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나는 '가장 근본적인 죄는 태만'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제 다음 중간 단락에서는 '그것은 교만'이라는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교만의 죄라 했을 때 그들이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어떤 일을 잘 이루고 난 뒤에 누릴 수 있는 온당한 성취감이 아니다. 그런 교만은 정상적인 나르시시즘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함정은 있을지 몰라도 건강한 자신감의 일부이자 현실성 있는 자기 가치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다. 교만이 진짜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내적 죄성과 불완전함을 터무니없이 부정하는 그런 교만, 날마다 뻔히 보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려 주어도 그것을 극구 부인하고 심지어 반격까지 하려 드는 그런 파렴치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이다.

  어찌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쟁(베트남전)이 본질에 대하여 화가 나거나 의심을 품거나 적어도 진지한 관심을 가져 보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 깊이 내재하고 있는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에 부딪치게 된다. 만사 제쳐두고 우선 너무 귀찮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날마다 일상사가 있었다. 일해야지, 차도 사야지, 집 장만도 해야지, 아이들 대학도 보내야지.....

 

이 대목을 읽을 때 얼마나 찔렸는지 모른다. 나는 예전부터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게으름과 교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만, 은 모르지만 게으름을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데......저렇게 적시를 해 주니 뜨끔하다. 한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여기서 '교만'이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까지 부인하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인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인정'조차도 그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고 자기합리화 하기 위해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인정을 했으면 개선을 해야 하는데 그냥 살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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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2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대목 읽을 때 뜨끔했어요.^^

깍두기 2005-12-24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아빠, 악(evil)이란 말은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거예요."
  그렇다. 악은 삶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력을 역류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살인과 관련이 있다. 불필요한 살상, 즉 생물학적 생존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그러한 죽임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악이 살인과 관련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꼭 육체의 살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악은 또한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에는 여러 가지 필수적인 속성들이 있다. 지각, 운동, 인식, 성장, 자율, 의지 따위가 그런 것이다. 실제 몸은 죽이지 않더라도 이런 속성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을 죽이거나 죽이고자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 한 마리나 어린아이 한 명을 털끝 하나 만지지 않고도 '파괴시킬' 수 있다.

......이로써 악이란 인간의 안 또는 밖에 존재하는 생명이나 생명성을 죽이고자 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악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죄의 난해성, 완고성, 경직성에 있다. 악한 사람들의 핵심적인 결함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에 있다.

  우리는 이미 악의 정의를 가장 간단하게 내렸었다. 악이란 자신의 병든 자아를 방어하고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는 데 정치적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부분과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과학과 종교를 섞어놓는 것, '악'을 실체로 인정하는 것 등)이 혼재되어 있어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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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 부분은 좀 웃기긴 하죠. 머리 아프실 것 까지야...
아직도 가야할 길...보다 훨씬 재밌는 책이지요.

깍두기 2005-12-2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가야할 길...은 '선'에 대해 쓴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람은 역시 선보다 악에 더 흥미를 느낀다니깐요^^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1
(준비된
수량 0)
가격 : 7,600 원
마일리지 : 380원 (5%)
즐거운 불편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1
(준비된
수량 0)
가격 : 10,800 원
마일리지 : 330원 (3%)
풀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1
(준비된
수량 0)
가격 : 12,750 원
마일리지 : 390원 (3%)
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1
(준비된
수량 0)
가격 : 4,540 원
마일리지 : 50원 (1%)

 

남한테 선물할 생각은 안하고 계속 나에게만 선물하고 있는 중.

인생에는 때로 그럴 필요가 있는 때가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 하드보일드. 분명 낯이 익다. 예전에 보면서 환장한 기억이 난다.

 

 

 

  딸기님의 리뷰와 리스트 보고 찜해둔 책. 이번 방학 때 <멋진 시계공>과 비교해서 읽을 것임. 

 

 

 

 이것은 해송이가 사달라고 한 것인데 내가 먼저 읽고 줄 예정이다. (해송이가 바나나의 책을 다 사달라고 한다. 바나나의 작품이 중학생이 읽기 적당한가요?)

 

 

 

 이것은 어떤 어르신에게 선물할 예정인데, 내가 읽고 드릴 거다. 나는 누가 읽은 책 선물하면 기분 좋던데, 기분 나빠 하실까?

 

 

 

 

알라딘 메시지도 적었다.

2006년 힘내라고 보낸다.
힘이 필요하긴 하지?

 

기분 좋게 살다가도, 가끔 억지로 기운을 쥐어짜내어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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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2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내세요.
저도 누군가 읽고 난뒤에 받는 그 느낌 좋아요.
그의 손때와 그가 읽으면서 가졌을 감동...

실비 2005-12-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에게 선물 하나 할까바요.^^

숨은아이 2005-12-2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에게 선물 받으신 거 축하합니다~ 선물하신 것도...

paviana 2005-12-2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몹니까..연말선물에 이어 새해선물까지..저도 저한테 하고시퍼지잖아요..메시지도 넣어서..ㅠㅠㅠ
근데 왜 추천까지 하고 가지...

chika 2005-12-2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선물이예요 ^^

깍두기 2005-12-2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개비님, 저도 그래서 누구에게 책을 줄 때는 꼭 제가 읽은 걸 주고 싶어요. 내가 받은 감동을 선물하고 싶은 거죠^^

실비님, 하나만 하지 마시고 마~~~뉘!^^

숨은아이님, 헤헷. 철딱서니 없는 짓을 축하까지 해 주시네^^

파비아나님, 메시지 근사하게 쓰셔서(저처럼 멋없이 말고) 선물해 보세요. 기분 괜찮을 걸요.

치카님, 고마워유. 목록이 맘에 드시남?

그로밋 2005-12-2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살때 전 꼭 이유를 붙입니다. 영 없으면 "3학년 생일때 못 받은 선물"이라고 하죠.^^ 님껀 요번 새해 선물이죠? ^^ 좋겠당~~~ 글구 저도 담엔 메시지도 넣어야 겠어요. 왜 여태 그 방법을 몰랐을까~~

깍두기 2005-12-24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렇게 따지면 저 받을 선물 많아요! 어렸을 때 한번도 못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이제부터 하나씩 하면 되겠군요!!!
 

논리게임 스도쿠 1
마이클 메팸 지음
1 가격 : 5,400 원
마일리지 : 1,620원 (30%)
빠블로 네루다
애덤 펜스타인 지음, 최권행.김현균 옮김
1 가격 : 22,500 원
마일리지 : 2,250원 (10%)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1 가격 : 10,800 원
마일리지 : 2,160원 (20%)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1 가격 : 20,700 원
마일리지 : 4,140원 (20%)

 

 마틴 가드너의 주석이 달린 거금 20,700원짜리 앨리스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딱이다. 게다가 앨리스 수첩도 준다는데, 얼마나 예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른이 되어서 앨리스를 처음 만났다면 난 이렇게까지 앨리스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황당하기까지 한 귀여운 상상력과 말장난이 짬뽕된 앨리스. 나에게 아무 교훈도 강요하지 않던 앨리스가 어린아이였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 이거 지르라는 리뷰 및 페이퍼가 많다. 내가 과연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가  궁금해서라도 꼭 보고 싶었다.

 

 

 

 이거 사면 CD 준다는 바람에....그리고 네루다가 궁금하기도 했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가 정말 재미있었거든.

 

 

 

  스도쿠. 방학을 맞이하여 킬링타임용으로 하나 사려고 했는데, 경품으로 마티즈를 준다는 바람에.......ㅎㅎ 마티즈에 당첨되면 이벤트 한번 하죠^^

 

소현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해리포터 레고.

해송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은 60색 마커.

 

이봐. 깍두기. 1년동안 수고했어. 사느라고 말이야. (사느라고? 生? b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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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2-2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60색 마커도 있었요? @@(저는 아직 크리스마스 선물 안 사서 뭘로 사주나 고민중입니다.) 아그들이 산타를 더 이상 안 믿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믿으니....^^;;

깍두기 2005-12-2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이도 아직 산타를 믿어요? 그 집 아그들은 무지 순진하네!!!
우리 딸은 어림도 없어요. 작년부터 저한테 주문을 하더라고요^^
(저 60색 마커는....해송이의 로망이죠^^)

아영엄마 2005-12-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없다고는 못하겠고 이제 다 커서 산타가 안 올라거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도 안 믿어요. 작년에 왔으니 올해도 온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친 아그들..ㅡㅜ

2005-12-23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12-23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앨리스 수첩은 몰까나요. 겁나게 궁금합니다. ^^
깍두기님 마티즈 당첨되시기를! ㅎㅎ

ceylontea 2005-12-2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역시나 책선물이시군요.. ^^

그..그런데... 앨리스.. 어흑.. 눈에 딱 들어오네요.. 특히 마틴 가드너와 함께.. 앨리스 수첩까지..
철푸덕 OTL 어제 10만원넘게 주문했는데...(어제가 알라딘 12월 3번째 주문이라.. 이제 또 주문하면 추가 5%를 못받는다지요.. ㅠㅠ 음... 그래도 주문할까요?)

paviana 2005-12-2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언제부터 앨리스에 수첩까지 준답니까?
저 수첩 삼실직원이 하나 샀는데 깜찍했어요.
저도 저한테 선물 벌써 했단 말이에요..ㅠㅠㅠ
근데 저 네루다 시디 주는거 끝났다는 소문이 ==333

조선인 2005-12-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uy하느라고 수고하신 거 아닐까요? ㅋㅋㅋ =3==3

biseol 2005-12-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출간될 때부터 보관함에 담아두고 가격때문에 순위에서 밀려났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 흐 저도 오늘 주문입니다.ㅋㅋ

깍두기 2005-12-2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아영이가 쓴 페이퍼 보았습니다. 그거 고단수의 작전 아닌가 모르겠네요. 절대 선물을 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검둥개님, 마티즈 당첨되면 님 덕분인 줄 알게요^^

실론티님,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다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 거 아니겠어요 ㅎㅎ

파비아나님, 어, 정말? 그럼 물러야 되나요? 슬퍼요ㅠ.ㅠ

조선인님, 저도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되어요^^

스미레님, 정말 저 앨리스 장바구니에 몇번을 들어갔다 나왔는지 모릅니다. 질러놓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해요^^

 
프라이데이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시공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의 지은이인 로버트 하인라인이라는 아저씨의 머릿속이 너무도 궁금하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되셨으니 만나서 물어볼 수도 없고, 그의 책을 읽어서 짐작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분 진짜 중구난방이다. 난 그의 소설 중에서 <스타십 트루퍼스>를 가장 먼저 읽었다. 읽고서 얼마나 코웃음을 쳤던지 지금 작가에게 미안한 심정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책을 덮으며 내가 내린 평가. "이거 꼭 초등학교 보이스카웃 수준 아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 아저씨는 그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군대 안간 사람에게는 시민권이 없는' '나라를 지킨 자에게만 권리가 주어지는' 사회를 묘사하면서 나약한 인간들에게 팍팍 겁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발언을 읽으며 나는 그때 한참 한겨레 사옥에 모여 폭력사태를 연출하던 해병대 아저씨들을 떠올리고는(그때 왜 그랬지? 베트남전을 언급하다 그랬나?) 파시즘과 군국주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며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그를 하찮은 삼류작가 취급을 할 수 없었던 것은(삼류작가라니! 그는 SF계의 3대 거장 중의 한 명이다) 정말 실감나는 미래사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고 재기발랄한 대사,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 등등 한마디로 '재미'는 완벽하게 보장한다는데 있었다. 소설이 재미있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러다가 어디서 절판본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구해 읽고는 나는 이 작가가 그 작가냐며 다시 한번 표지에서 지은이의 이름을 확인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도저히 군국주의적인 삶의 태도와는 양립할 없을 것 같은 성에 대한 엄청 개방적 태도를 <달은....>에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나치 당원이 히피와 사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황당함이랄까.

어쨌든 국내에 출간된 하인라인의 소설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지만 그의 그 무궁무진하고 산지사방을 넘나드는 정신세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바, 이번에 이 책 <프라이데이>를 읽으면서 뭔가 조금 가닥이 잡히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부터 내가 이해한 바를 풀어놓아 보겠다. 이것은 물론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다.

1. 완벽한 '몸'에 대한 지향

하인라인은 내 생각에 '완벽 바디'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스타십 트루퍼스>에서는 '강화복'으로, <프라이데이>에서는 '인조인간'으로 표현된다. 안 그래도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우주의 전사들이 강화복을 입으면 그 능력이 몇십몇백배 강화된다. 힘, 순발력, 스피드 등등. 유전적으로 '강화'된 인조인간 프라이데이는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1초 만에, 사람들이 자기가 당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미적으로도 완벽하다. 프라이데이는 맞춤 설계된 인조인간이니 말할 것도 없고, <스타십...>의 주인공들도 빼어난 젊은이들이다.

아마 하인라인은 '완벽한 몸'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동경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도 이런 소재가 땡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다 더해서 나는 천살까지 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으므로 '불사'라는 소재가 나오면 환장하는 경향이 있다.(젤라즈니를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다....)

2. 엘리트주의

'군대 갔다온 사람에게만 시민권'은 참으로 모골이 송연한 주장인데 그럼 신체허약자나 부녀자(억울하면 니들도 군대가라...그러겠지?)들은 투표권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일정 기준에 도달하는 자만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하는 듯한 소설 속의 표현들을 보면 그는 확실히 엘리트주의자이다.

"물론, 맑시즘 가치의 정의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노동을 쏟아붓건 간에 진흙 반죽을 애플 파이로 바꿀 수는 없다. 진흙 파이는 진흙 파이로 남고, 그 가치는 무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서투른 노동은 가치를 쉽게 감소시켜 버린다. 재능이 없는 요리사는 멀쩡한 밀가루 반죽과 신선한 파란 사과를 먹을 수도 없는 쓰레기로 바꿀 수 있다. 그 가치는 제로로 변하는 것이다. 반대로 훌륭한 요리사는, 보통 요리사가 보통 과자를 만들 때만큼의 노력만으로도, 같은 재료를 써서 보통 애플 파이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과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스타십 트루퍼스 중)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너무해 ㅎㅎ.

<프라이데이>에서도 세상은 몇몇 거대기업국가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엄청난 테러와 폭력사태가 일어나도 일반 시민은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 세상은 윗대가리 몇명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중이며 일반인은 알려고 하면 다친다. 이런 현상을 작가가 바람직하게 여기건 그렇지 않건 간에 작가는 대중을 '우민'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게 된다.

3. 그는 낭만적 자유주의자가 아닐까?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과 <프라이데이>에서는 미래사회의 엄청 개방적이고 다양한 결혼모델 및 남녀관계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동성애 및 양성애에 대한 흔쾌한 인정,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를 넘어선 다부다처제, 물론 사랑은 하나 뿐이다, 이런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 정신사나운 미래세계는 지금의 일부일처제가 인간본성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에게조차 '너무 난잡한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파쇼와 히피의 결합이라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내 주위에서 이 반대의 경우로 정치적으로는 진보이면서 문화적으로는 더할나위없는 보수인 사람들을 흔히 접해왔던 터라(진절머리난다) 정치적 보수에다 문화적 진보인 경우도 불가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가 꼭 정치적으로 보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그는 식민지 해방전쟁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혁명군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도 있는가? 그는 그냥 자기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살고 싶어하며 우우 몰려다니는 대중(그의 생각에)을 우습게 아는 개인주의자, 낭만적인 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 내 안에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개념이 뒤섞여 무진장 헷갈려 버린다. 하인라인 자체가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프라이데이>는 재기발랄한 소설이며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시대배경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은 유쾌하고 낙천적이며 신랄하다. 그러나 온 몸이 무기인 프라이데이도 결국 가장 간절한 소망이 '어디엔가 소속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볼 때 인간의 근본 문제는 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백 광년을 여행하여 새 세계를 찾아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가족을 갖는 일'과 '농장에서 닭을 키우는 일'이라.......

유전적으로 조작된 '인조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작품을 볼 때는 이런 의문을 갖게도 된다.
1. 유전자 조작을 통해 현인류보다 매우 '업그레이드된' 인조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이 과연 이 책에서처럼 이렇게 별로 위험하지 않은 일일까?
2. 작품에서는 인류가 이 '인조인간'들을 경원시하며 사람취급을 안 해 주고 있는데 그런 공포심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책에서야 그들이 주인공이니까 독자인 우리가 동정심을 갖지만 사실상 현 인류를 열등종으로 밀어낼 수 있는 존재에 대해 인류는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인조인간을 소재로 한 SF는 무수히 많다. 그 중 이 소설은 그래도 문제를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간 편이다.(필립 딕의 단편에 나온 그 전쟁기계에 대해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지금까지 SF에서 제기했던 문제제기에 대해, 이제 사회가 슬슬 답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 게놈지도도 해독되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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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2-2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스타십 트루퍼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하인라인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쓰시면 궁금해서 죽겠잖아요. 구할 수 있는 건 아마 스타십 트루퍼스랑 이 책 뿐일 것 같은데..이잉...

날개 2005-12-2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럼 스타쉽트루퍼스를 읽고 이 책도 읽어야겠군요...ㅠ.ㅠ (요즘 깍두기님은 내 지름신...!)

blowup 2005-12-2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치당원과 히피가 사귀면 정말 볼 만하겠어요!
그리고, 진흙 파이는 머드 파이의 번역일 듯한데, 은유로서 진흙이라는 의미를 사용한 게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진하고 단 초콜릿으로 만든 머드 파이라는 메뉴가 있던데... 그 머드 파이와 애플 파이를 동시에 먹어본 일이 있다니까요.

게으름이 2005-12-2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반이나 살아버리셔서 억울하시겠소 ㅎㅎㅎ

깍두기 2005-12-2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이님, 무슨 말씀! 저는 적어도 120살까지는 살 생각이라오. 그러니 삼분의 일 살았다고 해 주오.

나무님, ㅎㅎ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머드 파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구요? 재밌네요. 근데 저기서 말한 진흙파이가 그 머드 파이라면 그 가치가 '무'가 되지는 않을 텐데요.

날개님, 네네, 둘 다 읽으세요. 아~주 재밌어요^^

블루님, 일단 프라이데이만 읽어도 스타십의 선입견이 확 깨요. 사실 결정적인 건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지만. 이것도 아마 어디서 조만간 복간되지 싶은데요.
그리고 하인라인이 가끔가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얘길 해서 그렇지 재미로 말할라치면 아시모프나 클라크보다 낫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아시모프는 SF계의 KFC 할아버지, 클라크는 너무 점잖은 학자 나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