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사람과 참으로 닮았습니다. 그 뿌리는 우리의 다리와도 닮았고, 기둥은 몸, 수관은 머리, 가지는 팔과 유사하지요. 모습만이 아닙니다. 씨앗-꽃-열매-다시 씨앗...그 재생적인 성정과정은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은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무에서 인간 발달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지요. 그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나무그림검사>입니다.
사실, 별거 아닙니다. 모든 그림 검사가 그렇듯이 나무그림검사 역시 집단 무의식에 기초하고 있으니까요. 집단무의식, 즉, 그림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의 감정에 약간의 연구를 가하고 통계적인 결과를 첨부해서 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이 2001년이었던 터라, 더더욱 중언부언할 것 같은데... 그래도 이해하세요.^^
검은비님의 나무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소망(?)은 사실 오래된 것입니다. 제가 egogram checklist를 바탕으로 한 심리검사 결과를 알려드리러 처음 서재에 방문했을 때, 님의 나무그림을 처음 보았지요. 눈에 확 들어온 것은 가지였습니다. 끝이 뾰족하게 모아진 가지는, 제가 <자기 보호를 위한 타인 공격>이라고 필기하고 책에 그려놓은 모양과 똑같이 생겼더랬죠. 그 때 어줍잖게 느꼈던겁니다. 아, 이 분...글은 거칠고 담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상처입기 쉽고 마음이 약한 분인가보다...하구요. 그런데, 처음 만나서 대뜸 그런말을 할 수가 있어야 말이죠.-.- 짜장면을 비비느니 어쩌니 하던 말들은, 열심히 친해져서(열심히 친해져?) 격이 없는 사이가 되면 저 얘기를 묻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답니다. 지금은 우리, 많이 친해졌죠? 맞나요?^^;;
그런데, 그 뾰족하던 가지가 지금은 많이 둥글어졌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성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제가 그렇더군요. 예전에는 타인의 시각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상처입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했는데, 아이가 둘이 생기니, 아줌마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뭐, 할테면 해 봐라!'하는 배포가 생기더라구요. 그만큼 피붙이는 큰 <믿는 구석>입니다. 지난번 심리검사 때도, 검은비님은 양육적 어버이로서의 자아 점수가 아주 높았지요? 엄마가 되면서 세상과 좀 더 친해지신 것은 아닌지.^^ (ㅎ...선무당의 단점 중 하나로, 결과에 자신의 생각을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 저 위의 그림이 아래의 그림보다 전에 그린 것이 맞기는 한지...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봐 주세요. 어? 내가 예전에 그렸던 나뭇가지들이 지금보다 더 날카로웠나? 하구요.)
제가 본 님의 그림 속의 나무들은(그래봤자 세 개^^), 밑둥이 모두 저렇게 생겼습니다. 나무의 뿌리는 보통 시간으로는 과거, 의식으로는 본능, 혹은 무의식의 세계를 나타내지요. 그림에서 나무뿌리가 부각되는 사람들은 충동적이고 과거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님의 경우는 지나치게 싹둑, 잘려 있지요? 지면 위에 나무를 얹어 놓은 듯한 그림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기에 더욱 강렬하게 존재감을 발산하는 뿌리가 느껴집니다. 마치, '난 과거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어! 무의식이라니, 내 알 바 아니지!'하고 결심한 것처럼 말이죠.
그러던 차에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거꾸로 나무라...말 그대로 거꾸로 서 있는 나무이지만, 어찌 보면 뿌리 같지 않습니까? 플라시보님이 뇌 이야기도 하셨는데, 마치 내 머리 깊은 곳, 무의식 속으로....무의식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 드는 나무의 뿌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와는 상반되게, 내 무의식 깊은 곳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싶다는 욕망의 뿌리가요.
그리고, 님의 그림에서 나무는 대부분 두 그루가 함께 그려집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나타나는 경우는 불안감과 의존 성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지요. 그런데, 님의 경우는 약간 다르게 보고 싶어요. <분열된 자아, 이중의 자아에 대한 탐구>는 어떨까요? 누구나 그렇지요. 남에게 보이는 자아와 내가 생각하는 진짜 자아는 다릅니다. 하지만 대개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질 않고, 적정선에서 타협을 해버리기 일쑤죠. 그런데 님은 요즘도 가끔 그런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시나봐요. 특히 맨 아래의 그림이 그렇습니다. 비슷한 두 나무, 그러나 색깔이 상반된 두 나무는 <내 속에 공존하는 두 자아>가 화면에 나타난 듯 해요. 대부분의 예술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 그런가.... 화가 중에도 그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많습니다. 실레나 고흐도 두 나무를 함께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대해 치열히 고민하는 점, 바로 그것이 매력적인 예술품을 잉태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제가 배운 것은 어린이들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미술치료입니다. 성인, 그것도 멋진 화가의 그림에 대해 말해보긴 처음이예요. 심리분석, 이라고 말하기도 어설프군요. 그냥, 님의 멋진 그림에 대한 제 감상문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그래도 궁시렁 다이어리에 파뭍기에는 쪼금 안타까우니....심리검사 카테고리에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짜장면은 계속 비벼집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