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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문자의 '디아스포라' 라는 말은 본개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전상 의미이고 오늘날
디아스포라 라는 말은 유대인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
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 서경식씨는 말한다.
나는 서준식씨의 옥중 서한을 읽고 이 형제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지만, 이 책과 동시에 읽은 서
경식씨의 '난민과 국민사이'를 읽기 전까지는 재일 조선인의 비참한 처우에 대해서도, 그들의 상황
에 대해서도 조금도 알지 못했다. 책에서 설명된 재일 조선인의 상황은 정말이지 힘들다. 그들은
얼마전까지도 교원도 되지 못했고, 공무원도 될 수가 없었다. 일본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는 않으나 사실상 힘들고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재일조선인의 회사에 취업하고 있었다.
그런 경제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귀화하지 않은 경우 항상 외국인 등록증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일
본국민이 아니므로 한국 여권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할 경우 일본에 재입국시 허가증도 가지고 있
어야 한다. 일본에 거주하는데 일본 입국의 목적을 기입해야 하는 그런 경우인 것이다. 그래도 한
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낫다. 처음 해방되고 재일 조선인이 일본에 신고할 때는 우리나라에 정부가
없어서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이라는 민족의 이름을 기재했는데 나중에 북조선과 남한으로 정부가
갈리면서 북조선이 좋아서이건, 그냥 귀찮아서건 조선의 국적을 그대로 남겨둔 사람은 북한과 수
교가 되지 않았으므로 생활의 제약이 훨씬 많다.
책을 보면 중요한 얘기들이 많다. 70년대의 인도적인(?)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환은 사실상 인도적
인 목적이 아니라 일본에서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 재일 조선인을 인도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귀
찮아서 북한으로 처리한 것이라는 비인도적인 일본의 처사, 재일 조선인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식
민지 조국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거나, 조선땅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일본으로 가 일본인의 반
값도 안되는 저임금으로 갖은 멸시와 학대속에서 일본의 밑바탕을 지탱해 온 사람들인데 일본 정
부는 자신의 책임은 회피한 채 그저 무시하고 방기하고 아니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들... 일본에서
건 한국에서건 참정권은 없으면서도 일본에서 납세의 의무는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들...
서경식씨는 애써 말하고 있다. 자신은 재일 조선인이라고, 국가를 의미하는 북조선의 조선인이 아
니라 민족을 의미하는 조선인이라고. -그러나 한편 스탈린의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 속에 나타나는 심리 상태의 공통성을 기초로 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견고한 공동
체'라는 정의에 공황상태를 보인다. 그는 조선민족이나 모어는 일본어이고, 경제적으로도 일본 국
민경제의 그물망에 짜여있다. 스탈린은 더 나아가 이들 특징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만큼 민족은
민족이 아니게 된다고 주장했다니 그가 민족으로서의 자격을 주장할 수록 그 민족의 틀에서 벗어
나는 분열을 맛보게 된다고 말했다. 허나 그는 다시 '문화'를 자격조선의 필수로 꼽는 이러한 정의
는 '문화'로 부터 분열된 자들이 스스로 동태적이고 창조적인 문화관을 단련하는 일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그는 조선인이나 불행히도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모국어를 제대로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고, 모
국의 정서를 알지 못하며, 그의 모어는 일본어이다. 그가 일본에서 에세이스트 상을 받은 '소년의
눈물'은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그의 슬픈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책은 일본어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모어에 대해서는 다른 많
은 사례들이 이 책에 언급된다. 독일어를 모어로 배운 유대인 파울 첼란은 언어에 능통해 여러 나
라 말을 할 수 있었으나 시는 모어인 독일어로밖에는 쓸 생각을 못했다는 얘기는, 유대인이라는 이
유로 독일에서 배척받고 종전후 자신의 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리에서 산 그의 우울한 삶에 더
욱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책의 후반부는 많은 디아스포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로 예술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수많은 디아스포라에 대해 알수록 제국주의의 잔혹함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꿈꾼다.
모든 조선인 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모국에 거주하지 않아도 참정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사
회를, 나아가 디아스포라들이 더이상 박해받고 살지 않는 사회를...
유목민의 세상이 올거라고, 전지구적인 이동이 쉬워지면서 국가와 민족의 의미와 경계는 불분명해
질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이제 갔다. 차별은 더욱 공고해진다.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나는
뭘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