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을까"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중략)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 줄 것으로 믿는다.
-127~128쪽 (강조는 내가 했다)
오늘 아침출근길엔 나이든 한 남자의 달리기 책을 읽는다. 젊은 여성이 자기 앞을 거침 없이 앞질러 가도 조금의 동요도 생기지 않을 만큼 패배에 익숙하고, 자기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인식 인정하고 있고, 태연하게 '효과적으로 연소'시키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내게 하루키는 쿨한 사람, 아무 것도 아닌 소재로도 백페이지쯤은 멋드러지게 써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을 읽으며 그런 인식이 아주 조금 변했다. 규칙적으로 달리기 일지를 쓰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늘려가는 사람,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성실한 생활인, 감정이 아주 단단한 사람이 느껴진다. 그가 쓴 1Q84의 덴고를 조금은 닮은 남자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글 속에서 아주 쉽게 1Q84의 몇몇 배경을 가려낼 수 있다.. 그의 달리기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트레이너인 '힘이 강한 여성'이 잠시 언급되는데 아오마메의 모델로 생각된다. 그는 이 글을 쓸 당시 뭉친 근육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후카에리의 아버지도 몸이 돌처럼 땡땡하게 굳어 고통받고 있다. 후카에리 아버지의 접신 상태가 사실은 달리기의 근육통이 소재라고 생각하니 조금 재미있다. 그는 매일 성실히 달리는 과정을 통해 글쓰기를 건져올리고 있나보다.
1권과 2권은 읽고 바로 팔아버렸고, 읽으면서도 궁시렁거렸는데, 결국 3권도 나오자마자 예약구매를 했다. 그는 위대한 작가는 아니지만 자기 스타일을 완성했고, 열혈 독자를 거느린 성공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생활인으로서의 이런 끈기와 성실함이었나보다.
그럼 나도 아침 독서 정리는 이만 하고 밥벌이 하러 가야겠다. 매번 이길 수 없는 것이 삶이니 실패든 성공이든 평범한 하루하루가 싾여 만든 내가 손이 묵직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오늘도 숫자 하나하나를 마음을 담아서 째려봐야겠다.
그럼 으라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