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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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과 찬사가 요란하던 이 책을 구입하고도 읽지 않은채로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명불허전이라고, 과연 '구라가 일품이고' 상상력이 놀랍고, '곰탕그릇에 잘못 담겨진 냉면을 냉면이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곰탕'이라고 말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도대체 이런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제도권 교육하에서도 이런 상상력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하에서 공부를 잘 안하고 책보고 글쓰고 놀다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예전부터 톨스토이의 제목도 기억 안나는 책속의 -바보이반이던가?- 악마가 부러웠다. 그 악마는 이반의(?) 삼형제를 각자 꼬시는데 이반을 담당한 악마가 실패하자 이반의 형들을 담당한 악마가 차례로 이반을 꼬셔본다. 그러다 다 실패하고 땅위에 구멍 하나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땅속으로 꺼진다. 나는 악마의 유혹을 견뎌낸 성실하고 바보같고 무던한 이반이 부러웠던게 아니라 땅 속으로 구멍하나만을 남긴채 사라질 수 있었던 그 악마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구멍 하나만을 남기고 땅 속으로 그냥 꺼지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캐비닛의 여러 심토마중 나는 타임스키퍼가 내가 부러워하던 악마들과 닮아있어서 부러웠다. 물론 타임스키퍼들의 행동은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들은 피해자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한번쯤 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험이 코앞에 닥쳤는데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는 학생, 나가기 싫은 선자리에 억지로 끌려가게 된 아가씨, 군 입대가 목전에 당도한 청년, 부도처리 위기를 하루하루 숨이 턱에 차 넘기는 사장, 매일같이 술취한 폭력남편에게 얻어맞는 부인...

이런 소설의 끝은 도대체 어떤 결말일까 읽는 동안 궁금했는데, 이 소설의 결말은 이 소설답다. 너무 딱 들어맞는 결말이다. 이 결말을 안 지금, 이런 결말 이외의 결말은 상상이 안된다.

3년을 쳐박혀 글만 읽고 쓴다고 모두가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닐것이다. 대단한 작가다. 문학동네 신인작가는 대체로 다 나를 만족시킨다. 이런 대형신인들이 언제까지 계속 나올 것인지, 이런 작가들의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스럽다. 후속타불발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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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7-0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근 하나로 일주일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직장을 때려친 2년전부터 몸이 장난아니게 붑니다.
예전 옷들을 거의 입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지요..흑흑

이 소설의 작가가 신난한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글은 구라로 멀리 붕 뜬것같은
이야기를 그립니다만,
저는 그게 우리들의 그렇고 그런 희망사항의 집합체가 아닐까 여겨요.
이 작가의 책이 더 많이 팔려서 생계 걱정을 더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즈행복 2007-07-08 13:4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이런 작가들의 책이 많이 팔려서 제발 생계걱정 없이 좋은 글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래요.
며칠전 시비돌이님의 서재를 구경갔다가 언젠가의 기록에서 그 달의 수입이 24만원이란 글을 읽고 하루종일 제 마음이 우울했어요.
한 달에 100만원, 아니 50만원이라도 고정수입이 있었으면 하는 작가들의 바램이 너무 슬퍼요.
다시 근본적인 멍청한 질문이 생기네요.
돈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