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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1-10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영국에 사는 어떤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재산을 다 털어 뱃삯을  지불하고 여러 날을 가야하기 때문에 남은 돈으로 식료품을 구입했습니다. 드디어 배가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대서양을 향해 물살을 헤치고 나갔습니다. 청년은 드넓은 바다를 볼 때마다 새로운 희망이 솟아올랐으나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때는 기분이 침울해졌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여유가 있어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나 청년은 돈이 없어 한쪽 구석에 가서 말라비틀어진 빵으로 허기를 달랬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그럴 때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나중에는 크게 성공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배가 미국 동부해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청년에게 다가와 배를 승선해 준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혹시 항해 중에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청년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승무원은 안심하며 “그런데 왜 식당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드시지 않고 여러 날을 혼자서 식사를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힘없이 “뱃삯을 지불하고 나니까 음식 사먹을 돈이 없어서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놀라며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사신 뱃삯에는 하루 세끼 식사비용이 다 포함됐는데요.” 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청년이 뱃삯에 식사비용이 포함 된지 몰라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몰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권세는 언제 주어질까요?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포항시장의 아들이라면 포항에서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포항시장인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우리는 포항시장보다 높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왕자요 공주입니다. 우리가 왕자요 공주인데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시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서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4-6절을 통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게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부활시키셨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1장 20-22절을 통해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있습니다. 오른편은 중앙을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늘과 땅을 통치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청년이 뱃삯에 배를 타고 가는 자격만 있지 식사를 하는 권세가 있는지 몰랐듯이, 하늘나라를 가는 자격만 있지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가 있는지 몰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구원의 감격은 있었지만 세상을 이기며 살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공격에 쩔쩔 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 4절을 통해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들과 세상에 있는 자’는 에베소서 2장 2절에 나오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다시 말해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사탄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사탄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탄을 이긴 줄도 모르고 겁내고 있으니까 사탄이 도망가지 않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파트에서 나오고 작은 개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오더랍니다. 아주머니가 개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나무라도 개는 꼬리를 흔들 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버스가 도착했고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려는데 개도 버스를 타려하자 아주머니가 개를 발로 뻥 차며 고함을 치자 개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꾸짖으면 마귀는 도망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가인은 마귀에게 넘어가 아벨을 죽이고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마귀에게 흔들려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 아이가 죽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마귀가 들어와 재산을 감추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굶주린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노립니다. 마귀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아주머니가 개를 발로 차듯이 마귀를 발로 차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예수님이 위임해 주신 권세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7절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낙심시키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가정을 파괴하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직장을 분열시키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교회를 침체시키려는 마귀를 발로 차서 쫓아내야하겠습니다. 둘째, 환경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모든 병을 마귀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병을 통해 마귀가 장난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5절을 통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병들게 하겠습니까? 풍성한 교회를 다녔던 서기석 성도님의 간증을 보니 바이러스성 콧물감기로 화장지 한두 통을 금방 허비했는데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처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는 말씀에 의지해 병을 꾸짖고 쫓아내는 기도를 했더니 회복됐다고 합니다./ 또한 물질 문제가 꼬여 고생할 때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처럼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풍성해지기를 기도했더니 돈줄이 봄에 눈이 녹듯이 풀렸다고 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차를 운전하다가 배터리가 나갔는데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시동이 걸렸고 보일러가 고장 나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작동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진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하나님은 빌립보서 4장 19절을 통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고 믿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고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를 위임받았으니, 부정적인 생각을 주는 마귀를 쫓아내고 우리를 괴롭히는 환경을 다스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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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3-22 옛 성전과 새 성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교회도 상가교회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가 설날과 추석에 고향을 찾아가듯이, 유대인 성인남자들은 1년에 3번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하였습니다.(신16:16) 3대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은 시골에서 올라온 농부들과 해외에서 찾아온 동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고향을 갈 때 선물을 가져가듯이, 유대인들은 성전을 갈 때 짐승을 제물로 가져갔습니다.  짐승 중에서도 처음 난 것 다시 말해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갔습니다.(신12:5-7) 예수님 당시에 북부인 갈릴리 지방에서 남부인 예루살렘까지 걸어가려면 사흘 정도가 걸렸는데 사람 혼자서 걸어가기도 힘든데 짐승을 끌고 가려면 불편하다 보니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농부들이 비공식적인 시장을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팔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한다고 예루살렘 성전 뜰에다 짐승들을 팔 수 있는 공식적인 시장을 만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순례자라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짐승들을 사가지고 성전 안까지 들어가겠습니까? 아니면 성전 뜰에서 사겠습니까? 성전 뜰에서 사겠죠. 그렇다면 짐승들의 가격이 예루살렘 근처가 비싸겠습니까? 성전 뜰이 비싸겠습니까? 성전 뜰이 비싸겠죠. 대구 동부정류장에 가보니 똑같은 물건도 정류장 안에서 파는 가격과 밖에서 파는 가격이 달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성전 뜰에다 상인들에게 가게를 분양해주고 이권을 챙겼습니다. 상인들은 가게세도 내야하고 뇌물도 주어야하고 이익도 남겨야 하다 보니 짐승들을 비싸게 팔았습니다. 순례자들은 짐승들을 끌고 오려면 불편하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값이 비싸도 짐승들을 샀습니다. 짐승들을 파는 상인들도 폭리를 취했지만 환전상들은 날 강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대인 성인남자들은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의 성전 세를 내야 했습니다.(출30:13-14)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화폐를 가진 사람들은 이스라엘 화폐로 교환을 해야 했습니다. 환전상들도 가게세도 내야하고 뇌물도 주어야하고 이익도 남겨야 하다 보니 터무니없는 환율을 매겼습니다. 우리나라도 남대문시장에 가면 암달러상들이 있는데 불법이다 보니 환율을 비싸게 매긴 다고하네요. 차라리 사설환전소가 낫다 는 군요. 순례자들은 성전 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돈을 바꿨습니다. 순례자들은 상인들이 폭리를 취해도 종교지도자들이 뒤를 봐줬기 때문에 불평도 하지 못했습니다. 순례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전을 찾아왔다가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폭력을 휘둘러도 처벌하지 못하듯이, 유대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이 성전 안에서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이자 메시야가 도래한다고 알려졌으나 이권에 눈먼 종교지도자들과 돈을 탐하는 상인들로 부패해 갔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돈 때문에 타락해 가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이 가까워오자 갈릴리 지방 가버나움에서 유대 지방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요2:12-13) 유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해방된 날이었습니다.(출12:1-14) 유대인들은 일주일간 절기를 지켰는데 유월절은 하루였고 나머지는 무교절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3번 언급되는데(요2:13, 6:4, 11:55) 이것을 보고 예수님이 3년간 사역하셨다고 추정합니다. 예수님이 성전 안에 들어가시니 한쪽에서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이권을 주고받는 타락한 시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요2:15-16)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상인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예수님은 무교절이 되면 누룩을 넣지 않고 빵을 만들듯이, 타락한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려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아 가려운 데를 긁어 주었다고 시원해 했을 겁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을 가졌고 상인들은 돈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여론을 움직이는 오피니언 리더였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에게 대항하였습니다.(요2:18)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이들은 예수님이 무슨 권리가 있어 짐승을 쫓아내고 상을 엎었는지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 말했습니다.(고전1:22)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여줘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말해 성경을 믿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 표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6:31)

예수님이 제안하셨습니다.(요2:19)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어이없어했습니다.(요2:20)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유대교의 중심은 성전인데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으나 바벨론에 멸망하면서 파괴되었고, 두 번째 성전은 스룹바벨이 건축했으나 그리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예수님 당시에 헤롯 대왕이 세 번째 성전을 개축하고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주전 20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그가 죽은 지 한참후인 주후 64년에 완공하였으니 84년간 걸렸는데 짐승을 내쫓고 상을 엎으신 당시에 46년이 되었으니 주후 27년경 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 번째 성전은 완공된 지 몇 년도 안 돼 로마제국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은 서쪽 성벽이 남았습니다. 이 성벽은 유대가 멸망하면서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보고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라고 불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헤롯 대왕이 수십 년 동안 개축한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재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21) 우리의 몸도 성전이고 교회도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파괴되었듯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성전이 재건되었듯이 우리를 살리시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유대교의 옛 성전은 무너졌지만, 새 성전인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성전에서 짐승을 제물로 드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단번에 죄를 씻으셨기 때문입니다.(히9:12) 짐승의 피로도 우리의 죄를 씻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옛 성전에서 죄를 지으면 짐승을 제물로 드려 죄를 용서받고 또 죄를 짓고 제물을 드리고를 반복했습니다. 짐승의 피는 한 번의 효과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피는 죄를 영원토록 씻는 효과가 있습니다.(히9:26)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4:14-16)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마음 아파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제 새 성전 되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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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8:31-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는 흔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2008년 5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07-20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첼시와의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는 전반 26분에 헤딩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이 골로 호날두 선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31골)과 챔피언스리그 득점왕(8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에 첼시의 프랭크 램퍼드 선수가 동점골을 넣어 빛이 바랬습니다. 빗속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 30분을 합쳐 120분 동안 사투를 벌였으나 일대일 무승부라 승부차기에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 키커로 나선 호날두 선수는 슈팅 직전에 멈칫하더니 첼시의 골키퍼 체흐에게 슈팅 방향을 읽혔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진다면 호날두 선수는 선제골을 넣은 영웅이 아니라 승부차기를 실패한 역적이 될지 몰랐습니다. 다행히 첼시의 다섯 번째 키커 존 테리 선수가 슈팅 순간 미끄러지면서 실수하는 바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 한국은 ‘천국과 지옥 오간 득점왕 호날두’ 라는 제목을 잡아 이 경기를 보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간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막8:27)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28절)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그 이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29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 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7절-19절을 통해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베드로가 기특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국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실 때는 호날두가 선제골을 넣고 환호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오래가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은 고난을 받고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절)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습니다. 항변했다는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을 때 사용한 단어로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2절에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 이다.” 라고 펄쩍 뛰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야인지는 알았으나 어떤 메시야인지는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로 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영광의 왕을 고대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영광의 왕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러 오셨습니다.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대한 메시야와 예수님이 이루실 메시야와는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33절-34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는 베드로가 너무나 한심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 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실 때는 호날두가 승부차기에 실패하고 얼굴을 감싸 쥘 때였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하다보면 천국에 올라갔다 지옥에 내려갔다 널뛰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어떻게 하면 천국에 올라가게 될까요? 우리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베드로는 국무총리가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모든 꿈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신앙생활을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면 신앙생활을 성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앙생활을 성공하기 위해 제자도를 말씀하셨습니다.(3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로마제국은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죄수에게 사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고난도 감내하고 순교도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5절)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는 것은 다시 말해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에 빠지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은 다시 말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천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36절) 예수님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대기업의 CEO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잃고,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돈보다도 권력보다도 건강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8절)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를 부끄러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러워한다는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면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을 버리고 고난도 감내하고 순교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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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9-15 복음을 믿으라.

오늘 본문을 보면 세 개의 짧은 본문들이 연속해서 나옵니다. 첫 번째 본문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를 고백하고 정화시키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은 아닙니다. 요한도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시니 세례를 받지 말라고 말렸습니다.(마3:14) 그렇다면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죄로 얼룩진 인간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듯이,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죄로 물든 인간처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시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막1:10-11)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께서 인간처럼 자신을 낮추시고 세례를 받으시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높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각적 자료를 사용하셨는데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청각적 자료도 사용하셨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요한은 비둘기 같이 임하신 성령님을 통해 그리고 내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확인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물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 위격이지만 한 본체십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세례를 받으셨듯이 우리도 교인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요한의 세례와 오늘날의 세례는 다릅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 오늘날의 세례는 교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우리는 물세례를 통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고 성령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 본문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나자 성령님이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곧, 즉시라는 단어가 몇 차례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습니다. 광야는 사막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메마른 땅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죠. 낮에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밤에는 추위가 살을 에 입니다. 광야는 죽음의 땅입니다./ 그러나 이런 죽음의 땅에도 들짐승은 살아있습니다. 수퇘지, 재칼(야생 개), 여우, 늑대, 표범, 하이에나 같은 들짐승들이 밤이 되면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돌아다닙니다. 어디선가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머리가 쭈뼛해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소름이 쫙 끼치죠. 광야는 공포의 땅입니다./ 이런 땅에서 하루를 지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글거리는 태양에 노출되어 일사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들짐승을 경계하느라 신경과민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광야에서 하루도 아니고 무려 40 일을 계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계신 게 아니라 금식하면서 계셨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계셨습니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쓰러뜨리려고 세 가지를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응수하셨습니다./ 마귀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마4:6)”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4;7)”고 거절하셨습니다./ 마귀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고 호통 치셨습니다. 사탄이 물러가자 천사들이 예수님을 시중들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 육적으로도 회복시켜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 영적으로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인간을 돕습니다.(히1:1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듯이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발악을 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떡이 되게 하라고 육신의 정욕으로 유혹하고, 뛰어내리라고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하고, 천하만국을 보여주고 안목의 정욕으로 유혹했듯이(요일2:16) 물질에 약한 사람에게는 돈으로 유혹하고, 이성에 약한 사람에게는 여자로 유혹하고, 권력에 약한 사람에게는 감투로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 예수님을 시중들었듯이, 천사들을 보내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여 다니엘을 구하셨고(단6:22), 천사를 보내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풀어주었습니다.(행12:6-10)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을 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고전10:13)

세 번째 본문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을 이기시고 나서, 갈릴리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15)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에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크로노스의 시간이 있습니다. 여기서 때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통치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통치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오셔서 매일 모든 백성들을 통치하시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으면서도 손과 발로는 세상을 주님으로 떠받들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세상에 살 때는 물질을 할아버지로 여기고 살잖습니까?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이 우상이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복음이고 예수님 자신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중간기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새 생활을 시작하고, 시험을 극복하여 신앙이 성장하고,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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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9:2-9 그의 말을 들으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 전에 측근들을 이끌고 산행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마치고 유대 지방에서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핵심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막9:2) 성경학자들은 마가복음 8장 27절을 통해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이 산이 근처에 있는 헐몬 산이거나 아니면 갈릴리 지방에 있는 다볼 산일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사실 이 산이 어느 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산에 올라가신 이유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특별한 장소입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24:12이하)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왕상19:8이하) 시내 산과 호렙 산은 같은 산입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장광영 전 감독회장님은 산 기도를 하다 성령님을 체험하고 하산하는 길에 꼽추를 만났는데 간절히 기도했더니 펴졌다고 간증했습니다. 오늘날도 산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기도원을 보십시오. 대부분 산에 있잖아요? 그러나 요즘은 산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중요합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변화는 내적인 변화에서 비롯한 외적인 변화입니다. 사람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광채가 났습니다.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습니다(막9:3) 마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고 옷이 빛 같이 희었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이하를 통해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 올 때에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얼굴이 해 같이 빛났습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통해 하나님의 옷은 눈 같이 희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옷이 빛 같이 희어졌습니다. (저도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보았는데 옷이 빛 같이 희었습니다.) 그러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막9:4)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장사 했으나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신34:6)/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갔다고 알려졌습니다.(왕하2:11) 말라기 4장 5절을 통해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예언됐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4)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 같이 희어져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베드로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베드로는 아이가 어른들 이야기에 끼어들듯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인 장막절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막을 졌듯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기념하여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막9:5) 베드로는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영광이 있기 전에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간과했습니다.(막8:31) 오늘날도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을 차리려고 하지 않고 차려 놓은 밥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헌신하지 않고 부흥된 교회에서 유익을 누리려고 합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고난이 있는 영광이 반석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습니다. 고난은 성장 통입니다. 과정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어찌 보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아주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심히 창대해질 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베드로는 몹시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말했습니다.(막9:6)

하나님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할 때에 빛난 구름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막9:7)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으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고(출13;21),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도 구름으로 가득하게 임하셨습니다.(왕상8:10) 하나님은 시내 산을 덮은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듯이(출19:9) 높은 산을 덮은 구름 속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세례자 요한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고 말씀하셨듯이, 높은 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으라는 듣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마태복음 17장을 통해 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시면 죄로 얼룩진 인간들은 두려워합니다.(단10:7-9)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두려워서 떠는 제자들을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마17:7) 예수님은 죄를 지은 인간들을 대신해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구름도 사라졌고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졌고 예수님과 그들만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율법도 보내주셨고 선지자도 보내주셨지만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졌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도 범했고 선지자도 죽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남았듯이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4장 12절을 통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율법으로도 예언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1장 22절을 통해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고 사람은 몸의 지체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2장 2절을 통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생의 소망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돼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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