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갑자기 밥하는 아침에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생각났다. 신랑에게 오늘 아침 밥먹으면서
말하니 당장에 음악을 다운받아 들려준다. 오늘 아침 내가 들은 곡의 목록은 -나이 드러나네^^-
이문세-붉은 노을
세월이 흘러가면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동물원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박성신- 한번만 더
GOD-어머님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촛불 하나
거짓말
장혜진 -키작은 하늘
러브홀릭 -러브홀릭
패닉 -왼손잡이
카니발-너에 대한 나의 생각
전람회-그땐 그랬지
취중진담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속의 그대
하여가
김현철 -춘천가는 기차
임형순 -풍선
등이다.
노래를 들으니 노래에 얽힌 추억이 생각난다. 내가 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소리조차 내기 힘들
었을 때, 부러 나를 찾아와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불러줬던 내가 너무 좋아하는, 지금은 소
식을 몰라 너무 슬픈 고종 사촌 오빠.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놀던 88년의 추억이 그대로인 이문세의
노래들 -그 땐 정말 좋았지. 물론 지금도 좋지만.
왠지 모르지만 동물원의 노래를 듣는데 저절로 눈물이 났다. 아, 나만의 생각인가? 사람은 자기가
자란 곳이 제일 편한 것 같다. 초중고교 시절을 보낸 곳이 아무래도 제일 편하고 좋은 곳 아닐까?
어제 신랑은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고교, 대학 동창과 전화를 했다. 대학 졸업후 독일에서
박사하느라 5년여 살고, 미국에서 포닥하느라 2년인가 있다가 여기서 취직해 여기 사는. 원래 미국
에 올 때도 그 친구도 미국 별로 안 좋아했지만 지금 몇년의 직장생활후에는 더욱 한국을 그리워하
는 것 같다. 친구가 특히나 그리운가 보다. 내가 "미국 사람들은 원래 친구들이랑 수다떨고 놀고 그
런거 안하잖아, 다 집에 가잖아. 주말에 파티나 하고 말야" 했더니,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그러고
사는 것과 안 그렇게 자란 우리가 그렇게 사는게 같냐고 신랑이 반박한다. 그래서 역시 자란 곳이
편한가 보다. 그 문화에 이미 젖어있으니까. 그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우니까.
여기 남겠다는 일부 한국 아줌마들의 얘기를 신랑이 친구에게 해주니 -내게 전해들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뭐가 좋아 여기 남냐고 말이다. 연봉이 더 높다고 하니 의료보험비와 세금이 너무 많
아 연봉이 높은게 하나 좋은거 없다고 하고, 애들 학원 뒷바라지 안해도 된다고 하니 학교 들어가
면 축구장이며 뭐며 다 따라다녀야 한다고, 장난 아니라고 한다. 시부모 안봐도 된다는 말에는 대
꾸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건 "여자" 생각이란다.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하고 다른 한국 아줌
마들과 놀 수 있는 "여자" 생각 말이다. -그렇게 남고 싶어하는 한국 아줌마들의 남편 생각은 아마
다를거라고 말한다- 회사 가도 친구가 없고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그런 친구가 어디 있겠나. 자라
온 문화가, 환경이 다른데 말이다-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여기서 장사하는 한국인들도 돈은
벌지 몰라도 편한건 없다고, 남을 믿을 수가 없으니 직접 다 나와서 일하면서 챙겨야 하고 -한국은
좀 맡겨놓고 사장은 놀러다니는데- 나름대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란다. 여기 온 지 몇 달 되지 않
은 나로서는 사정을 잘 모르니 할 말이 없는데, 그 친구가 봐 온 사정은 또 다른가보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 여기가 정말 좋고 맘에 드는 사람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렇게 생각치 않는 것 같
다. 그런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하나 보다. 물론 여기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일부 고소득층 한인들
은 안 그렇겠지만, 대다수는 그런게 아니니까.
그 얘기를 들으니 예전에 미국 갔다가 이제는 돌아오고 싶어도 한국의 집값이 너무 비싸 못 온다는
시아버님의 친구 생각도 나고, 하와이에 놀러가서 만난 한국식당 사장님도 생각난다. 하와이 온 지
28년 되었는데 말씀하시는 투가 거의 학을 뗀다는 그런 말투였다. 너무 싫어하고 있었다. 돈만 좀
있으면 한국이 좋지, 여기가 뭐가 좋냐고 하시던...
서경식씨 생각이 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도대체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 돌아가고 싶
어도 못 돌아가는 -언어를 몰라서, 생활 기반이 없어서 등- 수많은 디아스포라들... 어쩐지 서글퍼
진다.
한국에 가면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예전부터 나는 그런 일들이 좋았다. 돈 안되는 그
런 일들. 그 때는 여러 사정상 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하고 싶다. 할 수 있고. 하다못해 사무실에
서 복사라도 하면서 일조하고 싶다. 엠네스티 일에도 관심이 많고.
그냥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