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한 달 여행자
백철현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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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유럽 여행을 할 때, 여러 나라의 많은 도시를 발도장만 찍는 식으로 다니기도 한다. 나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하더라도 한 곳에서 며칠 씩 머무르며 마치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여행이 좋다. 지금까지 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요즘 세계지도를 펼쳐 놓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위스나 네덜란드, 핀란드 등 깨끗한 느낌의 나라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암스테르담 한 달 여행자>, 운하와 댐으로 둘러싸인 낮은 땅 네덜란드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숙소를 잡아 한 달간 살아보는 여행. 여느 여행자들처럼 지도나 가이드북에 의존하지 않고, 마치 일상생활하는 듯한 여행. 그런 게 좋다. 어느 날 내게 낯선 도시에서 한 달간 살 집이 생긴다면 그곳 역시 암스테르담처럼 너무 큰 도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도시의 볼거리에 짓눌리지 않아도 되는 곳,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책이 참 고급스럽다. 남색 바탕에 판화를 새긴 듯한 금빛 제목과 심플한 표지 디자인, 그리고 표지 뒤쪽의 네덜란드 지도가 맘에 든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저자의 소개를 읽고, 프롤로그를 읽으며 그는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았구나,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그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제안하며, 한 달간의 여유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는 어느 여행 작가에게 추천받아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난 '네덜란드'하면 가장 먼저 풍차가 생각난다.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는 겨울에는 황량하지만 꽃 피는 계절에는 한 폭의 그림이란다. 한국의 용인 민속촌 같은 동네 잔세스칸스에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아로아가 신던 나막신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 1년에 25일 정도이므로 날씨가 좋다면 일단 암스테르담 북동쪽에 위치한 '마르켄'에 가보라고 한다. 마르켄 케르크부르트에서 내려 자전거를 대여하여 마을과 제방 돌아보기.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중고 자전거를 구입하여 이름을 '네모'라고 짓는다. 운하를 따라, 자전거 길을 따라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투어를 하고 싶다. 그는 어느 덧, 네모를 타고 지도 없이 마음 가는대로 향한다.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발길 가는대로 즐기는 여유로움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네덜란드의 보물인 몇 군데의 미술관이 소개된다. 내가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관 이야기에 특히 집중했다. 뮈죔 광장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느긋하게 보고 싶다. 비넨호프 옆 호수 끝자락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직접 보고 싶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읽고 더욱 좋아하게 된 작품이다. 뮈죔 광장 한쪽의 현대식 건물은 오직 고흐의 작품을 위한 반 고흐 미술관이다.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앞에 서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여유를 찾자고 온 여행에서 그는 보름 동안이나 부지런을 떨었다. 후에 남은 시간 동안은 관광이 아닌, 느긋하게 여행한다. 폰델 공원의 호숫가 옆에 자리 잡고 앉아 햇볕을 쬐며 암스테르담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인보다 훨씬 검소하고 단순하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네덜란드인이 가진 여유를 배우고 싶다. 하루하루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모습이 본받을 점이 아닐까?

프란스 할스 미술관에서 흘러나오는 오보에 소리에 귀기울이며 정원을 돌아보고, 네덜란드 대표 음식인 청어절임 하링, 갖가지 치즈, 팬케이크, 마요네즈 뿌린 감자 튀김, 맥주 맛보기, 슈퍼에서 장보기, 샌드위치 도시락 싸들고 공원으로 소풍 가기, 호헤벨뤼베 국립공원의 크뢸러뮐러 미술관 들르기 등 암스테르담에서 지내는 데 심심할 틈이 없겠다.

어느 여행이나 그러하겠지만 생생하게 기억되고 영원히 간직될, 여행이기도 하고 일상이기도 한, 낯선 도시에서 아파트 얻어 한 달 살기.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꽃의 계절 4월에 한 달간 머무른 암스테르담.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일주일도 안 걸려 모두 돌아볼 수 있을 만큼 공간 집약적이다. 이런 도시 열 두 곳을 골라 한 달씩 생활하며 1년을 보낸다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웃음이 난다. 

펼친 책의 양쪽 페이지에 찍힌 한 장의 사진도, 축소된 10여 장의 사진도 모두 예쁘고 아름답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암스테르담이 네덜란드의 수도인줄도 몰랐던 나는 어느덧 그곳의 모습에 푹 빠졌다. 저자가 한 여행이 내가 원하던 여행이기도 하고, 암스테르담의 모습이 내가 가고 싶어하던 곳의 모습이기도 해서일까? 언어는 잘 통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얼마 동안 머무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임없이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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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시한 여자와 일하고 싶다 - Women's Image Tuning
황정선 지음 / 황금부엉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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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타일리시와는 거리가 멀다. 멋쟁이인 여동생과 달리 나는 옷을 잘 입지도, 옷을 잘 사지도 못한다. 스물 다섯 살 겨울에 소개팅을 하던 날이었다. 주선해준 친구가 약속 시간 몇 시간 전에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옷장을 열더니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바꿔입게 했다. 친구는 남자친구 만날 때도 아직 안 입어봤다는 새 코트를 꺼내더니 내게 입으라고 했다. 헤어와 메이크업도 도와주어 난 약간의 변신을 시도했다. 쑥스러웠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부츠는 내가 신고 왔던 걸 그대로 신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군청색의 코트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스물 여덟에 만난 헤어디자이너 친구는 어깨까지 오던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던 나를 보더니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좀 주라고 했다. 그리고는 단발로 싹뚝 자르고 퍼머를 해주었다. 그리고 옷 사러 갈 때 자기를 부르면 함께 가주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는 고마운데, 내 자신에게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워킹 스타일, 비즈니스 메이크업, 뷰티 솔루션 등 일하는 여성이 알아 둬야 할 팁을 정성스레 알려 준다. 내가 다녔던 첫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복장 규제가 없었다. 면접 때 처음 입은 새로 장만한 정장은 회사에 다니며 거의 입지 않았다. 여름에는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직원도 있었지만 역시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는 복장보다는 약간 더 격식있는 차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 문화와 업무 역할에 맞는 워킹 스타일을 연출해야 한다. -17p

WOMEN'S WORKING STYLE : 일하는 여성의 여러 가지 스타일을 그림으로 보여 준다. 상·하의 옷 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구두와 핸드백, 액세서리까지 코디하여 스타일 연출이 어려운 여성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베이직한 스타일은 신뢰감을 주고, 밝은 색이나 비비드한 색은 밝은 이미지로 보이게 한다. 워킹 스타일의 기본 컬러인 베이지는 옐로, 핑크, 블루 세 가지가 있는데 그에 어울리는 포인트를 알려 준다.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배색으로 코디했다면 포인트 컬러로 화려함을 연출하고, 돋보이고 싶을 때는 보색끼리 맞추면 화려함이 살아난다. 허리 라인을 강조하려면 어중간한 폭의 벨트보다 얇거나 상당히 두꺼운 벨트를 착용하는 것이 스타일리시하다. 하늘색 셔츠는 동양인의 피부색에 잘 어울리는데다가 어떤 색과도 맞추기 쉽다. 그레이 터틀넥은 어떤 색의 아우터나 어떤 디자인의 하의와도 멋지게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가죽 재킷은 베이직한 옷들과 입으면 예쁘고, 여성스러운 옷과 매치해도 잘 어울린다. 화려한 원피스는 재킷이나 롱 카디건과 함께 입으면 훨씬 세련되고 품위있어 보인다. 요란하게 튀지 않고 멋지게 차려 입는 가장 간단한 방식은 클래식한 스타일의 옷차림에 독특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것! 

어떤 구두라도 옷보다 밝지 않고 어두워야 한다. 옅은 색이나 파스텔 톤, 중간 톤의 옷에는 그레이나 베이지, 브라운을 신으면 세련되게 잘 어울린다. 나는 발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거의 매일 운동화만 신었다. 구두는 1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신는 편이다. 최근에 발 수술을 하면서 앞으로는 예쁜 구두를 많이 신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구두와 관련한 내용은 더욱 관심있게 읽었는데 구두의 종류와 이름을 보며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핸드백도 많지 않다. 하나를 사면 낡을 때까지 쓰는 편이다. 파우치는 커녕 화장품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옷을 받쳐 입기 좋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검정, 브라운, 흰색 등의 세 가지는 구비해 놓아야 하고, 호감가는 여성으로 보이고 싶다면 파우치를 준비해 가방 속에 꼭 있어야 할 물건들을 정돈해서 다니라고 한다. 소프트 보스톤 백은 어떤 스타일링에도 잘 어울린다니 하나쯤 구비해 놓으면 좋겠다. 귀걸이나 목걸이, 안경, 스타킹, 스카프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다. 일하는 여성의 스타일 연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잘 꾸미지 못하는 여성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나 또한 많이 배웠다.

WOMEN'S BUSINESS MAKEUP : 상황에 따른, 직업의 종류에 따른 메이크업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얼굴 전체를 꼼꼼이 짚어주고, 피부 관련 고민에 대한 해결책도 알려 준다. 자신감은 다름아닌 눈빛에서 나온다. 따라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할 때에는 아이 메이크업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154p

WOMEN'S BEAUTY SOLUTION : 기본 스킨케어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끼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희미한 인상은 푸석푸석한 모발에서 나오므로 헤어케어도 중요하다. 올바른 헤어 드라이어 사용법, 두피 마사지하는 방법, 라인을 관리하는 바디 케어, 핸드 크림 사용법 등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나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고, 앞으로 내 자신을 꾸밈으로써 나의 가치를 올리는 데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을 꾸미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일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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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멜로가 아니라 다큐다 - 파워블로거 라이너스의 리얼 연애코칭
라이너스 지음 / 청림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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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은 예전에 좋아했던 선배에게 먼저 고백했다가 실패한 이유로, "역시 여자는 먼저 고백해서는 안 되는 건가 봐"라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새겼을지도 모른다. -121p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에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다. 내가 직접 고백하지는 못하고 선배의 친구에게 말했었는데, 나중에 그 선배가 그랬다. "네가 직접 얘기했다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앞으로도 동아리 사람하고는 사귀지 않을 거야. 사귀다 만약에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최소한 한 명은 동아리 활동하기 힘들테니까." 직접 고백했어도 가망은 없었겠다.

각자의 사생활과 취향까지 모두 다 인정하자. 어차피 20년 넘게 따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났는데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게 될 것이다. -184p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는 모든 게 좋았다. 서로의 좋은 점만 보였을 수도 있고, 서로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니 조금씩 변하더라. 아니, 그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었던 건데 그제서야 보이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화와 비난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말을 시작했으나 말을 하다 보면 스스로의 감정과 서러움이 복받쳐 결국 상대의 잘못을 끄집어내고 비난을 퍼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14p 우린 참 많이도 싸웠다. 다퉜다는 표현이 더 나을까? 별 것 아닌 사소한 일들로 서로를 아프게 하고, 그러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 당신에게 찾아온 슬픔과 아픔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에 최선을 다했고 그랬기에 슬픔 또한 큰 것이다. (…) 당신의 지나간 사랑과 다시 찾아올 사랑을 위해 마음껏 슬퍼하고 깨끗이 털어버리자. -221p 20대 초반, 대학 시절 3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멈추지 않고 흐르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슬프게 울다 잠이 들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와 이른 저녁부터 술을 마셔댔는데도 취하지 않던 그때의 나는 참 아팠다. 그리고 어렸던 것 같다. 

연애 단계에서부터 지나치게 결혼을 염두에 두는 것은 곤란하다. -156p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소개팅이 많이 들어왔다. 스물 다섯의 겨울에 만난 동갑내기였던 그는 내게 참 잘해주었는데, 3주간 3일에 한 번씩 만났지만 좋은 감정이 생기질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 난 그 즈음부터 아니라고는 해도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마다 결혼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은 있었던 것 같다.

소개팅 후 다시 만나고 싶은 여자 되는 법! 첫 만남부터 과감하게 더치페이를 시도해보자. 상대방이 식사를 대접했다면, 커피는 당신이 사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자. 그는 이런 배려에 당신에게 홀딱 반할 수도 있다. -135p 그랬던 적이 있다. 퇴근 후, 저녁 늦게 우리 동네로 온 그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간단하게 먹은 식사값을 내가 냈다. 소개팅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던 그의 얼굴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식사 중에 이야기하면서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어떤 타입의 남자이건 진심으로 상대를 좋아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 당신은 둘의 관계가 꽤나 진전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는 호감의 1단계도 시작을 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벌써 3단계의 상상을 펼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 당신의 신호를 그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도 5개월이 지나서까지 그에게 아무런 신호가 없다면 과감하게 접을 것을 권한다. 사실 5개월도 너무 길다. -100~101p / 상대가 마음에 들어도 절대 먼저 연락하지 마라. 무조건 기다려라. 당신이 마음에 든다면 분명히 그쪽에서 먼저 연락할 것이다. -113p 동호회 모임에서 한번 보았을 뿐인데 계속 생각이 나던 사람이 있다. 20여일만에 연락처를 알아냈고 우연한 기회로 단둘이 만나게 되었다. 전시회도 보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얘기하면서 꽤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집에 들어와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고, 답도 왔다. 2주 후 두 번째 만났을 땐 영화 보고 콘서트 보느라 이야기를 많이 못해서 아쉬웠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집에 와서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도 연락이 없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만남 사이에 연락은 항상 내가 먼저 했고, 답이 거의 늦게 왔다. 그 이후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연락을 하지 않다가 또 생각나서 한 번 연락하고, 단답형의 답 문자에 실망해서는 절대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문자를 보내는 그였다. 한 달 후, 혹은 두 달 후 안부 문자를 보내던 그를 정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두 번째 만남 이후, 다섯 달만에 모임에서 만난 그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걸까. 무려 여섯 달 넘게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그가 참 밉다. 

연애에 관한 질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 의외로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필수 요소는 바로 혈액형에 관한 질문이다. -32p 혈액형에 대한 일반적 이야기들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그게 마치 불변의 진리인양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35p 단순히 재미로 보면 되는데 자꾸만 연관시키게 된다. 소개팅 전에 혈액형을 물어보거나 아니면 첫 만남에서 꼭 물어봤던 것 같다. 사귀다가 헤어지면 '그래, 역시 안 맞는 혈액형이었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매너가 철철 넘치는 바람둥이 타입보다, 조금 어색하고 수줍지만 일편단심 당신만을 사랑해줄 순진한 남자가 오히려 더 미래를 기약하게 하는 남자다. -45p 첫 만남에서 어색하고 수줍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에겐 끌리지 않았던 적이 많다. 어쩌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에는 공감한다. 나만 사랑해줄 남자가 최고라는 것!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한창 행복했던 연애 초기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별을 막을 수 있었을까? 소개팅은 잘 되었을까? 책에 나온 이야기들이 모두 맞고, 많이 들어보았던 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실전에는 약하다. 왜 잊어버리는 건지. 책을 펼치면서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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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즐, 삶을 요리하다 - 슬로푸드를 찾아 떠난 유럽 미식기행
노민영 지음 / 리스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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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알록달록한 색상의 주방용품 사진이 나와 있어서인지 책의 첫 느낌은 산뜻했다. 먹는 즐거움만 추구하는 미식가였던 저자 노민영은 이탈리아행 유학에서 슬로푸드 철학을 지닌 신개념 미식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신개념 미식가들은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 소비되는지 연구하여 음식의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바로 슬로푸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32p) 그녀가 유학한 이탈리아(파르마, 볼로냐, 모데나, 밀라노, 베네토, 토스카나)와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위해 방문한 스페인(빅, 바르셀로나), 그리스 크레타섬, 프랑스(리용, 디종, 부로숑)에서의 맛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과 음식을 좋아해서 관련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 유럽 미식기행은 처음이다. 게다가 슬로푸드를 찾아 떠난 유럽 미식기행이라니 더욱 기대가 된다. 

전 세계의 미식가들이 열광하는 프로슈토(돼지다리를 염장하여 숙성시킨 것)와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큰 덩어리의 단단한 치즈로 연한 노란색을 띤다.)의 본고장이라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파르마에서 그녀는 같은 반 친구들과 피자파티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볼로냐 대학과 볼로네제 스파게티로 유명한 볼로냐에서 슬로푸드영화제에 참석하고, 풍성한 맛의 젤라토를 맛본다. 발사믹식초의 원산지인 명품 도시 모데나와 베니스 축제만큼이나 화려한 음식문화를 발달시킨 베네토, 아름다운 경치와 풍요로운 음식문화를 자랑하는 토스카나 그리고 밀라노에도 들른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골목골목 다니며 지역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박한 음식점을 찾아내어 소개해준다. 나는 이탈리아에 간다면 카푸치노와 코르네토(크루아상)로 이탈리아식 아침식사를 해보고 싶다. 스페인에서는 바게트 사이에 하몽을 넣은 샌드위치, 해산물과 파스타를 넣어 만든 '피데와', 차가운 토마토 수프 '가르파초'를 맛보고 싶다. 따뜻한 초콜라테에 추로스를 찍어 먹는 것도 빠뜨릴 수 없겠다.  

대학교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던 친구와 나는 그리스 여행중에 여러 가지 그리스 음식을 맛보고 오자고 했었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 탓에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먹어서 아쉽기만 하다. 여행 다녀온지 5년이 지났을 때 그리스 음식이 그리워서 찾은 그리스 음식 전문점. 그곳에서 맛본 음식들은 기억 속의 맛과 달라서 조금 실망했었다. 책에 나온 올리브 나무나 그리스식 샐러드가 그립다. 아테네에서 델피가는 길에 버스에서 내려 보았던 올리브 나무로 가득한 풍경은 마치 그림 같았다. 그리스인들의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커피 한 잔 마시는 정도인데, 우리는 샐러드와 수블라키를 먹었었다. 그릇에 원하는 재료를 담아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식이었는데 올리브와 토마토, 갖가지 야채에 두부처럼 생긴 페타 치즈를 얹어 먹었다. 페타 치즈를 처음 먹었을 때 짠맛이 너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에 익숙해졌다. 딱딱한 러스크(빵) 위에 미지트라(치즈)를 올린 크레타의 대표적인 간식 다코스와 미지트라로 속을 채운 반죽을 튀겨 타임 꿀에 찍어 먹는 크레타 전통 디저트를 먹어보지 못해 아쉽다. 언젠가 그리스에 다시 가게 된다면 크레타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며 이전에 맛보지 못한 전통 음식들을 즐기고 싶다.

치즈와 빵이 가득한 프랑스의 시장 구경도 재미있겠다. 책의 여러 페이지에 나온 치즈 사진을 보고, 치즈 이야기를 읽다보면 왠지 느끼함에 머리가 아파오기도 했지만, 먹거리로 가득한 책 한 권을 참 맛있게 읽었다. 책에 소개된 십여 가지의 레시피도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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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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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마 2005년 따뜻한 봄날이었던 것 같다. 예전부터 말버릇처럼 배낭여행 한번 다녀오자고 말했었고, 졸업 사진을 찍을 무렵 우린 학교 근처 카페에 있었다. 몇 군데의 여행사에 전화를 했고 무작정 그리스행 왕복 티켓을 예약해버렸다. 왜 그리스였는지 왜 보름이라는 기간으로 정했는지 이유는 없었다. 출국 날짜가 두 달도 남지 않은 그때 도서관에서 그리스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읽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그리스에 빠져들었고, 크레타섬의 카잔차키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권삼윤의 '꿈꾸는 여유, 그리스'와 르네 그리모의 '매혹의 그리스'는 그리스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고, 유재원의 '신화의 땅 인간의 나라 그리스'는 그리스에 관한 묘사가 좋았다. 이두영의 '신화보다 아름다운 그리스'는 각 지역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행 후에 읽은 curious 시리즈 그리스 편은 여행을 추억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때였던 것 같다. 단지 어떤 곳에 관한 책을 읽었을 뿐인데, 마치 실제로 그곳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사실, 여행을 할 때보다 여행 전에 책을 읽으면서 일정을 짜고 계획을 세울 때가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넘기면 가장 먼저 나오는 <기대에 대하여>에서 프랑스 작가 위스망스의 소설《거꾸로》가 언급된다. 이 작품의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주인공인 데제생트 공작은 디킨스를 읽고 영국인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들뜬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하고 파리로 가서 런던으로 출발하기 전에 런던 여행 서적을 산다. 런던의 볼거리를 읽으며 달콤한 백일몽에 빠져들고, 영국인 단골 주점에서 디킨스 소설에 나온 그대로의 분위기를 느낀다. 그러나 데제생트는 실제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라는 생각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의자에 앉아서도 아주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움직이며 다닐 필요가 뭐가 있는가?'라면서.

저자 박준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던 중 책과 지난 여행의 기억 속으로 떠나는 몽상가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의 거실에서 갈 수 없는 곳은 없었고, 그 여정이《책여행책》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책여행에서 내가 읽은 책과 겹치는 것은 둘 뿐이다. 앞에서 말한 '여행의 기술'과 '청춘 · 길'. 나 역시 '청춘 · 길'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어두었다.


       열네 살 무렵, 거리를 걸을 때면 나는 누군가가 나를 납치해주기를 꿈꾸곤 했다. 내 등 뒤로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서, 이번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더운 계절 아침 10시경에 사헬의 거리로 나간다는 것은 현기증 나는 열기와 눈부신 빛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거리의 메마른 흙 위를 걸으면서 나는 이곳의 높은 기온과 너무도 강렬한 빛에 짓눌리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온전히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그러자 견디기가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가 읽은 책들 대부분이 흥미로워 보인다. 특히, 지하철 바뱅역 바로 앞, 몽파르나스대로와 바뱅거리가 만나는 코너의 카페 셀렉트(40p)에 앉아 진하고 고소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파리 카페'를 읽고 싶다. 델리에서 바라나시행 기차를 타고 혹은 짜파티와 라씨로 가볍게 배를 채운 뒤,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을 읽고 싶다. 모로코의 옛 수도이며 세상에 하나뿐인 중세도시 페스를 거닐면 어떤 느낌일까? 페스의 구시가지에 있는 '메디나'에는 만 개의 골목이 있다고 한다(160p). 지도가 있어도 소용 없는 곳,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사람들……. 모로코의 전통가옥인 리아드에서 '페스의 집'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저자 박준의 지난 여행을 고스란히 담은 여행책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의 첫 번째 책 'On the Road'를 읽고서 나도 카오산로드에 가고 싶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넘쳐나는 곳, 그곳에서 여행의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다. 일본 교토는 벚꽃이 피었을 즈음에 가서 료칸에서 꼭 하룻밤 묵고 싶다. 홋카이도는 겨울에 가면 좋다고 들었는데, 하코다테에서 노란 전차를 타고 오마치역 근처에서 내려 오래된 목조건물 2층의 카페 '카모메suq'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에게 가볼만한 곳을 물어봐야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는 야간열차 산타클로스익스프레스를 타고 싶다. 산타클로스가 산다는 로바니에미의 모습은 어떨까. 조용하고 내향적이라는 핀란드인 친구를 사귀어 숲속의 통나무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프랑스의 작은 동네 아를에서는 고흐의 흔적을 찾아 걷고 싶다. 별이 빛나는 밤에 아를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를 기억하는 시간도 가져야지.

정말 휴가 없이 세계일주를 했다. 보스턴에서 43킬로미터 떨어진 프로빈스타운에 갔다가 체 게바라의 여정을 따라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를 여행한다. 파리, 인도, 몽골, 알래스카, 멕시코를 갔다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고, 후지산도 보러 간다. 정말 그의 말대로 여러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집을 떠날 필요 없이 안락의자와 8,894페이지의 책이 있다면 좋겠다. 여유롭게 두 달 정도면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을테니까. 하루하루를 창조적으로 산다면 일상이 곧 여행이라는 그의 말을 몇 번씩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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