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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20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라.

사람은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면 친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장 35절을 통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장소에 가서 새벽 기도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46절을 통해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마치고 나서 한적한 산에 올라가 저녁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도 기도하셨고 마치고 나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도 기도하셨고 저녁에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요 저녁을 닫는 자물쇠입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듯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야하고, 우리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듯이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은 큐티로 아침을 시작하고 가정 예배로 저녁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다 보면 예수님과 친해집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1-2절을 통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13절을 통해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12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 철야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순간에 금식 기도도 하셨고 철야 기도도 하셨습니다. 광야에서도 기도하셨고 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순간에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잘해주면 좋아 하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면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이 찬양해도 기뻐하시고 우리가 어려워서 호소해도 들어주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왜 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특권을 활용하다 보면 예수님과 친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피곤해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피곤하지요. 예수님도 바쁘시고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4장 38절을 통해 배를 타고 가시다가 고물을 베개로 베고 주무실 만큼 피곤하셨지만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1절을 통해 음식을 드실 겨를도 없이 바쁘셨지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가해서 기도하신 게 아니라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신앙인에게 교양 선택과목이 아니라 전공 필수과목이기 때문입니다. 교양 선택과목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지만 전공 필수과목은 반드시 이수해야 학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교인의 전공 필수과목인 기도를 생활화해야 천국시민이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피곤해도 바빠도 기도하다 보면 예수님과 친해집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얼마나 중요시하셨는지 누가복음 5장 12-16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고쳐주자 수많은 무리가 자기 병도 고쳐달라고 몰려들었습니다. 무리들은 복음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병을 고쳐달라고 왔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고 병을 고치는 것은 고기를 잡는 방법을 모르면서 고기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도움이 되지만 나중에는 막막해집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고 사람에게 칭찬을 듣기 보다는 조용한 장소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병을 고쳐주는 일은 시급한 일이고, 기도를 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시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도를 중요시해야 예수님과 친해집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중요한 일은 뒤로 미루고 시급한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매일 정신없이 살다보니까 정작 기도할 시간은 없어지는 겁니다. 휴대폰도 사용하면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고, LPG자동차도 운행하면 가스를 충전해야 하듯이, 교인도 세상에 살다보면 은혜가 소멸되기 때문에 기도로 재충전해야 합니다. 태아가 탯줄을 통해 엄마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우리는 기도라는 영적인 파이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파이프가 막히는 것과 같습니다. 막히면 뚫어야 하듯이, 기도를 쉬었다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왜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가 몸이 피곤하면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해 감기에 걸리듯이 영혼이 피곤하면 마귀를 이기지 못해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감기에 걸리면 만사가 귀찮아지듯이, 시험을 당하면 교회가기가 싫어집니다. 우리 속담에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듯이 우리도 바쁠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성공해야 인생에도 성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도 우리교회 표어를 유다서 20절에서 영감을 얻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라.’ 고 정했습니다. 유다서 20절을 개역개정판으로 보면 ‘성령으로 기도하라’ 고 나와 있고, 새번역에는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로 나와 있고,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로 나와 있고, 공동번역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라고 나와 있습니다. LABC에는 ‘성령의 능력과 힘으로 기도하라.’ 고 설명하더라고요. 저는 이것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라.’ 고 간추렸습니다. 기도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기도하려다 보니 너무 바쁘고 피곤하니까 기도를 쉬게 되고 또 기도하더라도 집중하기 어려운 겁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기도해야 기도에 몰입하게 되고 기도가 힘들지 않고 쉬워지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몰입해서 기도해야 내 소원만 아뢰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쌍방통행입니다. 얕은 기도는 어린아이처럼 내 소원을 관철시키려고 떼쓰는 거지만 깊은 기도는 어른처럼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겁니다. 우리 내년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성숙한 기도를 합시다.

이제 여러분에게 한 가지 기도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토니 존스 목사가 지은 [되찾은 영성]을 보면 어떤 청년이 오두막집을 구하고 노수도사를 찾아가 영적 스승이 되어달라고 간청합니다. 노수도사는 하루에 3천 번씩 예수기도를 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횟수를 셀 수 있도록 매듭이 100개가 달려있는 기도 끈도 주었습니다. 청년은 처음에는 기도도 하고 숫자도 세다보니 고생스러웠지만 차츰 익숙해졌습니다. 노수도사는 하루에 6천 번씩 예수기도를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청년은 기도가 생활화되었습니다. 청년은 기도가 익숙해져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이가 빠진 것처럼 허전해졌습니다. 노수도사는 하루에 1만 2천 번씩 기도하라고 일렀습니다. 청년의 혀는 감각을 잃었고 턱은 빠질 듯이 아팠습니다. 청년의 엄지손가락은 기도 끈을 만지느라 쓰라렸고 팔은 부어올랐습니다. 청년은 며칠이 지나자 예수기도가 호흡처럼 편해졌습니다. 청년은 예수기도로 눈을 떴고, 낮에는 예수기도로 감격했고, 밤에는 예수기도를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청년은 기도를 반복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빛으로 충만했습니다. 청년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고 자신의 형제와 자매로 여겼습니다. 노수도사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청년은 러시아의 대초원을 떠돌며 만나는 사람에게 예수기도를 가르쳤고. 걷든지 쉬든지, 먹든지 자든지, 성찰하든지 노동하든지 예수기도를 암송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여행과 깨달음을 담은 [순례자의 길]을 남겼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예수님을 닮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주셨습니다.(엡5:2)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엡5:1) 청년이 예수기도를 통해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듯이 우리도 예수기도를 하다보면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게 됩니다. 토니 존스 목사는 예수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맹인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 라고 기도했듯이, 숨을 들이쉬면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 숨을 내쉬면서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조언합니다. 예수기도는 정신을 집중하고 단어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를 반복하는 겁니다. 그러면 휴대폰의 배터리가 충전되듯이, LPG차에 가스가 충전되듯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져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분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이제는 해결됐다고 믿고 예수기도를 해봅시다. 그러면 문제도 해결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도 친해지고 우리의 몸과 영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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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0-52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은 설날과 추석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고향을 방문해 부모님도 찾아뵙고 조상님들의 산소도 참배합니다. 우리나라는 조상을 숭배하는 나라죠. 이스라엘은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은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출23:14-17)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은 시골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몰려온 순례 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볐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
예수님도 12살 되던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눅2:41-42) 우리는 여기서 ‘유월절’이라는 절기와 ‘12살’이라는 나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인데 1주일간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무교절 명절을 지키고 8일째 되는 날에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유월절 명절을 지켰습니다. 무교절과 유월절은 이스라엘 3대 명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명절이었습니다. 다른 명절에는 혹시 안가더라도 무교절과 유월절에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12살입니다. 이스라엘 나이로 아이에서 성인으로 가는 과도기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20살을 성인으로 간주하는데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13살을 성인으로 여겼습니다. 13살이 되면 성인이기 때문에 모든 율법을 준수해야 했고 명절에는 당연히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12살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12살은 ‘율법의 아들’이라고 하여 율법의 일부분을 준수했습니다. 성인 실습기간이었죠.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12살 되던 해뿐만 아니라 유월절마다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입으로 하나님을 잘 믿어라 강요하지 않고 행동으로 하나님을 잘 믿도록 모범을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말이 하니라 행동을 보고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가와키타 요시노리는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책을 통해 아들은 아버지의 제스처와 말투와 행동양식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말투까지 쏙 빼닮는다고 말합니다. 요시노리는 ‘아버지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가 돼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다고 안타가워하며 아버지와 아들은 ‘애정과 신뢰로 맺어진 상하관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기도 해야 하지만 가르치기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요셉과 마리아는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셨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사나흘을 걸어 예루살렘에 도착해 칠일 간 무교절을 지키고 팔일 째는 유월절을 지키고 일행들과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때쯤 영혼은 충만했겠지만 몸은 파김치가 됐을 겁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오고가기는 여간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도중에는 들짐승들도 있었지만 강도들이 순례 객들을 공격해 재산도 빼앗아 갔고 몸도 상하게 했습니다. 로마제국은 군대를 동원해 강도들을 토벌하려 했지만 험한 산중에 숨어있는 강도들을 색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요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험한 산중에 숨어있는 탈레반 잔당들을 소탕하지 못하잖아요. 순례 객들은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간단한 무장을 하고 친척들이나 마을 사람들끼리 큰 무리를 이루어 다녔습니다. 순례 객들은 행렬의 선두에 여자들과 아이들은 앞장세우고 남자들은 뒤따랐습니다. 남자들이 앞장서면 여자들과 아이들은 뒤처지게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도 당연히 순례 행렬 중에 끼어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선두에 있는 마리아는 예수님이 12살이니까 남자들과 함께 있나보다 생각했고 후미에 있는 요셉은 예수님이 12살이니까 여자들과 함께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렇게 하루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됐는데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봤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들짐승에 물려가지는 않았는지 강도들에게 잡혀가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뜰에 계셨다.
요셉과 마리아는 날이 새자마자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으로 가는데 하루를 보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데 또 하루를 보냈고 사흘 째 되는 날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헤롯 성전산을 둘러보았고, 마카비 성전산을 찾아다녔고, 이방인의 뜰에 이르렀습니다. 이방인의 뜰에는 남쪽에는 왕의 행각이 있었고 동쪽에는 솔로몬의 행각이 있었습니다. 류모세 선교사는 왕의 행각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도 하고 비즈니스도 하는 만남의 광장으로 친 로마 파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동쪽에 있는 솔로몬의 행각은 랍비들이 율법을 강론하는 종교 교육장으로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고 합니다.(성전이야기 6장) 그렇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어디서 찾았을까요? 당연히 솔로몬의 행각이겠죠. 예수님은 랍비들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하였습니다.(눅2:46)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이에 비해 너무도 예리하게 질문하고 너무도 지혜롭게 대답을 하자 놀랐습니다.(눅2:47) 하나님은 누가복음 2장 40절을 통해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했고, 47절을 통해 예수님의 지혜를 놀라워했고, 52절을 통해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지혜로웠습니다.

예수님은 신분과 사명을 밝히셨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하였고 랍비들과 토론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나무랐습니다.(눅2:48)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일행에 합류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성전에 머물러 있자 안도도 하였지만 화도 났습니다. 예수님은 태연히 대답했습니다.(눅2:49)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부모님을 걱정시켜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신의 신분이 누구이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송아지가 소 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혜로우신 겁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지혜로운데 하나님의 지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고전1:25)/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달리 번역하면 ‘내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 다시 말해 죄인들을 구원하는 겁니다. 죄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복원하는 겁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사명이 어린 양처럼 속죄의 피를 흘리는 것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눅2:50)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따라 나사렛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며 살았습니다.(눅2:51) 학자들은 예수님이 삼십 살쯤에 공생애를 시작했기 때문에(눅3:23) 아버지 요셉의 가업을 물려받아 목수로 지내며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사셨고 예수님은 속죄양이시지만 사람의 일을 하시며 자기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전까지 가족과 동행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자신의 신분이 누구이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며 세상 사람들과 동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리의 사명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신의 신분을 기억한다면 죄를 멀리하겠고 자신의 사명을 간직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사명을 기억하고 자신의 사명을 간직하여 세상에 동화되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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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9-45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나옵니다. 이 기적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신앙으로 들어서느냐 마느냐가 결정됩니다. 이 기적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신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경은 기적의 책이기 때문에 기적을 빼버리면 성경이 아니고 기적을 믿지 않으면 신앙인 될 수 없습니다. 기적에 대한 적당한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곧 기적이고 이 기적은 곧 성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믿으려면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적을 머리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충돌하기에 불신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역이라고 마음으로 믿으면 어느새 머리로도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그 기적중의 하나입니다. 이 기적의 배후에는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를 연합시키신다.
성령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북부인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처녀였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습니다.(눅1:30-34)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지극히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천사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지으라고 일렀습니다. 그 아이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고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낳을 아이가 메시야라고 전했습니다. 마리아는 놀랐습니다. 아이를 가지려면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해야 하는데 마리아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설명했습니다.(눅1:35-37)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는 마리아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하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임신하지 못하는 엘리사벳도 임신하게 하셨으니 처녀인 마리아도 임신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남녀 간의 성관계를 통해 임신한다고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성관계 없이도 임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남녀 간의 성관계를 통해 임신하였다면 아담이 지은 원죄가 고스란히 전이되어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없지만 예수님은 원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속죄의 피를 흘려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서 7장 14절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약 칠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처녀는 마리아였고 그 아이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마리아를 임신하게 만드셨습니다.

성령님은 성자와 우리를 연합시키신다.
마리아는 친족인 엘리사벳이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남부인 유대 지방 산골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하지 못하였는데 가브리엘이 남편인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습니다.(눅1:13-17)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천사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일렀습니다. 그 아이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되고 술을 마시지 않고 모태로부터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이 낳을 아이가 메시야의 전령이라고 전했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막상 아들을 주신다고 응답하시자 자신도 아내도 늙어서 불가능하다고 반응했습니다. 천사는 사가랴가 믿지 않자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갈릴리 지방에서 유대 지방까지 약 100킬로미터를 약 삼일 동안 걸어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습니다. 마리아가 방문하자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습니다. 아이는 모태에 있을 태부터 성령님으로 충만해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메시야라고 알아봤습니다.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이는 나중에 세례자 요한이 되어 회개하라고 설교했고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던 아이는 나중에 예수님이 되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요한이 말렸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요한은 예수님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예수님은 세례를 받아야 인간과 같아진다고 재촉했습니다. 결국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3-17)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요한에게 예수님을 알려주었듯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알려주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도 알려주십니다. 요한은 성령님이 충만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듯이 우리도 성령님이 충만하다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우리를 연합시키신다.  
엘리사벳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와 태중에 있는 아이를 축복하였습니다.(눅1:42-45)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도 복이 있고 태중에 있는 아이도 복이 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라면 부정한 여인이라고 돌을 던져 죽이려 할 테지만 엘리사벳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그 아이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보고 산모와 태아를 축복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그 아이를 ‘주’라고 일컬었습니다. 그 아이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였고 마리아는 주의 어머니였습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인 사가랴는 아이를 주신다는 말씀을 믿지 않아 벙어리가 됐지만 마리아는 아이를 가지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칭송했습니다. 성령님은 기적의 근원이십니다. 마리아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하였고, 요한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태중의 아이를 메시야로 환대했고. 엘리사벳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태중의 아이는 메시야이고 마리아는 주의 어머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람은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를 보며 존재를 인식하듯이 성령님은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통해서 증명됩니다. 기독교의 기적은 세상 사람들처럼 눈속임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나타나는 신비입니다. 성령님의 존재를 믿어야 기적을 믿을 수 있고, 성령님의 능력을 인정해야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기적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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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3:7-17 그분이 오시나니

저는 세례자 요한을 좋아합니다.
성경에는 2,930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저는 그 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2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몇 주간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갈급해 집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때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켰습니다.(왕하1:8) 낙타털로 짠 거친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옷이 내려가지 않도록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산적처럼 보였습니다./ 메뚜기를 구워 먹고 석청(들꿀)을 따서 먹었습니다. 거지처럼 먹었습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길에서 잠잤습니다. 노숙자처럼 생활하였습니다./ 요한의 행색은 초라했으나 눈은 사막의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입에서는 폭포수와 같은 말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하였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던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요한이 설교한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요한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설교하다니요? 유대 백성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불렀지 행동으로는 떠나 살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빗나가기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행동으로는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인처럼 신실하게 행동하지만 세상에서는 이방인처럼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교인이 더 지독하다고 하더라고요. 요한은 유대 백성들에게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촉구했듯이, 우리에게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하였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는 죄를 고백했다는 내적인 정결이라면 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외적인 표시였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일까요? 무리들이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자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눅3:10-11) 유대 백성들은 옷을 한 벌 밖에 갖지 못했고, 오늘 먹을 양식도 부족했습니다. 요한은 남는 것을 움켜쥐지 말고 나눠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세리들이 묻자 요한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눅3:13) 세리들은 로마제국에서 부과한 세금보다 과중하게 거둬들여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세리들을 매국노요 흡혈귀라고 멀리했습니다. 요한은 세리에게 사표를 내라가 아니라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묻자 요한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대답했습니다.(눅3:14) 여기서 군인들은 로마 군인이 아니라 치안을 담당하던 유대 군인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찰입니다. 군인들은 권력을 악용해 백성들을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비록 부족하더라도 지금 받는 급료에 만족하라고 일렀습니다. 12월 9일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이재오)가 ‘UN 세계 반부패의 날’을 맞아 지난 10월17일부터 11월18일까지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실시한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패인식도가 높은 행정 분야는 건축/건설/주택/토지 분야가 1위였고, 세무 분야가 2위였고, 경찰 분야가 3위였습니다.(경제투데이 2009년 12월 8일) 국민과 자주 접촉하는 부서가 부패인식도가 높았습니다. 요한은 유대 백성들과 자주 접촉하는 세리들과 군인들에게 권력을 악용해 탐욕을 채우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결국 요한은 회개했으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다시 말해 신앙을 가졌으면 바르게 살라고 설교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과 생활을 별개로 여깁니다. 며칠 전(12월 8일) KBS 9시 뉴스를 보니 파주 신도시 건설사 입찰 과정에서 환경관리공단 김모 팀장이 뇌물을 받고 그중에서 수백만 원을 헌금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분이 헌금했다고 신앙이 좋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 좋다면 뇌물을 받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요한은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통해 바른 신앙은 바른 생활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인가?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분(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과 그분을 비교했습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능력이 다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겁니다. 요한은 그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전령이고 그분이 주인공입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신분이 다릅니다. 요한은 그분은 존귀한 주인이고 자신은 천한 종도 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천한 종은 주인의 신발을 들고 다니지만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요한보다 능력이 많고 신분이 높으신 그분이 오시면 무엇을 하실까요?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은 심판을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와 ‘손에 들고 있는 키’에 비유하였습니다. 농부가 도끼를 들고 과수원에 갑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대로 두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져버립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키를 들고 타작마당으로 갑니다. 키는 알곡을 골라내는 갈퀴입니다. 키질을 하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립니다. 쭉정이는 불쏘시개로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곳간은 천국을 상징하고,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농부가 도끼로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나누듯이, 농부의 아내가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듯이 의인과 악인을 가리십니다.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라면 거름을 주시겠지만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 찍어서 불어 던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잘 익은 알곡이라면 곳간이 들이시겠지만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라면 불에 던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유대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요한은 목이 터져라 예수님이 오신다고 외쳤지만 대다수의 유대 백성들은 외면했습니다. 오늘날도 강단에서 목이 터져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외치지만 우리는 재림 불감증에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리면 사고가 발생하듯이 재림 불감증에 걸리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철저하게 회개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오실 때까지 회개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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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25-36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서론
저는 교회력으로 설교를 합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재현하도록 만든 교회 달력입니다. 교회력은 ‘주일’을 중심으로 1주일씩 반복되는 52주간의 주간주기와, ‘부활절’을 중심으로 1년씩 반복되는 3년간의 연간주기로 이루어집니다. 연간주기는 대강절부터 시작됩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주일이니까 세상 달력으로는 11월의 마지막 주이지만 교회력으로는 신년 첫 주일인 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새해 첫날을 중요시하듯이 우리에게 대강절 첫 주일은 중요한 주일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다.
오늘은 3년간의 연간주기 중에서 교회력 C 년도의 첫 주일인데, 예수님은 28절과 31절과 36절을 통해 ‘이런 일’ 또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다시 말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우주적인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징조가 있는데, 하늘에서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보이지 않고 별들은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립니다(마24:29). 땅에서는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해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합니다. 지금 하늘에서는 특별한 징조가 없지만 바다에서는 지진해일이 일어나 서남아시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만약 하늘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면 바다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자연계에 재앙이 닥치면 혼란스러워하고 무서워하고 기절까지 합니다.(눅21:26) 그러나 하나님은 교인들에게 머리를 들고 기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눅21:28) 세상 사람들은 기절하지만 우리에게는 기대하라는데, 무엇을 기대하라는 말씀일까요? 여러분 축구 경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지만 역전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으며 골 세레머니를 펼치잖아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면 세상 사람들은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처럼 의기소침해져서 고개를 숙이지만 우리는 역전 결승골을 넣은 선수처럼 기쁨에 겨워 고개를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걱정거리가 있어 절망에 빠져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예수님은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이스라엘에 흔한 무화과나무를 예로 드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 열매를 맺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건기동안 열매를 맺는데 처음에는 잎도 작고 열매도 작고 당도도 적다가 차차로 잎도 커지고 열매도 커지고 당도도 높아집니다. 그러다 우기가 되면 가지가 앙상해집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았듯이, 우리에게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우주적인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싹이 나면 여름이 오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온다고 말씀하셨는데,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다시 말해 하늘과 땅은 닳아서 없어지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닳아 없어져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데 하늘과 땅이 닳아 없어지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정확하게 실현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우리에게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가 창궐해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는데 우리가 조심하지 않고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면 짐승들이 갑작스럽게 덫에 걸리듯이 우리도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파티와 음주와 쇼핑 때문에 다시 말해 만날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러 다니고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져 있고 쇼핑을 하느라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경각심이 무뎌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은 짐승이 덫에 걸리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갑작스럽게 만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면서 맞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3.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며 맞이하려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3절을 통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임신한 여자가 반드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듯이 반드시 재림하신다고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절을 통해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알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이 갑자가 들어오듯이 갑자기 재림하신다고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가 갑자기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임신한 여자는 언제 아이를 낳을지 모르기 때문에 베넷 저고리를 비롯해 미리 출산 준비를 해놓고, 집주인은 언제 도둑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언제나 집단속을 해야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밟듯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결론
대강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듯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버트 웨버)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적으로 맹인이라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듯이, 우리도 세상일에 정신을 팔고 산다면 재림 의식이 무뎌져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국이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기 위해 보석상을 하지 않고 청과상을 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다면 언제든지 맞이하기 위해 세상일에 집착하지 말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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