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삼오식당으로 만난 이명랑은 이렇지 않았다. 삶에 대한 의지로 따글따글 다져진 영등포 시장 사람들은, 가끔 그 억척스러움에 미간이 모아지긴 했어도, 결국엔 모두 꽉 끌어안고 등을 두들겨주고 싶은, 그런 이들이었다.
헌데 여기, 시장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삼오식당>이 빛이었다면 <나의 이복형제들>은 캄캄한 그림자다. 그 그림자 속에, 시장이라는 팍팍한 둥지를 공유한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근육병으로 죽어가는 춘미 언니, 인도인 불법체류자 깜뎅이, 국제결혼에 속아 매춘을 해야 하는 중국여자 머저리, 난쟁이 왕눈이와, 그들을 지켜보는 화자, 영원.
이들은 모두 '인간이란 모순덩어리인, 견디기 힘든 존재야!'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 하다.
휘황한 언어를 무기로 휘두르지만 버스 하나 제대로 못 타는 무력한 춘미언니나, 가지런한 단추가 무색하게 실밥이 터진 잠바와 단정히 묶인 끈 아래로 구멍이 벙긋한 운동화의 깜뎅이, 미련하게 맞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총총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머저리와 진돗개 한 마리만큼의 권위를 휘두르지만 결국 여섯살배기만한 볼품없는 키의 왕눈이.

이명랑은 이들을 손톱만큼도 미화시켜 주지 않는다. 진저리 나도록 생생하게 그늘 속 이방인들을 부각시키는 문장 틈에서, 줄곧 불편한 시선이 느껴진다.
"봤지? 니가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에 취해있을때, 시장 뒷골목에선 이렇게 척박한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어. 똑똑히 봐. 사람이, 너의 은근하고 간접적인 거부로 주류화되지 못한 인간이, 얼마나 추하고 비참한지."
책을 덮을 때까지, 줄곧 자갈밭에 무릎을 꿇고 앉은 듯 힘겨웠다.

나, 책에서, 현실에서, 몽롱한 꿈을 꾸고 있었나? 달콤한 부분만 골라 삼키고 있었나?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모든게 한결 차갑고 어둑하게 느껴진다.
이런 식의 자각은 원치 않았다. 어쩐지 억울하고 슬퍼서 눈물이 비어져 나올 것만 같다.

불편해. 왜 날 이렇게 아프게 하는거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아이 2004-11-1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랑이, 긍정에 주저앉아 버리지는 않았군요.:-)

panda78 2004-11-1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삼오식당만으로도 무진장 불편했는데....

이 책 궁금하긴 한데, 집어들기는 망설여지는군요.

진/우맘 2004-11-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원의 말처럼 독자들에게는 “문학작품에서 환상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어, 척박한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갖기를 꺼려하는거다.

---------------------------------------

마태우스님이 쓰신 공선옥 책의 리뷰에서, 제가 느낀 불편함의 해답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