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2-9 그의 말을 들으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 전에 측근들을 이끌고 산행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마치고 유대 지방에서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핵심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막9:2) 성경학자들은 마가복음 8장 27절을 통해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이 산이 근처에 있는 헐몬 산이거나 아니면 갈릴리 지방에 있는 다볼 산일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사실 이 산이 어느 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산에 올라가신 이유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특별한 장소입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24:12이하)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왕상19:8이하) 시내 산과 호렙 산은 같은 산입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장광영 전 감독회장님은 산 기도를 하다 성령님을 체험하고 하산하는 길에 꼽추를 만났는데 간절히 기도했더니 펴졌다고 간증했습니다. 오늘날도 산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기도원을 보십시오. 대부분 산에 있잖아요? 그러나 요즘은 산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중요합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변화는 내적인 변화에서 비롯한 외적인 변화입니다. 사람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광채가 났습니다.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습니다(막9:3) 마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고 옷이 빛 같이 희었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이하를 통해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 올 때에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얼굴이 해 같이 빛났습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통해 하나님의 옷은 눈 같이 희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옷이 빛 같이 희어졌습니다. (저도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보았는데 옷이 빛 같이 희었습니다.) 그러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막9:4)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장사 했으나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신34:6)/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갔다고 알려졌습니다.(왕하2:11) 말라기 4장 5절을 통해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예언됐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4)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 같이 희어져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베드로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베드로는 아이가 어른들 이야기에 끼어들듯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인 장막절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막을 졌듯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기념하여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막9:5) 베드로는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영광이 있기 전에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간과했습니다.(막8:31) 오늘날도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을 차리려고 하지 않고 차려 놓은 밥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헌신하지 않고 부흥된 교회에서 유익을 누리려고 합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고난이 있는 영광이 반석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습니다. 고난은 성장 통입니다. 과정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어찌 보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아주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심히 창대해질 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베드로는 몹시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말했습니다.(막9:6)

하나님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할 때에 빛난 구름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막9:7)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으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고(출13;21),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도 구름으로 가득하게 임하셨습니다.(왕상8:10) 하나님은 시내 산을 덮은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듯이(출19:9) 높은 산을 덮은 구름 속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세례자 요한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고 말씀하셨듯이, 높은 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으라는 듣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마태복음 17장을 통해 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시면 죄로 얼룩진 인간들은 두려워합니다.(단10:7-9)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두려워서 떠는 제자들을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마17:7) 예수님은 죄를 지은 인간들을 대신해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구름도 사라졌고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졌고 예수님과 그들만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율법도 보내주셨고 선지자도 보내주셨지만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졌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도 범했고 선지자도 죽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남았듯이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4장 12절을 통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율법으로도 예언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1장 22절을 통해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고 사람은 몸의 지체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2장 2절을 통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생의 소망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돼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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