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유치원 생활을 궁금해하는 제게 다른 엄마가 말했습니다. 자원봉사를 해보라고, 그러면서 보

라고 말입니다. 마침 시간이 되는 날이 있기에 선생님께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고 물었죠. 다른 엄마들 말에 의하면 종이 자르기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색종이

나 기타의 종이- 간단한 정리 등을 보통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글쎄 수초간 생각하시

던 선생님이 제게 부탁한 것은 애들에게 한국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허걱!

 

하지만 '그건 빼고요' 라고 말 할 수는 없어서 알았다고 하고 와서는 뭘 말할까 고민했습니다. 원고

를 썼지요. 우선 한국은 두개가 있고 미국에 있는 대다수 한국인은 남한에서 온 사람이다는 얘기와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삼성이나 LG가 한국기업임을 설명하고,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미국의 많은

물건과 상점을 볼 수 있다고 썼습니다. 우리도 너희처럼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새해를 기념하

고, 한국의 아이들도 너희처럼 유치원에 다니고 요즘 중시되고 있는 영어도 배운다고 말입니다. 그

런데 제가 쓴 글을 읽어본 신랑과 다른 엄마가 유치원 애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만 3~5세까지의 아이들이니까요. 그래서 다시 전면 수정! 한국의 역사와 이런 저런 설명 다 빼고,

시각적인 것을 중시한다는 그 연령대의 특성을 고려해 태극기 보여주고 한복 가지고 가서 원하는

사람 한 번 입혀주고, 한국 과자 하나 먹이고, 한국 책 하나 읽어주고 오는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자원봉사하기로 한 날, 유치원에 가니 그 날은 마침 아이들이 담임선생님 아닌 음악선생님과 30분

음악수업을 하는 날이더군요. 가서 참관했죠. 마틴 루터 킹 데이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마틴 루

터 킹 노래를 가르쳐주고 -원래 있는 노래인지, 선생님이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달에 사는 한

사람의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스파게티인데 눈은 뭘까? 코는? 이런식으로 선생님이

물으니 애들이 미트볼 눈, 브로콜리 코, 수박 입, 도넛 몸통 등의 대답을 하고 나와서 그림을 그리

면서 노래를 배우더군요. 재밌었지요. 선생님은 기타를 연주하면서 애들과 노래를 하고요.

 

교실로 내려와 애들이 활동하는 것을 잠시 지켜본 후, 한국에 대해 얘기해 주었습니다. 성조기가

있듯이 우리도 태극기가 있고, 우리의 고유한 의상은 한복이고 하면서요. 한국과자는 홈런볼을 가

져갔었는데 20명의 아이중 3명은 주저하며 끝까지 안 먹었고, 다른 애들은 먹고 나서는 대체로 좋

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더 달라고 하기도 하고요. 가져간 한국 책은 '설빔' 이라는 책 -여자아이가

새해 첫 날 한복을 차례로 입는 이야기의 책- 과 '누구 그림자일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림자를

보면 꼭 모자같은데 넘겨보면 곰과 그 위에 고슴도치가 있고, 그림자는 꼭 부채같은데 공작새가 날

개를 펴고 있고, 그림자는 장화같은데 사실은 불독이고 뭐 그런, 글자가 거의 없는 책입니다- 그리

고 너희와 다른 점도 많지만 같은 점도 있으니, 우리도 설과 추석,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는 얘기

를 해 주었습니다. 얘기가 끝난 후 질문이 있냐고 하니 어떤 애가 묻더군요. 한국사람은 뭘 하냐고

요. 제가 언제? 하고 반문했는데 그 애는 다시 한국 사람은 뭘 하냐고 해서 잠시 당황하다가 그냥

너희랑 같다고, 애들은 학교가고 어른들은 회사가고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는 한복을 어디서 샀냐

고 물어서 한국에서 산거라고 대답해주었고요. 다행히, 그 이상의 어려운 질문은 없었습니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수일이 지난 오늘, 딸 데려다주면서 교실을 한 번 보니 한국에 대한 자료가 벽

에 많이 붙어있었습니다. 진짜 한복도 고름까지 매서 벽에 걸어놓았고 -예전 졸업생이 기증한 거

라고 하네요- 반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서 찍은 사진도 붙여놓고 했더군요. 오늘 딸은 유치원에

서 타이의 국기를 만들고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빨강, 파랑, 하양 줄만 있는 무지 쉬운 것이더군

요-  타이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이제 미국 이외의 세계에 대해

서도 알게 되겠죠?  미국 이외의 세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08-01-11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역시나 애 기르는데는 부모가 할일이 많군요. 저같으믄 한국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다면 야구 이야기로 애들을 꼬셨지 않을까요. 프로야구리그가 있구 박찬호란 선수가 메이져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이렇게요^^ 홈런볼 그 맛있는 걸 안먹는 애들은 뭐야... 전 세계에 관심을 갖게보단 미즈행복님께 관심을 가질래요

미즈행복 2008-01-15 08:1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또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네요. 누구는 자원봉사로 어항청소도 했대요. 그런데 울 신랑은 또 그러더라고요. 그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도 그렇게 어항 닦아가며 그 문화에 동화되려고 노력했을까 하고 말예요. 글쎄, 우리 모두의 자원봉사가 어떤 눈치보기나 사대주의가 아니길 바랍니다. 아, 제게 관심 가져주셔서 항상 무한감사~

hnine 2008-01-1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한 소심하는 저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랍니다.
저도 이런 기회를 여러번 피했었는데, 이 페이퍼 내용 참고해야겠습니다.
보람있으셨지요? ^^

미즈행복 2008-01-15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가 딸려서 좀 겁 먹었는데 다행히 3세 ~ 5세 아이들이라 넘어간것 같습니다. 솔직히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못했을거예요 ^^

뒹굴이 2008-01-1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로 이런 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외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어하는 거 아닐까? 그냥 영어 좀 더 잘하고 그런 거 때문만이 아니고 말야.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체감시키는 교육이 전혀 안 되잖아. 그럴 여건도 안 되고. 요즘 회사에서 제일 원하는 인재가 글로벌 감각을 가진 인재라던데, 그 말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감각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겠지.

이 글 보니 네가 미국생활에 대해서 아무리 이러쿵저러쿵해도, 네 아이들에게 확실히 좋은 기회인 건 맞는 거 같네. 거기 가 있는 동안에 넓은 세상도 많이 보여 주고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하면 나중에 걔네들 인생에 얼마나 많이 도움이 되겠니. 적어도 우리나라 찌질이들처럼 백인들한테는 열등감 갖고 피부색 좀 어두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얕보고 그렇게는 안 크겠지. 좋은 기회다, 좋은 기회. ^^

2008-01-18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향기 2008-01-2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원 자원봉사가 님께도 꽤 의미있는 시간이었겠네요^^

2008-03-05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4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0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