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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어보나?
20대때 신문지상의 광고를 보고 끌려서 사보았던 것이 이 책이 처음 나온 95년, 지금은 홍세화씨가
터무니없는 남민전 사건으로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되어야했던 그 때보다 더 나아졌는가? 달라졌
는가?
홍세화씨는 학자도 저널리스트도 문필가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글은 학자의 글이 주지 못하는
깊이가 있고, 저널리스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사회의 분석이 있고, 문필가의 글보다도 더욱 아름답
다.
그는 사랑을 심어주기 전에 증오와 반대만을 심어주는 사회에 대항했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
런데 그는 그것때문에 꼬레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꼬레에서 받아주지 않아 그는 빠리에서 택시운
전을 하며 살아야 했다. 갈 수 있는 나라는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 그의 조국 꼬레는 그의 사랑
을, 신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않으려 했고 그에게 빨갱이의 낙인을 찍었다. 그가 행동으로 옮긴 일
이라고는 단지 유신에 반대하는 삐라를 뿌린 일 뿐이었다. 다른 사회에서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유신체제하에서는 사형을 당하고, 종신형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홍세화씨는 망명을
신청하는 자리에서도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처음 읽었을 때도 눈물을 흘렸지만 다시 보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부분은 엠네스티에서 인
권후진국으로 선정한 30개국에 한국도 자랑스럽게(?) 들어가 있고, '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에
연루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김성만군을 풀어주라고 만든 랩의 가사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
랩은 프랑스의 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 직접 만든 가사였다.
- (전략)김성만, 김성만의 이름으로, 김성만의 이름으로.
한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어요.
그럿은, 그것은 안 좋아요. 그것은 안 좋아요.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고 감옥에 처넣는다면,
그것은, 그것은 안 좋아요. 그것은 안 좋아요.
김성만, 김성만의 이름으로, 김성만의 이름으로.
우리는 김성만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대통령 각하.
내가 당신에게 김성만을 석방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단 하나의
잘못은 의견이 달랐던 것뿐인데, 고문에 못 이겨 끝내 간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여 끄집어낸 자백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
다. 유별난 법으로, 유별난 재판으로, 예외없는 부조리의 연속으로, 수백일 동안 단말마의 고통을
겪게 하고 사형까지 말하더니 종신징역을 살리고 있습니다. 부당하게 겪고 있는 그의 괴로움에, 고
문에, 그리고 그의 가족과 벗들이 겪는 끝없는 기다림의 고통에....나는 인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김성만을 석방하라고. (후략)-
처음에는 홍세화씨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람도 뒤돌아서서는 의심하고, 없는 말을 지어서 하고, 오
랜만에 만난 동창도 나중에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나는 지금은
그들을 비난하지만 내가 그 당시 홍세화씨를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를 생각해보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마 나도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처럼, 처음부터 수상했다고
말하며 비난의 돌을 던졌을 것이다.
이국 땅에서, 동일민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이중, 삼중의 이방인의 생활이 어떠했을까?
집 옆 슈퍼마켓의 주인아저씨 같았던 중년의 인상이, 이제는 안경너머로 보이는 눈빛과 벗겨진 머
리가 노년의 인상으로 바뀐 지금도 그는 말한다. 왜 가망이 희박한 일류대 진학, 부자가 되는 일에
목숨거는 대신 모두가 힘을 합쳐 학벌사회를, 돈만이 우선시되는 가치를 바꾸는 일에 앞장서지 않
느냐고.
내가 좋아하는 홍세화씨와 시인 마종기씨는 항상 고국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지금 홍세화씨는 고
국에 돌아와있고, 마종기 시인은 고국에 영구귀국하려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
다. 둘의 차이나 그 배경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다만 홍세화씨는 꼬뮌의 전사처럼 되려는 것일
까? 비난과 증오대신 사랑을 알고 싶었던 그의 바램이 실현될 것인가? 암담함 속에서도 한줄기 빛
을 찾아 나선 그의 행보는 아름답다.
-사족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책의 뒷표지에 유홍준씨와 고종석씨의 소개가 실려있었다. 당시 유홍준
씨는 알았으나 고종석씨는 몰랐던 나는 이 사람은 누군데 유홍준씨와 같이 여기 책의 소개를 실을
수 있지? 했었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 보니 고종석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