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 - 우리아기 첫 놀이책
애플비 편집부 엮음 / 애플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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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그림책을 고를때면, 대여 일 순위가 '새 책'입니다. 아무래도 찢어지거나 너무 헐어 나달나달한 그림책은 읽어주는 저부터 흥이 안 나더라구요.
그림책의 경우는 일반도서와는 달라서, 무조건 도서관의 관리 소홀이나 대여해 가는 사람의 자세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는 온몸으로 책을 읽거든요. 아이에게 그림책은 장난감이기도 하니까요. 여러 아이가 보는 그림책이 깨끗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그냥 보지 말라는 소리나 다르지 않을까...싶어요. 그래서 도서관의 경우, 좋은 그림책은 이미 있다고 해도 계속 새 책으로 교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첫머리부터 왜 도서관 얘기가 늘어졌나면, 요 책은 구입한 게 아니라 대출해서 읽었거든요.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 꽂혀있는 말짱한 팝업북을 보며 뭐랄까, 횡재한 것 같기도 하고, 이 그림책의 앞날이 빤히 보여 안타깝기도 하고...^^ 도서관 그림책 중에서도, 팝업북처럼 조기에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도 없거든요. 사실은....음....울 연우도 이 책의 일부를 조금 찢어놓아서, 테이프로 꽁꽁 붙여놨답니다. ^^;

책을 펼치면, 요렇습니다.

요게 한 페이지 분량인거죠. 얼굴을 가리고 "누구~게" 물은 다음 접혀진 부분을 펼치며 "까꿍! 돼지!"하고 외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돼지, 개구리, 강아지 등 친숙한 동물들이 까꿍놀이를 합니다.
두 살 연우는 누나에 치어 책을 많이 못 읽어 준 편이라, 아직 그림책에 큰 관심이 없답니다. 동물 친구들의 현란한 까꿍놀이 보다는 팝업북을 들춰보는데 관심이 더 많더라구요. 오히려 다섯 살 예진이가 동심으로 돌아가(?!) "펴지 마, 펴지 마! 내가 맞출거야!!"를 외치는 걸 보면... ㅎㅎ 팝업북은 나이를 초월해 아이들을 매료시키는 뭔가가 있나봐요.

책이 내 건 부제처럼, 아기의 첫 놀이책으로 무난하게 보입니다. 다만, '조만간 찢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와 스카치테잎의 구비가 꼭 필요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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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스프리 컨트롤 베이스 - 모든 피부 40ml
아모레퍼시픽[직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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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이니스프리 순한 선크림과 더불어 잘 사용하고 있는 메이크업 베이스 입니다. 자외선이 걱정되는 여름이나 너무 피부가 당긴다 싶을 때는 선크림을, 그 외의 계절에는 이니스프리 컨트롤 베이스를 사용하죠.

튜브형이고 40ml라 용량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예상 외로 오래 씁니다. 일반 메이크업 베이스보다 약간 묽은데요(손등에 바르고 기울이면 천천히 흘러내리는 정도), 발림성이 좋아 소량으로도 넓고 얇게 펴바를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큰 장점은 보송보송한 마무리! 피부의 유분을 쏘옥 흡수하는 듯 한 느낌에 이니스프리 특유의 개운한 허브향이 가미되어 상쾌하게 퍼프를 두드릴 수 있어습니다. 이것은, 건성피부에는 도리어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저는 여름엔 끈적, 겨울엔 푸석한 복합성 피부인데요, 난방때문에 피부가 건조해지기 쉬운 겨울에는 가끔 지나친 유분흡수력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더라구요. 그렇다고 당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기름기를 쫙 잡아주면 촉촉한 느낌이 덜하니까요.
지성 피부를 가진 분들에게 강력 추천할만한 메이크업 베이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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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rain 2004-11-2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탐나는군요..^^

진/우맘 2004-11-23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지성피부? ^^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걷기에 매료된 기억이 있다. 물론, 저자처럼 어마어마한 여정은 아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운동 부족으로 몸이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2002년, 둘째를 가지고서는 체중과 체력을 관리할 방법을 찾았고, 시간 - 돈 - 몸 상태를 고려하여 내린 결론이 '걷기'였다.
코스는 편도 2~3km로 추정되는 출퇴근 길. 느릿한 내 걸음으로는 30~4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처음에는 참 지루하고 심심했다. CD나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으면 한 걸음 내딛고 한숨 한 번, 두 걸음 내딛고는 하품 한 번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두 달이 흐르자....이상하게도 음악이 거추장스러워졌다. 몇 걸음 떼지 않아서 깊은 생각- 대개는 황당한 백일몽이다 -에 빠져들어, '어, 벌써 도착했네?' 하는 일이 많아졌다. 심할 때는 중간에 들르기로 마음 먹은 빵집을 무심히 지나치는 일도 있었다. 운동이라는 목적과는 별개로, 걷는 행위 자체에 포옥 빠져 버린 것이다.
편한 신발이 땅에 닿는 순간의 진동,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과 계절에 따라 바뀌는 공기의 냄새가 너무도 좋았다. 퇴근 길에 장 볼 일이라도 생기면 '집을 지나 마트까지, 마트를 휘돌고 다시 집까지...헤헤, 두 시간은 걸을 수 있겠다!'라며 흥분하곤 했다. 배가 봉긋하게 부른 임산부의 과도한 '걷기 욕심'을 주변에서는 어이없어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어쩐지 걷는 동안에는 뱃속의 아기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가끔 빠른 걸음으로 욕심을 내면 심통이 난 듯 땡땡 뭉치기도 했지만.^^


그 때의 흥분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아마 이 책을 다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소설에는 쉽게 몰입하질 못한다. 게다가 여행이라면 귀성길 교통 체증을 겪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고개를 내두르는 게으름뱅이. 실크로드를 도보로 횡단해 보겠다는 이 퇴직 기자의 욕심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이 먹었다는 것을 내세워 인생에 대해 이런 저런 잔소리나 해 대겠지....'
초장부터 빈정대고 있던 터였다. 그런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여행을 준비하고 출발하기까지의 대목은 지루하고 따분해서 넘기기가 힘들었다. 걷는 도중에 무슨 사건이 벌어질까? 도둑? 질병? 사고? 야비한 기대감을 억지로 끌어내며 두꺼운 책의 1/20은 읽었는지, 1/10은 넘어갔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런 확인은 대략 1/5 즈음에서 끝났다.  도둑을 만나지도, 병에 걸리거나 뜻 밖의 사고로 발이 묶이지도 않았는데 책 속에 푸욱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저자는 제목대로 걷는다. 그냥 국도를 따라 걸으면 터키라는 나라의 정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엉터리 지도에 의존하며 작은 마을들을 찾아 걷는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손님에 대한 접대를 중요시하는지라 가는 곳마다 소박하고 정겨운 (열광적인 호기심이 가미된) 환대를 받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머문 작은 마을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맛본 음식들이 차분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미안, 터키에 대해 별 사전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나에게는 그 모든 일들이 흐릿하게 뭉뚱그려질 뿐, 각각의 마을이나 사람들을 구별해 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더 이상 지루해 하지 않고 빠져든 것일까?


이 책은, 이 책을 읽는 행위는 '독서'가 아니라, 마치 '걷기' 같았다.
내딛는 걸음을 헤아리면, 내가 직장까지 1/3을 왔는지 1/2을 왔는지 꼽아보면, 매일 지나는 길에서 뭔가 색다른 구석을 찾아내려 애쓰면 그 길을 즐길 수가 없다. 책도 그랬다. 똑같은 마을, 비슷한 사람들을 구별해내는 것을 포기하고 저자의 문장을 무심히 따라가다 보니, 놓치고 있던 재미를 찾은 것이다. 그가 차를 타지 않고 굳이 걷기로 결심했던 중요한 이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주는 재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빈약한 먹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솔제니친이 무슨 생각으로 망명길에 올랐는지 어느새 공감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옴진리교의 지하철 테러 사건 희생자들의 인터뷰를 모아 낸 <언더그라운드>를 읽을 때도 비슷했다. 자극적일 것도 없는 평범한 인터뷰들을 읽다보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가 얼마나 지독한 짓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일견 무덤덤한 아나톨리아의 길을 저자와 함께 걷다 보면, 그는 입도 뻥긋 하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상념에 젖어드는 것이다. 대낮, 거리를 걸으며 떠오르는 백일몽처럼.


가끔은 '우월한 서양인'의 관점에서 터키라는 나라를 폄하하는 듯한 어조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몸 안 좋은데 도둑으로 보이는 자에게 쫓기고, 바가지 요금을 받은 호텔 욕실에서는 물이 샌다면....저자 정도면 매우 관대한 편이지...싶기도 하다.
함께 책 한 권 분량을 걷다 보니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짱짱한 아저씨(할아버지라 하기엔 너무 팔팔하다.^^)에게 정이 담뿍 들었나보다. 그와 함께 2~3권, 이란과 중국의 길도 마저 걸어보고 싶어졌다.
걷기는 매우 지적인 일이며, 해탈에 이르는 멋진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으니, 괜찮은 동행이 되지 않을까?


사족 : 해탈의 방법이라고는 확언하지 못해도, 순산의 방법이라는 데는 목청 높여 동의할 수 있다. 진통 오기 직전까지 러닝 머신 위에서 뒤뚱뒤뚱 걸어다닌 덕인지, 둘째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씀풍!' 낳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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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22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비소설에 강하지 않다고 하면서 너무 잘 썼잖아요. 거 웬만하면 엄살좀 부리지 맙시다...전 진우맘님 리뷰나 실컷 구경하고 책은 훗날에...^^ 그래도 추천하고 간다구요.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뭐.^^

비로그인 2004-11-2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요오~ 드뎌 읽으셨군요. 오늘 지구본을 유심히 돌려봤어요. 삼순, 이란 이름이 배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이슬람 지역의 한 지명을 가리키더라구요. 저도 부지런히 터키땅을 밟아야겠습니다.

진/우맘 2004-11-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칫, 여우님이야말로, 알라딘 3대 리뷰어로 공인받으신 이 마당에! 그 머시냐, 알라딘 뉴스레터를 보니까, 리뷰당 평균 추천이 다섯 손가락이 훨씬 넘는담시요!!!! ^^;;

진/우맘 2004-11-2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성님, 저는 다 읽고도 '아나톨리아'가 당최 콕 집어 뭘 말하는지 몰라서는...흑흑, 열심히 검색을 해 봤지 뭡니까.ㅡ.ㅡ;;; 터키땅덩어리 중 아시아 부분에 속하는 고원 이름이더군요. 지리 시간에 졸지 말걸......TT

미완성 2004-11-2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껜 충!성! 대신 씀!풍!이라 인사드리겠사와요 히히.

재밌는 리뷰네요. 왠지 책보다 재밌는 것같은 불길하고도 기분좋은 예감이..

추천입니다 당근!

2004-11-22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4-11-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복돌성님> ㅋㅋ 걱정마세요, 조만간 그 이름 안 나올겁니다요.

사과님> 불길하고도 기분 좋은...으흐흐흐...^^;;

로드무비 2004-11-23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진우맘님이 이르케 리뷰를 잘 쓰시는지 미처 몰라봤어요.

죄송합니다.

명성과 인기가 달리 있었던 것이 아니로군요.

코를 빠트리고 읽고 갑니다.

(내일 주문한 책이 온다니 기대됩니다요^^)

아영엄마 2004-11-2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저는 이 책 안 읽고, 리뷰 안 쓸라요~. 진/우맘님 리뷰 보니 얼릉 손드는 것이 낫겄소..쩝~ 저도 추천하고 갈께요..

마태우스 2004-11-2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우리 한번 걸어보도록 해요. 추천이 무려 7이라 추천하려다 말려다 글이 너무 좋아서 추천해요. 건필하세요!

진/우맘 2004-11-2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그래도 멀었습니다. 알라딘 대표 리뷰어 best 50 쯤엔 낄 수 있으려나...TT

책엄마님> 반칙!!! 그런게 어디있어요!!!

로드무비님> 명성....과 인기.....쑥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참, 로드무비님, 저도 띄어쓰기 너무 못하거든요? 다 골라내다간 날이 새겠지만...다는 아니어도 눈에 확 띄는 대표 오류 한 두개씩 지적 좀 해주세요.^^

icaru 2004-11-2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으아...!! 벌써...읽으셨네요~

저도 얼른... 저도 지금 주문합니다~

리뷰는 못 쓰더라도 읽어나 보자하고!1

진/우맘 2004-11-23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안녕하세요!!!^^ 좋은 책 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04-11-27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4-11-28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오마나....많구만요, 뭘! 게다가 띄어쓰기 말고도 틀린 단어가 있다니....부끄러워서 원.^^;;; 앞으로도 종종 부탁드려요~
 
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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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삼오식당으로 만난 이명랑은 이렇지 않았다. 삶에 대한 의지로 따글따글 다져진 영등포 시장 사람들은, 가끔 그 억척스러움에 미간이 모아지긴 했어도, 결국엔 모두 꽉 끌어안고 등을 두들겨주고 싶은, 그런 이들이었다.
헌데 여기, 시장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삼오식당>이 빛이었다면 <나의 이복형제들>은 캄캄한 그림자다. 그 그림자 속에, 시장이라는 팍팍한 둥지를 공유한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근육병으로 죽어가는 춘미 언니, 인도인 불법체류자 깜뎅이, 국제결혼에 속아 매춘을 해야 하는 중국여자 머저리, 난쟁이 왕눈이와, 그들을 지켜보는 화자, 영원.
이들은 모두 '인간이란 모순덩어리인, 견디기 힘든 존재야!'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 하다.
휘황한 언어를 무기로 휘두르지만 버스 하나 제대로 못 타는 무력한 춘미언니나, 가지런한 단추가 무색하게 실밥이 터진 잠바와 단정히 묶인 끈 아래로 구멍이 벙긋한 운동화의 깜뎅이, 미련하게 맞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총총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머저리와 진돗개 한 마리만큼의 권위를 휘두르지만 결국 여섯살배기만한 볼품없는 키의 왕눈이.

이명랑은 이들을 손톱만큼도 미화시켜 주지 않는다. 진저리 나도록 생생하게 그늘 속 이방인들을 부각시키는 문장 틈에서, 줄곧 불편한 시선이 느껴진다.
"봤지? 니가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에 취해있을때, 시장 뒷골목에선 이렇게 척박한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어. 똑똑히 봐. 사람이, 너의 은근하고 간접적인 거부로 주류화되지 못한 인간이, 얼마나 추하고 비참한지."
책을 덮을 때까지, 줄곧 자갈밭에 무릎을 꿇고 앉은 듯 힘겨웠다.

나, 책에서, 현실에서, 몽롱한 꿈을 꾸고 있었나? 달콤한 부분만 골라 삼키고 있었나?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모든게 한결 차갑고 어둑하게 느껴진다.
이런 식의 자각은 원치 않았다. 어쩐지 억울하고 슬퍼서 눈물이 비어져 나올 것만 같다.

불편해. 왜 날 이렇게 아프게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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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1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랑이, 긍정에 주저앉아 버리지는 않았군요.:-)

panda78 2004-11-1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삼오식당만으로도 무진장 불편했는데....

이 책 궁금하긴 한데, 집어들기는 망설여지는군요.

진/우맘 2004-11-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원의 말처럼 독자들에게는 “문학작품에서 환상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어, 척박한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갖기를 꺼려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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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님이 쓰신 공선옥 책의 리뷰에서, 제가 느낀 불편함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품절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반드시 '언어'가 필요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그런 말을 유포하고 다니는 작자들은 뻔한 인간이지. 그런 인간들에게는 대체로 꿍꿍이가 있는 법이거든. 그런 인간들은 죽기살기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고 들지. 혼자 지껄일 수야 없으니까. 일단 관계가 성립되고 나면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혀 속에 감춰두었던 무기를 꺼내드는데 그 무기는 당연히 '언어'지. 그들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은 거야.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정성 들여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닦았어.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매끄럽다 못해 휘황찬란하지. 그러면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은 그만 주눅이 들어서 그들 앞에서는 비루한 노예가 되고 마는 거야. 단지 자신의 언어가 그들이 구사하는 그, 휘황찬란한 언어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지."-34~35쪽

휘황찬란하다 못해 제대로 마주 볼 수도 없는 춘미 언니의 언어가 압정처럼 내 얼굴을 찔렀다. 나는, 어쩌면 이 언니야말로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는 데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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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1-1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내 가슴도 압정에 찔린 듯 뜨끔했다. 나 역시...소통이 아닌 과시의 방편으로 '언어'를 갈고 닦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우맘 2004-11-1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 바꾸기를 위해 태그 p를 썼더니만, 같은 글이 두 번 떴다. 게다가 중간엔 블루 스크린까지 한 번 떠서 심장을 덜컥이게 하고... 밑줄긋기 공간은, 아직 좀 불안정한 모양이다.

chaire 2004-11-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랑의 언어는 참 신랄하고 휘황찬란하군요... 함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