄마가 슈퍼도 아니고...조선님님, 홧팅!
저는 청소해야하는데 아직도 여기서 밍기적 밍기적.

라로 2012-02-0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일이 아이들 그 나이때는 많았어요,,,
힘드시겠지만 잘 참으셨고 잘 하셨어요,,,,
아이들도 힘든것 같아요,,,방 정리 특히..
그래도 초등학교까지는 엄마가 힘들더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습관으로 자리잡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그렇게 도와주기 힘드시면 아수라장을 보고도 눈 감으셔야 할것 같아요,,
그런데 해람이 아직도 어린이집 보내시나요?
저도 해든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거든요,,
올해는 계속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는데 어찌할지 모르겠어요,,
님은 직장에 다니시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실까요???
조선인님 기운 내세요,,집에서 애들 키우는 저는 님보다 더 못하고 살아요,,ㅜㅜ

울보 2012-02-0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조선인님 집에 있는 저도 종종 늦잠을 자거나, 아이랑 아침에 실랑이를 하면서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마음이 들때가 있는데,
일도 하시고 아이들도 돌보고,,참 대단하세요, 그리고 마로도 지금까지 잘해왔잖아요, 언제나 듬직한 마로잖아요,
오늘저녁에 마로랑 해람이랑 맛난 저녁 드시고 꼭 안아주세요, 저보다 더 잘하시지만,,
조선인님 화이팅, 오늘 날도 꾸물거리고, 속상해하지 마시고 기운내세요,,아자아자 화이팅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2-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방을 보고서 속터지는 엄마 여기도 한 사람 있습니다.
그래도 마로는 딸이라서 많이 나은거에요.조선인님!
울성민이는 정말~~ 말로 하면 입만 아픕니다.
여지껏 방좀 치워라~ 책상좀 정리하라고 좋게 말해서 치운적이 없었어요.
꼭 큰소리를 내고 화를 내야만 그제야 슬금슬금 치우는척해요.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 혼자서 씁쓸해하는데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뜨악~
서랍안에 몽창 다 잡아넣고 책상 치웠다고 버젓이 거실서 또 어질고 놀고 있으니~~
성민이의 서랍장은 책상을 사다 준 삼 년 전 그때 그모습 그대로에요.
입학한 1학년때 쪽지며,종이쪼가리며,공책이며 뭐 고대로 서랍안에 모셔놓고 있어요.
치워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버려뒀더니 어떻게!!! 정말 부르르~ 치가 떨리네요.
셋이서 어질러대니 정말 스트레스 받아서 한 두 달 내버려뒀더니 방학동안 울집에 숙식한 시누이 조카가 보다 못했는지 두 시간에 걸쳐 싹~ 치워주고 갔다는~~ㅋ
조카보기 민망했지만 정말 애들 방 치워주는 것! 힘빠져요.
전 저러다 습관으로 자리잡을까봐 겁도 나는데 어떻게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할지 갈피못잡겠더라구요.

님을 보니 이런 충격요법도 있구나! 싶은데...차마~
그래서 성민이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나봐요.야단을 쳐도 그때뿐이니~
요즘엔 둥이들도 슬슬 오빠를 따라가는 것같아 괴롭네요.

암튼...관세음보살~ 눈 감고 명상하시다 저녁에 퇴근해 들어가시면 마로랑 해람이에게 웃어주세요.분명 마로도 많이 뉘우치고 반성했을꺼에요.마로는 야무진 딸이에요.
전요..옆에서 좌불안석 해람이가 자꾸 눈에 밟히네요.ㅋ
울성민이 야단칠때 둥이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 지네들끼리 어찌해야할지 몰라 눈알 굴리다 장난감 치우기 바쁘고,책도 아주 열심히 읽기도 하고..아님 곁에서 오빠 야단치지 말라고 울기도 하고...ㅋㅋ(보고 있으면 속으론 얼마나 우습던지!)

직장일에 집안일에 님도 많이 지치셨을테니 차 한 잔 마시고 심신을 푸시옵소서~

진주 2012-02-0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 하나도 없네?
이럴 때 일 수록 힘 내시라고 위로의 추천 한 방!
(애들 혼내고 지금쯤 한편 가슴이 우리하게 아프시죠? 이왕 뺀 칼이니 일관성있게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마로는 똑똑하니까 이번 일로 많이 깨닫겠죠..마로도 힘내!)

조선인 2012-02-0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의집님, 푸핫, 갈토! 꽤 심각해 있다가 님의 댓글 보고 조금 웃었어요. 괜찮죠?
나비님, 제가 직장을 다녀서 어린이집 외에는 선택이 없어요. 유치원은 5-6시면 끝나버리잖아요.
울보님, 넵, 일단 저부터 힘내려고 점심에는 맛난 봉골레 스파게티를 사먹었어요. 저녁엔 뭘 해먹일까 궁리해보겠습니다.
책읽는 나무님, ㅎㅎ 맞아요, 맞아. 누나랑 마주 앉아 있는 동안 해람이도 꼼짝 않고 같이 앉아있으며 눈을 데굴데굴.
진주형님요, 우릿하다 못해 가심이 후비파였심더.

무스탕 2012-02-0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마로도 사춘기에 접어들겠군요.
예전같이 않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세요.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

조선인 2012-02-0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아, 사춘기... 정말 두려워요. 제가 잘해낼 수 있을까요?

진/우맘 2012-02-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혀...시부모님께 애들 맡겨놓고 일한다, 논다 나다닌 후유증으로....예진이는 에미 말을 귓등으로도 접수 안 해 줍니다. 그냥....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니 특별한 탈선 주로로 접어들진 않겠지, 하고 믿을 뿐.^^;;;

2012-02-09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2-02-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애들이 무슨 일탈이 있겠습니까.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속닥님, 홍홍 아껴준다니 뿌듯하다오.

sooninara 2012-02-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정말 우리집은 그집보다 더하구만.
오늘은 중2 울아들이 졸업식이라서 학교 안가는 날..
우리딸은 아빠가 출근길에 일어나라고 하면 다시 자버리니 아들이 깨워야하는데
아들은 학교 안간다고 9시까지 자버리고..나도 9시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하는데
9시 15분에 딸래미 방문이 열리면서 뛰어나오는 딸..ㅠ.ㅠ
앙~~울면서 '왜 안깨웠어요?'하는데 웃기기도 하고 당황도 하고..
'너 학교 간줄 알았지'했답니다.
계속 징징거리고 울어서 담임샘에게 '감기로 아파서 병원갔다가 늦습니다'라고
거짓문자 보내주었어요.
문제 엄마는 나라구욧!!!!

조선인님..힘내세요!!!!

kimji 2012-02-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큰 배움을 얻고 갑니다.
저도 이런 방법을 꼭 잊지 않고, 훗날 꼭 저도 해보겠습니다.


조선인 2012-02-1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푸하하하 '너 학교 간 줄 알았지' 나 이 대목에서 빵 터졌어요. 죄송죄송.
김지님, 배움이라뇨. 놀리시지 마세요. ㅠ.ㅠ

난티나무 2012-02-1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안녕하세요?
정말 간만에 알라딘 들어왔어요...^^;;
낯익은 닉넴이 여기서 다 보이네요..ㅎㅎ
닉넴만 보아도 반가운 마음이......
마로랑 해람이 사진 보니 그동안의 세월이 느껴집니다.
너 누구니? 하시는 건 아닌지...^^;;

조선인 2012-02-13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난티나무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아직도 프랑스???

난티나무 2012-02-1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프랑스입니다..ㅎㅎ
서재에서 변함없이 보이는 여러분의 닉넴들이 넘 포근하게 느껴져서
이젠 좀 자주 들오고 글도 남겨야지 싶어요.
넘 오랜만에 글 쓰려니 뭔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보류 중임당..^^;;

조선인 2012-02-1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호호 그냥 '안녕하세요'라고만 적어도 모두 반길텐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