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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한 달 여행자
백철현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떤 사람들은 유럽 여행을 할 때, 여러 나라의 많은 도시를 발도장만 찍는 식으로 다니기도 한다. 나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하더라도 한 곳에서 며칠 씩 머무르며 마치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여행이 좋다. 지금까지 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요즘 세계지도를 펼쳐 놓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위스나 네덜란드, 핀란드 등 깨끗한 느낌의 나라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암스테르담 한 달 여행자>, 운하와 댐으로 둘러싸인 낮은 땅 네덜란드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숙소를 잡아 한 달간 살아보는 여행. 여느 여행자들처럼 지도나 가이드북에 의존하지 않고, 마치 일상생활하는 듯한 여행. 그런 게 좋다. 어느 날 내게 낯선 도시에서 한 달간 살 집이 생긴다면 그곳 역시 암스테르담처럼 너무 큰 도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도시의 볼거리에 짓눌리지 않아도 되는 곳,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책이 참 고급스럽다. 남색 바탕에 판화를 새긴 듯한 금빛 제목과 심플한 표지 디자인, 그리고 표지 뒤쪽의 네덜란드 지도가 맘에 든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저자의 소개를 읽고, 프롤로그를 읽으며 그는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았구나,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그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제안하며, 한 달간의 여유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는 어느 여행 작가에게 추천받아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난 '네덜란드'하면 가장 먼저 풍차가 생각난다.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는 겨울에는 황량하지만 꽃 피는 계절에는 한 폭의 그림이란다. 한국의 용인 민속촌 같은 동네 잔세스칸스에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아로아가 신던 나막신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 1년에 25일 정도이므로 날씨가 좋다면 일단 암스테르담 북동쪽에 위치한 '마르켄'에 가보라고 한다. 마르켄 케르크부르트에서 내려 자전거를 대여하여 마을과 제방 돌아보기.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중고 자전거를 구입하여 이름을 '네모'라고 짓는다. 운하를 따라, 자전거 길을 따라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투어를 하고 싶다. 그는 어느 덧, 네모를 타고 지도 없이 마음 가는대로 향한다.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발길 가는대로 즐기는 여유로움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네덜란드의 보물인 몇 군데의 미술관이 소개된다. 내가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관 이야기에 특히 집중했다. 뮈죔 광장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느긋하게 보고 싶다. 비넨호프 옆 호수 끝자락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직접 보고 싶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읽고 더욱 좋아하게 된 작품이다. 뮈죔 광장 한쪽의 현대식 건물은 오직 고흐의 작품을 위한 반 고흐 미술관이다.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앞에 서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여유를 찾자고 온 여행에서 그는 보름 동안이나 부지런을 떨었다. 후에 남은 시간 동안은 관광이 아닌, 느긋하게 여행한다. 폰델 공원의 호숫가 옆에 자리 잡고 앉아 햇볕을 쬐며 암스테르담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인보다 훨씬 검소하고 단순하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네덜란드인이 가진 여유를 배우고 싶다. 하루하루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모습이 본받을 점이 아닐까?
프란스 할스 미술관에서 흘러나오는 오보에 소리에 귀기울이며 정원을 돌아보고, 네덜란드 대표 음식인 청어절임 하링, 갖가지 치즈, 팬케이크, 마요네즈 뿌린 감자 튀김, 맥주 맛보기, 슈퍼에서 장보기, 샌드위치 도시락 싸들고 공원으로 소풍 가기, 호헤벨뤼베 국립공원의 크뢸러뮐러 미술관 들르기 등 암스테르담에서 지내는 데 심심할 틈이 없겠다.
어느 여행이나 그러하겠지만 생생하게 기억되고 영원히 간직될, 여행이기도 하고 일상이기도 한, 낯선 도시에서 아파트 얻어 한 달 살기.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꽃의 계절 4월에 한 달간 머무른 암스테르담.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일주일도 안 걸려 모두 돌아볼 수 있을 만큼 공간 집약적이다. 이런 도시 열 두 곳을 골라 한 달씩 생활하며 1년을 보낸다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웃음이 난다.
펼친 책의 양쪽 페이지에 찍힌 한 장의 사진도, 축소된 10여 장의 사진도 모두 예쁘고 아름답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암스테르담이 네덜란드의 수도인줄도 몰랐던 나는 어느덧 그곳의 모습에 푹 빠졌다. 저자가 한 여행이 내가 원하던 여행이기도 하고, 암스테르담의 모습이 내가 가고 싶어하던 곳의 모습이기도 해서일까? 언어는 잘 통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얼마 동안 머무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임없이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