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단순히 아프리카 여행기로 생각했다. 서른한 살의 영화 마케터인 저자는 아프리카에 서른 가지를 버리고 한 가지를 가지고 왔단다. 영화 마케터와 아프리카 여행, 뭔가 색다른 느낌이었다. 책을 처음 잡았을 때 드넓은 평원의 해질녘 모습이 담긴 우표가 붙여진, 얼룩말 그림의 엽서를 받은 것만 같았다. 서른한 살이 내게는 멀게만 느껴진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는 몇 년 후의 내 모습이 아득하게 여겨졌지만 세월의 흐름은 겁없이 빠르다. 그렇다면 서른하나까지 남은 5년이란 시간 또한 길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30대에 버려야 할 서른 가지를 눈여겨보았다. 목차를 보면서 '이건 정말 버려야 해. 하지만 저것도 버려야 한다고?' 혼자 묻고 대답했다. 나태나 선입견, 짜증, 열등의식, 절망, 상실감 등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확인하며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예감이나 기대는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순수나 외로움도 가끔은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는 꿈과 도전으로 행복한 30년을 살았지만 서른 해를 넘어가며 시작된 인생 고민으로 아프리카 행을 택한다. 그리고 삶의 변화를 맞이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1도시 케이프타운에서 시작하여 요하네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치는 저자의 여행기는 한달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리카 여행이야기와 영화 마케터로 살면서의 이야기를 잘 혼합하여 들려주고 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여행이야기를 풀어쓴 다음에 버려야 할 서른 가지를 찾아냈는지 아니면 서른 가지를 골라낸 후에 여행이야기를 접목(接木)했는지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은 후로 책을 쓰는 사람들의 집필 관련한 문제에까지 호기심이 유발된다. 가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아프리카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내게는 생소한 직업인 영화 마케터의 솔직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2년 전 배낭여행에서 경유지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하려고 비행기가 감속할 때였다. 창밖으로 내려다 본 풍경은 정말이지 액자 속 그림을 보는 듯했다. 마치 인형의 집처럼 벽돌색 지붕이 일정한 간격으로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159페이지의 사진이 잠시 동안 옛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산토리니 이아 마을의 사진 또한 그리스를 여행하던 때의 두근거림과 환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불투명한 파스텔 톤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여행하는 이들의 사진 같기도 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진과 여행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영화와 여행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영화는 여행과 같다.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짧은 여행을 실컷 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분이 된다. 책을 덮고서야 동감(同感)했다. 저자의 여행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영화를 본 듯했고, 영화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영화와 여행, 사진, 글쓰기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이며 그 모습 또한 얼마나 멋진가.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의 추억까지도 부러웠다. 스물아홉 편 중에서 내가 본 영화는 거의 없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책으로 두 번 읽어서 그런지 내용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남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제목만 들어본 영화까지 합해도 열 편 정도다. 여행이야기와 적절하게 섞어준 덕에 책에 소개된 영화를 비디오로 쌓아놓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내게는 꿈 같이 황홀하고 즐거우면서도 몸살 같이 힘들고 피곤한 경험이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그만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고 느끼는 저자의 모습이 밝게 비춘다.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 냄새나는 여행 사진을 보며 세계 곳곳에 있을 그림 같은 장소와 환하게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마음 따뜻한 사람들 생각에 내 마음 역시 훈훈해졌다.
사진쟁이 신미식,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16년 동안 여행과 사진에 미쳐 살았다니 가히 프로 여행 사진가라 할 만하다. 여러 곳을 둘러본 건 아니지만 손에 꼽을 정도의 짧은 여행을 하면서 여행과 사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여행 사진을 들춰보면 즐거웠고 힘들었던 소중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앞으로도 여행을 할 때는 사진기가 필수품일 것이며 사진 기술은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멋진 풍경과 평범한 일상을 쉼 없이 찍어댈 것이다. 직업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부러워하며 동경했던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하며, 스스로 찾아낸 삶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그의 손은 얼마나 섬세할까. 두꺼운 책의 큼지막한 사진들을 심장이 멈춘 듯 숨도 쉬지 않고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연과 사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그의 사진은 소박하면서도 거대하고, 평범하면서도 아름답다. 일상에서 빛이 나고 단순함에서 특별함이 묻어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서 소금을 떼어내 맛보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 페루의 마라스 마을에 있는 살리나스 염전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미미한 소름이 돋았다. 자연과 문명(文明)의 합작이 아닐까. 어느 나라든 아이들의 눈은 맑기만 하다. 순수한 마음과 때묻지 않은 웃음은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게 분명하다. 우리와 피부색이 같고 얼굴 생김새가 닮은 사람들을 보면서 친근함에 눈을 떼지 못했다. 꽃과 나무와 구름과 산, 호수와 사막과 하늘과 생명체가 있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살아있음이 행복하고 한번쯤 도전해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일곱 살에 학교 들어가 친구들은 스물여섯이지만, 언젠가부터 한살이라도 어리게 말하는 걸 으레 의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스물다섯도 거의 끝나간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급한 마음에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한때 쌓아놓고 읽었던 자기계발서를 생각했다. 몇 세까지 꼭 해야 한다는 제목의 이야기는 읽고 나면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짓수가 많기만 한데 또다시 찾게 되는 것이 왠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는 소설이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나고 술술 잘도 읽히는 소설 말이다. 서점에서 책장(冊張)을 넘겼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 '다음에 할 일. 낯선 사람에게 키스하기.'였다. 바로 덮어버렸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가 나올 듯한 예감에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겁고 시원한 그래서 유쾌한 내용을 기대했다. 예전에 많이 읽었던 추리소설은 탐독하는 동안 꼭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책에 빠져들어서인지 아니면 전개되는 과정이 빈틈없어서인지 그 상황의 영상이 그려졌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아닌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이 든 건 처음이다. 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라니 책을 읽을 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고 싶다. 마리사와 처음 이야기한 날 그녀가 죽었다. 죽은 곳에 함께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그녀의 가방에서 발견한 리스트에 적힌 항목을 하나씩 수행하기 시작한다. 서른넷의 주인공 준 파커가 스무 가지 중 열여덟 가지를 수행하는 동안의 이야기다. 항목을 살펴보면 내가 지금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정도, 약간의 용기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아홉 가지 정도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리스트를 내가 수행해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긴장된다. 마리사의 스물다섯 살 생일 전까지 완벽하게 해낸 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과연 어떤 항목을 넣을 수 있을까. '죽기 전까지 해야 할'이라는 수식어보다 마리사와 같이 구체적인 기한을 정하는 것이 수행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언젠가 내 리스트를 정리하기를 바라며.
책의 두께와 인체 면부 반영도가 디자인 된 표지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병원에 간 적이 거의 없지만 몇 번 갔던 것도 대부분 감기나 예방접종 때문이었다. 고1때 국어 보충수업 시간에 오른쪽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쿡쿡 찌르는 게 나아지질 않고 맹장이 위치한 자리라 슬슬 겁이 났다. 옆에 있던 친구는 맹장염 수술 경험까지 이야기하니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조퇴하고 동네 병원에 갔다. 누운 자세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배를 누르시는데 아무렇지도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왜 아팠던 것일까. 학교 다닐 적에는 아무 이유 없이 배가 아팠던 적이 많다. 병원에서 자세히 검진해본 적도 없거니와 병원 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 고3 올라가기 전에는 장염이었는지 보약지어 먹을 겸해서 한약방에 갔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진맥을 짚고 약을 지어 주셨다. 진맥만으로 진단한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생활하면서 신체에 변화가 생기거나 병의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한 권으로 조기진단은 물론이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팁 또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가정의학 백과사전이다. 머리카락부터 발바닥까지 목차만 해도 여덟 장이다.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읽어나간다면 금새 지루해질 것이다.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부터 골라 보는 쪽이 좋겠다. 얼굴의 형태에 따른 사람의 특징은 재미있었고, 얼굴형과 걸리기 쉬운 질환의 소개는 걱정스러웠다. 특수한 얼굴의 종류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놀랐다. 눈이나 귀, 코, 입술, 혀뿐만 아니라 손톱과 피부 등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체내의 분비물까지 나와 있어서 병을 진단하는 데 무척 유용한 책이 틀림없다. 제목이 병상(病狀)을 진단한다는 뜻의 망진(望診)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증상에 따른 치료법이 간략하게라도 소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