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깨달음
조정래.홍세화.정혜신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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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대강은 다 아는 유명인사인 정신과 의사 정혜신, 소설가 조정래, 건축가 김진애, 기

자 고종석, 손석춘, 교수 장회익, 박홍규, 박노자, 그리고 홍세화씨의 글을 묶은 책이다. 

그들이 젊었을 때, 가지고 있던 생각, 그들의 행로에 대해 짧게 나와있는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다시

치열한 삶의 열정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들의 젊은 날은 어찌 그리 치열하고 아름답던지!!!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어쩜 무모하달 수 있는 도전을 했던 정혜신씨, 돈때문

에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었던 손석춘씨, 세상의 이치에 대해 고민했던 장회익씨, 다른 사회에

와서 오히려 그 안에서 소련을 다시 발견하고 지배층의 습속에 대해 알게 된 박노자씨, 철저한 자

기관리로 결국은 집념의 소설을 완간한 조정래씨등 이 책에 실린 모든 사람들의 젊은 날은 우리 모

두에게 삶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들과 그들이 아닌 사람의 차이는 열정의 차이일까? 간절히 바라면 꼭 이루어진다는 글을 어디선

가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간절히 바라면 그만큼 노력하기 마련이라

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나는 지금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간절히 바라면 꼭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지 않는 것은 아직 내가 젊다는 이야기일까?-

중학교 시절 전혜린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감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처음

으로 본 여성상이었고, 나의 우상이었다. 그녀처럼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 인식만을 최고의 가치로

놓고 앎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나는 치열하게 살고픈 욕망과 현실의 고단

함 사이에서 결국 욕망을 접었다. 내가 지기에 너무 무거웠고 힘들었다. 후회하냐고? 글쎄, 모르겠

다. 그냥 아련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니 나의 예전 모습이 잠시 생각난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의 너무도 아름답고 치열한

삶에 존중과 감탄을 보낸다. 성공여부를 떠나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물론 성공도 했으나- 그토록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었으므로.

어릴적에 자신의 삶은 치열하게 가꾸지 않으면서 자식들에게는 열심히 공부할 것을 -오로지 공부

만 할 것을 -주문하는 어른들의 행태가 끔찍했던 적이 있었다. 욕하면서 닮는 것이라더니 나의 아

이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나도 늙었구나, 기성

세대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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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옥중 19년
서승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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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고 감명깊게 읽은 책 중 하나인 서준식씨의 옥중 서한을 읽은 후에도 그의 형 서승씨의

소식을 몰라하던 터에, 우연히 그의 형이 서준식씨의 석방 2년후 석방되었고, 그 역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번에 읽게 되었다.

서준식씨의 책은 그가 옥중에 있는 동안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의 모음집이었음에 비해 서

승씨의 책은 석방이후 그가 감옥에 있었던 기간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게는 물론 이 책도 좋았지만 서준식씨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큼의 감동은 덜했

다.

철없던 중고교시절, 나는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그렇게 김일성이 좋으면 북한에 가라고 욕

하는 보수 기성세대인 아버지를 두어서 감옥에 갇힌 죄수의 인권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생적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 때 내가 보던 책은 주로 소설이었고,

사회현실을 다루는 책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론서는 여전히 어려워 못 보지만 점차 사회에 대해 얘기하는 책들을 보면서 -대

학 초년생때 봤던 홍세화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얼마나 감동적이고 충격적이고 아름다

웠던지!!!- 나는 인권이란 단어에 눈뜨기 시작했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구금한다

는 사실의 끔찍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종석씨가 '자유의 무늬' 라는 칼럼집의 한 꼭지에서 김정일의 사진을 붙여놓고 인사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미감이 촌스러운 것이지, 단죄할 일이 아니라고 얘기

했다. 물론 이런 류의 얘기는 그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했지만, 어쨌건 지난 세월 도대체 우리

는 왜 이리도 야만의 세월을 살았던 것일까? 아니, 왜 지금도 야만의 세월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

까?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수많은 정치범들이, 양심수들이 구금되어 있을 것이다. 도대체 뭣때문에?

누가 우리에게 그들을 단죄할 권리를 주었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가하지 않았는데 구금할 수 있는 것일까? 다름이

존중이 아니라 차별의 요소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에 대해 욕하면서 정작 내 나라에서 이민족에게 차별을 단행하

고, 동성애자를 따돌리고, 편을 가르고, 무자비한 인권탄압에 대해 눈감고 있는 우리는 과연 문명

의 존재일까?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떻게 주소를 알았는지  엠네스티 미국 지부에서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우리집에 보내왔다. 약소한 금액을 보내고는 그 이후에는 오는 우편물도 잘 보지 않고, 감

옥에 있는 양심수들에게 편지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무시했는데, 서승씨의 책을 보니 엠네스티에서

온 편지를 읽고 내게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기뻤다는 얘기가 있다. 나도 못하는 영

어지만 공들여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석방을 기원하는 전혀 모르는 나라의 시민

이 있음을 알려줘야겠다.

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노력으로 세상은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우리의 연

대가, 우리의 희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더이상은 야만의 세기를 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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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시 2007-08-1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즈행복 2007-08-21 10:43   좋아요 0 | URL
저도 좋은 책 많이 소개받을께요. ^^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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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과 찬사가 요란하던 이 책을 구입하고도 읽지 않은채로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명불허전이라고, 과연 '구라가 일품이고' 상상력이 놀랍고, '곰탕그릇에 잘못 담겨진 냉면을 냉면이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곰탕'이라고 말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도대체 이런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제도권 교육하에서도 이런 상상력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하에서 공부를 잘 안하고 책보고 글쓰고 놀다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예전부터 톨스토이의 제목도 기억 안나는 책속의 -바보이반이던가?- 악마가 부러웠다. 그 악마는 이반의(?) 삼형제를 각자 꼬시는데 이반을 담당한 악마가 실패하자 이반의 형들을 담당한 악마가 차례로 이반을 꼬셔본다. 그러다 다 실패하고 땅위에 구멍 하나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땅속으로 꺼진다. 나는 악마의 유혹을 견뎌낸 성실하고 바보같고 무던한 이반이 부러웠던게 아니라 땅 속으로 구멍하나만을 남긴채 사라질 수 있었던 그 악마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구멍 하나만을 남기고 땅 속으로 그냥 꺼지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캐비닛의 여러 심토마중 나는 타임스키퍼가 내가 부러워하던 악마들과 닮아있어서 부러웠다. 물론 타임스키퍼들의 행동은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들은 피해자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한번쯤 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험이 코앞에 닥쳤는데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는 학생, 나가기 싫은 선자리에 억지로 끌려가게 된 아가씨, 군 입대가 목전에 당도한 청년, 부도처리 위기를 하루하루 숨이 턱에 차 넘기는 사장, 매일같이 술취한 폭력남편에게 얻어맞는 부인...

이런 소설의 끝은 도대체 어떤 결말일까 읽는 동안 궁금했는데, 이 소설의 결말은 이 소설답다. 너무 딱 들어맞는 결말이다. 이 결말을 안 지금, 이런 결말 이외의 결말은 상상이 안된다.

3년을 쳐박혀 글만 읽고 쓴다고 모두가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닐것이다. 대단한 작가다. 문학동네 신인작가는 대체로 다 나를 만족시킨다. 이런 대형신인들이 언제까지 계속 나올 것인지, 이런 작가들의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스럽다. 후속타불발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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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7-0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근 하나로 일주일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직장을 때려친 2년전부터 몸이 장난아니게 붑니다.
예전 옷들을 거의 입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지요..흑흑

이 소설의 작가가 신난한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글은 구라로 멀리 붕 뜬것같은
이야기를 그립니다만,
저는 그게 우리들의 그렇고 그런 희망사항의 집합체가 아닐까 여겨요.
이 작가의 책이 더 많이 팔려서 생계 걱정을 더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즈행복 2007-07-08 13:4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이런 작가들의 책이 많이 팔려서 제발 생계걱정 없이 좋은 글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래요.
며칠전 시비돌이님의 서재를 구경갔다가 언젠가의 기록에서 그 달의 수입이 24만원이란 글을 읽고 하루종일 제 마음이 우울했어요.
한 달에 100만원, 아니 50만원이라도 고정수입이 있었으면 하는 작가들의 바램이 너무 슬퍼요.
다시 근본적인 멍청한 질문이 생기네요.
돈은 뭘까요?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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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글은 정말이지 쉽게 읽힌다. 가독성이 높다는 것은 그의 큰 장점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쉽게 읽힌다는 것은 내용의 허술함에 기인하지 않는다. 탄탄한 내용과 섬세한 묘사가 잘 어울어져 오히려 쉽게 읽힌다. 또한 전개가 흥미로와 손에 한 번 잡으면 놓치지 않게 하는 탄탄한 흡입력도 한 몫 한다. 그는 심오한 내용,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작가 중 하나인 것 같다.

태백산맥에서 그는 일제 치하의 우리 민중의 삶을 하나하나 풀어낸 바 있다. 이 책 역시 일제치하에서 징용갔다가 일본군에서 몽고군, 소련군, 독일군 을 전전하다 결국 소련 국적으로 미국의 포로가 되어 소련으로 송환되던 중 소련군에 의해 총살당하는 기구한 운명의 그 시대 우리 민중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오 하느님! 이게 정말이지 사실이란 말입니까? 기록에 의하면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을 때 한국군 포로가 있었다니 아마도 이 소설은 완전 허구가 아닌가보다. 이리 저리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약소국민의 비애가 이렇게 기구한 운명으로 다가오다니, 그 가련하고도 비극적인 삶의 최후에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토록 악착같이 버티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다가 정말 종전을 맞이해 고향으로 가는 줄 알고 기뻐하며 흥분했을 그들에게 고향은 고향이로되, 부모와 처자가 사는 고향이 아닌 우리가 태초에 온 곳인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의 그 찰나의 순간, 그들의 회한이 느껴진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일평생이 파노라마같이 펼쳐졌을까? 너무 순간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도 의식 못한채 그저 생을 마감했을까?

전쟁은 무엇때문에 있어야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지독한 살육의 현장들은 인간이 문명화된 존재라는 사실을 우습게 만든다. 문명화된 존재라면 말로 해결해야지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거리들인가? 자기 자신을, 종교를, 사상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태도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없고, 국경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그것은 존 레논의 노래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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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0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튀는 맛도, 밑줄 긋고 기록할만한 문장도 없는 책이지요.
그런데 전체를 더듬으며 읽다보면 먹먹해집니다.
요즘 환타지나, 일본문학에 길들여진 독자들은
이 소설의 밋밋한 문장과 조정래라는 거대한 이름의 실패작이라고 폄하합니다만
그건 큰 줄거리를, 전하는 메시지를 놓치고 읽은 실수입니다.
주제를 놓치고 나니까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되버렸지만
그 배경을 상기하면 잔혹하고 슬프고 분노할 인간 폭력사죠.
그걸 놓치지 않고 읽으신 것 같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미즈행복 2007-06-08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님의 댓글이 제 허접한 리뷰보다 훨씬 아름답고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것 같아
저로서는 정말 영광입니다.
아마 조정래씨의 전작들이 워낙 방대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어 이번 작품이
상대적으로 폄하되고 있는게 아닐까요?

마태우스 2007-06-08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런 책을 어디서 구하셔서 읽으셨나요? 미국에선 구하기 힘들텐데.....종교가 없는 세상, 듣고보니 좋은 세상일 듯합니다^^

미즈행복 2007-06-0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게요.
제게도 선물 보내주시는 미남분이 계셔서요. -부러우시죠?-
마태님을 서재에서 뵈니 너무 기쁘고 반가와서 눈물이 난다는... 흑흑
마태님 너무 방가방가!!!
제 종교는 당근 마태님이지요!!! -지하철에서 '마태천국 불신지옥'을 외칠까봐요.
마태복음으로 알아들으려나?-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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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에 이어 '강산무진'을 읽었다.

'남한산성'을 보면서 미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남성작가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것이 남성작가의 글인지, 여성작가의 글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힘든 작품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글에서 그런 것이 묻어나는 편인데, 이 작품집에서는 그는 무성화 되어 있었다.

감수성이 묻어나나 한편 냉철하고 기술적이고, 묘사가 치밀하고 섬세하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런 느낌을 뚝 떨어뜨리는 서사가 나오고 그의 문장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능수능란하고 매우 거침없다고나 할까?

일상을 포착하고 서술하는 그의 매서운 눈매는 빛난다. 죽음의 기술조차도 어쩜 너무도 담담하고 일상적이어서 그냥 매일의 일상의 기술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그냥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관조적 입장에서 사물을, 사람을, 사람의 일을 바라보고 옮겨적는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기자였을 때는 오히려 소설가같던 그의 문장이 이럴 때는 오히려 기자같다고나 할까?

'언니의 폐경' 에서는 여자인 나도 모르는 여성에 대해 풀어놓더니 이내 '화장 '과  '강산무진' 과 '고향의 그림자' 에서는 죽음과, 죽음에 인접한 것에 대해 담담히 읊조리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일상이 강하게 배어나오고 있다. '신수정'씨의 해설대로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사는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남은 일은 돈의 처분이고 -강산무진-, 남편과 헤어지고 남편을 잃은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얘기는 그 남편들에게 받은 돈의 행방 -'언니의 폐경' - 이다.  그는 우리의 비루한 일상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기술한다. 우리는 돈없으면 꼼짝을 못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고, 그것은 죽음앞에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한듯이 기록한다. 그것은 원하던 원치 않던, 돈으로 환원되는 우리 인생의  비극을 어쩌면 더욱 강조하는 듯 하기도 하고, 죽음이라는 비극앞에 놓인 존재의 무기력에 대한 감상에 빠진 우리에게 일상으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보다. 나는 재벌도 부럽고, 미모의 배우들도 부럽지만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내게 그럴 능력은 없지만 오늘 김훈을 만나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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