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키스

얼마전 신문기사에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전반에 불고 있는 말러 열풍에 대해 소개되었다. 이 신문기사에 의하면 오늘날의 말러 열풍은 전세계적이며 유수의 레코드 레이블, 지휘자, 오케스트라들에 의해 말러의 음악이 녹음되고, 연주되며, 공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부천 필하모니의 말러 사이클 연주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나또한 카페에서 감감님(deeew)의 엘리아후 인발의 공연후기담을 읽고 한동안 듣지 않았던 말러 CD를 꺼내 들었을 정도니까 새삼 말러 열풍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세계는 말러를 듣고 연주하고 남기고 있다. 어떤 매체로든지 말이다.

신문에선 "오늘날 왜 말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사후 90년이 지나 100년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러의 음악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졌다라고 쓰고 있었다.

 

오늘날 왜 말러인가? 사람들이 베토벤과 모차르트만 듣다 이제 그만 질려 버린걸까? 아님 전세계의 언론/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 자본에 의해 유태인 작곡가에 대한 과잉된 홍보물의 결과일까?( 그동안 말러를 열심히 소개하고 연주한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레너드 번스타인 모두 유태인이다.) 그 모두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만이 전부인건 아니다. 오늘날 불고 있는 말러 열풍의 본질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한다.

 

말러는 당대에 성공한 지휘자 겸 작곡가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 자신을 설명할 때 항상 자신은 고독하며 불행하다고 느꼈다.

말러 자신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

 

"나는 고향이 없다. 세가지 의미에서 모두 그러하다. 즉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안으로서 이방인이었으며,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이방인이었고, 유럽에서는 유태인으로서 이방인 이었다."

 

말러가 30세에 궁정 오페라단의 총감독으로 임명이 되자 당시 빈의 분위기는 당혹 그자체였다. 이 때의 분위기를 잘 설명한 자료가 슈테판 츠바이크(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입니다.^^)의 <어제의 세계>라는 자서전에 잠시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젊은 사람에게 제일류 예술기관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당시 빈의 당혹스런 분위기를 한마디로 대변해주고 있다. 그만큼 말러는 당시에 유명인사였고 성공한 예술가였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을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말러의 정신분석을 담당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말러가 유년시절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 고통이 그를 지배하고 있어서 때로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져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유했지만 고집스럽고 강직했던 아버지는 연약하기만 한 어머니를 매우 거칠게 다루었고 말러는 이를 보고 아버지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였기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고는 짧은 가출이 고작이었을 뿐이었다. 그의 이런 유년시절의 경험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편애로 나타났고 또한 연이은 형제들의 죽음(14형제중 10명이 죽고 살아남은 남은 형제들도 불행했다.)으로 그의 마음속에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았다.(이렇게 나만 행복하게 살아서는 안되지 않을까?하는 심정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이는 말러가 평생 좋아하던 작가가 쇼펜하우어,니체,도프토예프스키였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이란 책에 보면 도프토예프스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인해 간질과 도박으로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죄책감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하려 했다는 재미난 정신분석이 나옵니다. 시간 되시면 읽어보시길)

 

말러의 음악을 한마디로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난 슬픔이여 안녕이란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제목으로 표현하고 싶다.(물론 여기선 안녕이 Goodbye란 뜻이지만) 말러 음악의 특징은 온음계적 화성에 불협화음이 있는 화음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거기에서 선율을 만들어내는 선적 대위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불협화음의 요소로 인해  처음 말러를 듣는 사람은 웬지 거북하고 낯선 느낌을 자주 갖게 된다. 하지만 말러는 그런 불협화음안에 민속가극의 서정성을 부여함으로써 때론 매우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 내곤 한다. 특히나 제 5번 교향곡의 장송행진곡에 이은 아다지에토는 말러의 서정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즉 말러음악의 특징은 불협화음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절망감,고독,운명적인 비애를 강렬히 표출해 내지 않고 내면에서 조용하게 정화시켜버림으로써 슬픔을 인내하는 바로 그런 매력을 갖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가? 인류가 대지에 두발로 선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겪고 있지만 내면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더이상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표현하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모두들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그건 정치형태일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건 고도로 조직화된 자본주의이다. 삶의 지배자가 봉건영주에서 거대자본으로 탈바꿈 했을뿐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 단지 우린 거대 자본이라는 거대한 매커니즘속에 계속 자본을 확대 재생산해야하는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거대 자본에게 있다라는 것이 옳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말러 자신은 외면적으로는 성공한 유명인사였고 예술가였지만 내면은 항상 고독하고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의지할 상대가 필요했고 그것을 3명의 여인에게서 찾았다.

 

1. Marie Hermann ................  말러의 어머니

2. Alma Marie Schindler........  말러의 아내

3. Maria Anna......................  말러의 첫째 딸

 

주목할 점은 이 세 여인의 공통점이 Marie 라는 이름에 있다라는 것이다.즉 말러의 삶을 지배했던 이  세여성의 이름이 우연히 Marie 였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해 버리기는 힘들다. 또한 단지 Mother 컴플렉스에 의한 보상심리에 불과했다고 해버리기엔 말러 자신이 주는 예술적 영감으로 볼 때 그렇게 치부해버리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

말러 자신이 카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이 마리아 라는 이름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가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게 옳다. 영원히 방랑해야하는 운명을 가졌다고 믿었던 말러 자신의 마지막 영혼의 안식처가 바로 영원한 모성을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러의 마지막 유언이 "모차르트! 모차르트!" 였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만의 Requiem을 창조해내었듯이 말러 자신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리아 안나(첫째딸을 선홍열로 잃었다)를 잃은 후에 말러는 극심한 공황상태를 겪었고 건강도 차츰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대지의 노래를 교향곡 9번으로 하지 않았던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이었다. 이렇게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말러가 마지막으로 지휘한 곡은 부조니의 <나의 어머니의 무덤에서의 자장가>였다는 것은 그가 어느 정도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영혼의 안식처를 준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1911년 말러는 빈에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마리아 안나의 옆에 묻혔다. 영원한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말러에게 열광하는 것은 우리 또한 영원히 방랑할 수 밖에 없는 보헤미안 신세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작은 영혼을 의지할 만한 곳이 없게 되어버린 각박한 세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잃어버린 우리가 그나마 위안 받을 수 있는 곳이 말러의 음악밖에 남지 않은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제가 추천하는 음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 레너드 번스타인(뉴욕필)/ 카랴얀/클라우디오 아바도

말러 교향곡 5번: 카라얀(빈필)/바비롤리/레너드 번스타인

말러 교향곡 6번: 피에르 불레즈/번스타인(빈필)

말러 교향곡 8번: 게오르그 솔티/브루노 발터

말러 교향곡 9번: 카라얀(1982년 녹음)/번스타인(1988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말러와 개인적으로 친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과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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