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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샛노란 바탕에 사내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고 책의 제목은 '하하 미술관'이다.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 마음속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다. 표지만 보고 '만면(滿面)에 웃음 가득할 수 있는 책이겠구나' 생각하여 책을 펼쳤다. 저자는 우울한 소식만 가득한 세상의 우리들을 그림으로써 환하게 웃기고 싶었고, 그래서 책을 쓰게 되었다. 국내 작가에게 긍정할 수 있는 삶의 조건과 공통분모가 더 많기 때문에 책에 담은 작품들은 모두 국내 작가들의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시종일관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종일관 웃는 우리들을 떠올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하하하 소리내어 웃을 수 있게 한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장은의 <기억이 안 납니다>(82p)를 보고 처음 웃음이 터졌다. 과음하고 들어온 여성의 모습인데 초록색 이불 위엔 술병이 가득하다. 산발(散髮)한 채 술이 덜 깬듯 두 볼은 발그레하고 그 모습이 꽤 오래된 지난 어느 날의 영락없는 내 모습이었다.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아닐까. 조장은의 다른 작품들도 실감나는 표정으로 인해 그림을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이소윤의 <장면1-설렘과 기대>(90p)도 뭔가 말하려는 듯하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단발머리 소녀가 몸에 비해 엄청나게 큰 가방을 메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주변의 큰 기대에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부탁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소윤의 다른 작품명은 <불안>, <불신>, <혼란>, <단절> 그리고 <위로>다. 작품마다 등장하는 소녀의 행동이나 옷차림, 표정의 적절한 표현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커플천국을 걷는 싱글들에게 보이는 주정아의 작품들도 재밌다. 다정한 연인을 바라보는 남자와 개의 표정이 실감난다.
하하하 소리내어 웃으며 본 작품은 얼마 없지만, 감탄하거나 미소지으며 본 작품도 꽤 있다. 박재영의 스웨터 그림은 정말 섬세하다. 보고 있는 내 눈이 아플 정도다. 작가는 올을 그리는 행위가 삶의 과정을 현재와 결합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29p). 조성연의 '사물의 호흡' 연작 사진은 거실 한쪽 벽에 걸어 놓고 싶은 욕심이 난다. 표지 그림은 이순구의 <웃는 얼굴-소년>이다. 작가는 노란색이 소년의 빛깔이라고 생각해서, 배경에 노란색을 자주 썼다고 한다(45p). 목젖까지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모습이 보고만 있어도 마음까지 환해진다. 홍일화의 그림은 인위적인 아름다움과 성형에 중독된 한국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144p).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한 가지씩 단점을 안은 얼굴이지만 실제 모습을 보는 듯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권경엽의 붕대를 싸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사진을 찍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 외에 전영근의 '여행' 그림은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고, 김정아의 발레복을 입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어느 외국 작가의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김혜연의 <은반의 여왕>이나 <가족 풍경>을 보면서는 풍자적이고 희극적인 패러디의 대가인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가 생각났다. 구본주의 그림에서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았고, 김정란의 수묵 채색한 그림과 김소연의 시멘트 패널에 그린 그림은 오래된 사진첩의 어린 시절 사진을 떠올리게 했다. 안정민의 <은골단심24-황금>과 <은골단심27-목련꽃>, 왕열의 작품은 액자 속에 넣어 집안을 장식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듣는 표현들이 있었다. '더께더께' 쌓인 시간의 지층 위에 외롭지 않게 핀 꽃(38p), 낙숫물에서 태어난 음계가 왈츠 보폭으로 '톰방톰방' 뛰어다니는(76p), 좁은 골목길을 '톰방톰방' 뛰어가는 어린아이(107p)가 그것이다. 재미있는 표현들을 알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보고 싶은 영화 여섯 편과 읽고 싶은 책 여덟 권의 제목을 적어놓았다. 이렇게 따듯한 그림치유 에세이를 쓴 저자가 알려준 영화와 책이라서 꼭 보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3년간 이벤트에 당첨된 도서에 한해서만 서평을 써왔다. '하하 미술관'은 처음으로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책이다. 내가 소중하게 얻은 책인 만큼 읽고나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멋진 작품들과 따뜻한 이야기가 함께 있는 책이라서 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