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우파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니 나는 우파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크게 바라거나 반기지도 않으니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냥 소 닭보듯 무심히 본다- 우파다.

지난 시절에 나는 좌파였다. 초중고교 시절에... 그 시절 나는 왜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많은지 이것은 너무나도 잘못되었다고 치를 떨며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본 사회는 너무 부조리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물경제 시절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이 사회를 정말이지 바꾸고 싶었다. 간절히 원했다. 정말로 간절히!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라는 것도 없어졌다. 그의 책속의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그런거지 뭐' ,'세상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할때 그냥 그런가? 저런가? 무덤덤히 쳐다볼 따름이다.

왜? 나도 모르겠다. 산 것도 없는 인생살이에 벌써 지쳤나? 김산과 체 게바라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은 쉬우나 현실에서 김산과 체 게바라가 되는 것은 지난하다는 김규항의 말대로, 나는 김산과 체 게바라를 좋아하고 존경하나 그렇게 살 자신은 없다. 그런 운명이 다가온다면 어쩜 도망가버릴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정의를 따르건 나는 우파다. 그런데 나는 왜 골수좌파, 아니 B급좌파 김규항을 좋아하는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그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인가? 한 때 내가 꿈꾸었던 것을 아직도 꿈꾸는 그에 대한 꿈인가? 돌팔이 의사에 대한 글, 어떤 페미니즘에 대한 글, 나는 그의 냉철한 분석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에 넘어갔나보다.

좌파조차도 자식이 좌파 인텔리가 되는 것을 꿈꾸지 대학도 나오지 않은 노동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말은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그런 세상에서도 대다수가 정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포기하지 못하는 자식 문제에서조차도 초연한 다큐멘터리 감독 김동원씨의 얘기는 나의 머리를 둔기로 맞은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나는 우파다. 좌파를 좋아하는, 그러나 좌파를 좋아할  자격도 없는 창피한 우파다. 내 신랑은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도 욕망에 들끓는 나를 비난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너무 나갔구나, 한 발 들어와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는다. 좌파의 책을 이런 용도로 써먹는다니 좌파들은 나를 비난할 것이다. 그래, 나는 비난받아 마땅한 우파다.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이런식으로 소비하다니 정말이지 창피한 우파다. 그러나 나는, 좌파로 살 자신은 없으나 좌파를 일회용으로 소비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 좌파를 너무나 좋아하는 창피한 우파다. 김규항은 얘기한다. 좌파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올것 같냐고 의심하고 회의하는 우리에게 중세속으로 들어가보라고. 그 깜깜한 동굴속에서 근대의 불빛이 보이냐고. 세상은 실현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에 의해 바뀌는게 아니라 혁명을 꿈꾸는 사람에 의해 바뀐다고. 그는 내가 한 때 높이 평가했던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 그들은 더이상 혁명을 꿈꾸지 않고 미미한 것들에만 신경쓰는 활동가들이니까.

그는 내 인생의 빛이다. 내게는 너무 찬란하고 뜨거워서 그냥 멀리서 보게 되는 빛. 물론 그는 자신을 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싫어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빛으로 보기보다는 같이 손잡고 투쟁하고 혁명을 꿈꾸는 동지를 원하겠지. 하지만 너무나 부끄럽게도 내 깜냥이 안 된다. 안되는게 아니라 안되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고? 아아, 정말이지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야할까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10-23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30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2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31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2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같은 책을 여러번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읽을때마다 와닿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언제 읽었냐에 따라서도 감상이 달라지고 이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번에 아리랑을 읽으니 이전에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일본의 만행이 크게 와닿는다. 민족의 말살을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말을 못쓰게 하고 징용에 끌고 나가고 정신대를 보낸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는 그 이외의 사실도 시시콜콜히 알려주고 있다. 소작의 비율을 높여서 땅을 팔게 한 뒤에는 다시 소작의 비율을 낮추고, 각종 농약이니 기계의 사용을 강요하고 그 비용을 전가시키고, 토지조사 사업에서 멋대로 민중의 땅을 국가 -합방이 되었으니 일본- 의 소유로 만들어 일본 사람에게 싼 값으로 불하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 일본에 흘러들어간 조선사람에게 일본의 지진으로 인한 화재까지 책임을 덮어씌우며 참살하고, 소소한 잘못을 징역을 살리겠다고 위협해 각종 토목공사나 철도공사 현장에 투입시키거나, 심지어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까지 보내고 ... 그들의 만행은 너무 많아 기억하기도, 적기도 힘들다.

처음엔 굳은 신념으로 무장했던 사람들도, 빼앗긴 땅을 찾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차츰 지루한 일제치하에서 변심하고 친일하기 위해 안달하는 속에서도 굶어가면서도 꿋꿋이 신념을 지킨 사람들은 놀랍고도 아름답고, 한편 무섭다.

보부상으로 친일하면서, 의병을 밀고하면서 부자가 되는 장덕풍과 그의 아들 형사 장칠문은 소설이 끝날때까지도 망하지 않고 오히려 정미소, 미선소까지 가진 거부가 된다. 장칠문과 그의 자손들은 지금도 이 대한민국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허나 한편 인심 잃어가면서 친일하고 돈만 긁어모으던 몰락양반 이동남과 중인 아전출신의 면장 백종두는 그 재산을 다 탕진하는 것을 보니, 만석꾼이었으나 노름으로 재산을 다 말아먹은 정재규와 소작을 빌미로 소작인의 마누라까지 탐해가며 돈을 모으던 정상규가 그냥 허무하게 죽는걸 보면 돈이란게 별로 큰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욕먹으면서 모았으나 당대에, 기껏해야 아들대에 다 말아먹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너무 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경식씨의 책에서 일본이 재일조선인에게 가하는 지독한 차별에 분노했는데 -재일 조선인들이 지금 왜 거기서 살게 되었단 말인가? 누구때문에  만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한인들이 건너가서 차별받고 살게 되었단 말인가? - 이 책을 읽으니 그 구체적이고도 수많은 차별과 억압의 사례에 사과하지 않는, 망각뿐 아니라 왜곡하려 하는 일본에 분노가 치민다. -심지어 그들은 머나먼 섬으로 징용끌고 나가서는 일이 끝나자 조선인 노동자들을 귀국시키기는커녕 폭살하기까지 한다- 일본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남의 자녀에게 피해를 주면 사과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시치미떼라고 가르치는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미안해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잘했다며 더 하라고 자식을 두둔하는가?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모르듯이 대다수 일본인들도 모를 것이다. 그 부끄러운 치욕의 역사를.-치욕의 역사는 우리가 아니라 가해자인 그들이다- 그들은 공부해야 한다. 그 전에 우리가 공부하여 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이대로 유야무야 잊혀지게 할 수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어보나?

 

20대때 신문지상의 광고를 보고 끌려서 사보았던 것이 이 책이 처음 나온 95년, 지금은 홍세화씨가

터무니없는 남민전 사건으로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되어야했던 그 때보다 더 나아졌는가? 달라졌

는가?

 

홍세화씨는 학자도 저널리스트도 문필가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글은 학자의 글이 주지 못하는

깊이가 있고, 저널리스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사회의 분석이 있고, 문필가의 글보다도 더욱 아름답

다.

 

그는 사랑을 심어주기 전에 증오와 반대만을 심어주는 사회에 대항했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

런데 그는 그것때문에 꼬레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꼬레에서 받아주지 않아 그는 빠리에서 택시운

전을 하며 살아야 했다. 갈 수 있는 나라는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 그의 조국 꼬레는 그의 사랑

을, 신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않으려 했고 그에게 빨갱이의 낙인을 찍었다. 그가 행동으로 옮긴 일

이라고는 단지 유신에 반대하는 삐라를 뿌린 일 뿐이었다. 다른 사회에서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유신체제하에서는 사형을 당하고, 종신형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홍세화씨는 망명을

신청하는 자리에서도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처음 읽었을 때도 눈물을 흘렸지만 다시 보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부분은 엠네스티에서 인

권후진국으로 선정한 30개국에 한국도 자랑스럽게(?) 들어가 있고, '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에

연루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김성만군을 풀어주라고 만든 랩의 가사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

랩은 프랑스의 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 직접 만든 가사였다.

 

- (전략)김성만, 김성만의 이름으로, 김성만의 이름으로.

 한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어요.

 그럿은, 그것은 안 좋아요. 그것은 안 좋아요.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고 감옥에 처넣는다면,

 그것은, 그것은 안 좋아요. 그것은 안 좋아요.

 김성만, 김성만의 이름으로, 김성만의 이름으로.

 우리는 김성만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대통령 각하.

 내가 당신에게 김성만을 석방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단 하나의

잘못은 의견이 달랐던 것뿐인데, 고문에 못 이겨 끝내 간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여 끄집어낸 자백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

다. 유별난 법으로, 유별난 재판으로, 예외없는 부조리의 연속으로, 수백일 동안 단말마의 고통을

겪게 하고 사형까지 말하더니 종신징역을 살리고 있습니다. 부당하게 겪고 있는 그의 괴로움에, 고

문에, 그리고 그의 가족과 벗들이 겪는 끝없는 기다림의 고통에....나는 인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김성만을 석방하라고. (후략)-

 

처음에는 홍세화씨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람도 뒤돌아서서는 의심하고, 없는 말을 지어서 하고, 오

랜만에 만난 동창도 나중에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나는 지금은

그들을 비난하지만 내가 그 당시 홍세화씨를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를 생각해보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마 나도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처럼, 처음부터 수상했다고

말하며 비난의 돌을 던졌을 것이다.

 

이국 땅에서, 동일민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이중, 삼중의 이방인의 생활이 어떠했을까?

 

집 옆 슈퍼마켓의 주인아저씨 같았던 중년의 인상이, 이제는 안경너머로 보이는 눈빛과 벗겨진 머

리가 노년의 인상으로 바뀐 지금도 그는 말한다. 왜 가망이 희박한 일류대 진학, 부자가 되는 일에

목숨거는 대신 모두가 힘을 합쳐 학벌사회를, 돈만이 우선시되는 가치를 바꾸는 일에 앞장서지 않

느냐고.

 

내가 좋아하는 홍세화씨와 시인 마종기씨는 항상 고국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지금 홍세화씨는 고

국에 돌아와있고, 마종기 시인은 고국에 영구귀국하려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

다. 둘의 차이나 그 배경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다만 홍세화씨는 꼬뮌의 전사처럼 되려는 것일

까? 비난과 증오대신 사랑을 알고 싶었던 그의 바램이 실현될 것인가? 암담함 속에서도 한줄기 빛

을 찾아 나선 그의 행보는 아름답다.

 

-사족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책의 뒷표지에 유홍준씨와 고종석씨의 소개가 실려있었다. 당시 유홍준

씨는 알았으나 고종석씨는 몰랐던 나는 이 사람은 누군데 유홍준씨와 같이 여기 책의 소개를 실을

수 있지? 했었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 보니 고종석씨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향기 2007-09-0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은지 한 10년 된거 같네요.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미즈행복 2007-09-04 00:48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도 10년전의 기억이 그대로더군요.
김성만의 랩을 읽을때는 눈물이 마구 나더라고요.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는 한 희망이 있겠죠?
사회가치나 연대를 얘기하는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그 자리를 돈만이 메꾸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도 부끄러워요.

비로그인 2007-09-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정판이 나왔네요 :)
저도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보관함으로 고고씽!

미즈행복 2007-09-04 00:50   좋아요 0 | URL
홍세화씨의 '한강은~' '빨간 신호등' 등의 다른 저작들도 다 읽었지만, 그리고 다들 너무 시의적절하고 의미있는 책이지만, 그래도 저는 이 책이 제일 좋아요. 문학청년(?)의 느낌도 나고...
우선 글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21세기각시탈 2011-08-1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의 네이버 블로그에 본문 글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하고, 주소를 첨부해서 담아갑니다.

널리 퍼뜨려야할 좋은 글이네요
 
동주 열국지 1 - 서주가 다하고 동주가 서다, 완역 결정본
풍몽룡 지음, 김구용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전에 한번 완독한 후, 한참 놔두고 있다가 우울해서 다시 집어들었다. 이 책을 선택해서 이곳

에 가지고 온 이유는 물론 재미도 있지만 이야기가 길고 내용이 방대해서 한 두번 읽고서는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즉, 여러번 읽고 또 읽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책을 가지고 올 수 없었

던 내게 가장 효율적이리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판단은 정말이지 적중했다. 물론 수년전에 읽어서 시차가 있긴 하지만, 다시 읽어도 여전

히 누가 누군지 아리송하고 헷갈리기 때문이다. 춘추 전국시대를 다 기술했으니 나오는 사람의 수

는 얼마나 많을 것이며, 나오는 사건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이냐!

 

예전에 삼국지를 한번도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고, 삼국지를 많이 읽은 사람과도 역

시 세상을 논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읽지 않은 사람과는 더불어 세상을 논할 필요가 없고, 많

이 읽어서 달통한 사람과는 논해봐야 수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중화사상에 입각한 중국 사람들의 소리겠지. 열국지 역시 마

찬가지다. 수많은 고사성어의 유래나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은 소소한 재미이지 어찌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랴. 다만 여기 나오는 무궁무진한 인간군상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은 괜찮은

수확같다.

 

나는 소설을 좋아했고, 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그리고 내가 소설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사

람을 보는 눈이 생겼달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수많은 사람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

하게 되므로써 약간이나마 성격이나 행동에 대해 짐작을 할 수 있고, 유형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는것 말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과 시대가 다르고 -자그마치 2000년도 더 된 이야기가 아닌가!- 하

니 도덕율도 다르다. 충신과 열녀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것이 어찌 오늘날과 같을 수 있겠는가? 아

니, 오늘날은 고사하고 당대에도 임금을 죽인 행위도 어떤 때는 용납 안 되는 무도한 일인가 하면

어떤 때는 제위를 바로 잡는 의거이기도 했으니 그게 어찌 하나의 일관된 기준에 의한 서사이겠는

가!

 

충신과 간신의 구별도 힘들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야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것이 쉽겠지만 내가

그 당시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말이 나를 위해 진정으로 간하는 말인지, 간사한 소리인지 도

대체 어찌 구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악공과 미녀를 바치는 행위가 나를 정사에서 멀어지게 하려

는 간교인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마음을 순화시키라는 것인지 어찌 알겠느냔 말이다. 걸핏하면 모

여서 충성을 맹세하고 짐승의 피를 바르는 회를 하지만, 돌아서면 서로 맹약을 어기고 침략을 일삼

고 뒤에서 딴수작하고 이간질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를 바가 없다. 역사를 알고 현세의 교훈으

로 삼으라고 하지만 여기 나오는 수많은 제후들도 선대의 일을 보고도 자기도 또 실수를 한다. 선

대에서 차자를 세자로 삼아 난이 일어나는 것을 빤히 보고도 애첩에 속아, 간신에 넘어가 서자를

세자로 책봉해 난을 불러일으킨다. 그러고보면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다 그냥 하는 소

리인가? 같은 일의 무수한 반복에 다름이 없는 것일까?

 

소진이 부귀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동생과 형수가 그를 박대했으나 -물론 그가 농사나 지으

라는 어머니의 권고를 어기고, 집안의 돈을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으

나- 그가 세도를 얻고나자 가족의 태도가 돌변한다. 부귀가 없으면 형제간도 멀어지고, 부귀가 있

어야 남도 몰려드는 것은 동서고금에 다를바가 없다고 당시에도 평하지 않았는가?

 

본인이 뜻이 박하여 뭔가 대단한 교훈은 찾을 수가 없었고, 인간만사가 동서고금에 다를바가 없다

는 사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구나 하는 한탄, 그리고 여러가지 흥미로운 인

간상에 대해 재미를 느꼈다는 것이 소회이다. 총 12권이므로 완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나

재미있어 그 과정이 지루하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문자의 '디아스포라' 라는 말은 본개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전상 의미이고 오늘날

디아스포라 라는 말은 유대인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

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 서경식씨는 말한다.

나는 서준식씨의 옥중 서한을 읽고 이 형제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지만, 이 책과 동시에 읽은 서

경식씨의 '난민과 국민사이'를 읽기 전까지는 재일 조선인의 비참한 처우에 대해서도, 그들의 상황

에 대해서도 조금도 알지 못했다. 책에서 설명된 재일 조선인의 상황은 정말이지 힘들다. 그들은

얼마전까지도 교원도 되지 못했고, 공무원도 될 수가 없었다. 일본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는 않으나 사실상 힘들고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재일조선인의 회사에 취업하고 있었다.

그런 경제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귀화하지 않은 경우 항상 외국인 등록증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일

본국민이 아니므로 한국 여권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할 경우 일본에 재입국시 허가증도 가지고 있

어야 한다. 일본에 거주하는데 일본 입국의 목적을 기입해야 하는 그런 경우인 것이다. 그래도 한

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낫다. 처음 해방되고 재일 조선인이 일본에 신고할 때는 우리나라에 정부가

없어서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이라는 민족의 이름을 기재했는데 나중에 북조선과 남한으로 정부가

갈리면서 북조선이 좋아서이건, 그냥 귀찮아서건 조선의 국적을 그대로 남겨둔 사람은 북한과 수

교가 되지 않았으므로 생활의 제약이 훨씬 많다.

 

책을 보면 중요한 얘기들이 많다. 70년대의 인도적인(?)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환은 사실상 인도적

인 목적이 아니라 일본에서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 재일 조선인을 인도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귀

찮아서 북한으로 처리한 것이라는 비인도적인 일본의 처사, 재일 조선인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식

민지 조국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거나, 조선땅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일본으로 가 일본인의 반

값도 안되는 저임금으로 갖은 멸시와 학대속에서 일본의 밑바탕을 지탱해 온 사람들인데 일본 정

부는 자신의 책임은 회피한 채 그저 무시하고 방기하고 아니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들... 일본에서

건 한국에서건 참정권은 없으면서도 일본에서 납세의 의무는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들...

서경식씨는 애써 말하고 있다. 자신은 재일 조선인이라고, 국가를 의미하는 북조선의 조선인이 아

니라 민족을 의미하는 조선인이라고. -그러나 한편 스탈린의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 속에 나타나는 심리 상태의 공통성을 기초로 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견고한 공동

체'라는 정의에 공황상태를 보인다. 그는 조선민족이나 모어는 일본어이고, 경제적으로도 일본 국

민경제의 그물망에 짜여있다. 스탈린은 더 나아가 이들 특징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만큼 민족은

민족이 아니게 된다고 주장했다니 그가 민족으로서의 자격을 주장할 수록 그 민족의 틀에서 벗어

나는 분열을 맛보게 된다고 말했다. 허나 그는 다시 '문화'를 자격조선의 필수로 꼽는 이러한 정의

는 '문화'로 부터 분열된 자들이 스스로 동태적이고 창조적인 문화관을 단련하는 일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그는 조선인이나 불행히도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모국어를 제대로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고, 모

국의  정서를 알지 못하며, 그의 모어는 일본어이다. 그가 일본에서 에세이스트 상을 받은 '소년의

눈물'은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그의 슬픈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책은 일본어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모어에 대해서는 다른 많

은 사례들이 이 책에 언급된다. 독일어를 모어로 배운 유대인 파울 첼란은 언어에 능통해 여러 나

라 말을 할 수 있었으나 시는 모어인 독일어로밖에는 쓸 생각을 못했다는 얘기는, 유대인이라는 이

유로 독일에서 배척받고 종전후 자신의 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리에서 산 그의 우울한 삶에 더

욱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책의 후반부는 많은 디아스포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로 예술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수많은 디아스포라에 대해 알수록 제국주의의 잔혹함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꿈꾼다.

모든 조선인 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모국에 거주하지 않아도 참정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사

회를, 나아가 디아스포라들이 더이상 박해받고 살지 않는 사회를...

 

유목민의 세상이 올거라고, 전지구적인 이동이 쉬워지면서 국가와 민족의 의미와 경계는 불분명해

질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이제 갔다. 차별은 더욱 공고해진다.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나는

뭘 할 수 있는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8-20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추천합니다 행복님. :)
보관함에 담을래요.

미즈행복 2007-08-21 10:3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이 책은 읽으시면 후회없으실 거예요.
저는 이 형제들을 너무 좋아해요.
서승씨는 잘 모르겠고, 서준식씨는 글 쓰면 무척 잘 쓰실 것 같은데 본인이 글 쓰는데 관심없고 인권운동사랑방 운영에만 집중하시는 것 같아서, 이분 형제들 중 글 읽을 수 있는 분은 서경식씨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서경식씨도 글을 너무 잘 쓰실 뿐 아니라 그 글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좋아해요. 몇 권 안 읽었어도 다 너무 좋았어요. 특히 '소년의 눈물'도 제가 너무 좋아해요. 시간나실 때 한번 읽어보심이...

책향기 2007-08-2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 오늘 처음 들어와서 님의 좌충우돌 미국 생활도 알게 되었고 또 리뷰도 잘 읽고 갑니다. 자주 들를께요^^

미즈행복 2007-08-29 12: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제가 워낙에 반미감정에 투철하다보니(?) 편견을 조장할 수 있으나, 어쨌건 영어를 못하는 평범한 아낙의 입장에서는 그리 보입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 읽는게 유일한 낙이 되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기를 쓰고 본다는...
하지만 자주 우송받지는 못해서 주로 지난 날들의 책을 보죠. 님께서 새로운 책 많이 소개해주세용~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