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가 물을 마시고 싶어했던 것처럼 그는 말이 하고 싶다. 아들이 죽은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그는 아직 그 누구와도 제대로 말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말을 하려면 제대로 뜻이 통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 사이도 둬가면서... 아들이 어떻게 아프기 시작했고, 어떻게 괴로워했으며,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죽어갔는지...(중략) 지금 그가 할 이야기가 오죽 많겠는가? 듣는 사람은 탄식도 하고 한숨도 쉬고, 맞장구도 치고 해야한다...
(안똔 체호프, 슬픔, 97쪽)
우리는 그녀를 사랑했다.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인간이란 언제나 누구에겐가 자신의 사랑을 쏟고 싶어한다. 비록 때로는 그것으로 억압하고, 때로는 더럽히며, 가까운 사람의 생명을 자신의 사랑으로 해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사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따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녀 말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할 만한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막심 고리끼, 스물여섯과 하나, 135쪽)
지금 암소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 아들, 송아지 뿐이다. 인간도, 여물도, 태양도 이 세상 그 무엇도 자식을 대신할 수 없었다.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찾는 것이, 그래서 더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다시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행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암소의 희릿한 지성은 스스로를 기만할 능력이 없다. 한번 암소의 가슴속에 혹은 감정 속에 들어온 것은 억눌리거나 잊힐 수 없는 것이다.
(안드레이 쁠라또노프, 암소, 241쪽)

인간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말할 상대, 사랑할 상대, 그리고 잊을 수 있는 능력(아니면 그렇다고 속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체호프의 슬픔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과 정확히 반대 시점인 가족이 죽은 후의 남겨진 이의 견디는 모습을 그리고, 고리끼의 스물여섯과 하나는 빵주인에게 노예처럼 부리는 사내들이 자기들이 사랑한 쬐그마한 여자아이, 유일한 사랑에게 버림받아 삶의 유일한 인간적인 면이 사라지는 이야기며, 암소는... 사람에게 일해주고, 우유도 주고, 자식도 내어주고, 종래는 자신의 살과 뼈마저 주고 죽은 암소의 이야기다. 참 인간이란 잔인하고도 슬프다.
<더 읽어보고 싶은 책>
노르슈쩨인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암소'도 구할 수 있다면 보고 싶다.


