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간단히 말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들과 붙여 놓아도 지지 않는다. 정작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그들의 생산성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부자들의 불평은 얼토당토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 전체를 끌어내린다고 불평하기 전에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왜 부자 나라의 부자들처럼 자신들이 나라 전체를 끌어올리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55쪽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략) 유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은 1995년 한 tv 인터뷰에서 이 점을 훌륭하게 정리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을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입니다. 30년후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보상이지요."-56쪽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주요 목표로 하는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과 노동시장의 자유화는 금융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해서 불안정한 세상을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이 정책이 약속했던 이른바 '성장 촉진'마저 실현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잊어버리자. 인플레이션은 장기적 안정, 경제 성장,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희생해서 금융자산 소유자들에게나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기 위해 사용해 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 같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3쪽

총생산에서 제조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은 대부분 제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대문이지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량이 줄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제조업 생산품의 가격이 낮아진 것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투입 단위당 산출량)이 서비스업 분야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125쪽

실제로 복지 지출의 삭감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고령화 추세 등으로 연금, 장애인 수당, 의료보험 및 노인들에게 사회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할 구조적 압력이 커졌는데도 이에 걸맞는 규모로 복지 예산이 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복지 국가의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대다수의 국가들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수많은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금융탈규제에 따라 금융업자들은 투기 수익을 올릴 기회를 숱하게 누리고, 최고 경영자들은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게 되었다. (중략)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중략) 미국의 소득 순위에서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서 22.9퍼센트로 두 배이상 늘어났다. 소득이 상위 0.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더 득을 봤는데, 이들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9년 3.5퍼센트에서 2006년 11.6퍼센트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192쪽

더욱이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한 몫은 총소득 증가의 59퍼센트에 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에는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195쪽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 즉 무슨 현상이든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널리 전파하는 데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207쪽

이렇듯 금융 경제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은행장, 날고 긴다는 펀드 매니저, 명문 대학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유명 인사들까지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우리 인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될 만큼 똑똑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230쪽

일부러 제한적인 규칙을 만들어 우리의 선택을 의도적으로 한정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환경을 단순화시키지 않는 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는 세상의 복잡성에 대처해 나갈 수 없다. 우리에게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당사자인 경제 주체들보다 관련 상황을 반드시 더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규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제한된 정신적 능력에 대한 겸허한 인정인 것이다. -236쪽

복지 정책이 잘 된 나라일수록 계층 이동이 더 활발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계층 이동성이 전반적으로 낮은 이유가 주로 최하층에서의 이동성이 낮아서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기회의 균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최하 기본 소득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전략)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소한의 소득, 교육, 의료 혜택 등을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모두 똑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려야 한다면 공정한 경기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88쪽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 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 주는 것처럼,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 준다. 제2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할 때 더 대담해질 수 있고, 후에 직업을 바꾸어야 할 때에도 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297쪽

지난 30여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2008년 위기를 불러올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략)금융 구제 철폐와 무제한적 단기 이윤 추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준 것이 바로 그들이다. 더 넓게 생각하면 그들은 경제 성장의 둔화, 고용 불안과 불평등 악화, 그리고 지난 20년간 전 세계를 괴롭혀 온 잦은 금융 위기를 불러온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주장해 왔다. 그에 더해 그들은 개발도상국의 장기 발전 전망을 약화시켰다. 부자 나라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술의 위력을 과대평가하도록 유도했고, 사람들의 생활을 점점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현상을 모르는 체하도록 했고, 탈산업화 현상에 안주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경제현상들, 즉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 지나치게 높은 경영자들의 보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극심한 빈곤 등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본성과 각자 생산 기여도에 따라 보상받을 필요성을 감안할 때 모두 피할 수 없는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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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고님 리뷰 읽고 혹해서 이 책 구입했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얼른 읽어봐야하는데 말이죠 -_- 경제에 취약해서 읽을 수 있을지 약간 두려워지네요 ^^;;

무해한모리군 2011-02-10 19:33   좋아요 0 | URL
이 저자의 장점 중 하나는 쉽게 쓴다는 것이죠 ^^
우리나라의 현실이 하도 개떡같이 돌아가니 나름 몰입이 되더군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감은빛 2011-02-12 02:2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주변 분들의 강추로 구입했지만,
아직 손도 안대고 있네요.(혹은 못대고 있는 걸지도!)
쉽게 쓴다는 말들을 많이 하긴 하던데,
그래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2-15 16:28   좋아요 0 | URL
저는 저자의 생각에 그닥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국가의 역할이 강해진다고 해결될 문제라면 이리 됐겠습니까 --)
강추는 아니고 그냥 추천 정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