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여성학 소모임을 가졌다. 

행복한 페미니즘 5~8장을 토론했다. 

우리모임은 최고 느림보 독서모임이라 할만하다. 
우리는 행복한 페미니즘을 염소처럼 느리게 꼭꼭 우물우물 먹어치우고 있다. 

이번 모임을 하면서 내 머리를 스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일단은 외모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다. 

어제도 찻집에 비치되어 있는 패션지를 뒤적이다 보니 정말 빵한쪽이면 살인이라도 저지를듯 마른데다, 약에라도 취했는지 눈까지 쾡해진 여성들이 장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병적인 마름에 대한 찬양, 광적인 여성의 미성숙에 대한 찬양의 한 단면을 보는듯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든 여성에 대한 비아냥이 있다. 

그것은 여성의 효용과 출산(재생산)을 붙여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출산기능이 끝난 중년 여성의 자궁을 그렇게 쉽게 떼어버리는 걸까? 

이 놈의 아름다움이니 패션이니 하는 것도 조금 이상한 것은 사람이 입을 옷인데 마네킹이 입었을때 제일 예쁜 옷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뭔가 잘못됐다.  

서양아이들이 차도르나 할레에 대해 힐난하는 것을 들으면 그래서 좀 우습다. 강박적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이나 광속으로 변하는 패션이나 다 성차별주의적이긴 마찬가지인데 내 눈에 들보는 안보이나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386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듯한 비난이다. 

백인브루조아지인텔리 여성운동가들이 초기 여성운동의 성과를 쓱 하고 모두 가지고 빠르게 기성층에 흡수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한편 유색 노동계층 여성들은 맞벌이나 이혼에 따라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앞세대 운동의 리더와 팔로워, 교화대상으로 대중을 보는 시각의 유효성은 이미 끝난듯 보인다. 

자신의 요구는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인 만큼 끊임없이 스스로의 불만, 불평을 함께 이야기하고, 구호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모임도 비혼 삼십대 여성들인 만큼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들을 제기하고 바꿔가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보다 진보운동이 저들이 주장하는 기회의 균등에 맞서서 우리 여성들의 최저의 삶을 올리는 운동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사회의 밥과 잠자리와 일자리의 최저치를 끌어올리는 의제들을 가지고 싸우고 싶다. 

마지막 생각거리는 여성회의 나아갈 방향을 정리한 글 중에 '가족과의 거리두기'다. 

비혼으로 홀로 살고 있는 내 삶에 크게 관여하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주거적 자립과 함께 가족들과는 친숙한 타인의 관계로(사실 언니 오빠는 결혼하고 나서는 친숙함 마저 줄어든듯 하다) 성립되어 왔다. 미안하게도 참으로 편안하다. 아프거나 외로울때 홀로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을 충분히 감내할만큼 자유의 씨앗은 달콤하다. 

기혼의 삶은 어떨까? 경제적 공동체, 육아 공동체 로서의 결혼을 때로 생각한다. 온동네에 소문날 만큼 극진히 나를 아끼시던 우리 어머니와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위한 처절한 이십대의 싸움을 또 다른 가족과도 벌여야 하는 걸까? 나와 파트너 모두 자신들의 취향과 공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지난 번 모임 실천과제였던 대학선배인 지역위 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엔 회사 접대자리가 갑자기 잡혀서 나가지 못했다. 또 모임 막내와 서울여성영화제를 보려고 했는데 아파서 무산됐다. 첫 모임 실천과제 부터 꽝! 이런... 

다음주 월요일엔 여의도 벚꽃놀이를 가기로 했고,(춥지 않을까?) 다음 모임은 집들이랑 생일파티도 하기로 했다. 여성회 앞마당에 심을려고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모종 5개씩을 생협에서 주문했는데, 어서 심어서 모임하는 친구들과 삼겹살 파티를 해야지. 이번 나의 실천 계획은 여성회 앞마당에 모종 심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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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1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어떤 모임인가를 떠나서 마음 맞는 분들이 모인다는 것이 무척 즐거워 보이시네요^^

무해한모리군 2010-04-19 08:35   좋아요 0 | URL
동년배들과 수다를 떠는건 참 즐거워요 ^^

기억의집 2010-04-2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휘님하고 약간 다른 생각이 있는데....
차도르나 할레가 비난받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래요.
종교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때문에 자신의 얼굴도 가려야 하고
자신의 성기를 학대한다는 것 때문에 비난을 하는 거죠.
그게 남성들이 만들어낸 문화잖아요.
페르세 폴리스라는 만화 앞장에 제일 먼저 차도르가 나와요.
이란 혁명이 일어나 정권을 잡으면서 차도르를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쓰게 하잖아요.
작가는 왜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이 차도를 해야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잖아요. 그리고
여성의 억압수단으로 차도르를 이용하고 있다는 암시도 주고요. 킴 와일드의 노래를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권력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잖아요. 차라리 차도르를 좋아하는 사람만 쓰게 한다면 괜찮은데 모든 여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쓰게 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여요.
그리고 할레는 진짜 없어져야해요.
저는 할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게 문화나 전통이라고 합리화했거든요) 미드 로앤오더 8시즌인가에서 저 할레 문제가 나와요.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이 할레때문에 죽기도 한다고 하더라구요.
할레의 목적이 처녀성을 지키는 것이잖아요.
그 얼마나 남성우월적인 사고에서 출발한 것인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잖아요.
저는 저도 딸 키우지만 제 딸이 꼭 처녀로 결혼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아요.(폭탄 선언이죠!)
좋아하는 사람을 수 없이 만날텐데... 싶기도 해서요.
너무 길어서 더 이상 못 쓰겠어요. 나중에 휘님 만나면 이런 이야기 했으면 좋겟네요.
글구 어제 원두커피 땡스투 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0-04-21 16:28   좋아요 0 | URL
저는 두문화 모두 없어져야한다는데 당연히 동의합니다. 단 모두 성차별주의에 근거한다는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여성에 대해서 유난히 강조되는 외모지상주의나 몸에 대한 차별, 성폭력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넘치는 땡투 ㅎㅎㅎ

fiore 2010-04-2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지금 보네요. 나이든 여성에 대한 비아냥'에 대해 저도 요즘 다시, 더 가까이 생각하고 있거든요. 노처녀 (노총각'도) 단어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 보고요.

많은 공감이 가는 포스팅이에요. 절실히. --;


무해한모리군 2010-04-26 08:51   좋아요 0 | URL
아 어젠 모임을 빼먹었어요.
님이 무신 나이가 많다고 그러세요 ㅎㅎㅎ
(슬쩍 이러면서 묻어가는)

내 눈엔 사람들이 다 고운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