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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삼강행실도> 중 누백포호(누백이 호랑이를 잡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출간한 책의 삽화도. 오른쪽 아래부터 지그재그로 올라가며 아버지를 죽인 호랑이를 죽여 원수를 갚은 누백이란 사람의 효성을 기록하고 있다.
오른쪽 맨 아래는 누백이 어머니께 도끼를 앞에 두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하는 모습. 그 바로 위는 도끼로 호랑이를 죽이는 누백. 셋째는 아버지 묘 옆에 시묘살이를 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잠든 누백에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찾아와 칭찬하는 모습이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목숨을 건 효행을 강요하고, 열녀가 되라며 자진을 강요했던 조선의 역사를 생각하면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전기의 귀거래도>
전원으로 돌아가는 행복을 그렸다.
돌아가리!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왜 돌아가지 않으리.
내 스스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었던 것을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지난 일 탓할 필요 없고 앞으로의 일을 올바르게 할 것을 깨달았도다.
<정선의 유연견남산 부채그림>
한 선비는 늘 혼자 술에 취하여 살았고,
한 사내는 평생을 멀쩡히 깨어서 살았지.
깬 자와 취한 자는 서로를 비웃었고,
말을 해 보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
지식인의 외로움과 자아의식이 표출되어 있다.
<이방운의 빈풍도첩>
농민의 수고와 농경의 실상을 학습하는 교재였다는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실상과 달리 너무 곱고 평온하여, 왕들이 무엇을 배웠을까 의심스럽다.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사나운 매가 토끼를 잡네)>
암꿩의 숨으라는 소리에 제 머리만 쑤셔 넣은 숫꿩의 우스꽝스런 모습, 부리를 힘껏 벌리고 토끼의 죽음을 소리쳐 알리는 까치, 냉혹한 눈매로 토끼를 잡고 있는 꿩의 박력이 느꺼지는 그림이다.
<박제가의 어락도>
장자 : 피라미가 나와 조용히 놀고 있군.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야.
혜자 :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장자 :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혜자 :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래 자네를 몰라. 자네도 본래 물고기가 아니라서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틀림없는 일이야.
장자 : 부디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가 나에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물은 게야. 나는 그것을 이 물가에서 알았다네.
말뿐인 논리로 진리를 알아낼 수 없다.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누가 어떤 사람인지 경험과 느낌으로 안다.
<김정희의 세한도>
김정희의 가장 유명한 그림중 하나다. 김정희가 세한도 곁에 쓴 편지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하고 있다. 김정희의 이 편지글은 '슬프다!'라는 탄식으로 끝을 맺는다. 추운날 외로히 홀로 서 있는 송백의 모습은 저리듯 시려온다. 이 세상에 이렇게 꽂꽃한 이는 몹시 드물다는 것 그러기에 소중하지만 슬퍼질 수 밖에 없다.
<김정희의 불이선란(둘이 아닌 불법으로 피운 난)>
나는을 그리지 않은 지 스무 해,
우연히 성 가운데 천을 쳐 내노라.
문을 닫고 찾고 찾은 곳,
이것이 유마거사의 불이선이로다.
라는 시가 위에 적혀있고,
오른편에 작을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억지로 설명하라 한다면,
나는 유마거사의 침묵으로 거절하리라. - 만향
그 아래, 즉 그림 오른편 중간 난초 잎 사이로 쓴 글에는 이 난 그림의 조형적 출처가 밝혀져 있다.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문자 쓰는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사람들이 어찌 알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쓰노라.
그림의 왼편 아랫부분 굵은 글씨는 또 이렇게 적고 있다.
애초에 달준을 위하여 휘둘러 그렸다.
한 번이나 할 일이지, 두번은 못할 일이다. - 선객노인
달준은 김정희 곁에 시중들던 똘똘이 학동으로 이 그림에 친절한 해설을 단 이유가 드러난다.
<윤제홍의 한라산도>
윤제홍이 한라산에 다녀온지 이십여년이 지난 1845년에 그림을 그리고, 한라산 기행문을 그림의 위아래에 적었다. 손끝으로 그린 지두화로 투박한 맛이 좋다. 백록담의 물 위에는 흰사슴과 신선이 노닐고, 바위에 글을 쓰는 선비가 왼쪽 위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