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에 한문장이 마음아프게 꽂힌다.
[김수영은 다시는 연애시를 쓰지 못하는 불구의 시인이 되고 만다.] - 97쪽
어쩌다가 이 열정적이고 희멀겋게 잘 생긴 시인이 저리 되었을까.
그의 연애시는 결혼전 딱한편 쓴 것이 있단다.
그는 첫아이를 밴 처를 두고 6.25가 발발하자 인민군에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인민군에서 탈출하여 그 악명높은 반공 포로소 생활까지 지옥같은 2년을 이겨내고 집에오니 아내가 없다. 아내는 아이를 두고 그의 벗과 살림을 차렸다.
전쟁통이었으니 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김수영이 그녀를 찾아가 다시 살자고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남겠다며 그의 손을 뿌리친다.
후에 그의 처가 다시 돌아와 남은 생을 함께 살게되지만,
시인에게 억만개의 모욕으로 남은 이 사랑의 상처를 시인은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
전쟁의 탓이다. 모든 개별성을 집어삼킨 시대의 탓이다.
김수영도 제 처를 우산으로 팰 만큼 어느 구석이 망가지지 않았을테고
곱고 똑똑했다던 그의 처도 맞고 참으며 살지 않았을 것이다.
끝임없이 자아비판을 하며 자기혁신을 했던 이 시인은 끝내 사랑에서는
그것을 성공하지 못했나보다.
[모든 것과 모든 일이 죽음의 척도에서 재어지게 된다. 자식을 볼 때에도 친구를 볼 때에도 아니를 볼 때에도 그들의 생명을,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 - 99쪽
고작 내 가족을 생명으로만 사랑하는 시인의 글을 보니 아프다.
그는 많은 위대한 시인이 그렇듯 아름다운 사랑시를 쓸 마음을 잃은 것이다.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테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 나가게
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 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ㅣ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성>(1968.1.19)
이 지독하게 슬픈 시가 그가 죽은 해에 쓰여졌다는 것을 본다.
인생은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만
그 시간안에 상처와 실수를 극복하고 나오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대부분에게 삶은 늘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