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주일간 언더그라운드에 매진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는, 1995년에 있었던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이 담긴, 일종의 논픽션 다큐라고나 할까요. 사실 읽기 전에는, 은근히 그런 기대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사고가 터지면 사고 경위는 일 면에 실리고, 이 면에는 '하루만 있으면 생일인데. 흑흑흑'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두고 네가 먼저, 흑흑흑' 뭐, 그런 기사들이 실리잖아요. 그렇게 자극적이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예요.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자극적이고 안타까와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 있어도, 굳이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살다가, 이 날 아침 일상 속에서 사린을 만났으며, 이런 피해를 당했지만 지금은 불편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사린 때문에 쓰러진 어여쁜 여인을 간호하다가 결혼한 커플도 없고, 옆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업고 뛰었는데 알고 보니 그 분이 재벌 총수여서 대단한 보상금을 받게된 사람도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냥 출근길에 오른 소시민이었지요. 무수한 이름들이 나오지만, 그 이름들이 기억에 와 박힐 정도의 에피소드가 존재하지 않으니, 사실 그 이름들은 익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 재미없을 것 같지요.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단 말입니다. 흥미진진할 것도 없는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을, 게다가 600p가 넘는 긴 글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가 않아요. 자극적인 에피소드들은 신문에서 읽고는 어떡하나, 안됐다, 세상에 그랬데더라. 하고는 그만이지만, 이 무수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그 날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나도 그 날 그 곳에 있었던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어느새 머리 속, 마음 속에 자라납니다. 점점 커져서 가슴 속에 묵지근하게 자리잡는 그런 감정은, 오래 가죠.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줍잖은 충고를 하나 하자면, 대여해서는 읽지 마세요. 오랜 시간을 두고 야금야금 읽어야 제 맛이 난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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