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같은 책을 여러번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읽을때마다 와닿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언제 읽었냐에 따라서도 감상이 달라지고 이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번에 아리랑을 읽으니 이전에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일본의 만행이 크게 와닿는다. 민족의 말살을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말을 못쓰게 하고 징용에 끌고 나가고 정신대를 보낸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는 그 이외의 사실도 시시콜콜히 알려주고 있다. 소작의 비율을 높여서 땅을 팔게 한 뒤에는 다시 소작의 비율을 낮추고, 각종 농약이니 기계의 사용을 강요하고 그 비용을 전가시키고, 토지조사 사업에서 멋대로 민중의 땅을 국가 -합방이 되었으니 일본- 의 소유로 만들어 일본 사람에게 싼 값으로 불하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 일본에 흘러들어간 조선사람에게 일본의 지진으로 인한 화재까지 책임을 덮어씌우며 참살하고, 소소한 잘못을 징역을 살리겠다고 위협해 각종 토목공사나 철도공사 현장에 투입시키거나, 심지어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까지 보내고 ... 그들의 만행은 너무 많아 기억하기도, 적기도 힘들다.

처음엔 굳은 신념으로 무장했던 사람들도, 빼앗긴 땅을 찾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차츰 지루한 일제치하에서 변심하고 친일하기 위해 안달하는 속에서도 굶어가면서도 꿋꿋이 신념을 지킨 사람들은 놀랍고도 아름답고, 한편 무섭다.

보부상으로 친일하면서, 의병을 밀고하면서 부자가 되는 장덕풍과 그의 아들 형사 장칠문은 소설이 끝날때까지도 망하지 않고 오히려 정미소, 미선소까지 가진 거부가 된다. 장칠문과 그의 자손들은 지금도 이 대한민국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허나 한편 인심 잃어가면서 친일하고 돈만 긁어모으던 몰락양반 이동남과 중인 아전출신의 면장 백종두는 그 재산을 다 탕진하는 것을 보니, 만석꾼이었으나 노름으로 재산을 다 말아먹은 정재규와 소작을 빌미로 소작인의 마누라까지 탐해가며 돈을 모으던 정상규가 그냥 허무하게 죽는걸 보면 돈이란게 별로 큰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욕먹으면서 모았으나 당대에, 기껏해야 아들대에 다 말아먹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너무 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경식씨의 책에서 일본이 재일조선인에게 가하는 지독한 차별에 분노했는데 -재일 조선인들이 지금 왜 거기서 살게 되었단 말인가? 누구때문에  만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한인들이 건너가서 차별받고 살게 되었단 말인가? - 이 책을 읽으니 그 구체적이고도 수많은 차별과 억압의 사례에 사과하지 않는, 망각뿐 아니라 왜곡하려 하는 일본에 분노가 치민다. -심지어 그들은 머나먼 섬으로 징용끌고 나가서는 일이 끝나자 조선인 노동자들을 귀국시키기는커녕 폭살하기까지 한다- 일본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남의 자녀에게 피해를 주면 사과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시치미떼라고 가르치는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미안해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잘했다며 더 하라고 자식을 두둔하는가?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모르듯이 대다수 일본인들도 모를 것이다. 그 부끄러운 치욕의 역사를.-치욕의 역사는 우리가 아니라 가해자인 그들이다- 그들은 공부해야 한다. 그 전에 우리가 공부하여 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이대로 유야무야 잊혀지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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