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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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운 하늘 빛깔 벽에 걸려 있는 듯한 표지의 액자 속 사진들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라는 부제 또한 구미가 당겼다. 여행과 사진과 그림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영역의 이야기들이 잔뜩 펼쳐질 것 같았다. 우선 책에 담긴 저자의 사진들은 마음에 든다. 여행하면서 찍었을 밤의 경치라든지 해가 지고 사방이 어스름해졌을 무렵의 조용한 골목길, 시선이 일정치 않은 지하철 역 사람들, 기념품 가게 앞에 진열된 액자 속 그림들, 옹기종기 모여 수다떠는 무리들. 조용하면서 분위기 있거나 화려하면서 질서 있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 한 켠이 풍요로워지는 사진들이 있다. 그것이 배경이거나 사람이거나.

하지만 '파리 블루'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저자를 위해 쓴 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여행이야기가 적은 듯하고, '미술관 스케치'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미술관의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나 피카소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조금 더 실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오래된 줄 노트 느낌이 나는 속지에 쓰여진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엄마에 대한 회상, 연애 이야기 등이 나온다. 어쩌면 이 열두 가지의 blue (대부분이 우울한 내용이었지만 모두는 아니었다) 때문에 저자를 위한 책이라고 느껴졌나보다. 

서울 사람만큼 무뚝뚝하다는 파리 사람들과 지하철을 타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정 표현을 하는 연인들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이야기들로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행 관련 책들을 보면 평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곳이라도 책을 덮는 순간 당장 떠나고 싶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파리 블루'는 그렇지 않았다. 부제의 '기억'이란 단어에 너무 집중하여 글을 쓴 걸까. 저자의 파리에 대한 기억과 옛 시절의 추억을 잘 버무려서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아무래도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이고 싶다. '파리 블루' 처럼 옛 일에 대한 회상이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릴 적 가족과,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얽히고설킨 '여행이야기'들로 풀어내고 싶다. 여행에 대한 욕구, 희망이라든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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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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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서 손미나 작가의 미니홈피를 구경했다. 책에 실린 사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여행 사진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곳을 밟아보고 온 그녀가 부러웠다. 삶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그녀가 더욱 빛나 보였다.  

일본, 언젠가 여행해야 할 나라로 정해두었다. 도쿄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그 곳에 가고 싶어지는 것인지 일본어를 배우고서 부터 결심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여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가야 할 곳이기 때문에 '도쿄 에세이'라는 말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서점에서 집었던 스페인 여행기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한번 읽어볼 만하겠다 생각했지만 일부러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말이다. 난 이렇게 손미나의 책을 만났고, 그녀의 글을 처음 읽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읽었던 여행 이야기와는 다르다. 그녀는 일정에 쫓기지도 않았고, 여느 가이드북에 나온 이름난 곳들을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책에는 사람과 추억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알맹이가 꽉 찬 느낌이다. 정해진 틀에 맞춰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도쿄를 즐기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마음 가는 곳을 향해 열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그녀의 인생관이며 여행관인 이 한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꼼꼼히 계획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행 필수 코스라는 곳들을 돌아보지 않아도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편히 쉬면서 하는 여행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라주쿠 캣 스트리트에 있는 타코야키 집에도 들르고, 아사쿠사의 리키샤 맨 하치와 일본어로 대화도 해보고, 꽃미남 청년들의 라멘 가게에서 고기 달걀 라멘도 맛보고 싶다.  

그녀의 여행은 만남에서 만남으로 이어진다. 리키샤 맨과 게이샤 소녀, 작은 식당에서 합석한 손님들, 마에다 상 아버지의 100년 넘은 스시집, 하지메 친구의 초대 등 우연찮게 운이 좋았다고 한다.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어서 여행기를 읽는 동안 아니 함께 여행하는 동안 더욱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는 내게 값진 책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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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行大義 -上 대유학술총서 1
김수길.윤상철 옮김 / 대유학당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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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께서 간직해오신, 거실 책장 맨 아래 칸을 채우고 있는, 두께가 어마어마한 표준 국어사전이나 가정 대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행대의'의 두께가 엄청나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소길의 '오행대의'를 번역했다는 상, 하권 둘을 합한다면 조금 두껍다고 느낄까. 도서관에 가면 거의 찾지 않는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한 질의 오래된 책들의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행에 관심 없는 일반인이 읽는다면 지루하다 못해 머리가 아플 수도 있지만, 오행학설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이 영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읽지는 못했다. 한 장씩 넘기며 두 번을 보았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역자의 말이나 서문을 읽어보면 '오행대의'가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상 권만 보았을 뿐이지만 어려우면서도 신기했다. 오행을 다섯 수와 연결짓거나 계절이나 절기를 오행으로 설명하는 것, 간지를 신체와 오장에 배속시키는 것이 그러했다. 예전에 띠를 보고 서로 맞지 않는 상대를 알아내는 표가 있었다. 가족의 띠로 확인해보았던 기억이 있다. 제 12편에서 서로 해가 되는 이유를 12간지로써 설명하고 있으나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책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 막막했던 것과 달리 '오행대의'에서 조금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니 상 권의 맨 마지막 부분 제 14편이다. 색(色)과 악기(초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 듣는 듯한 '궁상각치우')와 맛(味)을 오행과 연결지어 배속시키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섯 가지 맛을 과일, 나물 등 음식 외에 돌이나 벌레에까지 나타내다니. 계절과 장부(藏府) 등 결국 오행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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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 인 런던 - 혼자 떠나기 좋은 런던 빈티지 여행
곽내경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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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채널에서 그녀들의 여행 이야기를 즐겨 보았다. 파리, 런던, L.A, 뉴욕, 멜버른에서의 그녀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즐거움이 가득한 환한 미소가 예뻤고,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여행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들뜨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신 나는 단어가 여행이 아닐까. 목적을 가지고 하는 여행이든 아니면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좋아서 하는 여행이든 여행이란 이름만으로 신이 난다.

'데이즈 인 런던'이란 제목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스타일리쉬 여행을 주제로 한 스타들의 테마 여행이었다. 런던 여행기는 패션, 쇼핑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재미있었다. 내가 하는 여행도 고스란히 남길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텐데.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자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하는 순간순간이 내게는 축복이다.

여행 중 사진기에 담는 생동감 있는 모습이 좋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보석이 아니더라도 차례차례 질서 있게 줄 맞춰 선 구도가 아니더라도 엉터리 배열이라 할지라도 나는 화려하지 않고 획일화되지 않은 그것이 좋다. 사진의 전체적인 파랑과 부분적인 노랑과 그리고 빨강 필기체를 한데 모은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혼자 떠나기 좋은 런던 빈티지 여행이라.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어보긴 했지만 여행지로 런던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느 여행책이든지 보는 것만으로 그곳을 여행하고 싶게끔 한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젠가 런던 거리의 자그마한 갤러리 앞에서 서성이거나 아담한 카페에서 바비큐 햄버거로 허기를 채우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어느 날엔가 훌쩍 떠나고 싶음을 느끼지만 모든 걸 내팽개치고 떠날 용기와 배짱이 없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의 여행기로 그 아쉬움을 대신한다. 사진과 글이 거의 반반이라서 더욱 흥미롭게 읽은 '데이즈 인 런던'은 크게 갤러리와 북샵, 마켓과 카페 그리고 패션과 쇼핑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 관심 분야인 그림과 음식에 관련한 사진은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졌고, 갤러리와 카페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관심 영역은 아니지만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쇼핑과 패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런던, 언젠가 한 번쯤 가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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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우광훈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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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때는 외국 작가의 소설인 줄 알았다. 네덜란드 정부가 렘브란트의 작품 보다도 더 아낀다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소재로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이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생각하며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역시 외국 소설이겠구나 했다. 국내 작가임을 확인하고 슬며시 놀랐다. 오래전 도서관 책꽂이에서 꺼내보았던 적이 있는 소설집 '유쾌한 바나나 씨의 하루'의 저자 우광훈의 장편소설인 것에 말이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술 기법이라든지 용어를 알지 못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에 실린 여섯 작품 역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난다. 책을 접하고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게 '왜 제목에 베르메르가 두 번 들어갈까' 였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다. 베르메르의 이야기라기 보다 위작 화가이며 화상(畵商)인 가브리엘의 이야기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제1부 각 장의 마지막 부분이 의미심장했다. '가브리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이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과오에 대해 과연 나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제2부, 4부에서는 가브리엘의 옛 시절부터 연도 순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3부에서는 1부에 이어 '최후의 심판' 전의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부가 바뀔 때마다 앞 이야기에 이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속도를 늦추지 않고 눈을 굴렸다.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드는 내 모습이 오랜만이었다.  

책을 덮으면서도 이 이야기가 실재인지 허구인지 분간이 안 갔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명화 위조범 '반 메헤렌'을 모델로 하여 책의 주인공 '가브리엘 이벤스'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반 메헤렌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에 사실을 토대로 한 팩션이라는 점에 놀랐고, '진주 귀고리 소녀'나 '다 빈치 코드'에 맞설 우리 작가의 작품성에 또 한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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