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의 <여덟단어>가 100쇄가 되었다는 것을 책표지를 보고서야 인제 알았다. 박웅현은 도끼시리즈로 유명한 저자이다. 그냥 내용이 너무 좋았다. 한 권을 깊게 읽고 다른 고전과 문화를 연결하여 사색하는 힘이 대단했다. 나는 오늘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뭘? 그냥 책을 읽으면서 이런 '복원력'도 생기는구나 하는 것을 말하고 싶다.
먼저, 박웅현의 <여덟 단어>의 내용을 인용해본다.
'어느 비오는 날이었는데 차가 막혀 한 시간 넘게 차 안에 있어야 했고, 광고주 부장급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의미 늦은 상태였어요. 패닉이었죠. 100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는 움직이지 않는 상황, 말 그대로 미치겠더라고요. 그런데, CD에서 가야금 캐논이 흘러나왔어요. 흐르는 선율에 맞춰서 빗방울이 보닛 위로 떨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한 곡이 끝나면 다시 성질이 나다가 다음 곡이 나오면 또 잠잠해지고, 제가 들어본 가야금 연주 중 최고를 발견했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캐논을 들어보자 하고 각각 다른 버전으로 들려줬어요. 집에 총 네 장의 앨범이 있었는데, 그중 가야금 캐논을 듣자 애가 갑자기 말이 없어져요. 그리고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아내가 탁 하고 물을 잠그더군요. 가족이 모여 앉아 5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음악을 들었어요. 보배로운 순간을 또 한번 경험했죠. 1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납니다. 죽을 때까지 기억날 장면, 정말 가져가고 싶은 순간, 물소리가 탁 멈추고 집사람이 앉던 순간 내 삶의 진주알입니다.'(p.95-96)
내용은 박웅현이 행사에 늦어 완전 멘붕이 왔는데, 비가 내렸고, 동시에 CD에서 가야금 캐논 변주곡이 연주되었는데, 그게 감성의 빅뱅을 경험했다. 궁시렁궁시렁...
나는 <여덟 단어>하면, 다른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란 각 8장의 주제도 생각난다. 내게 크게 다가온 건 본질이고, 고전이었다. 근데, 다른거 다 집어치우고, 난 <고전>의 위 내용을 읽으면서 다시 '클래식 음악을 다시 집어'듣게 되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인생사에 굉장히 큰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었다.
나는 대학3학년때부터 클래식에 입문(?)했다. 입문이 다른 게 아니고 그때부터 클래식음악을 돈을 주고 사서 들었다.
당시 CD가 나오지 않았고 LP나 카셋트테이프가 대세였다. 난 당연히 카셋트테이프를 매주 하나씩 사서 들었다. 당시 나는 매주 용돈을 받았었는데, 카셋트테이프가 5천원(성음에서 나온 거)이었다. 그 클래식테잎 수집은 2년 정도 계속 되다가 CD가 나오면서 갈아탔다. 그로부터 나는 늘 클래식을 즐겨들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드라이브를 하면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들었고, 비오는 날은 헨델의 <수상음악>을 들었고, 박일문이 자주 이야기한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도 자주 들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피아노협주곡은 나중에 CD로 모으기도 했다.
대학 3학년때인가 4학년때는, 짝사랑하는 애가 내 맘을 받아주지 않았다. 차인 것은 아니고. 암튼 더 이상 이야기하면 구구절절해지니 생략하고. 가슴에 충격을 받아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고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음악을 틀었다.
헨델의 <메시야>를 들었다. <메시야>를 들으면서 울었다. 근데 음악이 나를 막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위로자가 음악의 선율을 타고 나를 휘감았다. 참고로, 헨델이 <메시야>를 3주만에 작곡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것이다. 헨델은 눈물을 흘리며 하인이 가져온 식사도 제대로 하는둥 마는둥 그 어마어마한 곡을 작곡했던 것이다. 노래가 너무 좋아 후에 도서관에서 악보집을 찾아 일일이 다 복사해서 따라부르기도 했다. 악보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내가 단지 감수성 폭발, 감수성 오바 차원의 짓이었다. 헨델에 대한 나의 기억은 대학 채플시간에 종교음악과애들의 <메시야>가 연주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무튼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것 같다.
_조지 프리데릭 헨델
내게 클래식, 고전음악은 영혼을 위한 풍성한 샘의 근원이었다.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라흐마니노프니 스트라빈스키니 말러니...뭐 나오면 그 음반을 웬만하면 사서 들었다. 주인공이 이런 음악을 들었구나. 이러면서. 그렇게 하나 둘씩 차곡차곡 쌓은 테잎과 CD가 제법되었다.
고전음악을 그렇게 섭렵했다. 박웅현이 이야기한 그런 느낌을 가질려면 음질이 좋고 스피커와 우퍼가 받쳐줘야 제대로일 것이다. 집에 다양한 음악을 구비한 박웅현 같은 경우엔 분명히 엄청난 음향설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음향설비 이야길하면 히틀러가 마련해둔 '독수리요새'가 생각난다. 영화 '밴드어브브라더스'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독수리요새', 케이블카를 타고 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거기엔 수많은 명품 와인들이 즐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에 대충 주워 들어서 안 사실이지만, 히틀러도 독서광이었다는 것도. 근데 거기 음향설비도 되어있었나? 되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음악도 듣는 귀가 고급지면 돈이 엄청나게 든다는 걸 난 알기만 안다.
이렇게 고전음악을 사랑하고 애청했던 나이지만, 사랑과 이별, 진학과 직장생활, 결혼, 출산과 육아(내가 출산한 것은 아니지만...ㅋ), 환경과 상황의 변화 가운데 고전음악은 내게서 사라져버렸다(솔직히 우리 와이프가 고전음악, 책 이런거 굉장히 싫어한다. 내가 책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이다. 아...).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는가!
그런데, 박웅현의 이 책을 읽고 다시 클래식을 집어 들게 되었다. 나는 다른 모든 컨텐츠를 뒤로하고 나는 <여덟 단어>를 통해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을 복원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긴 글을 썼는가? 그렇다. 나는 박웅현에게 감사하고 싶다. 클래식을 다시 집어들게 해준 저자에게.
책은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요즘 소설들을 읽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추억을 복원하고 있다. 신기하다. 텍스트가 주는 마력인 듯 싶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가방이 명품이 아니에요.
그 가방은 단지 고가품일 뿐이죠.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p.97).'
비가 그리운 무더운 날씨, 빗소리가 울리는 쇼팽음악을 찾다가 빗소리가 배경이 된 걸 못 찾았다.
결국 이 책에 나온 가야금 캐논 변주곡을 올려놓아본다. 여유되시면 들으시면 좋겠다.
가야금 캐논 변주곡(힙합음악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9Bpl3WRqr68
가야금만 나오는 캐논 변주곡
https://www.youtube.com/watch?v=HyTmG2aaQ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