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3월말에 왔습니다. 신랑은 작년 여름에 먼저 왔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미국 오기를

싫어했던 저는 밍기적 거리다가 올 봄에 왔습니다. 이즈음에서 하기 싫은 고백을 해야겠군요.

 

제 신랑은 원래 물리학도였습니다. 근데 저랑 사귀면서 제가 경영학도로 바꿔놓았지요. 철없던 그

때, 제게 물리학도는 장래가 좀 안좋아보이는 그런 존재여서 장래가 촉망되는(?) 경영학도로 바꾸

어 놓은 것이었죠. 여기서 제 업보가 시작됩니다.

 

경영학도가 되어 회계법인에 취직한 신랑은 살인적인 업무량과 하는 일의 비호감이 겹쳐져서- 주

말에도 나가서 일했고 감사기간에는 새벽 2~3시가 기본귀가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할까봐 후배가 해 놓은 것도 다시 보고 하는 꼼꼼한 성격때문에 일이 더 늘었고요.

언젠가 한탄조로 제게 말하더군요. 회계사가 뭐 하는 직업인지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거라고.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물리학도 하나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이지요- 결국은

작년에 그만두고 미국에 공부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몇년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

이지요.

 

여기 와서 저는 너무 우울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더

구나 영어도 못하고!!! -영어는 제가 너무 싫어하던 과목이었지요- 겨우 신랑 친구 부인 하나 사귀

었는데 그녀는 지난달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고, 또하나 알게된 신랑 선배 부인은 자기가 대학원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그녀가 매주 금요일 다른 한국인 5명과 함께 애들의 플레이 데이트를 한다

는 것을 알고 저는 유치원도 마감이라 못가고 심심해하는 우리 애들을 위해 그 그룹에 끼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미 엄마 6명에 애들 9명이라 너무 인원이 많다며 난감해하는 그녀를 공략하고, 그룹

내 다른 엄마를 개인적으로 소개받아 하나 둘 씩 알아가다가 결국 지난달 그 그룹에 공식적으로(?)

끼게 되었지요. 한명이 여기서 자기 공부를 시작해 다음달에 박사과정하러 이사를 가서 공석이 생

기게 되어 끼게 된 것이지요. -제가 거주하는 곳은 학교 근처라 여기 있는 한국 사람은 다 유학생

가족입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수다 떨 상대가 생겼고, 애들도 놀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이 집, 저 집을 돌

아다니다가 이번주 드디어 저희집 차례가 되었습니다. 전날부터 고구마 완자전과 잡채, 감자 샐러

드를 준비하고 미숫가루 타놓고 애들 과자와 매일 바이오 야쿠르트까지 사놓고 준비를 했죠. 애들

에게 장난감도 나눠쓰라고 당부하고요.

근데 언제 친구들 오냐며 매일 기대하던 딸이 점차 딴지를 걸며 걸핏하면 울고 친구들에게 자기 물

건도 못 만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한 남자 아이는 저희집에 오기 싫다고, 제 딸이 물

건을 못 만지게 하니 나중에 자기 집에 오면 자기 물건도 못 만지게 하겠다며 불평을 해댔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간 후 너무 화가 난 제가 거의 광분상태로 딸을 몰아붙였습니다. 히스테리컬하게 소

리지르고, 왜그랬냐며 나무래고 거의 발악을 했습니다. 너무 너무 화가 나 신랑에게 전화해 집을

정리하게 하고 저녁도 안 차리고 울다 지쳐 잠든 아이들을 팽개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잠시 잠이 깨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애들 보기가 싫어 아침도 안

줬습니다. 그냥 책을 봤습니다 .나중에 신랑을 통해 알게된 딸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애들이 영어

말만 해서 자기가 같이 놀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 친구 만들어주려고 그 모임에 끼려고 노력했는데 그 애들도 한국애들임에도 불구하고 여

기서 산 지 벌써 짧게는 3년에서 5년씩 되어가니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더 편안하고, 그러니 한국애

들 만나서 노는 모임에서도 영어로 말하며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딸에게는 미국 애들과 차

이가 없겠지요. 영어를 못하고 못 알아들으니 자기만 왕따되는 기분이었겠지요.

 

안그래도 share 하지 않는다고 비난 들은 겨우 6살의 딸에게 한 제 행동이 옳았나에 대해 자기환

멸이 들던터에 들은 그 얘기는 저를 너무 슬프게 했습니다. 물론 여태까지 다른 집에서 놀 때도 그

애들은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쓰긴 했습니다. 근데 그 모임에서 특별히 궁짝이 잘 맞는 두 여자애

가 있는데 여태까지는 둘 중 하나가 무슨 이유엔가로 번갈아 빠졌었는데 이번주에는 모처럼 만나

자기들끼리 더욱 영어만 쓰면서 신나게 놀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아끼는 공주 스티커도 주

고 다 나눠준 우리 딸 입장에서 점차 화가 나서 다 못 만지게 하게 된 것입니다.

 

딸의 입장도 이해하고, 그래도 친구 없이 혼자 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눠쓰는 법도 배우고 해

야하니 모임에도 가야할 것 같고, 잘 다독이지 못하고 광분한 제 자신도 너무 싫고, 무슨 영화를 보

자고 여기 와서 이렇게 살아야하나 싶기도 하고 -다 소싯적 제 판단 착오로 인한 업보이니 제가 무

슨 말을 하겠습니까!- 너무 우울한 하루입니다.

 

부모노릇은 너무 힘듭니다. 특히 성격 급하고 더러운 저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더!!!

 

여기 올 때 애들 영어 배워오겠다고 부러워한 사람들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한국서 영어 배우는게

미국서 애들이 국어, 수학배우는 것 보다 쉽다고.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이 6살 애에

게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면서 배우게 할만큼 중요한 것인가요? 물론 저희는

애 영어 배우게 하려고 온 게 아니니 때려치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 가야하고, 한

국 학교 보내야하니까 저는 나중에 애들 국어 수학도 가르쳐야 합니다. 안그래도 지금 유치원에 겨

우 주 3일  하루 3시간 가는 것도 매일 울면서 가는 제 딸이, 한국서 한국 유치원 다니고싶다는 제

딸이 언제 한국 친구들과 영어로 말하며 노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까요?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이 더욱 그리워지네요. 신랑도 좋아서 온 게 아닌, 먹고 살

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고 온 이 곳, 모두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이 곳, 다른 사람들은 어

떻게 저와 달리 이 곳에 잘(?) 적응하고 살아갈까요?

저는 여러분이 있는 그 곳이 너무 그립습니다.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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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7-0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의 우울한 영어 소식을 들으니 또 이넘의 나라 영어광풍이
거기까지 가서도 부모들과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미는군요.
근데 그 나라가서 그 땅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니 또 뭐라 말씀을 드릴까요.
어린 딸내미도 딸내미지만 님께서 먼저 적응을 잘 하셔야 할텐데 참 난감합니다.
쉬운 말로 힘내세요! 하는 말씀은 드리지 않을래요.
살다보니까-이 과정이 딱히 쉽지 않죠-살아지더라는 그런 말 있잖아요.
힘드시겠지만 맛난 빵 덩어리 하나 구우셔서 가족들끼리 웃는 식탁을 기원해봅니다.

미즈행복 2007-07-08 13:30   좋아요 0 | URL
님의 따뜻한 글이 제 원기를 회복시켜주네요.
다들 그러죠. 애들은 영어 금방 배운다고...
어른도 스트레스가 많은데 그 어린애들은 오죽할까요?
근데 제 성격이 뭣같아서 따뜻한 위로가 나가는 대신 항상 짜증과 화가 먼저 나서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로 뒤돌아서 매일 후회를 하네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훈련받아야 할 덕목같아요.
근데 애들 노는 것을 부모가 강제할 수는 없지만, 한글을 사용하게 해야하는 것 아녜요?
어차피 영어는 유치원이나 학교가면 매일 쓰는 건데, 한국 친구 만나는 모임인데...
한 모녀는 자기들끼리도 영어로 말하니 제가 할 말은 없지만...
저는 영어를 못해 반미라서 그런 친미주의자들과 놀아야 하는것도 짜증입니다.

비로그인 2007-07-0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마실 다니시다 보면 미즈행복님처럼 좋은 부모되기에 고심하시는
많은 좋은 엄마들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책도 많이 읽고, 재주도 많으신 분들이라
전 언제쯤 서재에 계신 엄마들처럼 수퍼우먼이 될 수 있을까 생각도 합니다.
미즈행복님이 계신 알라딘서재는
그래서 참 좋은 서재라는거 ^^(광고쟁이 같네요 ㅋㅋ)

미즈행복 2007-07-09 22:51   좋아요 0 | URL
저는 좋은 엄마는 못되어요.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성격이 너무 급해서.
그래서 항상 저지른 뒤에 후회를 하지요.
아마 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을거예요.
부모, 자식관계를 떠나 한 인격으로 존중해야 하는데 말예요.
그래도 님들이 계셔서 정말 좋네요.
마태우스님 서재 소개글처럼 님들이 계셔서 외로움이 덜어져요.
이 따스한 온라인 공간이 제게 너무나 소중하네요.
체셔님의 서재가 제 놀이터인건 아시죠?
 

아시는 분은 다 아시지만 제겐 한국나이 6살 된 딸과 4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여태까지 키우면서 보니 어쩜 그리도 다른지, 딸은 정말 거의 범생이입니다. 착한 신랑의 성격을 닮아서 유순하고 불같은 성격을 가진 엄마밑에서 태어난 탓에 엄마 눈치도 잘 보고 알아서 기고 있지요. 밥도 좀 늦게 먹으면 바로 화내는 엄마를 가져서 밥 먹을때 딴 짓 않고 잘 먹고, 아파도 이도 잘 닦고 -아이들은 이닦기를 싫어하잖아요- 하라는 대로 잘 하는 편입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어릴때도 어찌나 순했는지, 그 땐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우리 딸 얘기를 하니 다들 그렇게 순한 애가 있냐며 놀랐습니다. 우선 밤에 자면 거의 깨지 않고 잘 잤고, 깨도 젖 물리면 바로 잤습니다. 낮잠도 기본 2시간에서 4시간까지도 잤고, 별로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 잘 뒹굴거리며 놀아 한번도 업어준 적도 없습니다. 그게 순한 애인지도 모르고 저는 어렸을 때 딸이 유모차 타기를 싫어한 것을 가지고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모른답니다..

아들? 말도 마세요. 백일이 되면서부터 약간의 아토피증세가 나타나더니 그때부터 새벽에 하루에도 기본 3번은 깨는 겁니다. 딸과 마찬가지로 아들도 모유를 먹였는데 딸과는 달리 자다 깨서 젖을 물리면 다시 먹다 자기는 커녕 두 발을 힘껏 차면서 울어대는 통에 그때마다 업어야했습니다.  10나 되어서 자서 겨우 아침 7시에 일어나는데 그 사이에 3번을 깬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한 1시쯤 깨고, 3시쯤 깨고 5시쯤 깨는 겁니다. 업으면 다냐고요? 천만의 말씀!!! 집에서 업고 있으면 다리를 역시 힘껏 차면서 보챕니다. 나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여름이고, 한겨울이고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자다 깨서 바로 업고는 그 위에 망토같은 것을 둘둘 동여매고 말이지요. 나가서 30분여 걸어다니면 다시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집에 와서 내려놓고 자다가 또 깨면 또 나가서 돌아다니기를 하루에 3번씩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낮잠은 잘 잤냐고요? 천만의 말씀! 이런 애가 낮이라고 잘 잘리가 있습니까? 겨우 1~2시간 자지요. 밤에도 그렇게 깨면서 잘 안 자놓고.

그럼 잠 트러블만 있냐고요? 역시 속 편한 소리. 크면서 무슨 고집은 그리 센지, 도대체가 제 고집대로 안되면 바로 발 구르고 난리가 나는 겁니다. 이 고집불통 때문에 식당에서도 시끄럽다고 쫓겨나고, 심지어 미국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승무원이 뒷자리에 가 있으라고 제 좌석에서 쫓아(?)내더군요. 여기 와서 미술수업을 하나 듣고 있는데 거기서도 풀이나 그런 것의 사용이 제 뜻대로 안되면 바로 찡얼거리며 화내고 고집을 피워서 제가 밖으로 데려가기 일수입니다. 집에서는 어떠냐고요? 뺀질거리면서 밥을 안씹고 우물대며 한시간이나 걸려 먹고, 이빨을 안 닦으려고 도망다니고 도대체 그 기행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고집 피우는 것이야 솔직히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고집은 좀 있으니까요. 하나 그 뺀질거림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정말 모르겠네요. 얼굴에 착함이라고 써 있는 신랑과는 전혀 멀고 먼 얘기이고, 저도 부모나 선생 말에 바로 순종하는 권위복종형의 인간인데 말예요. 그러니 매일 큰 소리가 나고 화를 내게 되고 저도 결국은 울게 되고 이렇게 언해피엔딩으로 끝나고야 만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이 도시 안중에 없는듯 바로 다시 뺀질 모드로 돌아가는데는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겠습니다. 제 신랑은 얘를 정치인을 시켜야 한다고 매일 그럽니다. 제가 봐도 정말 딱입니다. 변덕도 죽끓듯 해서 먹는다고 했다가 안 먹는다고 하고, 다시 먹는다고 하며 제 약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말입니다. 특별한 태교를 한 것도 없지만 이렇게 뺀질거리는 애가 나올만큼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말예요. 상품이라야 반품을 하든, 리콜을 하든 하지요.

다들 아들 키우기가 딸 키우기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뭔가요? 아들들은 이렇게 다들 엄마 말을 잘 안듣는 존재인가요? 누구는 또 그러더라고요. 5살만 넘으면 의젓하고 점잖아지니 좀 참고 기다리라고. 그러나 뺀질거림은 더해진다고. 정말인가요? 종족의 문제인가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일반화시키면 안되는 제 아들만의 문제인가요? 아들 좋아하는 사람은 왜 아들을 좋아한답니까? 아들때문에 안그래도 성질 더러운 제 성질이 더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저란 인간이 성찰이 안되는 인간이라 수양이 되는 대신 더 나쁜 성질만 갖게 되네요. 아, 알겠습니다. 모든건 수양이 모자란 제 탓인가 보네요. 여하튼 엄마 노릇은 정말 힘듭니다. 남들에겐 모르겠지만 제게는 정말이지 눈물나게 힘든 일입니다. 다 덮어버리고 앙앙 아기처럼 울고만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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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리 2007-05-0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우준이가 이 글보면 말 잘 들을거야! ㅋㅋ

미즈행복 2007-05-09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닉네임을 보니 누군지 모르겠네. 누군지 알려주세요. 언닌가? 글쎄, 그런 날이 올까?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집에서 자꾸 누나는 어쩌고 하는 식으로 비교의 말이 나오곤 하고, 매일 혼나도 캔디처럼 씩씩하고 꿋꿋하게 뺀질거리는걸! 하긴 그런 캔디근성이라도 없으면 매일같이 계속되는 나의 구박에도 저렇게 의연하게 뺀질댈 수는 없겠지. 이 글을 보고 말을 잘 듣는 대신 어려서부터 엄마는 누나랑 나를 차별했군 하면서 반항하려나? 차별은 아니고 그저 좀 힘들다는건데, 쩝~ 그리고 제 누나는 27개월에는 기저귀를 완전히 뗐는데 아직 29개월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도 못 떼고 있어. 말 하자면 하나 둘이 아니라 입만 아프지 뭐.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려는가? 도대체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하나는 보인다. 바로 "남보다 나은 사람"으로 키우려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남보다 나은 사람? 아니 도대체 남보다 나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낫다' 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남보다 나은 사람의 '나은' 의 뜻은 경제력이거나 학벌이기 쉽다 . 그럼 남보다 돈을 잘 벌거나 학벌이 좋으면 더 행복한가? 그건 아닐것인데 요즘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 기준으로 어느 학교 정도는 나와야...  이런 직업은 가져야.... 하는 잣대를 세우고 자녀를 거기에 맞추려는 것 같다. 그러면서 말한다. 조기교육이니 적기교육이니 맞춤교육이니를.

물론 자녀에게 훌륭한 교육을 받게 해 줘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인데 요즘은 그것을 부모가 대신 판별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어려움 없이 크게 하려고 하고,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게 하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며 돈타령이다. 어려움 없이 크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해 좋은가? 남들 가진 것을 다 가져야만 하는가? 누군가 어학연수를 초등학교때부터 간다고 해서 꼭 내 자녀도 그렇게 보내야 하는가?

난 절대 반대다. 난 어려움을 겪어보게 하고 싶다. 남들이 다 가진 것을 못 가져보는 경험도 해 봐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어려움에 기인하건, 교육철학에 기인하건-  고 생각한다. 결핍을 요즘 부모들은 싫어하는 것 같은데 나는 결핍이 삶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소위 '헝그리 정신' 말이다. 그리고 박완서씨 말대로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는 것을 알듯이 결핍이 있어야 충족의 기쁨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공연을 몹시 보고싶었다. 근데 내가 학창시절에 내 부모는 내게 그런 걸 해 줄 여유가 없었다. 이제 나는 자주는 아니어도 정말 생활비를 아껴 가끔이나마 내가 보고픈 공연을 본다. 그리고 너무 행복하다. 과연 어려서부터 부모가 여러 공연을 보여준 아이가 내가 느끼는 만큼의 행복을 공연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나보다 문화적 소양은 많을 지 몰라도 나만큼의 벅찬 기쁨을 느끼기는 아마도 힘들 수 있다. 그게 당연하니까 . 그리고 만약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좌절을 느끼고 불행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아이가 잘 되길 바란다. 부족함이 많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 아이의 인생이고 팔자이다. 부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일평생 부자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좌절이 왔을 때 헤쳐나갈 힘을 키워줘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안되는게 없는 부잣집 공주, 왕자로 키울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안되는게 있다는 것도 알게 해야하고 부모가 해 줄 수 없으면 내가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해야 한다.

이즈음 주위를 돌아보니 짜증이 난다. 다들 내 아이를 최고로 키우려는 극심한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 아이의 소질을 닦아주고 아이가 행복하게 자립할 수 있게 하라는 교육서보다는, 어떻게 하면 특목고에 갈 수 있고 소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지를 알려주겠다는 교육서(?-이게 교육인가)가 판치고 있다.  예전엔 입시지옥을 벗어나게 하려고 외국에 갔다면 이즈음엔 영어를 배워와 여기서 남보다 더 잘하라고 외국에 간다. 부모가 보여주는 세상이 전부라며 아이가 뭘 알겠냐며 자기 입맛대로 아이를 휘두른다. 자신은 일찍 자면서 아이보고는 벌써 자면 어쩌냐고 더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물론 공부하게 하려고 같이 안 자면서 있는 부모도 꼴불견이지만)

말세다. 다른게 말세가 아니라 이게 바로 말세다. 예전엔 다 저 먹을건 타고 난다고 믿었다. 근데 이젠 저 먹을걸 부모가 염려하며 이거 먹고 살라고 한다. 자녀는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내 맘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 잠시 내게 머물러 있다 가는 존재다. 내가 잠시 맡아 있는 것이다. 아~ 머리 아프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이상한 친구 사귀면 주관도 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남과의 비교만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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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기의 기억이 커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특히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엄마의 눈에 들려고 아이들이 애쓰는 것이 커서도 기억의 왜곡을 가져와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정말 욱하는 성격을 못 고치는 나쁜 엄마다.

나의 큰 딸은 이제 6살이 되었는데 편식을 한다. 편식을 하는 애들이 다 그렇듯이 먹기 싫으면 입에 넣고 10분이고 20분이고 계속 우물대며 씹기만 한다. 삼키기를 안하는 것이다. 한 5분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지켜보고 있지만 10분을 향해 가면 오만 짜증과 화가 폭발 직전 수준으로 가서는 급기야는 소리를 지르고 만다. " 유치원 안 갈거야? 도대체 밥 한 숟가락을 10분씩 먹는 애가 어딨어?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준다. "  그리고 씩씩대며 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난다. 그럼 착하디 착한 우리 딸은 울면서 나를 쫒아온다. 며칠전에는 나를 따라와서는 두손을 모아 비는 흉내를 내며 -정말 놀랐다. 난 그런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다고 껴안고 다독여주는 착한 엄마가 못 되는 나는 감정 수습이 아직도 안되어 그냥 외면하며 내 할 일을 하긴 했지만 그 날의 일은 정말 충격이었다. 엄마를 대하는게 아니라 남 대하듯 말하는 그 태도가 너무 안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고 한마디로 적응이 안 되었다. 나중에 손을 비는 행동을 어디서 배웠냐니까 유치원에서 누구가 그렇게 한다고 했다. 어휴...

여태까진 남이 혹시 볼까 창피해 안했는데 이제 남 생각할 겨를이 없고 나와 우리 아이를 위해 집의 모든 벽에 써 붙여야겠다.

"화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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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7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