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약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에 팽창과 수축을 거쳐 변형된 가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157쪽
백남기 농민 기사를 스크랩한 내블로그 글들에만 집요하게 악플을 다는 자가 있다. 그 자가 불쾌하게 어제는 말하기를 '경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는냐, 그가 어찌살아온지 아느냐며 농민이 왜 무고하냐.'고 주장했다. 악법도 법이라 주장했다.
악법이 법이었으면 하는 것은 그 악법으로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다. 법과 절차만 지키고 있었으면 아직도 유신헌법 아래 있을 것이고, 흑인들은 사람취급 받지 못했을 것이며, 여성들은 투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그 법도 지키지 않았다. 차벽도 위헌, 물대포도 위헌, 정당한 시위를 가로막은 것도 위헌... 아니 다 떠나서 누구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는가. 요즘 기사를 보면 이 정권은 참 후안무치하다.
<세상에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란 나온지 꽤 된 영화를 보았다. 없어도 무방해 보이는 전화기, 영화, 고양이... 그중에 제일은 나라는 한 인간. 시시하고 심심한 내 삶이 사라진다고 세상에 달라지는게 있을까?
전혀 잘못 이해된 불쌍한 철학들을 지껄이며 분해하던 날, 나의 행진곡풍 연가연주에 미친듯이 웃던 너의 웃음소리, 작고 따뜻하며 두근대던 숨을 나누던 많은 순간들.... 그 기억들이 없는 너의 삶은 지금과 다를까?
그래 내 삶을 의미있게 해주는 것은 오직 서로에게다. 그래서 오늘도 내삶에 찾아와준 무수한 당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끝없이 건낸다.
아이 잃은 부모를 빨갱이로 몰고, 부모 잃은 자식을 살인자로 몰던 자들의 여전히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며, 끝도 없는 감사의 목록으로 점철되어 있는 초라한 내 삶에 안도한다. 사람으로 죽어야지.
한살 더 먹게 되어 슬프고, [신비한 동물사전]를 보고나니 내 상상력의 비루함이 서글프다. 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