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반드시 '언어'가 필요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그런 말을 유포하고 다니는 작자들은 뻔한 인간이지. 그런 인간들에게는 대체로 꿍꿍이가 있는 법이거든. 그런 인간들은 죽기살기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고 들지. 혼자 지껄일 수야 없으니까. 일단 관계가 성립되고 나면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혀 속에 감춰두었던 무기를 꺼내드는데 그 무기는 당연히 '언어'지. 그들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은 거야.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정성 들여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닦았어.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매끄럽다 못해 휘황찬란하지. 그러면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은 그만 주눅이 들어서 그들 앞에서는 비루한 노예가 되고 마는 거야. 단지 자신의 언어가 그들이 구사하는 그, 휘황찬란한 언어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지."-34~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