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짬짬이 해방일기를 읽고 있다. 내가 읽은 김기협의 세번째 책이고 번역한 것까지 하면 다섯번째 책이다. 세어보니 이 저자의 책을 꽤나 많이 읽어 스스로도 놀랐다.
해방후부터 건국시까지 우리 근대사를 일지형식으로 기록한 글인데(1권은 해방전후) 쉽게 해방전후의 국내외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의 글을 보자면 보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보수라는 말을 들으면 꼬장꼬장한 선비를 떠오른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긍지와 그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 말이다.
역사속으로 들어가 우리 사회의 모순의 그 뿌리를 더듬는, 어찌보면 역사학자로서 너무 당연한 작업도 '박정희의 독재는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 악' 같은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가 난무한 세상에 살다보니 소중하게 느껴진다.
혹자는 영남의 비정상적인 한나라당 사랑을 영남의 왠만한 집안은 일제시대, 전쟁통을 거치며 싹 다 박살이 나서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었다는데서 찾기도 한다. 역사학자 였던 저자의 아버지도 비명횡사했으나,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중혼관계였던 저자의 어머니 역시 당대의 뛰어난 국어학자로 세자식을 잘 가르치고 키워냈다. 한국전쟁 일지를 남긴 아버지 김성칠의 작업에서도 이념이 아닌 '민족'과 '사람다움'을 생각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보인다.
미군이 고엽제를 묻었다고 이리 온 tv에서 떠드는데, 늘 '혈맹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보수단체들은 어찌 말이 없는지 모르겠다. 외국군대의 주둔은 열렬히 옹호하고, 식민지 협조자의 신원공개엔 그리 화를 내는 단체가 과연 '보수'단체인가. 그들이 지키고 싶은 제도는 '식민지' 제도인가 싶다.
이 땅에서 진짜 만나기 어려운 건 진보가 아니라 보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