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으로서는 오늘까지만 괴롭기로 하고, 이제는 제대로 갚아주고 이기기 위한 싸움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많이 괴롭고 어려운 자리인줄 몰랐습니다. 


원래부터 주책 맞게 눈물이 많지만, 오늘 새벽부터 아침까지 정말 오랜만에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화요일 아침부터 오늘 아침까지 거의 50시간 잠 한 숨을 못 잤는데 도대체 잠도 안옵니다. ‘나는 멘탈이 강하니깐’... 결과가 어떠하든 의연하게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치적 결과에 대한 괴로움보다 모든 과정을 함께 해준 조합원들과 주변 동지들의 수많은 메시지가 내도록 가슴을 부여잡게 만듭니다. 


수요일 새벽, 심의촉진구간이 발표되고 퇴장한 후... 수요일 저녁 전원회의에 노동계가 불참하기로 한 것과 관련하여... 
최저임금 당사자로 참여한 저에게 “조합원들 괜찮겠냐? 10원이라도 더 올려야 할텐데 감당할 수 있겠냐?” 많이들 물어보았습니다.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조합원들이 너무 실망하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보다 조합원들이 훨씬 현명하고 지혜롭고 성숙하다는 걸 가슴 깊이 배우게 됩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대부분 4~50대 여성들입니다. 집과 점포만 오가던 50평생과 전혀 다른 일상을 노동조합과 시작한 지 불과 1~2년밖에 안된 보통의 노동자들입니다.


반평생 처음으로 땡볕아래 길거리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마이크를 붙잡고 낯선 카메라 앞에 서서 ‘나의 노동이 최저임금 받아 마땅한가’를 소회하며 자신의 지난 삶과 가족의 이야기를 눈물범벅이 되도록 털어놓았습니다. 
글쓰기가 뭔지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바란다’ 엽서를 써서 수백장을 모아주었고, 각종 언론에 ‘우리의 노동과 최저임금’을 이야기하는 명품의 글들을 작성해주었습니다. 
노조탄압이 극심한 이마트 민주노조 조합원들도 점포에서 서명을 받고, 노조가 3개인 조건에서 “우리노조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다. 우리의 대표가 최저임금위원이다”를 알렸습니다.


교섭권은 없지만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임금보다 우리 노조가 함께 한 최저임금이 더 높아야 한다는 기대도 컸을 겁니다. 홈플러스도 수년째 최저임금이 우리의 임금이 되고 있기에, 당연히 조합원들이 거는 기대는 컸습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 없는 결과 앞에 조합원들은 오히려 저를 위로해줍니다. 무엇을 원망하고 탓해야 할지, 앞으로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지 조합원들이 답을 찾아줍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금액 얼마가 아니라, 우리를 대변해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영광이고 벅찬 일이고 힘이었다. 평범한 아줌마들이 십수년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노동의 대가라 하기에 지금 임금 수준이 얼마나 부당한 지. 얘기해주는 사람 단 한명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며 지친 저를 위로해줍니다. 현장의 많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 한가득인데 오히려 건네 오는 많은 메시지는 “감사합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무엇이 감사하다는 것인지 오히려 더 속상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10년, 20년 부당한 대우와 억울한 노동의 대가를 본부장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와 앞으로의 세대, 그 후의 미래 아이들을 위해 한발 나아가 주신 점. 모두들 힘들다고 하는 시대에 나침판이 되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노력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 모두 10원대 인상을 고집하는 자들과 설득과 격론을 벌이며 지금의 인상을 이루어낸 겁니다. 금액이 적을 순 있지만 이 과정에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나침판입니다”


"박근혜가 그렇지, 재벌들이랑 손잡고 한푼이라도 덜 주자고 담합했을텐데..그 사람들 혼내주고 우리 얘기해준 것도 속시원해"


“긴 시간 바라본 우리 조합원들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우리가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줌마들은 인생의 내공이 있어요. 첫 술에 배 부르려고 하면 오히려 탈 나는 거야. 올해 본부장이 이렇게 시작해 준 것 만으로도 우리한텐 힘이야. 올해만 하고 말거 아닌데, 너무 실망하지 말고 내년, 후 내년, 길게 보고 가면 돼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고, 또 다른 희망이 생길 겁니다. 우리가 있잖아요. 힘내서 다시 뜁시다”


“배부른 사용자들의 정신을 뿌리째 계속 흔들어봐요. 배부르게 해준 노동자의 피와 땀의 현실을 깨닫고 배부름의 아둔함을 알려주는 불씨는 이제 우리가 더 키워나가요”


“본부장님과 우리 모두가 멋지게 신고식 한 겁니다. 신고식 열심히 했으니 우리는 축하합니다. 그렇게 인사해요. 우리 모두 대한민국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니깐요”


“나보다 15살 나이는 적지만, 본부장님을 통해 ‘애타는 어미 마음’을 느낍니다. 각자 마음의 무게가 다르겠지만, 본부장님은 당신을 믿고 있는 조합원들이 마음의 무게일 거 같습니다. 우리가 믿은 만큼 최선을 다해주었으니 마음의 짐을 더셔도 됩니다. 오늘 말고 내일도, 모레도 보면서 더 힘을 키워나가요” 


“노동자위원들이 최선을 다했으니 그래도 이 정도 나온 거라 생각합니다. 10원짜리 몇 개 들고 나온 사람들이랑 얼마나 힘드셨어요.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 얼마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이래서 노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나 봅니다.”



오래도록 스스로를 다그치는 채찍으로 이 울림을 남겨놓고자 합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 이 노동자들에게 평범한 삶을 안겨줄 수 있게 길을 열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고, 내일이 더 숱하게 많은 날들이라고, 함께 더 힘을 키워서 다음에 더 많이 찾아오자며 결심을 모아주는 노동자들의 결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자본과 정권의 밑바닥이 얼마나 수준 이하, 천박한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자본과 손잡은 정권을 어떻게 제대로 이기고 갚아줄지, 어떻게 앞으로의 투쟁을 더 획기적으로 만들어 갈지, 몰두하며 괴로운 마음은 딱!!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함께 애쓰고 고생하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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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언니가 마트에 정육코너에서 일합니다.

어제 언니가 울면서 전화를 해왔습니다.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는데,

왜 인간답게 살기가 이렇게 어려울까요.

국회의원 의정활동비등 전체 지급금를 최저임금과 꼭 연동시켰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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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7-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회의원 의정활동비, 연금은 생각할수록 피가 거꾸로 솟아 오릅니다...

감은빛 2015-07-1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략 예상했던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결정한 금액을 들으니 화가 나네요.
어제 술자리에서 엄청 열을 올렸어요.
열 올린다고 뭐가 바뀌지도 않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