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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옥중 19년
서승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좋아하고 감명깊게 읽은 책 중 하나인 서준식씨의 옥중 서한을 읽은 후에도 그의 형 서승씨의
소식을 몰라하던 터에, 우연히 그의 형이 서준식씨의 석방 2년후 석방되었고, 그 역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번에 읽게 되었다.
서준식씨의 책은 그가 옥중에 있는 동안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의 모음집이었음에 비해 서
승씨의 책은 석방이후 그가 감옥에 있었던 기간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게는 물론 이 책도 좋았지만 서준식씨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큼의 감동은 덜했
다.
철없던 중고교시절, 나는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그렇게 김일성이 좋으면 북한에 가라고 욕
하는 보수 기성세대인 아버지를 두어서 감옥에 갇힌 죄수의 인권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생적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 때 내가 보던 책은 주로 소설이었고,
사회현실을 다루는 책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론서는 여전히 어려워 못 보지만 점차 사회에 대해 얘기하는 책들을 보면서 -대
학 초년생때 봤던 홍세화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얼마나 감동적이고 충격적이고 아름다
웠던지!!!- 나는 인권이란 단어에 눈뜨기 시작했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구금한다
는 사실의 끔찍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종석씨가 '자유의 무늬' 라는 칼럼집의 한 꼭지에서 김정일의 사진을 붙여놓고 인사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미감이 촌스러운 것이지, 단죄할 일이 아니라고 얘기
했다. 물론 이런 류의 얘기는 그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했지만, 어쨌건 지난 세월 도대체 우리
는 왜 이리도 야만의 세월을 살았던 것일까? 아니, 왜 지금도 야만의 세월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
까?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수많은 정치범들이, 양심수들이 구금되어 있을 것이다. 도대체 뭣때문에?
누가 우리에게 그들을 단죄할 권리를 주었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가하지 않았는데 구금할 수 있는 것일까? 다름이
존중이 아니라 차별의 요소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에 대해 욕하면서 정작 내 나라에서 이민족에게 차별을 단행하
고, 동성애자를 따돌리고, 편을 가르고, 무자비한 인권탄압에 대해 눈감고 있는 우리는 과연 문명
의 존재일까?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떻게 주소를 알았는지 엠네스티 미국 지부에서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우리집에 보내왔다. 약소한 금액을 보내고는 그 이후에는 오는 우편물도 잘 보지 않고, 감
옥에 있는 양심수들에게 편지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무시했는데, 서승씨의 책을 보니 엠네스티에서
온 편지를 읽고 내게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기뻤다는 얘기가 있다. 나도 못하는 영
어지만 공들여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석방을 기원하는 전혀 모르는 나라의 시민
이 있음을 알려줘야겠다.
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노력으로 세상은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우리의 연
대가, 우리의 희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더이상은 야만의 세기를 살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