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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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파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니 나는 우파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크게 바라거나 반기지도 않으니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냥 소 닭보듯 무심히 본다- 우파다.

지난 시절에 나는 좌파였다. 초중고교 시절에... 그 시절 나는 왜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많은지 이것은 너무나도 잘못되었다고 치를 떨며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본 사회는 너무 부조리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물경제 시절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이 사회를 정말이지 바꾸고 싶었다. 간절히 원했다. 정말로 간절히!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라는 것도 없어졌다. 그의 책속의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그런거지 뭐' ,'세상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할때 그냥 그런가? 저런가? 무덤덤히 쳐다볼 따름이다.

왜? 나도 모르겠다. 산 것도 없는 인생살이에 벌써 지쳤나? 김산과 체 게바라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은 쉬우나 현실에서 김산과 체 게바라가 되는 것은 지난하다는 김규항의 말대로, 나는 김산과 체 게바라를 좋아하고 존경하나 그렇게 살 자신은 없다. 그런 운명이 다가온다면 어쩜 도망가버릴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정의를 따르건 나는 우파다. 그런데 나는 왜 골수좌파, 아니 B급좌파 김규항을 좋아하는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그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인가? 한 때 내가 꿈꾸었던 것을 아직도 꿈꾸는 그에 대한 꿈인가? 돌팔이 의사에 대한 글, 어떤 페미니즘에 대한 글, 나는 그의 냉철한 분석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에 넘어갔나보다.

좌파조차도 자식이 좌파 인텔리가 되는 것을 꿈꾸지 대학도 나오지 않은 노동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말은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그런 세상에서도 대다수가 정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포기하지 못하는 자식 문제에서조차도 초연한 다큐멘터리 감독 김동원씨의 얘기는 나의 머리를 둔기로 맞은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나는 우파다. 좌파를 좋아하는, 그러나 좌파를 좋아할  자격도 없는 창피한 우파다. 내 신랑은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도 욕망에 들끓는 나를 비난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너무 나갔구나, 한 발 들어와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는다. 좌파의 책을 이런 용도로 써먹는다니 좌파들은 나를 비난할 것이다. 그래, 나는 비난받아 마땅한 우파다.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이런식으로 소비하다니 정말이지 창피한 우파다. 그러나 나는, 좌파로 살 자신은 없으나 좌파를 일회용으로 소비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 좌파를 너무나 좋아하는 창피한 우파다. 김규항은 얘기한다. 좌파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올것 같냐고 의심하고 회의하는 우리에게 중세속으로 들어가보라고. 그 깜깜한 동굴속에서 근대의 불빛이 보이냐고. 세상은 실현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에 의해 바뀌는게 아니라 혁명을 꿈꾸는 사람에 의해 바뀐다고. 그는 내가 한 때 높이 평가했던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 그들은 더이상 혁명을 꿈꾸지 않고 미미한 것들에만 신경쓰는 활동가들이니까.

그는 내 인생의 빛이다. 내게는 너무 찬란하고 뜨거워서 그냥 멀리서 보게 되는 빛. 물론 그는 자신을 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싫어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빛으로 보기보다는 같이 손잡고 투쟁하고 혁명을 꿈꾸는 동지를 원하겠지. 하지만 너무나 부끄럽게도 내 깜냥이 안 된다. 안되는게 아니라 안되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고? 아아, 정말이지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야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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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3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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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0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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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2 06: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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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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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2 0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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